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ngta      

오너 쉐프

소요유 : 2019. 12. 29. 14:49


내가 영상 하나를 우연히 보게 되었다.


그 영상은 모 주방장에 대한 것인데,

그가 레스토랑을 떠났다는 것이다.


그가 출연한 영상을 몇몇 본 적이 있다.

음식을 만들면서, 과도한 몸짓으로 연출을 한 것이 기억에 남는다.

저것은 음식 그 자체에 집중하기보다는,

그를 매개로 하여, 자신을 한껏 드러내려는데 더 열중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것은 그의 소관사일 뿐, 내가 관여할 일이 아니다.

그것은 나의 관심 사항이 아니다.


헌데, 그런 그가 왜 레스토랑을 떠났는가?


영상을 만든 이는 돈과 명예를 좇는 주방장에 대한 세인들의 비난 일변도에 대하여,

속사정을 알려야겠다는 생각으로 영상을 만들었다 하였다.


영상을 보고는 저들 간 내부 사정에 대한 이해를 할 수 있었다.

  (그 주방장이 고용된 회사 경영권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영상을 만든 이는 거기 고용된 자들의 애환을 이해하고 적지 아니 애정을 가진 듯 싶다.

  그는 오너가 아닌 이가 '오너 쉐프'란 이름을 내건 것에 대하여는 아무런 문제 의식을 가지지 않았다.

  나는 이를 문제 삼고 있는 것이다.)

헌데, 그것은 내가 알 바 아니다.

하지만, 그 주방장이 오너 쉐프(owner chef)란 타이틀을 걸고, 

음식점 장사를 하였다면, 이는 아주 그릇된 것이라 생각하였다.


오너 쉐프란,

음식점 주인이 곧, 주방장이란 소리가 아닌가?

헌데, 사정을 알고 보니, 그는 고용인이지 주인은 아니었다.

owner란, 주지하다시피 소유권자를 말한다.

실질적으로, 법적으로, 그 단위 물권이나, 사업체를 소유한 이란 뜻이다. 

그렇다면, 오너 쉐프란 말을 쓰는 것은 온당치 못한 처사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고용된 주방장이 주방 일을 하나,

주인인 주방장이 주방 일을 하나,

동일한 이라면, 음식 질에 있어 차이가 없는가?

이것은 그리 간단히 규정할 수 없다.

지금 그를 따지고자 하는 것이 아니니,

여기선 그만 넘어가자.


하지만, 오너가 아닌 이가, ‘오너 쉐프’란 타이틀을 걸고,

장사를 한다면 이는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다.

우선은 고용된 이가 주인인 양 행세를 한다는 것은,

다른 이의 이해를 오도하는 짓이다.

이것은 삿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사람들은, 음식의 맛에 따라 음식점을 이용하기도 하지만,

유명인을 좇아, 음식점을 택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유기농 재배한다며 농사를 짓는다는 이가 하나 있다.

하지만, 나는 안다.

곁에서 지켜보고 있으니까.

그는 홈페이지에도, 청정한 토지, 물로, 

정성들여 유기농, 게다가 자연재배씩이나 동원하여 농사를 짓는다 선전한다.

하지만, 실제는 어떠한가?

그는 화학비료는 물론, 제초제까지 뿌린다.

제초제를 뿌리면, 토양 거죽에 자란 풀들이 누렇게 뜨며 말라 죽기에,

누구라도 단박에 알 수 있다.


그러함에도, 거죽으론 여전히 유기농, 자연 재배라 선전하고 있다.

이는 뭇 사람을 속이는 짓이다.


오너가 아닌데, 오너 쉐프라 하면,

사람들은 그의 유명세에 더하여,

제법 일가를 이룬 이라 착각을 하며,

그의 식당을 오가며, 그의 명성을 소비한다.

이는 명백히 이름을 팔아, 세상을 속이는 짓이다.


난, 이를 지적할 뿐,

그 개인에 대하여 더 이상 알고 싶지도 않고, 관심도 없다.


