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ngta      

코로나19 이후

소요유 : 2020. 4. 6. 10:59


코로나19 이후


코로나19가 종식되고 난 후, 과연 어떠한 세계가 전개될 것인가?

기실 나는 우리나라에 신천지發 집단 감염 사태가 일어날 때,

당장도 문제지만, 이게 다 진압된 후의 세계는 어찌 될 것인가?

이런 문제의식을 가지고, 역사를 공부하고, 생각을 궁굴려 두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마스크나, 진단 키트 제조사가 십년, 백년치 장사를 단번에 다 해치우고 있다 하지만,

이후 어찌 될 것인가?

필경은 설비, 인력 잉여가 발생할 것이고,

새로운 비젼과 신사업에 대한 사전 준비가 따르지 못하면,

생각지 못한 애로가 발생할 것이다.

따라서 현명한 사업가라면, 

이 문제를 전담할 태스크 포스팀을 조직하거나,

자문역을 두어 앞서 대비할 것이다.


개인 또한 사회는 새로운 역사 전개를 맞이하거나,

이끌어낼 것이다.

오늘을 잘 관찰하고, 내일을 전망하고 있어야 하겠다.


어떤 이가,

나의 16개월 전 글에 댓글을 주셨다.


“2년 전의 글에 답글 달기가 부끄럽지만 문대통령은 잘 감당하고 계신 듯 하네요. 재명이 형도 코로나 대응 잘 하고 있구요.”


아마도 이 분은 여당 지지자인 듯싶다.


여야 불문, 제가 지지하는 당을 관심 있게 지켜보는 것 의당 있을 수 있는 있는 일이다.

하지만, 응원 일색이 능사가 아니다.

감시, 비판의 일도 소홀히 할 일이 아니라 생각한다.


이분의 댓글을 두고 나는 생각한다.

이번 사태에 대한 대처는 문정권이 잘했다고 보기보다는,

그 원인을 다른데서 찾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시민의 역량이 부쩍 커졌고, 깊이가 있었다는 데에 기초하고 있다.

그 정화(精華)는 촛불시민에서 확인된다.

애초 문가 무리들은 박가 탄핵에 회의적이었고, 외려 반대하였다.

후에 촛불이 횃불이 되고, 급기야 대화(大火)가 되자,

그 때서야, 숟가락 닦고 슬그머니 자리를 비집고 들어왔을 뿐이다.


앞으로, 그 누가 정권을 잡든,

이리 눈 밝고, 머리 깨인 시민들을 함부로 대할 수 없다.


그러함이니, 이제,

코로나19 사태에 처하여,

우리나리에서 행해진 일은,

한낱 정권이나, 일개 개인에게서 찾을 일이 아니다.

다만 그것은 시민의 역량(力量)의 결과로 보아야 한다.


나랏일의 잘못은 정권에서 찾는 것이 옳지만,

공적은 정권이 아니라, 실인즉 시민에게 돌리는 일이 바르다 할 것이다.

무릇, 민주사회의 작동 원리란 이러한 것이다.


조국 사태, 울산 선거 부정 등의 문제는,

저들이 아직도 시민을 얕잡아보고 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이는 차후 그 실상이 바로 밝혀지리라 기대한다.


여든 야든 가리지 않고,

비례당을 만들어, 파렴치한 짓거리를 자행하고 있다.

본당에서 공천 떨어진 이들을 모아 당을 만들고 다시 재활용하고자 하거나,

이도 모자라, 갖은 흠결이 있는 이들이 모여 또 다른 제2의 당을 만들고들 있다.


탕약이라도 되는가?

재탕, 삼탕을 하여, 마지막까지 욹어내려 하고 있음이다.


이는 시민을 우롱하는 짓임을 알아야 한다.

빠돌이들은 영혼을 저당 잡힌 강시(僵屍)가 되어,

그저 두 팔 벌리고 박수치기에 여념이 없다.

시민사회의 건전성을 허무는 찌질한 이들이라 하겠다.


잠시 옆길로 글이 새었다.


고대, 역병이나 전쟁은 쉼 없이 일어났다.

그 후, 이로써 판이 바뀌고, 새로운 세계가 건설되었는가?

내 살펴보자니, 판이 바뀌긴?

어림없는 이야기다.

인민을 구속하는 주인만 바뀌었을 뿐,

시민사회는 크게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다.


일본, 영국, 스웨덴 등은 왕이 아직도 남아있다. 

