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
하늘을 본다.
구름이 아름답다.
마치 깊은 동굴로 들어가듯,
그 깊이를 가늠할 수 없도록,
무한의 지평으로 펼쳐지는 저 아름다움의 비밀.
문득, 저 비밀의 화원으로 자맥질하여,
영원 속으로 빠져 드는 순간,
나는 내 몸에 갇혀 있는 슬픈 죄인임을 깨닫고 만다.
사람이 만든 것도 미치도록 아름다운 것이 있지만,
저것은 사람의 손이 타지 않아,
그 너머, 무한의 세상으로 우리를 이끈다.
나는 양자역학(quantum mechanics)을 정식으로 배운 사람이다.
지금은 온전한 이해를 지속하고 있다 자신할 수 없지만,
그 요의의 기초 골격은 아직도 뇌리에 남아 있다.
quantum은 양자(量子)로 번역되는데,
이는 세상을 量으로 분절하여 이해하고 있음을,
저 단어로도 단박에 엿볼 수 있다.
지금 세상이 디지털(digital)로 지배되고 있듯,
똑똑 끊어진 양으로 마치 징검다리 건너듯,
세상을 건너 띄며 관찰한다.
아니, 세상이 그리 만들어졌다고 저들은 본다.
헌데, 어디 우리의 감정도 이리 또박또박 나눠져 있는가?
감정은 연속체(continuum)이지,
어느 지점을 두고 좌우로 나눠 끊을 수 있도록 결절이 있다 할 수 없다.
저 하늘에 떠있는 구름을 보면,
자(尺)를 들고 어느 한 부분의 경계를 나눌 수 없다.
저들은 연속적인 무한 변화상을 그려내고 있어,
그 연속성(continuity)을 누군들 감히 훼방하며, 나서 특정 부분을 두고 칼로 나눌 수 없다.
트랜지스터(transistor)
베이스 측에 입력된 전기 신호가, 컬렉터 또는 에미터의 출력 측으로 나온다.
이 때 입력된 신호는 제어, 증폭되어 원하는 결과를 얻게 설계된다.
전형적인 analog 입출력 신호 장치이다.
아무리 증폭이 된다한들,
신호 자체는 여전히 연속적인 아날로그 상태이다.
플립플롭(flip-flop)
그런데, 전자공학내지는 디지털공학에선 교묘한 장치를 고안해내었다.
앞서 이야기한 트랜지스터 두 개를 두고,
입출력을 상호 교차 되먹이는 형식으로, 얽어내어,
어떤 한 상태를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단위 소자를 만들었다.
이로써, 한 비트의 정보를 저장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젠, 전자적으로, 기술적으로,
세상을 어둠과 빛, 있음과 없음, 흑과 백 ....
그래 바로 음양으로 나눠 취급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그래, 이젠 구름조차,
0과 1의 나눔으로 낱낱이 쪼개어,
지상으로 끌어내 팽개쳐 버린 것이다.
이 폭력성을 시인은 가슴 저린 아픔으로 운다.
저 야만의 디지털 기술이 온 세상을 덮자,
사람들은 이제 익숙해져,
더 이상은 구름을 구하지 않으며,
꽃을 노래하지 않는다.
세상은 이제 디지털적으로 분절된 것으로 알며,
더 이상, 무한 영원의 세계를 꿈꾸지 않는다.
사람이 열 손가락을 가졌기에,
열 단위 십진법을 고안하고,
역으로 그에 갇혀 세상을 조망한다.
나는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동원 가능한 수학, 물리학적 구속 조건 때문에,
양자역학적 물리 구조를 그 한계 안에서, 그만의 방법으로 구축하였을 뿐,
그 밖의 시도는 할 수도, 꿈도 꾸지 않게 되었다 믿는다.
구름을 벗으로 하는 이들은,
수학을, 양자역학을 믿지 않는다.
시인은 오동나무로 만든 흉통(胸桶)으로,
별을 느끼며, 달을 그린다.
하늘의 구름을 보며,
나는 문득,
양자역학, 디지털 세계란 실로 끔찍하구나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이 폭력적 세계관으로 구축된 오늘의 세상은,
진실이 억눌려진 것을 느끼지 못하고,
천둥벌거숭이가 되어, 모두들 다 잘난 체,
교만을 떨고 있다.
道通,其分也,其成也毀也。所惡乎分者,其分也以備;所以惡乎備者,其有以備。故出而不反,見其鬼;出而得,是謂得死。滅而有實,鬼之一也。以有形者象無形者而定矣。
出無本,入無竅。有實而無乎處,有長而無乎本剽,有所出而無竅者有實。有實而無乎處者,宇也;有長而無本剽者,宙也。有乎生,有乎死,有乎出,有乎入,入出而無見其形,是謂天門。天門者,無有也,萬物出乎無有。有不能以有為有,必出乎無有,而無有一無有。聖人藏乎是。
(莊子)
“도는 통하되, 나눠져 이뤄지고(成), 이뤄져(成) 허물어진다(毁).
나누는 것이 나쁘다는 것은, 나눠진 것으로 다 갖추어진 것으로 여기며,
갖춰진 것이 나쁘다는 것은, 갖춰진 것으로써, 모든 것이 다 된 것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그런즉, 나가(出) (제 본성으로) 돌아오지 않으면 귀신이 될 것이며,
밖으로 나가 얻는 것이 있다면, 바로 죽음을 얻었다 하겠다.
이리 (본성이) 멸절되면, 살아있다 한들 귀신과 매한가지다.
형체가 있는 몸으로써 형체가 없는 도를 본받아야만 안정되게 되는 것이다.
형체가 있는 자가 무형을 추상할 수 있다면 안정이 된다.
나오지만 그 본은 없는 것이며,
들어가지만 구멍이 없는 것이다.
.......”
아아,
장자의 저 글은,
마침 내가 문득 고개 들어 치어다 본 구름을 두고,
얻은 깨우침과 다름이 없구나.
저기 장자의 分은 오늘날처럼 디지털 기술로,
세상을 나누고 있는 사태를 지적하고 있음이다.
그럼으로써, 사람들은 온 세상을 마치 다 갖춘 양 여기고 있으며,
그 갖춤으로써, 천하를 거머쥔 양 거드름을 피우고 있다.
헌데, 장자는 여기서,
돌아와야지(反, 返) 그렇지 않으면 바로 귀신과 다름이 없다고 이르고 있다.
이는 천하를 깨우는 천둥 소리다.
하늘에 떠있는 구름이,
저 홀로 아름답구나.
저 구름을 배워야 한다.
종국엔 저리로 귀의하여야 한다.
'소요유' 카테고리의 다른 글
혹인(惑人) (0) | 2019.12.06 |
---|---|
하드코어(hardcore) (0) | 2019.12.03 |
완장, 훈장, 배지, 리본 (0) | 2019.11.30 |
다례(茶禮) (0) | 2019.11.27 |
책임 이사의 허물을 탄(嘆)한다. (0) | 2019.11.25 |
댓글, 좋아요... (0) | 2019.11.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