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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승구전(先勝求戰)

소요유 : 2022. 2. 13. 20:30


선승구전(先勝求戰)

故善戰者,立于不敗之地,而不失敵之敗也。是故勝兵先勝,而後求戰;敗兵先戰,而後求勝。
(孫子兵法 軍形)

“고로, 선전자(善戰者)는 
패하지 않는 곳에 서서,적이 패할 것을 놓치지 않는다.

그러므로, 승병(勝兵)은 먼저 이기고, 후에 싸움을 구하며,
패병은 먼저 싸우고, 후에 승리를 구한다.”

(출처 : 網上圖片)

이 말은 정말 천고에 빛나는 명언이다.
병법에 국한하지 않고 모든 영역에 거쳐 금옥과 같이 귀한 말씀이다.

이 말씀을 두고 할 말이 적지 않다.
하지만, 오늘은 주제를 하나로 좁혀 집중한다.

아아,
이 말 팻말 앞에서면 온몸이 부르르 떨리고 만다.

한편, 우리는 이런 말 많이 들었다.

“이길 놈에게 투표하여야지, 
질 놈에게 표를 주어 힘을 나눌 일 없다.”

그 잘난 그대 당신들.
그러면서 자신이 진정 좋아하는 이라든가,
옳은 말 하는 이를 재끼고, 
엉뚱한 자에게 표를 던지지는 않았는가?
선거가,
영치기 영차,
이게 홍군, 청군 패 갈라 싸움박질 하는 놀이더냐?

혹간 정인군자 있어,
지 아무리 옳은 말을 아무리 하면 무엇하나,
정작 표를 주는 이들이 저들을 외면하고 마는데 말이다.
딱한 일이다.

기본소득당, 진보당
이들이 말하는 것 들어보라.
말인즉슨 구구절절이 옳다.
하지만 왜 이들은 언제나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하고 마는가?
대중은 이들이 아무리 선한 말을 하여도 거들떠도 보지 않는다.
저들에게 대중이란 이름은 너무 어울리지 않는다,
그냥 우중(愚衆)이라 함이 옳다.

차차 이야기 하겠지만,
나는 가령 국힘이나, 민주당 등, 이들이 거대 양당이기에 표를 던지지 않았다.
무작정 될 놈에 표를 주지 않고, 
언제나 되어야 할 이에게 표를 주었다.
예전엔 녹색당에게 주었었다.
그 외에도 표를 줄 당이 더 있었지만, 
하나만 주어야하기에 망설임이 있었다.
표를 행사할 곳이 적은 것이 아니라,
많아서 걱정이었을 뿐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흔히, 찍을 놈이 없다고 장탄식을 금치 못한다.
옳기도 하지만, 이는 양당에 국한하기에 그런 것일 뿐,
그 밖으로 눈을 돌리면 참신한 이가 어찌 없을쏜가?

나는 후보가 아니라 유권자이기에,
언제나 되어야 할 이를 찾았고,
이리 앞일을 예비하였다.

내가 전사(戰士)가 아닌즉,
싸움에서 이기는 것이 목표가 될 수 없었음이니,
결코 이기려 하지 않았음이다.

나는 선한 농부임이라,
어린 묘목에 물을 주고 햇빛 잘 들게 도우며,
먼 훗날 낙락장송으로 자라길 축원할 뿐임이라.

악한 농부처럼 당장 소출을 목표로,
농약 처바르고, 비료 처넣으며,
욕망의 마차를 마구 몰아가지 않는다.

앞에선 선승구전(先勝求戰)이라면서,
이길 자에게 표를 던져야 하지 않는가?
이리 되묻는 얼치기가 있을런가 싶다.

그대 당신이 선수냐?
네가 입후보라도 하였는가?

적하이론(滴下理論)은 또 어떠한가?

박정권 때 재벌에게 돈을 몰아주며,
선수들을 아낌없이 밀어주어야 한다.
그래 떡을 크게 만든 연후라야,
모두 골고루 나눠가질 수 있다.
이리 나팔 불어재끼며 선전하였다.

이것 제법 그럴싸한가?
하지만, 선수들이 메달 따고, 
크게 공장 짓는데 힘을 쓰기는 하지만,
언제 네들에게 떡 한 조각 돌리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오히려 자신들 배는 아직도 고프다면,
네들 허리띠를 더욱 바짝 조여야 한다고 주문하지 않든가?
정치인들 또한 이에 화답하며,
노동자들 허리띠를 줄이는 공약을 거침없이 편다.

