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ngta      

개, 원숭이, 말

소요유 : 2019. 1. 11. 15:08


얼마전 컴퓨터를 켜는데,

모니터 상에 ‘Entering power save mode’란 메시지가 뜨면서,

컴퓨터 부팅이 되지 않았다.

헌데, 그에 앞서 signal은 디텍트 되었단 메시지가 발해지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는 곧 컴퓨터가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즉,

save mode에서 빠져 나오면 되는 일이다.

헌데, 아무리 조치를 하여도 지시 내용은 여전하였다.


하여 이리 저리 궁리를 하였지만, 해결을 할 수 없었다.

이런 문제는 나만 겪는 것이 아니라,

조사를 해보니 전 세계적으로 여러 소비자가,

원인은 달라도 동일한 증상을 경험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하여, 모니터를 교체하여 보았는데,

이 경우 no signal이란 메시지가 뜬다.

이는 곧, 컴퓨터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할 수밖에 없다.

하면 이제부터는 컴퓨터에만 집중하여 수리를 진행하면 될 일이다.

이 과정은 조금 있다 기술하기로 하고,

잠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을 다루기로 한다.


그런데 왜 유독 델 모니터만 ‘Entering power save mode’

이런 메시지가 발하여 지고 있는 것인가?


참으로 희한한 것이, 

이럴 경우, 델 측의 안내란 것이 너무 안일한 것을 알게 되었다.

게다가 이를 별반 문제 의식 없이 받아들이는 일반 소비자도,

역시나 순진하기 짝이 없었다.

우선 Dell측의 문제 대응 태도를 보자.


“모니터 신호 케이블 & 전원 케이블 모두 제거 후 모니터 전원 버튼 10초정도 누르고 다시 전원케이블 및 신호케이블을 연결해보십시오.”


이것 무슨 말인가 하면,

device의 network(회로)를 close loop(폐회로)로 만들어 잔류 전류를 없애란 것이다.

아니 그래도 통상 이것 자연 상태로 놔두면 거지반 방전되고 만다.

헌데, 저런 식으로 케이블을 빼고,

전원 버튼을 누르고서야 방전을 시켜야 한다면,

이 얼마나 번거로운 노릇이며, 수고로운 짓이 아니랴?


게다가, 무릇 전자, 전류 기기엔 잔류 전류가 남아 있게 마련이다.

헌데, 이를 유의미한 신호로 포착하고,

이어 ‘Entering power save mode’로 진입한 것으로 해석을 하고 있으니,

이는 명백히 Dell측의 설계 하자라 할 수밖에 없다. 


또한 저런 식으로 일시 해결이 되었다 하더라도,

차후 저런 현상이 다시 일어나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다.

그 때마다 매번 케이블 빼고, 전원 버튼을 누르는 짓을 해야만 하겠는가?

델 측은 저 따위 땜빵식 조치로 대응할 일이 아니라,

근원적인 해결책을 내놔야 한다.


컴퓨터 뚜껑을 열고 점검해보니, power supply는 아무런 이상이 없다. 

대개 고장은 cpu, mother(main) board, memory, hard disk에서 난다.

이들을 차례로 점검하면 고장 개소를 바로 찾아낼 수 있다.

cpu를 교체하였으나, 증상은 여전하다.

그렇다면 하고 main board를 아예 통으로 교체하였다.

예전에는 이 보드에 박혀 있는 칩 하나하나를 점검하고,

고장 난 단위 소자를 빼내고 교체하던 시절도 있었다.

요즘은 이런 짓 하지 않는다.

물자도 흔해졌고, 인건비도 비싸졌기에,

이리 한가하게 시간을 허비할 사람은 없다.

물자는 낭비되지만, 

요즘 경제적으로 이를 감내할 이는 사라지고 없는 것이다.


main board를 교체하자,

이내 컴퓨터가 정상화 되었다.


이리 간단한 일인데,

나는 왜 최근 근 열흘간 넷과 단절되었는가?

이것 말고도 여러 가지 일이 한꺼번에 닥쳤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농장에 있는 컴퓨터 3개가 모두 며칠 간격을 두고, 

차례로 고장이 난 것은 물론, 혹한에 비닐하우스가 찢겨 나가기도 하였다.

이거 먼저 수습하느라 다른 일에 눈길을 미칠 겨를이 없었다.


컴퓨터가 고장이 나자,

대신 묵혀두었던 책을 읽기로 하였다.

하여 좋은 경험을 하고,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나는 근 20 여 년 동안 TV를 보지 않았다.

하자, 나중에 TV를 어쩌다 보게 되면,

이내, 싫증이 나며, 심지어 속이 메스꺼워지며,

급기야 화가 날 지경이었다.

저 따위로 사람을 우롱하고, 홀리며,

사람들의 자율 신경을 마비시키며,

세상을 어지럽히고 말다니!

이것 과장이 아니다.

실제 내가 이런 경험을 하고 있는 당사자이다.

어찌 공연히 헛말을 하리오.


