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은 공인인가?
연예인은 공인인가?
이번 연예인 관련 비리 소식을 듣고는 있었으나,
뉴스 제목만 거치고, 내용은 보지도 않고 있었다.
오늘 처음으로 기사 하나를 보게 되었다.
거기 자칭으로 공인 운운하는데 이르러,
늘 느끼는 바이지만, 연예인이 공인인가?
하는 의심을 다시금 일으킨다.
그는 이어 "저희끼리 재미삼아 했던 행동이지만 그런 내용을 단체방에 올린 제 모습을 보게 되니 너무나 부끄럽다"며 "많은 사랑을 받은 공인으로서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한다"고 사과했다.
(출처 : viewsnnews)
공인(公人)이란,
‘공적인 일에 종사하는 사람’을 뜻한다.
그렇다면, 사인(私人)은 무엇인가?
‘개인 자격으로서의 사람’으로 사삿사람을 뜻한다.
연예인, 예능인이 도대체 언제부터 공인이 되었는가?
이젠 타칭도 아니고 자칭으로 스스로 공인으로 자처하고 있다.
가당치 않다고 생각한다.
공중파 방송에 출연하여,
다중이 그들의 재담, 노랫가락을 즐기기도 하나,
이는 공중파 시스템이 있기에 가능한 일,
다만 저들이 오락 시장에 나타나 자신의 재주를 팔고,
관객들은 이를 소비할 뿐인 것이라,
도대체 여기 일점이라도 공적인 일이 개재되어 있는가?
다만, 그 재주를 팔고 경제활동을 영위하기에 알맞은 시장 구조가 존재하는 즉,
이로써, 저들 중엔 몇몇은 재주에 비해 과도한 돈을 벌어들이기도 한다.
그 시장에서, 그 누구도 참여자에게 도덕심이라든가, 공적 책임을 요구하지 않는다.
다만 시장 규칙에 충실하기만 하면, 누구라도 자유롭게 참여하여 경쟁하고,
시장에서 보상이란 과실을 얻어내거나, 또는 실패한다.
그 누구도 연예인에게 도덕심을 요구하지 않는다.
대중은 그들의 재주를 시장에서 구매할 뿐이다.
또한 저들에게 공적 책임을 묻지도 않는다.
다만 저들이 부도덕한 일을 저지르면,
개인 자격으로 사법적 처벌을 받을 뿐이다.
그들이 공인이기에 이를 담부할 수준으로 도덕적이어야 할 이유도 없으며,
이를 다른 이들이 특별히 요구할 일도 아니다.
거꾸로 부덕한 일을 저지른 이가,
“많은 사랑을 받은 공인으로서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일”
이런 식으로 스스로를 감히 공인이란 지위, 자격을 빌려,
자신을 꾸미는 일은 올바른 태도라 할 수 없다.
역겹다.
원래 법가는 말만 번지르하고 실질이 없는 학자들( 주로 여기선 유가가 되겠다만),
그리고 의리가 있다는 협객들이 설치고 다니면서 대접을 받는 것을,
난(亂) 즉 나라가 어지럽혀지는 근원으로 보았다.
의리라 하지만 저것 따지고 보면 저희들 패거리끼리만 지켜지는 것이지,
대의에 반하는 것이 일상이다.
오늘날은 아니 그러한가?
제 영혼을 팔아재끼는 어용학자들은 당대에 얼마든지 목격할 수 있다.
용팔이 사건처럼 주먹들이 정치 세력들에게 고용되어 난을 일으킨 것이 바로 엊그제 일이다.
사대강 사업을 두고, 스크류 박이란 닉을 얻은 인물도 있음을 우리는 기억한다.