戰勝,而天下曰善,非善之善者也。

“전쟁에 이겨서 천하가 선(善)이라 함은,
선의 선이 아니다.”

지금 선거판을 보아라.
지나가던 까마귀가 자신보다 더 검다 흉을 보고 있을 지경이다.
왼통 진흙탕에 몸을 담구고 이전투구(泥田鬪狗)로 지랄을 떨고 있다.

한국 자원을 모두 독점하여 배를 불리고 몸집을 키운 소위 재벌들을 보아라.
그래 그들이 조각 빵인들 그대 당신과 나누길 꾀하였든가?

그러함이니,
저런 전쟁에서 이긴 자를 두고 
어찌 선(善)하다 이를 수 있겠음인가?

전쟁에서 이겼다 한들,
저들이 선한 정치를 펼 수 있으리라 믿을 수 있다더냐?

그러함이니 전쟁에서 싸우기를 좋아하고,
혹간 이겼다 한들 어찌 저들을 두고 선하다 이를 수 있겠음인가?

사정이 이러함인데,
어찌 이길 놈에게 표를 던져야 한단 말인가?

마치, 남이 장에 가니 똥장군 메고 따라 나선다는 얼치기들이야말로,
그대 당신이 아니냐?

북경 올림픽에서,뙤놈들이 메달을 훔쳐 제 목에 걸었다한들,
이를 두고 누가 있어 아름답다 이를 수 있으리요?

2,500 여 년 전 손자란 걸출한 이를 둔,
그 후예들은 지금 모두 짐승이 되어 있다.

아아,
그러함이니 아름다운 이는,
결코 승리만을 탐하지 않는다.

뙤놈이 이긴다 하여,
저들에게 박수 치고, 응원할 수 있는가?

이제 선승구전이란,
결코 손자가 싸움에서 이기는 것이,
무작정 선이라 말하고 있지 않음을 알았으리라.

古之善戰者,勝于易勝者;故善戰者之勝也,無智名,無勇功。

“옛날의 선전자(善戰者)란, 
이기기 쉬운 것을 이기는 자임이라.
그러므로 선전자의 승리란, 
지혜로운 이름도 없고,
용맹스런 공도 없다.”

지금 보아라,
이재명이나 윤석열이 장수 깜이라 할 수 있는가?
모두 혈안이 되어 이름을 구하고,짐승처럼 공을 세우려,
갈기를 곧추 세우고 사납게 날뛰고들 있지 않은가?

저들은 당선이 된다 한들,
결코 선전자(善戰者)라 이를 수 없다.

손자에 의하면,
모두 가짜들임이라,
그저 싸움 좋아하는 폭력배에 다름이 아니라 하겠다.

故備前則後寡,備後則前寡,備左則右寡,備右則左寡,無所不備,則無所不寡。寡者,備人者也;眾者,使人備己者也。
(孫子兵法 虛實)

“고로, 앞에 갖춤이 있으면, 곧 뒤가 적고(미흡하다),
뒤에 갖춤이 있으면, 곧 앞이 적다.

왼쪽에 갖춤이 있으면, 곧 오른쪽이 적고,
오른쪽에 갖춤이 있으면, 곧 왼쪽이 적다.

갖추지 않은 바가 없으면,
곧 적지 않은 곳이 없다.

과자(寡者)는 (적에 대향하여) 갖추는 자이고,
중자(衆者)는 적으로 하여금 갖추게 하는 자이다.”

이 말은 무슨 말인가?
한 곳에 집중하면 다른 곳이 비게 된다는 말이다.
그런즉 모든 곳을 다 방비를 하게 되면,
가진 자원이 다 소진되게 된다.
그런즉 (종국엔) 과자는 모든 곳을 다 갖추려는 자이다.

보아라,
윤석열이라 다르지 않지만,
가령, 이재명만을 두고 보아도 저 말의 뜻이 명백하게 드러나지 않는가?
그는 방방곡곡 가는 곳마다 허언을 마구 늘어놓는다.

충청도에 가서는 육사 이리로 이전하겠다 말하고,
안동에 가서는 또 그리로 이전하겠다 마구 따발총을 난사하고 있다.

이를 손자는 과자(寡者)라 이르고 있는 것이다.
모든 곳을 막아내려 하지만,
외려, 종국엔 모든 곳에 다 미치지 못하게 된다.

