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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벽청야(堅壁淸野)와 검수완박(檢搜完剝)

소요유 : 2022. 5. 6. 15:17


견벽청야(堅壁淸野)와 검수완박(檢搜完剝)

병법 중 견벽청야란 독특한 병략이 있다.

스스로 물자를 없애버리는 것인데,
가령 해자(垓子)를 깊게 파고,
성벽을 굳건히 하여 마냥 오래도록 버티는 것이다.

여기서 청야(淸野)란 가령,
성 바깥의 농토를 모두 불태워 버려,
아예 곡식 한 톨 남은 바 없이 깨끗이 처리해버리는 것이다.

이리 되면, 공격해온 적군은 성곽을 넘지 못하는 한,
이제 불타 버린 들에서 한 톨의 곡식도 취하지 못하게 되어,
오도 가도 못하게 되어 패퇴하게 되는 것이다.

문제는 성안의 비축 물자가 넉넉하지 못하면,
성 밖의 적군보다 외려 먼저 나가떨어질 우려가 있는 것이다.
게다가, 아국 인민들 삶의 터전을 깡그리 불태워버렸기에,
인심이반이 일어나기 쉬운 바,
그 이후의 후과를 자신이 짊어져야 한다.

대체로, 인민들을 거지발싸개 정도로 알고,
다만 승리하는 데만 욕심이 승하기에,
약탈, 학살에 거리낌이 없었음이니,
견벽청야, 청야(태우고 떠남) 전법이야 뭣이 대수랴?

군웅이 할거하며, 중원축록(中原逐鹿)에 바빴을 뿐,
그 누가 있어 인민들의 눈물을 흠쳐주고, 배고픔을 덜어주려 하였으랴?

하지만, 역사상 유우(劉虞)와 오두미교(五斗米敎)의 경우엔,
그렇지 않았으니 실로 놀라운 일이라 하겠다.

유우는 삼국지 등장인물 중 제일의 인격자로,
인민들을 돌보는데 진심을 다하였다.

오두미교의 경우도 병자를 돌보고, 배고픈 이들에게 쌀을 나눠주었다.
조조의 공격을 피해 도망갈 때, 측근들이 창고를 불태우자고 하였으나,
이는 국가의 것인즉 그럴 수 없다 봉해놓고 물러났다.

이젠 오늘날 이 개명한 세상에,
견벽청야하며 똥 싸지르고 달아난 무리들이 출현하였다.

이름하여 검수완박의 무리들이다.

남겨진 사람들의 안위는 상관이 없다.
오로지 자신들의 허물을 덮고 살아남는 데만 혈안인 것이다.

내 한 생각 일어 이리 글을 꾸며 보았다.

夫藏舟於壑,藏山於澤,謂之固矣。

‘무릇 배를 골짜기에 숨겨 놓고,
산을 못 속에 숨겨 놓으면,
안전하다 여기는 이가 있다.’

당장 지은 허물이 태산보다 더 크며,
명명백백한데, 이를 골짜기와 못에 감추려 함이다.

면 서지 않는 일이 닥치면,
장독대 쥐에 숨어 나 없다 하는,
댕기머리 사내 모습으로 일관하더니만,
그 추종자들 역시 하는 짓이 가관이구나.

然而夜半有力者負之而走,昧者不知也。藏大小有宜,猶有所遯。若夫藏天下於天下,而不得所遯,是恆物之大情也。特犯人之形而猶喜之,若人之形者,萬化而未始有極也,其為樂可勝計邪!

‘하지만, 한밤중에 힘센 자가 그것을 지고 달아날 수가 있다.
어리석은 자는 (이를) 아지 못한다.
작은 것을 큰 것에 숨기는 것은 그럴싸하지만,
잃어버리는 수가 있다.
만약 천하를 천하에 숨겨둔다면, - 藏天下於天下
잃어버리지 않으리라.
이는 사물의 영원한 이치이다.
사람들은 특별히 사람의 탈을 쓰고 태어난 것을 기뻐한다.
하지만, 사람의 형체라는 것은, 갖가지로 변하게 마련이다.
만약 이(萬化)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그 즐거움은 헤아릴 수 없으리라.’

자신이 몸을 담고 있던 곳을 불 지르고 토까며,
남은 인민들의 삶은 어찌 되든 알 바 없다는 저 패악의 무리들.

(※ 출처 : chosun)

한동훈.
하도 많이 속아 조심스럽긴 하다.
하지만, 이제까지로는 근래 보긴 드문 smart한 인간처럼 느껴진다.
(※ 기실 나는 한동훈이란 인물에 대하여 거의 아는 바가 없다.
최 근래 뉴스에 나오는 정도외 축적된 정보가 없다.
그런즉, 오늘의 판단은 극히 얇은 인상비평에 터한다 하겠다.
차후 추적 보완할 예정이다.)

개나 소나 smart phone 들고 다니고 있으나,
정작 한동훈과 같이 smart한 인간은 자취조차 찾을 길 없는 형편이다.
백주대낮 아테네 거리를 등불을 들고 다녔다는 소크라테스의 심정도,
오늘날 우리네 거리에서 느끼는 참담함과 뭣이 다르랴?

저 이미지 내용을 보면,
힘센 범죄자, 야반도주란 일련으로 꿴 한동훈의 말이 나온다.
그는 필경 장자를 제대로 읽었음을 알 수 있겠음이다.
아아,
smart하구나.

死生,命也,其有夜旦之常,天也。人之有所不得與,皆物之情也。

‘죽음과 삶은 운명이다.
항상 밤과 낮이 바뀌는 것은 하늘의 법칙이다.
사람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일이 있음은,
만물의 실정이다.’

노무현의 유서 한 조각.

‘너무 슬퍼하지 마라.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
미안해하지 마라.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운명이다.’

그의 유언 속에 등장하는,
死生, 운명이라니.

과연 그는
死生,命也,其有夜旦之常,天也 ...
이 구절을 알기나 알았을까나?

노무현 떠나자 추종 무리들은 폐족을 자처하였다.
이제 문재인이 물러나면 그 도당들 멸족이 되려나?

진보의 가치를 말아 먹은 무리들.
내 순정을 유린한 저 패악의 도당들.
오만 정이 다 떨어졌다.
저 운동권, 엔엘 무리들,
이번엔 폐족이 아니라, 멸족이 되길 빈다.

노무현은 시비 여하 간에, 자기 자신의 철학이 있었다.
그가 삶을 마감하였을 때 우울하였다.

(※ 출처 : newsis)

하지만 문재인은 자기 철학도 부재하고,
자기변호에 바쁜 졸장부에 불과하다.
최근 중앙일보 손석희와의 대담을 보면,
변명, 자화자찬으로 시종일관하였다.
노무현과는 그 그릇의 크기가 천양지차다.

촛불 든 시민들을 허탈하게 만들었다.
추위에 발을 동동 굴리며, 
광장에서 언 손으로 촛불을 든 이들에게,
죽을 때까지 엎드려 사과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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