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은 공인인가? ⅱ
연예인은 공인인가? ⅱ
以正治國,以奇用兵,以無事取天下。吾何以知其然哉?以此:天下多忌諱,而民彌貧;民多利器,國家滋昏;人多伎巧,奇物滋起;法令滋彰,盜賊多有。故聖人云:我無為,而民自化;我好靜,而民自正;我無事,而民自富;我無欲,而民自樸。
(道德經)
“나라 다스림엔 바름으로써 하고,
용병엔 기책으로써 한다.
천하를 취하려면, 일을 꾸미는 것 없음으로써 한다.
내가 그리 함을 어찌 알까?
이는 다음과 같기 때문이다.
천하에 금(禁)하고, 가리는 것이 많을수록, 백성의 가난함이 많아지고,
백성이 이(利)를 다투는 것이 많아지면, 국가가 더욱 혼미해진다.
사람사이에 잔꾀가 많아질수록, 괴상스런 물건이 더욱 많아지며,
법령이 번잡해질수록, 도둑이 많아진다.
......”
民多利器,國家滋昏;
“백성이 이를 다투는 것이 많아지면, 국가가 더욱 혼미해진다.”
여기 利器를 왕필(王弼)은 이리 해석하였다.
利器,凡所以利己之器也。民强則國家弱。
이를 날카로운 무기로 새기기도 하나,
나는 이로운 물건을 뜻한다고 보고자 한다.
그러니까, 요즘 식으로 말하자면, 생활에 편리한 물건으로 보아도 좋겠다.
이를 만들어내는 이유는 이게 제 삶에 보탬이 되기도 하지만,
꾀를 내어 힘을 덜 들이고도, 일을 하고자 함이다.
더, 나아가면,
이로써, 끝없이 솟는 제 욕심을 마냥 채워나가게 됨이니,
치달은 그 끝엔 정신을 안정시킬 수 없게 되고,
종국엔 도를 지킬 수 없게 된다.
오늘날 스마트폰은 쉼 없이 버전업되며,
사람들의 눈과 마음을 빼앗아간다.
상품 시장이란, 소비자의 혼을 앗아가며, 또는 스스로 빼앗기기를 원하며,
이문을 남기려는 생산자들의 욕심이 교차 창궐하는 장소이다.
헌즉 利器는 쉼 없이 만들어지며, 끊임없이 교묘하게 변해간다.
이어지는 문장
人多伎巧,奇物滋起;
‘사람사이에 잔꾀가 많아질수록, 괴상스런 물건이 더욱 많아지며,’
바로 이게 이런 모습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하여는 장자의 소위 기심(機心)에 대한 경계의 말씀을,
아우르면 더욱 그 뜻이 잘 요해가 된다.
(※ 참고 글 : ☞ 기심(機心)과 중기(重機))
왕필은 이리 되면, 백성이 강해지고, 국가가 약해진다고 풀이 하였은즉,
당시엔 절대 권력 왕은 곧 국가의 표상이고,
백성을 부국강병의 수단적 존재로 보는 시대이기에,
이리 양자를 대립적 관계로 파악하였다.
그런데, 하상공(河上公)은 ‘民多利器,國家滋昏’
이 부분을 달리 풀이하였다.
利器者,權也。民多權則視者眩於目,聽者惑於耳,上下不親,故國家昏亂。
하상공은 利器를 권(權)으로 풀었는데,
이게 나는 왕필의 주석보다 한결 마음에 와 닿는다.
權은 저울이나 칭추(稱錘) 즉 저울추를 말하는데,
여기선 권력, 권세를 의미한다고 보면 된다.
하니까 하상공은 利器란 곧 권력이라고 보는 것이며,
백성에게 권력이 많아지면,
보는 자들의 눈이 어지러워지고,
듣는 자의 귀가 현혹되게 되며,
상하가 반목하게 되는 고로 나라가 혼란스러워진다는 것이다.
진시황이 천하를 통일하자,
화폐, 도량형을 통일하였다.
