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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부동(和而不同) ⅱ

소요유 : 2021. 3. 3. 21:04


화이부동(和而不同) ⅱ

君子和而不同,小人同而不和。
(論語)

“군자는 和하나, 同하지 않는다.
소인은 同하나, 和하지 않는다.”

여기 문장 구조로 보아,
혹여 글자를 모른다한들,
和 ↔ 同 임을 미뤄 짐작할 수 있다.

和는 同이 아니고,
同은 和가 아니다.
그러니, 모두 살피지 않고, 다만 同만 집중해 보자.

내가 사회 초년 시절,
퇴근 시간이 되어도 대개는 바로 나가지 못하고,
실실 눈치나 보고, 쓸데없이 서류철을 들었다 놓으면 서성들 거렸다.
그 뿐인가?
회식이라도 있으면 누구도 빠지면 아니 되고,
급한 일이 있다한들, 이를 내버려두고 회식 자리에 나아가야했다.
바로 요런 상태가 同이다.
하니까, 각자의 생각이 어떻든, 거죽으로 하나가 되는 것이다.
同이 강제되던 시절이다.
그리고 同이 최선의 가치인 양 여기고,
조금이라도 빗나가면, 과시 역적 취급을 당하였다.

이승만이 한 유명한 말이 있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이것 제법 그럴싸하다.
헌데, 저것 조금만 살펴보면, 순전 엉터리임을 바로 알 수 있다.
뭉치되 자유당 정권, 이승만 중심으로 뭉치자는 것일 터이니,
다른 주장을 하지 말자는 것 아니겠음인가?
설마하니 그 반대일까나?

허니, 저 이승만의 말이라는 것도 바로 同의 범주에 넣어야 한다.

對曰:「異。和如羹焉,水火醯醢鹽梅,以烹魚肉,燀之以薪,宰夫和之,齊之以味,濟其不及;以洩其過,君子食之,以平其心。君臣亦然。君所謂可,而有否焉,臣獻其否,以成其可;君所謂否,而有可焉,臣獻其可,以去其否。是以政平而不干,民無爭心。故《詩》曰:『亦有和羹,既戒且平;奏鬷無言,時靡有爭。』先王之濟五味,和五聲也,以平其心,成其政也。聲亦如味:一氣,二體,三類,四物,五聲,六律,七音,八風,九歌,以相成也;清濁,大小,短長,疾徐,哀樂,剛柔,遲速,高下,出入,周流,以相濟也。君子聽之,以平其心,心平德和。故《詩》曰:『德音不瑕。』今據不然,君所謂可,據亦曰可;君所謂否,據亦曰否。若以水濟水,誰能食之?若琴瑟之專一,誰能聽之?同之不可也如是。」公曰:「善。」
(晏子春秋)

화이부동에 대하여 아주 적실하니 잘 일깨우고 있는 문장이 여기 안자춘추에 있다. 
안자는 키가 6척이라 하였으니, 대략 140cm 남짓 된다 하겠다.
당시의 척도로 보면 1척은 23.1cm에 당한다.
(※ 참고 글 : ☞ 손과 발)

키도 작고, 인물도 볼품이 없었던 그였지만,
강대국인 초나라에 가서 크게 위신을 세우고 돌아왔다.
(※ 참고 글 : ☞ 개구멍)

실로 제나라는 물산도 풍부하였지만,
관중을 비롯하여 안자까지 명재상이 거푸 배출되었으니,
과시 나라의 복이라 하겠다.

이제, 저 글의 요지를 추려보자.

글은, 경공이 양구거가 자신의 비위를 잘 맞춘다고 자랑하자,
안자가 그렇지 않다고 말하는 장면이다.
그러니까 왜 그런가 하며 왕이 물었다.
안자가 아뢴다.

和란 마치 국과 같으니, 물, 불, 젓, 소금 등을 넣어 어육을 조리하되,
장작으로 불을 지펴, 주방장이 和케 하여 맛을 고르게 하는 것입니다.
부족한 것을 더하고, 넘치는 것을 덜어내어,
군자가 이를 먹으면 마음이 평온해집니다.
임금과 신하도 역시나 마찬가지입니다.
임금이 가하다 하면, 아니라고 말하는 자가 있어야 합니다.
신하가 그 부당함을 아룀으로서, 그 옳다고 하는 것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임금이 불가하다 하면, 가하다 말하는 자가 있어야 합니다.
신하가 그 가함을 아룀으로서, 그 그른 것을 제거할 수 있는 것입니다.
.....
양구거는 임금이 옳다 하면 따라 옳다하고,
아니다 하면 또 따라 아니다라며 맞장구를 칩니다.
若以水濟水,誰能食之?若琴瑟之專一,誰能聽之?
이는 마치 물로써 물을 맞추는 것이니,
누가 이런 국을 먹겠습니까?
금슬 악기 하나의 소리만 내니,
누가 그런 음악을 듣겠습니까?

