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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 단풍이 그립다

소요유 : 2021. 11. 6. 22:11


흔히 접하는 말이다.

나이 먹으면 반드시 해야만 할 일이 두 가지.

말수를 줄여라.
지갑을 열어라.

이 말을 처음 접했는지,
혹인(或人) 하나 있어 이리 말한다.

먹고 살자니 입을 다물 수는 없고,
돈을 풀자니 지갑이 얇다.
그러니, 이리 살겠다고 다짐하더라.
 
'젊은 애들 무서운 줄 알자'

내 이 말을 듣자 한 생각 떠오른다.

나에게 은혜를 베푸신 분이 떠오른다.
그 분을 북한산에서 뵈었다.

내게 국밥과 술을 사주시고,
따스한 손길을 내주셨던 분.

음식점에 들어서,
방안에 앉으니,
내 눈 앞에,
말 수를 줄여라, 지갑 열어라 하는 글이 적힌 액자가 들어왔지.

(네이버 거리뷰)
 
내게 지갑 열고, 술을 사주신 그 분을 나는 기억한다.
지금 그 분은 납골 공원에 모셔져 있다.

그 분 떠나시고,
몇 년간 꺼억 꺼억 울었지.

지금도 마음이 붉게 부풀어 오른다.

예양(豫讓)은 본디 범씨(范氏), 중행씨(中行氏)를 섬겼다.
그러다 지백(知伯)에게로 갔는데, 지백은 그를 총애하였다.
진(晉)나라는 3대 유력 가문에 의해 삼분 되었는데,
일파인 조양자(趙襄子)는 특히 지백을 원수로 대하여,
그를 죽이고는 머리로 그릇을 만들어 썼다.
예양은 도망가 산에서 이리 말했다.

士為知己者死,女為悅己者容。
(戰國策)

‘사내장부는 자기를 알아주는 이를 위해 죽음을 불사한다.
여인네는 자기를 기쁘게 하는 이를 위해 단장한다.’

이 말을 토해내며,
주군의 원수를 갚겠다 작정한다.

과시, 고인(古人)의 말씀엔 허언이 없구나.
하지만, 나는 지금 죽으려 하여도 그 분이 아니 계시다.
나는 누구를 위해 설분하여야 하는가?
이게 남은 평생의 화두가 되었다.

피 한 방울도 섞이지 않은 나에게,
잠깐 사이의 만남에,
넘치는 은혜를 베푸시고,
그는 떠나셨다.

그 분은 스님도, 불교도도 아닌데,
좌탈입망(坐脫立亡)하셨다.

동화 같은 만남이었지.
요즘 세상에선 쉬이 일어날 수 없는 그 분과의 만남.

士為知己者死

과연 나는 그 분의 의기, 열정을 위해 죽을 수 있을 만큼,
지금 비굴하지 않게 살고 있는가?

부끄럽다.

그 분과 함께 하였던,
북한산 단풍이 그립다.

호기롭게도,
누군가는 '젊은 애들 무서운 줄 알자!'라고 말한다.
 
하지만 아시는가?
나를 알아주는 분을 만날 수 있는 것만치,
귀하고도, 마음에 사무쳐,
끝내는 두려운 일이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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