이들 국가들은 묘하게도, 이번 사태를 대하는 태도가 비슷하다.

바이러스가 퍼지도록 그냥 방치하고,

국민 60% 이상 감염되었을 시,

면역력이 생겨 자연 퇴치가 된다는 설을 펴고 있다.

(지금은 과오를 깨닫고, 급히 한국식의 바른 방도를 찾고 있는 나라도 생기고 있다.)

이것 기실은 백신이나 치료제가 있어 시민들이 준비가 되었을 때라야 유효한 방책이다.

백신이나 치료제가 없는데, 처음 맞이하는 질병에,

면역력에 기대는 짓은 너무도 어처구니가 없다.

지금까지 밝혀진 최소 치사율 1%만 잡아도, 

인구수*0.6*0.1의 사망을 전제로 도박을 벌이는 위험한 태도다.


만약 이들 나라가 민주 역량이 충분하였다면,

이리 허튼 짓을 애저녁에 할 엄두도 내지 못하였을 것이다.

시민들의 생명을 무작정 바이러스에게 그냥 내주고,

지켜만 보겠다는 태도는 얼마나 안일하고 무책임한가?


한편, 중국, 베트남 등 공산 독재 국가들은,

국경 봉쇄나 정보 은폐를 통해,

진실을 가리고, 사실을 왜곡하기 바쁘다.

이들 역시 저들 세 나라와 마찬가지로,

시민들을 초개(草芥)처럼 여기고 있다.


대명천지 밝은 세상이다.

일개인에 불과한 왕을 아직도 떠받들고,

한 줌 공산당 특권 무리들에 복속하는 나라들은,

하나 같이 이번 사태를 오판하고 있으며,

시민들을 수단화하고 있다.


코나라19 사태가 진정된 후,

지구상에서 군주제가 허물어지길 바란다.

아울러 일당 독재국가 역시 퇴장되기를 희망한다.

역설적이게도, 바이러스로 인해,

그야말로 창신(創新)된 세상이 열리는 계기가 되길 기원한다.


전제국가가 설 자리를 잃고,

전체주의의 망령이 준동하지 못하는 세계로 나아가야 한다.

개개인의 자유와 안전이 지켜지고,

시민의 對사회 자율적 참여, 협조가 이뤄지는 세상이 도래하길 기대한다.


개개 시민의 자각이 요청된다.

하지만, 모든 이가 이리 되기는 어렵다.

그런즉, 도리 없이 법이 필요해진다.


왕이나 독재자가 아닌,

바른 법으로  나라가 굴러가야 한다.

법은 곧 시스템의 다른 이름이다.

만민이 평등하게 이 시스템에 의해 의율되고, 결속되는,

합리적인 사회적 합의 제도를 만들고 운용하여야 한다.

한비자(韓非子)를 통해, 이런 생각에 대한 좋은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

그의 지적외에 달리 훌륭한 것을 나는 아직도 찾아내지 못하고 있다.

재론하지 않고 나의 지난 글을 제시한다.

(※ 참고 글 : ☞ 평화와 칼)


한국은 이번에,

시민의 뛰어난 역량으로 잘 대처하고 있다.

도처에 인재가 포진하여 있고,

깨어있는 시민들이 즐비(櫛比)하다.


만국(萬國)에 이런 성과를 나누고,

아직도 질곡에 빠져 있는 세계 시민들을,

구하는 일에 보탬이 되는 역할을 하여야 한다.


만고(萬古)의 사표(師表) 김구 선생의 말씀을 다시금 새기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아니한다. 우리의 부력(富力)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强力)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겠기 때문이다.


지금 인류에게 부족한 것은 무력도 아니요, 경제력도 아니다. 자연 과학의 힘은 아무리 많아도 좋으나 인류 전체로 보면 현재의 자연 과학만 가지고도 편안히 살아가기에 넉넉하다. 인류가 현재에 불행한 근본 이유는 인의가 부족하고 자비가 부족하고 사랑이 부족한 때문이다. 이 마음만 발달이 되면 현재의 물질력으로 20억이 다 편안히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인류의 이 정신을 배양하는 것은 오직 문화이다.


나는 우리나라가 남의 것을 모방하는 나라가 되지 말고 이러한 높고 새로운 문화의 근원이 되고 목표가 되고 모범이 되기를 원한다. 그래서 진정한 세계의 평화가 우리나라에서, 우리나라로 말미암아서 세계에 실현되기를 원한다. 홍익인간(弘益人間)이라는 우리 국조(國祖) 단군(檀君)의 이상이 이것이라고 믿는다.


