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처득추상(何處得秋霜)
내가 주말 농사 삼년을 보내고,
본격적으로 블루베리 농사를 지으며 농부가 되었을 때,
농장 앞에 판잣집이 둘이 있었는데,
그 중 하나.
세칭 노가다 일을 하는 이가 거기 살았다.
최근 그를 먼발치에서 보게 되었다.
십년 사이에 몰라보게 달라졌다.
낯색이 바래고,
머리칼은 백발로 변하고,
볼이 파였다.
예전 그가 아닌데,
누군가 그 집 앞에 서성거리며 주인 행세를 하고 있었다.
먼 바깥에서 그를 보았다면,
결코 그가 그인줄 알아채지 못하였을 것이다.
(Simon & Garfunkel - The Sound of Silence - Madison Square Garden, NYC – 2009/10/29&30)
아, 소싯적,
내 어린 영혼의 문을 두드리던린 그들.
저들 역시 저리도 육신이 폭삭 삭아버리고 말았구나.
八十年前渠是我
八十年後我是渠
“팔십년 전에는 그대가 나더니
팔십년 후에는 내가 그대구나.”
이는 서산대사(西山大師)가 묘향산 원적암(圓寂庵)에서 마지막 설법을 마치고
자신의 영정(影幀) 뒷면에 쓴 시다.
서산은 80을 채우고서야,
이를 노래하였으나,
나는 10여년 만에 이를 알아채었음이다.
실로 농부란 이리도,
깨인 자리, 밝은 텃밭을 일구는 이라 하리라.
십년 전엔 손가락 잘린 그가 황가 그려니 하였는데,
(※ 참고 글 : ☞ 손가락 없는 부처)
이제 보니, 지난 세월 그의 면면은 영(影) 그림자였을 뿐,
오늘 백발 그 섬찍함으로 진(眞)을 보았다.
하여 그 사람을 그린 사진, 그림을 진영(眞影)이라 하는 것이다.
참(眞)과 그림자(影)가 따로 놀다,
그의 백발, 패인 볼을 보자,
비로소 진과 영이 함께 짝함을 보게 되었다.
秋浦歌 李白
白髮三千丈,緣愁似個長。
不知明鏡裏,何處得秋霜。
백발 삼천장!
시름에 이리 길어졌구나,
거울 속을 들여다보아도 알 수 없으니,
어디서 가을 서리를 맞고 왔는가.
나는 이백의 이 시를 읽고,
충격을 받아 소싯적 이래 외우고 있다.
거울.
이 심상치 않은 매개물을 통해,
眞과 影이 교차하는,
그 기묘한 세계로 진입한다.
하여, 무당은 거울, 방울, 칼로써,
하늘과 땅 사이의 인간을 중개하며,
서산 역시 영정을 거울삼아,
이 삼삼 팔팔 심심 미묘한 세계를 노래하고 있음이라.
거울을 들여다보니,
웬 낯선 객이 마주 하고 있다.
이 때쯤이면 이미 한참 늙음이 찾아 왔을 때라,
개중에 이를 꺼려 아예 거울을 보지 않는 이도 있을 터이며,
열심히 머리칼 염색하고, 얼굴에 화장품을 찍어 바르는 일에 종사하기도 한다.
허나, 이로서도 미치지 못하면,
급기야 낯짝에 칼을 대고, 마빡에 끈을 달아 조이고도 하며,
주사약을 쑤셔 넣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진시황은 서복을 시켜 불로초를 구하려 했었다.
이즈음엔 돈만 있으면 누구나 진시황이 되고 만다.
하지만, 진시황이나 현대인 모두 실패했고, 이를 예정하고 있다.
비록, 얼굴을 고친들,
오장육부엔 그 효험이 미치지 못한다.
아마 나중에 황우석이 다시 나타나,
손바람을 일으키며 오장육부를 바꿔주겠다 하면,
문전이 미어터지게 그의 장삿질이 성황을 이룰 것이다.
하지만, 얼굴을 뜯어 고친들,
이로써, 장수하였단 소리를 듣지 못하였으며,
오장육부를 확 뒤집어 고친들,
그래 환장(換腸)한들,
댁들 마음대로 장수하리란 기대를 나는 할 수 없다.
八十年前渠是我
八十年後我是渠
거울 앞에 서서,
我是渠
이를 태연자약(泰然自若) 읊조릴 서산이 과연 몇이나 될까?
鏡以精明,美惡自服
거울엔 상(鏡像)이 나타난다.
이것은 분명 진(眞)이 아닌 그림자(影)에 불과하다.
하지만, 精明이라,
그 본질의 essence, spirit을 비춤으로서,
절로 미추(美醜)가 바로 드러난다.
아무리 얼굴에 칼질하고, 머리칼을 염색한들,
이는 다 한 때의 일임이라,
참 거울을 어찌 빗겨갈 터인가?
清水明鏡,不可以形遯也。
그런즉, 맑은 물, 밝은 거울에 모든 것은 비추고 마는 것,
결코 형체가 이를 도망갈 수 없다.
魂氣歸于天,形魄歸于地。
혼의 기운은 하늘로 돌아가고,
형체의 백은 땅으로 돌아가고 마는 법.
요살스런 짓을 아무리 한다한들,
이를 어찌 피할 수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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