余自幼讀《聖教》不知聖教,尊孔子不知孔夫子何自可尊,所謂矮子觀場,隨人說研,和聲而已。是余五十以前真一犬也,因前犬吠形,亦隨而吠之,若問以吠聲之故,正好啞然自笑也已。五十以後,大衰欲死,因得友朋勸誨,翻閱貝經,幸於生死之原窺見斑點,乃復研窮《學》、《庸》要旨,知其宗貫(實x),集爲《道古》一錄。於是遂從治《易》者讀《易》三年,竭晝夜力,復有六十四卦《易因》鋟刻行世。

  嗚呼!余今日知吾夫子矣,不吠聲矣;向作矮子,至老遂爲長人矣。雖余志氣可取,然師友之功安可誣耶!既自謂知聖,故亦欲與釋子輩共之,蓋推向者友朋之心以及釋子,使知其萬古一道,無二無別,真有如我太祖高皇帝所刊示者,已詳載於《三教品刻》中矣。

  夫釋子既不可不知,況楊生定見專心致志以學夫子者耶!幸相與勉之!果有定見,則參前倚衡,皆見夫子;忠信篤敬,行乎蠻貊決矣,而又何患於楚乎?

(李贄(1527年~1602年), 聖教小引)


“나는 어려서부터 성교(聖教, 성인의 가르침)를 읽었지만, 그를 알지 못했고, 

공자를 존경하였지만, 공자에게 어떤 존경할 만한 점이 있는지, 아지 못하였다.

소위, 난장이가 놀이마당에서, 구경하다,

사람들을 따라 추임 소리를 함께 질러대는 격이었다. 


나는 오십 이전에는 진실로 한 마리의 개에 불과하였음이다.

앞의 개가 짖어대면 따라 짖어대었을 뿐이다.

만약 짖는 까닭을 물어오면, 

말문이 막혀 웃음으로 얼버무리고 말았을 뿐이다.


오십 이후에 몸이 쇠약하여 죽을 지경에 이르자,

친구들의 권유와 가르침을 받아들여, 불경을 뒤적이며 읽기 시작하였다.

다행이 생사의 근원에 대하여,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게 되었으므로,

대학과 중용의 요지를 다시 궁구하였다.

그 관통하는 종지(宗旨)를 알아내 도고(道古)란 책을 엮어내었다.

그러다 마침내는 주역을 연구한 이를 좇아 삼년 동안 주역을 읽었다.

주야가 다하도록 힘을 써, 

다시 64괘를 밝힌 역인(易因)이란 책을 판각하여 세상에 내놓았다.


오호라!

나는 오늘에야 우리 공자를 알게 되었고,

따라 짖는 개 소리를 내지 않게 되었다.

예전의 난장이가 늙어서야 마침내 어른이 된 것이다.


비록 나의 뜻과 기상이 가히 쓸모가 있었다한들,

스승과 친구들의 공을 어찌 (없다고) 속일 수 있으랴?


기왕에 성인에 대하여 안다고 자부하게 되었으니,

그런 까닭이라도 불교를 배우는 무리들과 더불어 공유하고자 한다.

예전에 친구들이 이끌어준 마음을 불교도들에게 미쳐나가,

그 도가 만고에 하나일 뿐이고,  

둘이 아니고, 별도로 다른 것이 아님을 알게 하련다.

이는 진실로 우리의 태조고황제께서 간행하여 제시한 뜻과 같은 것이니,

이는 삼교품(三教品) 안에 자세히 실려 있다.


무릇 불교도들조차 모르면 아니 되는 것인데,

항차 양정견처럼 전심으로 공자를 배우는데 뜻을 둔 이에게랴?

부디 우리와 더불어 힘써 공부하길 바란다.

바른 견해가 생긴다면, 어떠한 상황 하에서도 공자를 모두 볼 수 있을 것이다.

충신독경(忠信篤敬)이 오랑캐 땅에서도 행해질 것이 분명한데,

어떻게 초나라 땅에서 (아니 그럴 것을) 걱정하겠음인가?”


因前犬吠形,亦隨而吠之


과시 이 말씀은 하늘에서,

땅을 향해 번개 꽂고 천둥치는 소리라 하겠다.


여기 등장하는 오십(五十)은 기실 인생의 나이에 비추어,

하나의 큰 마디로 여겨지는 바이니, 자주 거론되는 나이인 것이다.

가령 한의학에서도 오십견(五十肩)이라 하여,

하필이면 오십이 되어 어깨가 결리고 아픈 것이기에,

병명에 오십을 끌어 들이고 있는 것인가?


회남자의 거백옥(蘧伯玉) 역시 지비지년(知非之年)으로,

이 오십을 짚고 있는 것이다.

이에 그 부분을 여기 따 옮겨둔다.

전체 번역은 생략한다.

다만, 年五十,而有四十九年非。

이 부분만 역한다면 이러하다.

“나이 쉰이 되자, 마흔아홉의 잘못을 알게 되었다.”


철들자 망령난다는 말이 있듯,

대부분의 경우 쉰도 빠른 것이다.