4대강 사업 찬동인사 조사를 담당한 MB씨 4대강 비리수첩 안철 시민PD는 “박석순 교수의 대운하와 4대강 사업 발언은 낯 뜨거움의 극치”라면서 “환경전문가라기 보다 정치적 전문가라고 불러야 한다”고 꼬집었다. 박석순 교수는 2008년 1월 방송 토론에서 “(한반도 대운하 사업으로) 선박을 운행하는 배의 스크류가 돌면서 산소가 공급돼 물을 깨끗하게 한다”는 황당한 주장을 펼쳐 ‘스크류 박’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자신의 한 말도 뒤집었다. 박 교수는 동아일보 2006년 11월 8일자 기사에서 “태백산맥을 기준으로 서쪽에는 중국계 어류가, 동쪽에는 시베리아계 어류가 살고 있는데 운하로 갑자기 물이 섞이면 종(種)간 이종교배가 이뤄져 돌연변이가 생길 수 있다”면서 “인공적으로 한강과 낙동강을 이으면 생태계 교란이 생길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이 대운하를 추진하는 2008년에는 “(대운하로 백두대간을 뚫어 한강과 낙동강을 이으면) 터널에서 차가 나오듯이 산에서 배가 나오는 아주 장관이 연출될 수 있다(2008년 1월 라디오 인터뷰)”며 입장을 바꿨다. 박석순 교수는 2008년 4월 토론회에서도 ‘운하 건설로 고유종 멸종과 생물 다양성 저하 될 것’ 이라는 우려에 대해 “과학적 근거가 없다”고 주장했다.
차제에 여기 이에 대한 법가의 유명한 말씀을 다시금 꺼내 상기해보도록 한다.
儒以文亂法,俠以武犯禁,而人主兼禮之,此所以亂也。夫離法者罪,而諸先生以文學取;犯禁者誅,而群俠以私劍養。故法之所非,君之所取;吏之所誅,上之所養也。法趣上下四相反也,而無所定,雖有十黃帝不能治也。(韓非子)
“유가는 문(文)으로써 법을 어지럽히고, 협객은 무(武)로써 금령을 어긴다.
하지만 군주가 아우르며 그들을 예로 대하니, 이것이 난의 요인이 된다.
무릇 법에 걸린 자는 죄를 짓는 것이 되지만,
학자들은 학문으로써 채용이 된다.
금령을 어긴 자는 주벌을 받지만,
협객들은 사사로운 검술로써 길러진다.
그런즉 법으로 아니 되는 것을, 군주가 채용하고,
관리가 주벌을 내리는 짓을, 위에서 기르는 바가 된다.
법과 취향, 위와, 아래, 4 가지가 서로 상반되어 일정한 것이 없으면,
비록 열 명의 황제(黃帝)가 있어도 다스릴 수 없을 것이다.”
학자, 협객은 자신들을 위해 살아갈 뿐,
공적 책임이라든가 여기서는 군주의 이익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군주가 법에 의지하지 않고,
개인적 취향, 욕망으로 이들을 등용시키고, 기른다면,
법을 문란케 된다고 한비자는 설파하고 있음이다.
툭하면, 도박하고, 병역 비리 저지르고, 성 매매하고,
하는 비도덕적인 일로 사회를 시끄럽게 하지 않았던가?
그렇다한들, 그들이라고 일반인들보다 더 나쁘다고 생각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人主兼禮之라
이를 요즘 식으로 풀이한다면,
사회적으로, 저들을 선망하고, 관대하게 대하게 되면,
법이 어지럽혀지게 되는 바,
이리 된 사회학적, 경제학적 구조 시스템을 바꿔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저들은, 일개 사인일 뿐, 공인이라 대접할 일이 아니다.
게다가, 경제적 재원이 과도하게 분배되는 역학 구조를 점검해보아야 한다.
현 구조 시스템 하에서 저런 이들이 길러지고 있는 것을,
우리 사회는 반성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게 한비자가 오두(五蠹)에서 신랄하게 지적하는 바인 것이다.
공인과 관련되어 나의 예전 글 하나를 다시 소환해 덧붙여두며,
글을 마친다.
또한 보론으로 쓴 또 다른 글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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