유비무환(有備無患)이라 하지만,
여기 허실 편에선 거꾸로 모든 곳을 갖추려 하다가는,
힘이 분산되어, 종국에 다 갖추지 않은 꼴이 된다고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 문장은 바로 이런 자를 일러 과자(寡者)라 함을 가리키고 있다.

하나를 나눠 열 곳을 지키려 하면, 힘은 십분지일이 되고.
백 곳을 지키려 하면, 힘은 백분지일이 되고 만다.
그러함이니 온갖 것을 찾아내어 점수 따려고만 들면,
이는 마치 제 정조를 내팽개치고,
천, 만에게 추파를 던지며 치맛단을 들어 올리는 들병이 짝이 되고 말리니,
이를 두고 어찌 귀하다 할 수 있겠음인가?
천하다.

先勝而後求戰

먼저 이기고서 후에 싸움을 구한다는 것은,
불확실한 싸움을 하지 말라는 말이다.
싸움판을 먼저 벌여놓고, 이기기를 구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멍청한 짓이라는 것이다.

선거란 따지고 보면,
적이 상대 후보가 아니라,
기실은 인민대중이런지도 모르겠다.
인민의 마음을 어찌 훔치는가?
정작은 이것을 상대하는 것이로되,
이를 잊고 상대 후보를 이기려고만 하니,
온갖 병통이 생기는 것이 아닐까?

나의 형(形)을 완비하고, 적의 형(形)을 완전히 손 안에 장악하고서야,
싸워 이길 수 있는 법이다.

君子居易以俟命,小人行險以僥倖。
(中庸)

“군자는 초촐하니 살아가며 천명을 기다리나,
소인은 위험을 무릅쓰고 살아가며 요행을 바란다.”

애초 이재명은 기본소득을 기치로 내세우고,
황토 먼지 뒤집어쓰고 천리 벌판을 달려왔다.
(지금 기본소득 그 자체의 찬반, 시비를 말하고 있는 게 아니다.)
게다가 그의 뛰어난 행정력이 뒷받침되어,
세인의 관심을 이끌어내었다.

헌데, 이 작자가 눈깔이 뒤집혀,
가는 곳마다 기본소득 정책을 누더기로 만들더니만,
이젠 아예 남은 자취조차 찾기 힘들다.
그리고는 천지사방을 쏘다니면서,
마치 패랭이에 숟가락 꽂고 구걸하는 거렁뱅이인 양,
마구 공약을 남발하며 표 동냥질을 하고 있다.

게다가 본인은 물론 주변의 치부가,
깻박친 그릇에서 쏟아지는 낟알처럼 수습할 수 없는 지경이다.
그 동안 어찌 이리도 감쪽같이 감추어 두었단 말인가?
재주가 용쿠나.
흉악하구나.

이리 깨방정을 떨며, 조막손으로 온 천하를 가리려 하고 있음이니,
그들을 두고 어찌 과자(寡者)라 하지 않을 수 있으랴?

이러고서야,
어찌 전쟁에서 이기는 장수가 될 수 있으랴?

허나 유권자는 전이든 후든, 좌든 우든,
어느 하나를 준비하는 자가 되어도 무방하다.
싸우는 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갑은 전, 을은 후를,
이리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를 위해 나아갈 일이다.

갑을병정 ...
이들을 모아 중인(衆人)이라 함은,
낱낱 개별 단자들의 염원이 크고 너르기 때문이다.

무릇 장수란 이 가운데 무엇이 귀하고, 헐한 것인가를 분별하여,
일의 선후를 가리고, 경중을 나눠 앞일을 설계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지금처럼, 옷고름 풀고, 모든 이에게 살품 파는 홍루(紅樓)의 계집이 아니란 말이다.

眾者,使人備己者也。

중자(衆者)는 후보들로 하여금 준비케 하는 자일뿐인 것을.

허실이 이러함인데,
중인들은 그저 될 놈만 되라며,
제 가치를 저버리고 큰 놈에게 몰빵을 하고들 있다.
영혼을 허수아비에게 저당 잡힌 저 천한 몰골을 보라.
추하다.

내 눈엔 이들이야말로,
공화국을 좀먹는 좀벌레로 보일 뿐이다.

미망(迷妄)이어라.

결국 과자(寡者)와 대중들은 손잡고 한데 아우러져,
이 공화국의 앞날을 깜깜 칠흑으로 몰아가는 자들이라 하겠음이다.
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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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요유 : 2022. 2. 13. 20: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