先唱者,窮之路也;後動者,達之原也。

何以知其然也?凡人中壽七十歲,然而趨舍指湊,日以月悔也,以至於死。故蘧伯玉年五十,而有四十九年非。何者?先者難為知,而後者易為攻也。先者上高,則後者攀之;先者逾下,則後者蹶之;先者隤陷,則後者以謀;先者敗績,則後者違之。由此觀之,先者則後者之弓矢質的也。猶錞之與刃,刃犯難而錞無患者,何也?以其托於後位也。此俗世庸民之所公見也,而賢知者弗能避也。所謂後者,非謂其底滯而不發,凝結而不流,貴其周於數而合于時也。

(淮南子 原道訓)


TV 바보상자에서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에,

박장대소하며 따라 놀아나지나 않는 것인가?


오늘, 이탁오(李卓吾, 李贄)의 저 말씀을 귀히 여겨,

내 그 출전을 찾아 전문을 따라가 보고 있는 것이다.


헌데, 이번에 컴퓨터가 고장이 나고,

인터넷을 하지 못하게 되자,

가만히 앉아 있어도 절로 십 여 편의 글이 떠오르고 엮여지고 있더라.

깊은 산 속 옹달샘엔,

새벽녘이 되면 절로 새로운 물이 고이는 법.

그러하니, 이 열흘간에,

책 말고는 아무 곳에도 접하지 않고 있었음에도,

마치 옹달샘처럼 새롭고 청신한 기운이 어찌 절로 머릿속에 고이지 않을쏜가?


헌즉, 인터넷 역시 TV처럼,

멀쩡한 사람들을 난장이를 만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어지는 것이다.


불교엔 심후(心猴)라 하여,

마음을 원숭이에 곧잘 비유하곤 한다.


此五根者,心為其主。是故汝等當好制心,心之可畏,甚於毒蛇、惡獸怨賊、大火越逸,未足喻也,動轉輕躁,但觀於蜜不見深坑,譬如狂象無鈎,猿猴得樹騰躍跳躑,難可禁制,當急挫之無令放逸。縱此心者喪人善事,制之一處無事不辦。是故比丘,當勤精進折伏其心。

(佛垂般涅槃略說教誡經(佛遺敎經))


“이 오근(五根 : 眼耳鼻舌身)도 그 주인은 마음이니라. 

그러므로 너희는 마땅히 그 마음을 제어하라. 

마음이 두렵기는 독사나 사나운 짐승이나 원수보다 더해서, 

큰 불길이 타오르는 것도 그것에 비길 바가 못 된다. 

마치 그것은, 꿀 그릇을 손에 든 사람이 이리저리 까불고 날뛰면서 

오직 꿀만 보고 깊은 구덩이를 보지 못하는 것과 같다. 

또 그것은 마치 고삐 없는 미친 코끼리 같고, 

큰 원숭이가 나무를 만나서 이리 뛰고 저리 날뛰어 제어하기 어려움과 같으니, 

마땅히 빨리 그것을 바로잡아 방일하지 못하게 할지니라. 

이 마음을 놓아 버리면 모든 착한 일을 잃어버리게 하지만, 

그것을 한 곳에 모아 두면 이루지 못할 일이 없다. 

그러므로 비구는 마땅히 부지런히 힘써 나아가 마음을 항복 받아야 할 것이다.”

(※ 번역 전재 : 무구 김정희)


TV가 때론 인터넷이,

혹 함정을 앞에 두고 혼을 아낀 꿀단지가 아닌가?

이런 생각을 해보는 것이다.

마음은 잔나비인 게라.

꿀단지 앞에 두고,

미처 바로 앞에 벌어진 검은 구덩이를 아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출처 : Βaike)


心猿意馬라,

마음은 잔나비처럼 이 나무 저나무로 날듯 돌아다니길 즐기며,

뜻은 말처럼 한 곳에 머무르지 못하고 동쪽, 서쪽으로 내달기 바쁜 것.


TV, 인터넷에서 쏟아지는 요지경(瑤池鏡)에 빠져,

헤어나지 못한다면,

이 어찌 잔나비나 말 내지는 미친 코끼리와 다를 바 있겠음인가?


나는 진작에 TV가 그러함인 것을, 깨달았지만,

이번엔 인터넷 역시 그럴 위험에 가깝다는 것을 점검해보게 되었다.

물론 전부터 인터넷에 너무 시간을 앗기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갖고 있었지만,

이번 참에 실제로 금단(禁斷)의 시간을 가지며,

그에 따른 스스로의 생활 변화를 관찰해볼 수 있었다.


물론 자료나 정보가 집적된 일종의 창고로 기능하는 공덕이 왜 아니 없겠음인가?

허나, 눈을 팔리게 되고, 혼을 홀리게 되는,

여러 꿀단지가 널려 있기도 함이라,

이를 잘 분별하여 고르는 절제심 역시 요긴하다 하겠다.


앞으로는 가급적 불요불급한 것이 아닌 한,

인터넷 접속을 의도적으로라도 삼가는 습관을 들여 보려 한다.

과연 잘 될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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