不可勝則守,可勝則攻
근래 겪은 일 하나를 중심으로 간략히 적어본다.
농장 정문 건너편,
전에 군부대가 있었다.
거기는 당시 부대 출입구인데,
농장 개설하면서 유심히 살피니, 그곳이 필경 우리 땅으로 보였다.
하여, 이러저러한 곡절을 거쳐,
그곳이 우리 땅인 것을 군과 함께 확인하였다.
그 후, 부대 이전과 동시에 잃었던 땅을 점유회복하였다.
그러고 나서 지금까지 한 6년 정도 사용하는 중이었다.
헌데, 얼마 전,
부대 소속 3인이 나타나,
느닷없이 땅을 내놓으라는 투로 덤빈다.
너무 황당한 일이라,
그 동안 일어났던 일을 다시 환기해줄 요량으로 말을 잇는데,
마침 그들이 잘못 연락하여, 항의하러 온 동네 사람을 맞았다.
하여 이야기가 끊기고, 나는 잠시 물러나 있었다.
저들 중 선임자가 항의하러 온 자와 함께 자리를 옮겨갔다.
헌데 잠시 후 경찰이 찾아왔다.
무슨 일인가 하니,
저이가 내 이야기를 마저 듣지도 않고,
곧바로 경찰을 불러댄 것이다.
애초, 저들이 수십 년 간 개인 땅은 무단 점유하였던 것이로되,
이게 정식으로 측량하여 부대 측이 무단 점유한 것도 확인이 된 마당이었다.
하여 돌려 달라 하니,
부대 이전 계획이 있으니,
몇 년 더 사용하게 해 달라 부탁하였다.
그럼 그리 하라 허락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저들이 이전하면서,
자신들 손으로 경계면에 울타리를 치고,
땅을 다시 회복하여 주었던 것이다.
그러한 것인데,
이들이 느닷없이 나타나, 땅을 내놓으라는 것이다.
낮도깨비라 한들 이리 나타나 횡포를 부리듯 막무가내 짓을 하지 못할 것이다.
그 동안 부대로 인해,
저들의 점유 말고도, 적지 아니 피해를 입어왔었는데,
적반하장도 여간 유만부동이 아닌 것이다.
게다가 상호 의논도 다 마치지 않았는데,
일방적으로 경찰을 불러대다니 이들이 스스로 섶을 지고 불에 뛰어 들려 함인가?
하여 내 저들을 징치(懲治)하고자 하였으니,
어찌 그 일에 차질이 있으랴?
결국 책임자와 함께 일을 일으킨 자가 찾아와 내게 사과하게 만들었다.
허나, 한참 일에 미숙한 이들이라,
내 그만 용서를 하고 말았다.
이게 바로 지난 화요일 일이다.
도대체 시골 땅에 왜 이리 분란이 자주 일어나는지 모르겠다.
이곳 시골 주변 일에 아무런 관심이 없으니,
제발 가만히 있는 이를 이제는 그냥 내버려 두길 바란다.
이 때,
내가 잠시 떠올린 것이 있으니,
이를 다시금 정리해두고자 한다.
(이는 내가 예전에 잠시 언급한 적이 있는 내용이다.)
남과 다투고자 할 때,
이길 수 있으면 싸우고,
그렇지 않으면 피할 일이다.
내 아무런 잘못이 없고, 부끄러움 없이 떳떳한 형편이니,
싸우기 전에 이미 이기고 있다 하겠음이다.
헌즉, 어찌 싸움을 피할 일이 있으랴?
***
故用兵之法,十則圍之,五則攻之,倍則分之,敵則能戰之,少則能守之,不若則能避之。故小敵之堅,大敵之擒也。
(孫子兵法 謀攻)
"고로 군사를 쓰는 법은 이러하다.
(아군의 병력이) 열 배면 포위하며,
다섯 배면 공격하며,
두 배면 나눠 치고,
대등하면 싸우고,
적으면 지키고,
여의치 않으면 피한다.
고로,
적보다 적으면 굳건히 지키고,
많으면 포로로 잡는다."
여담이지만,
故小敵之堅,大敵之擒也。
이 부분은 해석이 분분하다.
敵은 명사일 때는 말 그대로 적(enemy)이지만,
동사일 때는 대항하다(對), 맞먹다(匹), 적대하다(resist)란 뜻이 된다.
이제 이 敵을 명사로 해석하게 되면 사뭇 이상해진다.
‘작은 적의 견고, 큰 적의 포로’
이리 되면 전후 귀가 논리적으로 연결이 아니 되고 해석이 꼬여 버린다.
그러니까 대부분은 이곳에서 버벅거리며,
그 본래의 뜻을 상하며 억지 해석을 하게 된다.
가령 ‘소수인데도 어깃장을 부리면 적군의 포로가 된다.’
이런 식으로 해석을 해버리고 만다.
이러면 앞 뒤 귀가 서로 아귀가 맞지 않게 된다.
그런데 이제 동사로 보고, 전후 구절을 나누면 뜻이 아연 살아나며 밝아진다.
故小敵之,堅也。大敵之,擒也。
堅 다음에 也가 생략된 것으로 보고, 여기 也를 보충해주자.
이렇게 두고 해석해보면 이리 된다.
‘수가 적어 저들을 상대할 때는 굳게 지키고,
수가 많아 저들을 상대할 때는 포로로 삼는다.‘
그러니까 이 뜻은 병법서에 흔히 등장하는 다음 글과 잘 부합된다.
不可勝則守,可勝則攻
“이길 수 없으면 지키고, 이길 수 있으면 공격한다.”
이렇듯,
앞의 글에서 敵을 동사로 새기면 그 뜻새김에 있어, 논리적 어긋남이 없다.
攻而必取者,攻其所不守也;守而必固者,守其所不攻也。故善攻者,敵不知其所守;善守者,敵不知其所攻。(虛實)
“공격하여 필히 취하는 자는 적이 지키지 못할 곳을 공격하고,
지키길 굳건히 하는 자는 적이 공격하지 못할 곳을 지킨다.
그런즉 공격을 잘하는 자는 적이 지킬 수 없는 곳을 치고,
잘 지키는 자는 적이 그 공격할 바를 아지 못하는 곳을 지킨다.”
손자병법 허실 편의 이글은 앞의 모공편의 글과 그 뜻이 서로 호응한다.
所以善守者藏於九地之下,因其山水丘陵之固。善攻者動於九天之上,因天時地利之變,若動於九天之上也。故能自保而全勝也。
(太平御覽 兵部四十八)
“소위, 잘 지키는 자는 구천(九泉) 지하 밑에 숨으니,
이는 그 산수, 구릉의 견고함 때문이며,
공격을 잘하는 자는 구천(九天) 위에서 움직이니,
이는 천시지리의 변화 때문이다.
고로 능히 자신을 보호하고, 온전히 이긴다.”
주위상(走爲上) 36계는 이렇듯 선수자(善守者)가 취하는 방도일 뿐,
궁지에 몰려 최후에 어찌 할 수 없어 취하는 방도로 볼 이유가 없는 것이다.
善守者藏於九地之下
善攻者動於九天之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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