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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불타검(打人不打臉)

소요유 : 2022. 3. 29. 13:08


타인불타검(打人不打臉)

이 말 뜻은,
사람을 때리더라도 뺨은 때리지 않는다는 말이다.

왜 그런가?

몸을 향한 구타는 내 분노의 분출에 그치지만,
뺨을 후리는 것은 상대의 인격을 가격하는 것에 이른다.
그저 몸을 맞으면 우선 고통이 일어나지만,
뺨을 맞으면 고통 이전에 심한 모욕감을 느끼게 된다.

(※ 출처 : abc)

점포 간판을 행인들이 부수면,
설혹 범인을 잡아 배상을 받았다 한들,
기분이 여간 더러운 것이 아니다.
이것은 간판이 단순한 기물 이상이기 때문이다.
그게 내 점포의 모든 것을 드러내는 외적 상징 표식인데,
이게 다치면, 물적 상해를 넘어 내심의 상처를 입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을 가려 깊숙이 숨기기도 하지만,
때론 부러 드러내놓는 것도 있는 법이다.

얼굴(뺨)이 그 예다.

얼굴은 마치 전쟁터의 깃발과 같은 것으로,
피아를 가리고 나를 드러내기에,
매일 일어나 소세(梳洗)하고, 분단장하여,
한참 다듬고, 멋을 부린다.

요즘은 사내 녀석이라 별반 다르지 않지만,
계집사람은 헐하게 보아주어도 평생의 삼분지이(三分之二)를 경대(鏡臺) 앞에서 눅인다.

神秀 偈  唐 神秀大師 (당나라 신수대사의 게송)

身是菩提樹    몸은 보리의 나무요
心如明鏡臺    마음은 밝은 거울 같나니
時時勤拂拭    때때로 부지런히 털고 닦아서
莫使有塵埃    티끌과 먼지 끼지 않게 하라.

慧能 偈  唐 六祖慧能大師 (당나라 육조혜능대사의 게송)

菩提本無樹     보리는 본래 나무가 없고
明鏡亦無臺     밝은 거울 또한 받침대 없네.
佛性常淸淨     부처의 성품은 항상 깨끗하거니
何處有塵埃     어느 곳에 티끌 먼지 있으리오.

혜능-신수-여인의 층위가 이리 다른 것이다.

다시 말 고삐를 돌려 잡고 선다.

그러하기에, 
얼굴은 그저 단순한 외표(外表) 이상으로,
내 인격의 최첨두 표상(表象)임이다.
즉 내적 본질이 밖으로 드러난 상징 가치의 전초인 것이다.

가령 전쟁터에서 적군의 깃발을 빼앗으면,
마치 적군을 패퇴시킨 양 사기가 오르고,
빼앗긴 측은 전쟁에서 지기라도 한 양,
의기소침하여 기가 꺾이게 되는 법이다.

얼굴도 그 이치가 같다.
따라서 이의 훼손, 능멸은,
결코 회복하기 어려운 상처로 남게 된다.
따라서 깊은 원한을 남기게 된다.

우리 어렸을 때, 
선생들이 아이들을 벌한다고 뺨을 때리는 게 일상이었다.
그 뿐인가?
국민학교 6학년 담임은 바지를 내리고 엉덩이 때리는 것을 즐겼지.
그는 성적표를 나눠주면서 다음 목표 등수를 적게 하였는데,
다음 차 성적에서 이 목표보다 떨어지면,
응징의 체벌을 가하였는데,
이게 볼기짝 내놓게 하고 막대기로 때리는 것이었다. 
하기에 반 동무 중에 이를 피한 이가 없었다.

동무들 앞에서 무력하게 교단 위에서 엉덩이를 내놓고 있다 생각하여 보라.
이것 여간 치욕이 아니다. 

그래도 그 선생께서 하나 남기신 표적이 있는데,
성적 우수자에겐 다스(dozen) 단위로 연필을 나눠 주는 것이었다.

‘낙타표 연필’

당시 연필은 질이 천차만별이라,
싸구려는 나뭇결이 억세어 칼로 깎으며,
쥐털 뜯은 것처럼 마구 일어났지.
낙타표는 고급이라 믿고 쓸 만한 제품이었다.

이것을 나는 상당량 모아,
상급 학교 다니는 내내 다 쓰고도 남아,
궤에 넣어두었다.

헌데, 지금 학문적 성취는 없고,
고작 이것을 새기고 있음인가?
그것도 따지고 보면,
저 선생의 성적(性的) 만족의 댓가인 화대에 불과하였을지도 모르는 저것을.
가엾다.

지금 생각해보니,
저 선생은 필경, 성적인 욕구불만을 저리 풀지 않았을까 싶다.
spank, slap
엉덩이나 뺨을 때리면,
피부의 탄력으로 찰싹 찰싹 거리는데,
이게 때리는 이에겐 묘한 흥취를 불러일으키리니,
저들 선생들은 아마도 이에 병적으로 집착한 것이 아니랴?

그럴 양이면,
정각(井閣) 돌틈에 끼인 두꺼비가 참관하는 자리,
장마철 움푹 패인 구덩이에 엎어져 허벌나게 용두질이나 할 일이지,
어찌 여린 영혼들 괴롭혔는가?
그 죄가 결코 가볍지 않다 할 밖에.
고약하다.

어린 동심의 상처는,
수십 년이 흘러도 결코 그날의 모욕을 잊을 수 없으리라.

Will Smith

이 사람 연기 재간은 있을지 몰라도,
인격은 우리 동네 두꺼비에게서 좀 배워두어야겠군.
정각 돌 틈에 끼어,
천년 고독을 셈하는 저 두꺼비 성자를.

여기 농장 주위엔 옥빛으로 빛나는 아기 청개구리도 많지만,
비 오면 아쟁을 켜는 맹꽁이가 모여 있는 웅덩이도 있고,
천년 신비 성자 두꺼비도 심심치 않게 나타난다.

행여라도 스미스가 두꺼비를 친견하고 싶다면,
내, 여기 농장에 남은 말석 하나를 내줄 수도 있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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