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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토불쾌(不吐不快)

소요유 : 2019.05.25 13:29


불토불쾌(不吐不快)


어느 한 녀석이 있어,

예식장 하객(賀客) 알바를 뛰었다.


그가 하는 일은,

돈을 받고, 하객인 양 행세하며,

썰렁한 식장의 분위기를 채워주는 것이다.


식장에 축하하러 온 이가 적으면,

주인공 측에서 면목이 서지 않는다 여길 경우,

이리 사람을 사서 빈 자리를 메꾸기도 하는가 보다.


그러하다면,

차라리, 지인들만 모시고 조촐하니 예식을 치룰 일이다.

세상엔 신뢰를 배신하는 이들이 도도처처에 널려 있음이다.


일이 다 끝나자,

녀석은 이런 일을 하는 이들이 모인 카카오톡 대화방에,

결혼식장에서 찍은 사진을 올렸다.


그가 올린 것이 알바 일당(一黨)들만 올린 것인지,

아니면, 신랑이 나오는 모습도 노출된 것인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이 글을 대하자, 이내 마음이 편치 않다.


의뢰를 받고,

설혹, 범죄를 저지른다한들,

상대를 지켜주고, 단서를 남기지 않는 것은,

직업윤리를 넘어, 인간적 신의에 관한 영역에 속한다.


도대체가 신뢰를 배반할 것이 예정된다면,

어찌 일을 도모할 수 있겠음인가?


불토불쾌(不吐不快)라,

그저 입이 간질간질하여 참을 수가 없는 것이다.

자신이 아는 사실을 남에게 알리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는 것이다.

대개 소인배들의 마음자리가 이러하다.


동네 아낙네들이,

빨래터에 모여 앉으면,

기어이 남의 집 숟가락 숫자까지 세어내고 만다.

입이 깃털처럼 가벼운 이들은,

불토불쾌(不吐不快)라,

도저히 참아낼 수 없는 것이다.


남의 울타리 넘어 일을 궁금해 할 일이 아니다.

그의 것은 그에게 남겨줄 일이다.


계약


계약은 양 당사자의 의사합치로 일어난다.

하객을 샀는데, 이 사실이 널리 알려질 것이 예견된다면,

의뢰인은 계약을 쉬이 할 생각을 할 수 있겠는가?

사전 확인 절차가 없다한들,

의당, 계약 양 당사자는,

이런 일의 보안을 신의성실칙에 입각,

암묵적으로 지킬 것을 합의하였다고 보아야 한다.


헌데, 저 문제의 알바는 이를 저버렸다.

녀석은 상대 계약자의 권익을 지켜주지 않았다.

만약 이를 지켜줄 자신이 없다면,

이런 일을 애시당초 맡지 말아야 한다.

그는 계약 기초에 충실치 못하였다.


하여,

내가 당사자도 아님에도,

화가 났다.


이런 소인배 같은 녀석이라니,

이런 위인이라면,

도적이 되어도 결코 좀도둑을 면치 못하고 말리라.


故盜跖之徒問於跖曰:「盜亦有道乎?」跖曰:「何適而無有道邪?夫妄意室中之藏,聖也;入先,勇也;出後,義也;知可否,知也;分均,仁也。五者不備而能成大盜者,天下未之有也。」

(莊子)


“도척의 일당이 도척에게 물었다.


‘도둑에게도 도가 있습니까?’


도척이 답하였다.


‘무엇이나 도가 없을 쏜가?

방 속에 감춰진 것을 알아맞히는 것은 聖이고,

먼저 들어가는 것은 勇이며,

나중에 나오는 것은 義라.

성패 가부를 아는 것은 知요,

공평하게 나누는 것은 仁이다.

이 다섯 가지를 갖추지 못하고 큰 도둑이 되는 것은,

아직 천하에 없었다.’


알바를 하며 돈을 번다한들,

상대를 위하는 일을 태만히 할 일이 아니다.



이게 없다면,

물 위를 떠다니는 부평초처럼,

바람 따라, 제 마음을 뒤집으며, 

물 파랑(波浪)의 노예가 되고 만다.

추접스런 인간 유형이다.


특히 남의 약점, 비밀은, 어떠한 경우라도 굳게 지켜주어야 한다.


범죄 영화를 보면,

아무리 극악무도한 킬러라도,

의뢰인의 신원은 외부에 밝히지 않는다.


秦與戎翟同俗,有虎狼之新,貪戾好利而無信,不識禮義德行。茍有利焉,不顧親戚兄弟,若禽獸耳。


이익을 탐하면 신의가 없고,

예의 덕행을 아지 못하게 된다.

이익을 앞에 두고는 부모형제도 돌아보지 않으며,

금수와 같이 놀아나는 법이다.


신의가 없는 인물이라면,

이를 잘 살펴 경계하고,

깊이 사귀지 말아야 한다.


反復無信이라,

형편 따라, 수시로,

마음을 뒤집으며,

제 사익을 위해,

상대를 배신하고 말리라.

어찌 추저운 인간이라 하지 않을 수 있겠음인가?


헌데, 저 문제의 글을 읽어보니,

달린 댓글은 하나 같이 재미있는 글 잘 읽어다는 식 일색이다.

이러함이니, 세상은 가벼운, 그리고 값싼 소비객들로 가득 찼을 뿐,

시비곡직을 가리고,

의로움을 새길 위인이 적은 것이다.

그저 자신의 피부를 간질이는 짓에 동조하고,

감정을 연소하는 일 외에,

머리가 미처 미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라.

의뢰한 분이,

이런 일이 외부에 알려지는 것을 원하랴?


강요가 아닌 자발적 참여로,

대가를 받은 이상,

상대를 보호해주어야 마땅하다.


도대체,

왜 나만 생각하는가?

상대방 있는 행위엔,

언제나 상대방을 의식하는 행동이 동반되어야 한다.


저자는 신뢰를 저버렸다.


出門如見大賓,使民如承大祭。己所不欲,勿施於人。在邦無怨,在家無怨。」仲弓曰:「雍雖不敏,請事斯語矣。

(論語 顏淵)


자기가 바라지 않는 일은 남에게 베풀지 마라.


남의 죽음 앞에 피로감을 토로하는 인간을 마주하고 있다면,

얼마나 난처한 일인가?

아니, 나는 폭발한다.


(※ 참고 글 : ☞ 죽음과 피로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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