그러함이니, 同이란 마치 물로써 물을 간한 것과 같으니,
무슨 조화로운 맛이 나겠음인가?
자복려백이 생각나는 장면이다.
(※ 참고 글 : ☞ 악한 말의 창고)

저 앞에서 예를 든 조직이라면,
바로 이런 물에 물을 더한 것임이니,
무슨 조직 파워가 나올 수 있겠음인가?
차라리 인간이 아닌 똑같은 인형을 데려다 앉혀놓고 일을 시킬 노릇이다.

오늘, 여기 블로그에, 내가 자연재배를 한다니,
혼자 옳다 하지 말고 근거를 대라는 이가 나타났다.

본 글을 아무리 읽어보아도,
내가 남을 탓한 바 없고,
다만 나의 농철학, 농사 짓는 태도만 기술되어 있을 뿐이다.

게다가 나는 그 동안 '을밀농철' 카테고리 내에서, 내 농철학에 대하여 적지 아니 말하였고,
블루베리 농사법에 대한 자료도 중요한 것은 얼추 추려 올려두었다.
이것만 제대로 대하였어도 저런 얼토당토않은 말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한편, 저이는 나를 두고 장사치라 이르고 있다.
내가 이곳으로써, 장사를 하기로 하였다면, 이런 짓을 하랴?
공지란을 보면, 나는 견학도 사절하고 있음이며, 이웃맺기도 사양한다고 적어두었다.
장사를 하려는 이가 이런 짓을 하겠음인가?
또한, 내가 좌파임에도 현 정권의 못난 짓을 거침없이 비판을 하고 있다.
만약 장사를 겨냥하고 있는 이라면, 이 또한 반을 잃는 짓이 될 터,
정치색으로 논하자면, 인구 반은 저쪽 패, 반은 이쪽 패가 아닌가?
그러함이니, 어느 영악한 장사꾼이 이리 서툰 짓을 하랴? 

나는 블로그를 통해, 사람을 꾀려함이 아니라,
내 목소리로, 내 뜻을 펴고 있음이니,
이는 다만, 내 삶의 편린을 이리 그저 적어둘 뿐이다.
별 시답지 않은 자가,
낮도깨비처럼 나타나,
해괴한 짓을 하고 있고뇨.
그저, 가여운 중생이라 할 터.

저이의 글을 대하자,
나는 화이부동을 생각하게 되었다.

세상은 대개 같은 것을 요구한다.
조금이라도 다르면 이를 견디어내지 못하고 만다.
불안한 것이다.
그러니, 남을 용납하지 못하고, 무작정 같은 패거리 안으로 우겨 넣을 궁리를 튼다.
저들이 불안한 것은, 제 그릇으로는 감내할 자신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어제 쓴 암호화폐 관련 글에서도 언급을 하였지만,
혁신, 도전을 도무지 받아들이지 못하기에 어지러움이 생기는 것이다.
이런 조직, 사회는 지들끼리 마스터베이션에 열중하다,
종내는 역사의 도도한 흐름에 밀려나 수챗구멍으로 사라지고 만다.

지금 민주당이 놀아나는 꼴을 보아라.
다른 의견 내었다고, 금태섭 쫓아내고,
반론을 펴는 의원은 이내 따돌림을 당하고 설 자리를 잃게 되고 만다.
그리고는 똘마니들이 낫 들고 나대며, 기율을 잡으며,
한 소리로 좌중을 윽박지른다.

小人比而不周라고,
소인은 패거리 짓고, 끼리끼리 놀아날 뿐,
자신과 다른 이들을 도대체가 아우르지를 못한다.

이것 다 불안 증세인 것이다.
同하자고 을러대기에,
얼핏 가지런히 정돈 되는 양 싶지만,
이는 거죽만 그러할 뿐,
균형감을 상실하고,
이내,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금슬 소리가 되고 만다.

정치를 오로지 대깨문만 상대로 하니,
그 바깥에 있는 일반 시민들이,
어찌 저들이 끓이는 물로써 물을 간한 국을 먹으려 하겠음인가?

하기사, 저 이면엔, 아마도, 급히 덮어야 할 사연이 숨어 있기 때문이 아닐까?
무슨 약점이 많기에 저리 무리를 해가면서, 법 개폐를 자의로 하며,
농탕(弄蕩)질을 치고 있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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