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靑山)은 없다.
북한산은 집 바로 뒤라,
한 때 거의 매일 오르다시피 하였다.
어느 날 산에서 내려와,
예전 청수장이 있던 곁 자락 공원에 이르렀다.
지금 이곳은 연수원이라든가, 아니면 직원 숙소라든가 하는 것을 지어,
시민들이 옴살거리며 쉬던 곳을 공무원 녀석들이 앗아가 버렸다.
지금 그곳을 지나치다 보면,
문은 늘 굳게 닫혀 있고, 정적이 흐르고 있어,
도대체 무엇을 하는 곳인지 수상쩍기 짝이 없다.
하여간 당시 여기 저기 벤치가 몇몇 놓여져 있었는데,
거기 누워 뒹구는 이가 하나 있었다.
곁에서 지인을 모시고 쉬고 있었는데,
어찌 하다 그자와 말 거래를 트게 되었다.
그가 읊은 시가 여기 있다.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없이 살라하네
사랑도 벗어놓고 미움도 벗어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없이 살라하네
성냄도 벗어놓고 탐욕도 벗어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
靑山兮要我以無語
蒼空兮要我以無垢
聊無愛而無憎兮
如水如風而終我
靑山兮要我以無語
蒼空兮要我以無垢
聊無怒而無惜兮
如水如風而終我
이 시는 나옹화상 혜근(懶翁和尙 慧(惠)勤) (1320∼1376)이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헌데, 일설엔 실제 작가는 그가 아니고 중국 당나라 때의 한산(寒山)이라고도 한다.
내 그래 그 내력을 밝혀보려, 한 동안 조사를 해보았으나,
아직까지 이게 한산의 시인지는 미처 확인하지 못하고 있다.
그가 지었다는 600여 수 중 지금 한 300여 수 남아 있다고 하는데,
寒山子詩集을 조사하여 보았으나,
아예 靑山이란 말조차 찾아 볼 수 없었다.
하여간,
저리 그럴듯한 시를 읊조리니,
이이가 청산에 깃든 한사(閑士)인가도 싶었다.
공원에는 늘 화투 치고, 담배 피며, 술 먹고 고함치는 이들만,
가득하였기에 이런 시를 읊는 인사를 대하자니, 의외였던 게다.
몇 마디 말을 주고받으니,
이내 말이 통하고, 의기가 투합하여,
술자리까지 이어졌다.
반란사(叛亂史)를 전공하였다는 그는,
세칭 비정규 교수, 강사였다.
나중에 술이 거나하게 돌아가자,
나를 내버려두고 어느 새 자리를 벗어났더라.
如水如風
물처럼, 바람처럼 사라진 그.
술자리에서,
도망을 가버리다니.
이리 비루한 자가 또 있으랴?
신세 한탄이 늘어지던 그.
차라리 술값이 없다고 하고 말지.
연구 서적을 보여준다고 하였음인데,
그의 전공답게 주우(酒友)를 앞에 두고 반란을 꾀하였음인가?
酒肉朋友
술과 고기를 함께 마시고, 뜯으면 친구가 된다.
하지만 술이 마르고, 고기가 없어지면,
그런 친구는 언제 보았느냐 하며 다 떠나가고 만다.
이제 이를 狐朋狗友라 한다.
무릇 친구를 사귀려면, 患難之交가 되어야 한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 하에서도 벗을 버리지 않는 사귐이란,
선술집 酒肉처럼 그리 흔한 것이 아닌 것이다.
靑山은 말없이 살라고 하지만,
나는 청산은커녕 동네 뒷 동산도 닮지 못하니,
이리 지난 기억을 다시 꺼내들고 있구나.
허나,
청산을 사모한다면,
한산처럼 한암(寒巖)에 들어 은거(隱居)할 일이다.
행여, 저자거리에 나서, 공술 먹고 행패를 부리고,
남을 속이며, 계집을 후릴 일이 아니다.
시장은 셈을 치루고, 제 만족을 거래하는 곳이지,
결코, 신뢰를 배반하고, 제 사익을 꾀하는 곳이 아니다.
이게 아니 되면, 년년세세 쌓여 적폐가 되고 만다.
적폐청산(積弊淸算) 하라고,
대권 건넸더니만,
내부 권력 암투에 날을 지새우고,
청와대 기강은 거의 반란군 수준으로 엉망이다.
실로, 저들은 신적폐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청산(靑山)은 없다.
청산(淸算)을 하자.
그리 하자고,
지지난 해 얼은 동토에서,
발을 동동 구르고, 시린 손 불며, 촛불을 든 것이 아닌가?
시민의 촛불 정신을 네다바이한 문가 정권,
그래서 나는 이 무리들을 용서할 수 없는 것이다.
이제 구적폐(舊積弊)에 신적폐(新積弊)를 보태니,
이들을 모조리 청산(淸算)하려면,
촛불이 아니라 횃불을 들어야 하나 싶기도 하구나.
아직,
여기,
청산(靑山)은 없다.
청산(淸算)을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