또 우리 민족의 재주와 정신과 과거의 단련이 이 사명을 달성하기에 넉넉하고 우리 국토의 위치와 기타 지리적 조건이 그러하며, 또 1차, 2차의 세계 대전을 치른 인류의 요구가 그러하며, 이러한 시대에 새로 나라를 고쳐 세우는 우리가 서 있는 시기가 그러하다고 믿는다. 우리 민족이 주연 배우로 세계 무대에 등장할 날이 눈앞에 보이지 아니하는가.


이 일을 하기 위하여 우리가 할 일은 사상의 자유를 확보하는 정치 양식의 건립과 국민 교육의 완비다. 내가 위에서 자유와 나라를 강조하고 교육의 중요성을 말한 것은 이 때문이다.


최고 문화 건설의 사명을 달한 민족은 일언이폐지하면 모두 성인(聖人)을 만드는 데 있다. (중략) 우리는 개인의 자유를 극도로 주장하되, 그것은 저 짐승들과 같이 저마다 제 배를 채우기에 쓰는 자유가 아니요, 제 가족을, 제 이웃을, 제 국민을 잘 살게 하기에 쓰이는 자유다. 공원의 꽃을 꺾는 자유가 아니라 공원에 꽃을 심는 자유다.


우리는 남의 것을 빼앗거나 남의 덕을 입으려는 사람이 아니라 가족에게, 이웃에게, 동포에게 주는 것으로 낙을 삼는 사람이다. 우리말에 이른바 선비요, 점잖은 사람이다.


(출처 : hani)


한국은 세계만방을 위해 한껏 봉사하길 바란다.

도움을 청하는 여러 나라들이 나래비로 줄을 섰다.

우선순위를 정하여 차례로 나누겠다고 외교부에서 발표를 하였는데,

자칫 이런 태도는 상대로부터 원망을 받을 수 있다.

결코 교만해져서는 아니 된다.


선한 인연을 지어 우선순위가 빠른 나라뿐이 아니라,

어려운 빈국들에게도 무상으로 적극 지원하는 것을 게을리 할 일이 아니다.


김구 선생의 말씀이 그저 선언으로 그치지 않고,

현실 속에서 바로 전개되길 빈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겠기 때문이다.


재고 따지며, 계산하지 않고,

그리고, 돈 벌 생각하지 말고,

마음에서 고이는 순수한 고은 마음을 열심히 길어 올려,

남을 도우는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나라가 되길 바란다.


오늘의 성과는,

한국만의 것이 아니고,

인류의 자산이다.

특히 생명과 관련된 것은,

더욱 경계없이 함께 공유하여야 한다.


하지만, 결코 자만하여서는 아니 된다.

우리는 최고가 아니다.

하나의 일로,

곧 모든 것을 이뤘다 여길 것이 아니다.

자만은 이내 운 좋은 조그마한 성과를 무화시키고 만다.


우리 사회는 아이를 낳지 않는 나라다.

이는 곧 기를 형편이 아니 되기 때문이다.

이런 상태에선, 

슘페터(Schumpeter)가 말한 혁신(革新, innovation), 창조적 파괴(creative destruction)란 일어날 수 없다.

현상유지도 버겁고, 외려 퇴보가 예정되어 있다.

물론 나는 개인적으로 인구가 감소하는 것을 마냥 기업 경제적 측면으로만 이해하지 않는다.

외려 좋은 문화적 반성의 기회로 여긴다.

(※ 참고 글 : ☞ 출산 절벽과 문화 국가)


하지만, 과연 이런 기회로 기능할 수 있을런지?

의문이다.

외려 경제적 쇠락의 빗장을 풀어재끼는 징표, 신호가 될 수 있다.

혁신이 아니라, 보신(保身), 안일로 빠질 수 있다.

경계하여야 한다.


코로나19 사태 때, 보인, 한국의 역량은 상찬 받아야 마땅하다.

하지만, 이것으로, 우리 사회의 불량(不良), 모순이 덮어져서는 아니 된다.

그리 된다면, 이번의 성공은 외려 독이 되고 말리라.

우리는 결코 세계 최고가 아니다. 

더, 배우고, 깨닫고, 노력하여야 한다.


우리는 시체말로 국뽕에 마냥 취할 형편의 나라는 아니라는 것을 인식하여야 한다.

지금은 알딸딸하니 조그만 성과에 취해있을 뿐,

우리의 갈길은 한참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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