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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히도 다시 태어난다면.

소요유 : 2019. 2. 23. 22:01


박상륭은 '죽음의 한 연구'에서 이리 말했다.

 

‘나거든 죽지 말고, 죽거든 태어나지 마라.’

 

나는 죽거든 다시 태어나지 않게 되길 기원한다.

진정.

 

이생에 결코 미련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만약 어쩔 수 없이 다시 태어나게 된다면,

이리 태어나길 바란다.

 

첫째는 musician

 

나는 불행히도 음치다.

하지만, 가슴 속에 흐르는 감성은 주체할 수 없을 때가 많다.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벼리고 벼려,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이런 경지를 거닐 것이다.

 

나중에 이런 이력이, 업력(業力)으로 작용하여,

내세엔 별을 노래하는 musician이 되는 기초가 되었으면 싶다.

 

미국으로 망명한 내 대학 동기 녀석 하나.

(그가 보고 싶다.)

그가 말했다.

저자는 singer가 아니라 artist다.

 

(utube, Elton John - Sixty Years On (Live in Sydney with Melbourne Symphony Orchestra 1986) HD)

 

바로 그런 artist가 되련다.

 

둘째는 바둑 기사.

 

대학 중간에 군대 갔었다.

돌아오니, 천재 대학 교수가, 학생이 휘두른 칼에 찔려 죽었다.

당시 전공과 학생은 각 대학마다 40명에 불과하였는데,

내가 군대 가고 나서, 

박정권의 이공계 확충 계획에 따라,

교실, 강당을 가득 채우고 부족할 정도로,

이공계 학과생들을 마구 뽑아대었을 때다.

이들 중 하나가, 정신 착란자라,

이 젊은 교수를 살해하였던 것이다.

 

그에게 교과목 digital을 배웠다.

그는 3차원을 넘어 4차원 그 너머의 세계를,

아무런 장애 없이 자유롭게 유영하며, 

그 실상을 오롯하게 그려 우리에게 제시하였다.

이는 수리, 공학을 뛰어넘은 미학적 아름다움으로 내게 다가왔다.

 

(얼마전 농장에 옮겨온 수십 년 묵은 책을 펼쳐 본다.

스스로도 대견하다. 내가 어찌 이런 것을 싫증은커녕 흥미를 느끼고 공부를 하였는지 말이다.

장수 막걸리를 먹으니, 그 옛 추억이 말 술처럼 밀려든다.)

 

바둑 역시, 그 당시 충격적으로 내게 다가온,

그 섬세하면서도, 기하학적 구성력으로,

나의 심미감을 자극한 digital적 세계와 유사하다.

 

논리적이면서, 그로써 구축된 기하학적 엄격성,

그리고도 섬세한 감수성이 서려 있다.

나는 이를 느낀다.

동학들은 그저 기술적 학문으로 대하였지만,

나는 당시 실로 엄청난 임사체험(臨事O 臨死X 體驗)을 하였다.

digital을 배우면서 느꼈던 그 미학적 충격, 

그리고 그 충만성에 나는 전율한다. 

 

그 교수를 다시 생각해본다.

복학 후, 그를 만났다면,

아마, 그는 내가 따르는 유일한 전공 교수가 되었을 것이다.

부대 안에서도 곧잘 그가 생각났었다.

내게 심미안을 공학적, 기술적, 그리고 artistic하게,

넉넉하니, 그리고 섬세하게 깨우쳐준 분이기 때문이다.

그는 실로, engineer이자, artist다.

그를 추모(追慕)한다.

 

바둑 기사라면,

내가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

 

혹, 불행히도 다시 태어난다면,

금생(今生)에서 닦은 업력이, 

총명함과 미학적 감수성을 가진,

바둑 기사가 되는데,

도움이 될런가 모르겠다.

 

오늘 처가 농장을 다녀갔다.

그가 떠나가자.

이제껏 꿈꾸지도 않았던,

그리 스스로에게 믿었었던 것이로되,

내생(來生)의 희구(希求), 아니 결코 희구가 아니라, 

그에 대한 일말(一抹)의 일별(一瞥) 일간(一看)이,

내게 잔설(殘雪)처럼 남아 있음을 알아차렸다.

구질스러운 그것.

앞으로 남은 생엔,

이 구질스러움을 벗기는데 주력하여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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