이는 천하의 저울이 제각각인즉,
공적 표준을 만들어, 천하의 기준을 정하여,
난립된 사권(私權)을 통제하고,
공권력(公權力)을 확립하고자 하였기 때문이다.
여기 백성과 왕(국가)간 권력의 나뉨에 대립과 긴장이 있다.
공권력의 사권화가 창궐하면,
공론(公論)을 통일적으로 모을 수 없고,
공의(公義) 또한 바르게 세울 수 없게 된다.
시장에선 상인들마다 제 이익을 위해 저울대 눈금을 속이고,
상품 광고에 거짓 선전문으로 꾸며 사람들을 마냥 속이게 된다.
정명(正名) 즉 바른 이름은 설 자리를 잃고,
사람들은 제 욕심을 위해 괴상망측한 물건을 만들고,
엽기적인 일을 찾아 나서게 된다.
허니, 어찌 나라가 어지러워지지 않을 도리가 있으랴?
연예인이 제 재능을 펴서 무대 위에서 쇼를 벌인다할 때,
아무려면 그 자가 어찌 공권력을 의식하랴?
다만, 제가 스스로 만든 利器를 이용하고,
가진 재주를 한껏 발휘하여 대중을 격동하고,
공연료를 벌어들일 뿐이다.
그들은 사권(私權)을 위해 갈심진력할 뿐이다.
오늘날 이를 공권력이 필요이상으로 제한하는 것은,
시민 권력이 용납하지 않으며, 바람직하지도 않다.
각자는 제 개성대로 한껏 창조적 자기표현을 하며,
생을 구가하고, 대중과 함께 공감한다.
이를 두고 감히 가부(可否)를 논하고,
시비(是非)를 가리고 싶지 않다.
아니, 그럴 성질의 사안도 아니다.
외려 각자의 품성을 발양하고, 창조적 형식을 빌어,
자유로운 문화 창달이 일어나길 바란다.
헌데,
여기 사인의 행동이 있을 뿐,
어찌 공인으로서의,
자격을 묻고, 책임을 따지고, 평가를 할 구석이 한 톨인들 남아 있는가?
연예인은 사권(私權)을 추구하는 최첨두(最尖頭)에 서있다.
스스로도 이에 자부심을 가질 일이지,
공연히 자칭 공인 운운하며,
자신이 하는 일을 구지레하게 제한할 까닭이 어디에 있음인가?
화두(話頭)를 공안(公案)이라고 한다.
그저 그냥 화두라 하여도 될 터인데,
굳이 공안이라 하는 것은,
역시나 관의 권위에 기대고자 함이 아니겠는가?
(※ 공안 公案 : 본래, 옛날 재판관이 사건을 심리할 때 쓰던 책상을 일컫는다.
이로부터 전화(轉化)되어, 재판사건, 공문서 등을 지칭하게 되었다.
이에 기대어, 선종에서 화두를 이르기도 한다.)
자칭 불립문자(不立文字), 교외별전(教外別傳)이라 외치는 선종조차,
수많은 화두집을 엮어냄은 물론 이를 공안이라 부르고 있으니,
속세를 여위었다는 집단조차 이리 속세의 권위를 빌려,
자신을 꾸미고 있는 마당이다.
하온데, 연예인이 자신을 공인이라 이르고,
sns를 통해 좀 활동한다는 이들도 자칭 공인이라 하는 게,
따지고 보면 하나도 이상한 일이라 놀랄 일도 아닌 세상이 되어버렸다.
이리 이름과 실질 즉, 명실(名實)이 전도된 세상이,
우리네가 사는 곳이라니,
참으로 해괴망측한 노릇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진정 자부심을 가진 연예인이라면,
스스로 공인이라 칭하지도 않을 것이며,
이런 소리를 들으면 모욕감을 느껴야 하리라.
그렇지 않은가?
자신의 자유로운 창작 활동을 두고,
그 누가 있어,
고착된 도그마, 정해진 룰에 사로잡힌 것이라 이른다면,
얼마나 화가 나고 부끄러운가 말이다.
이 글은, 앞선 글의 보론(補論)으로서 적어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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