양두구육(羊頭狗肉)

양 머리를 걸어놓고, 개고기를 파는 일에 임하여,

상인, 소비자, 더하여 해설자까지 가세하여,

모두 공범이 되어, 밀어주고 당겨주고 있는 이 현장.

이런 넋 나간 혼백들의 행진이라니,

참으로 어처구니없다.


내가, 이의 부당성을 지적하자,

어떤 이는 단어 하나를 꼬투리로 나무란다고 나를 탓한다.

그럼 유기농 재배를 하지도 않으면서,

유기농이란 타이틀을 걸어두는 것을 탓하는 것도,

꼬투리 잡는 것인가?


名守慢,奇辭起,名實亂,是非之形不明,則雖守法之吏,誦數之儒,亦皆亂也。


“이름 지킴을 태만히 하고, 

기괴한 말로 이름과 실의 일치가 어지럽고, 

옳고 그름의 구별이 분명하지 못하여,

법률을 다루는 관리나 경서를 외는 유자조차 모두 혼란 중에 있다.”


이름과 실질이 다른 상태를 名實亂이라 이르고 있다.

나는 그 쉐프가 고용이든, 주인이든 관심이 없다.

그리고 주인에 의해 그런 타이틀을 걸고 나올 수밖에 없는 처지일 수도 있다 생각한다.

허니, 더욱 그 쉐프의 개인 인격 내용을 두고 비판하고 싶지 않다.

오너 쉐프란 名實亂의 이름을 걸고 장사를 한 그 주체를 나무라고 있는 것이다.

나아가, 이런 행위가 광범위한 사람들에 의해,

아무런 문제 의식 없이 받아들여지는 안일함에 대하여도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


이리 허술한 의식을 가진 이들이 사회 구성인이라면,

이 얼마나 허약한 사회인가 말이다.


늘 이야기 하듯,

빠돌이들은, 그게 박빠든, 문빠든,

시시비비 가리지 않고 무작정 숭배하듯 옹위하는데 혼신의 정열을 다 기우린다.

내 패, 네 패 갈려,

양아치 싸움하듯,

시비(是非)가 아니라 그저 개인의 호오(好惡), 기호(嗜好)로 세상을 가르고 만다.

이런 찌질한 이들을 내 어찌 우습게 여기지 않을 수 있으랴?

가련한 중생이다.


하여, 나는 박빠, 문빠 그 무엇이 되었든,

저들을 모두 염오(厭惡)한다.

저 찌질함이란 도대체가!


孔子曰:‘惡似而非者:惡莠,恐其亂苗也;惡佞,恐其亂義也;惡利口,恐其亂信也;惡鄭聲,恐其亂樂也;惡紫,恐其亂朱也;惡鄉原,恐其亂德也。’君子反經而已矣。經正,則庶民興;庶民興,斯無邪慝矣。


“공자 왈 :

나는 같은 듯하면서 같지 않은 것을 미워한다.

강아지풀을 미워함은 곡식의 싹과 헷갈릴까 두려워함이요,

아첨을 미워함은 義를 어지럽힐까 두려워함이요,

말 잘하는 자를 미워함은 信을 어지럽힐까 두려워함이요,

정나라 음악을 미워함은 바른 음악을 어지럽힐까 두려워함이요,

자색(紫色)을 미워함은 주색(朱色-바른 색, 정색)을 어지럽힐까 두려워함이요,

鄉原을 미워함은 德을 어지럽힐까 두려워함임이라.

군자는 상도(常道)로 돌아갈 뿐이라,

바른 상도로 들어서면 서민이 흥할 것이요,

서민이 흥하면 사특한 것이 없어질 것임이라.”


사이비란 말의 출전이 바로 여기에 터하고 있다.


그럴싸하지만, 아닌 것은 아닌 것.

이리 진짜를 숨기고, 

삿된 것을 드러내며, 

즉, 가짜 간판을 내달아놓고 장사를 하였는데,

이 짓이 일어난 현장을 변호하기 바쁜 우중들이라니.

이들은 정말 천하를 어지럽히는 적당(賊黨)이라 할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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