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ngta      

세월면전무장사(歲月面前無壯士)

소요유 : 2023. 11. 3. 13:54


세월면전무장사(歲月面前無壯士)

우리는 세월 앞에 장사 없다는 말을 곧잘 듣는다.

(1:23:27/1:42:36)

서봉수, 서능욱 간 치수 고치기 7번국 중 4국에 나오는 장면이다.
서봉수가 돌을 놓고 손을 거두다 실수로 반상에 놓여진 돌을 건드려,
한쪽 구석이 흐트러져버렸다.
많이 어지러워진 것이 아닌즉 다시 고쳐놓으면 될 일이다.
헌데 양인은 어찌 놓여져 있었던지 기억을 하지 못하여 당황하고 만다.
급기야 입회인이게 도움을 구하여 판을 바로 정리하였다.

예전 같으면 일일이 이것 기보에 작성하였기로,
종이 기보를 들고 고쳤을 터인데, 
세상이 좋아져 입회인은 스마트폰 하나 들고 그야말로 스마트하게 바로 잡고 만다.

헌데, 프로기사가 제가 방금 놓은 기보를 재현할 수 없단 말인가?
프로기사 정도면 모두들 수재급이다.
이것은 도저히 생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해설자도 연신 끌탕을 한다.

어떻게 자기 모양을 모를까요 나 저것도 처음 보는 모습인데 왜냐면
기사들이 다 알거든요 자기 기억이 안 나는 건 참 그래요 끝 끝장 승부의
재미죠 그럼요음 아니 지금 너무 긴장들을 해 갖고 정신들이 없나
봐요 이건요 다 하는 거예요 누구든지 다
지금 그 만드는 거거든요 자기 놔아 있던 건 다 알아요 근데 왜 왜
기억을 못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니 이제 제가 지금 댓글 보다가 빵 터졌는데요
어 손 떨림 방지 기능을 넣어야 된대요 참 재 재밌는 해프닝 많이 일어납니다’

아아,
나 역시 장탄식을 금할 수 없구나.
세월면전무장사(歲月面前無壯士)
세월 앞엔 장사가 없는 법.

凡所有相 皆是虛妄.
 
‘죽음의 한 연구’를 쓴 소설가 박상륭은 이리 말하였다.

“계집 하나 잘못 잡아먹고 목에 비녀가 걸린 채 고독히 배회하는 그런 어떤 야윈 들개처럼,
왠지 내 목구멍에도 그런 비녀가 걸려 있었다.
그것은 울음은 아니었을까도 모른다...”

有相의 존재란 도시 虛妄한 것이어라.
비녀가 목구멍에 걸려 캑캑거리고들 난리법석을 떨고 살아가지만,
문득 깨닫고 보면 이게 다 꿈이요 환(幻)인 것이어라.

어느 중국인이 이리 말하였다.
나이 50이나 60은 늙음에 그저 큰 차이 없다.
살쩍 귀밑머리가 희끗희끗해지며 늙는다는 것을 알긴 하지만,
아직 그리 기력이 크게 딸리진 않는다.
하지만 70이 되면 갑자기 우르랑 쿵쾅 산이 무너져 버리듯 꺾여버리고 만다.

나는 이를 파국(破局, catastrophe)이라 부른다.
여자들은 잘 안다.
흔히 말하듯 스타킹에 덴싱(でんせん, 伝線)이 났을 때,
올이 조그맣게 풀린 것을 메뉴큐어 따위를 칠해, 일시라도 풀림 방지를 해두지 않으면,
순식간에 올이 주르르 풀려, 발목에서 오금까지 한달음에 기찻길을 내고 만다.
바로 이것 역시 파탄이란 말의 어의를 길어내는 연상 장면의 좋은 예라 하겠다.

늙음이란 것도 아직 근력 등 아직 기능 작용이 살아 있는 50, 60에는 그럭저럭 살아가지만,
저 덴싱처럼 올이 확 풀려드는 시기를 중국인 필자는 70으로 보는 것이다.
사람에 따라 그게 80이든 90이든 앞서거니 뒤서거니 할 뿐,
무슨 큰 의미가 있으랴?

파죽지세(破竹之勢)란 말에서 파죽이란 것도,
대나무 한 마구리에 쐐기를 박고 조금 어겨 벌린 후,
아래로 죽 밀면 단번에 좌우로 갈리며 쪼개져 버리고 만다.

파탄(破綻)이란 말은 본디 열봉(裂縫)이라 옷 따위의 솔기가 터진 것을 말한다.
천의 봉합 부분이 한번 터져 조그마한 틈이 벌어질 경우,
자칫 미약한 움직임이 보태질 경우라도, 트드둑 터지며 전체가 뜯어지곤 한다.
바로 이를 파탄이라고 칭하는 것이다.

애초 조금 터졌을 때, 바로 헝겊을 덧대어 꿰매거나,
봉합사로 다시 여며주면 탈이 나지 않지만,
소홀히 하다가 무슨 계기로 그 견디어내던 한계를 넘어가 버리면,
전체가 결딴이 나 제 쓸모를 다할 수 없게 된다.

헌데, 묻노라.
헝겊은 덧대어 꿰매기라도 할 터이지만,
그대 당신들의 늙음이란 것도 이리 막을 수가 있단 말인가?
여기 이태백의 추포가 하나 남겨두며 마친다.

秋浦歌 李白

白髮三千丈,緣愁似個長。
不知明鏡裏,何處得秋霜。

백발 삼천 장!
시름에 이리 길어졌구나,
거울 속을 들여다보아도 알 수 없으니,
어디서 가을 서리를 맞고 왔는가.

'소요유' 카테고리의 다른 글

태친(太親)  (0) 2023.11.28
주귀 후주광(酒鬼 酗酒狂)  (1) 2023.11.26
유연황망(流連荒亡)  (1) 2023.11.13
마혁이시(馬革裹屍)  (1) 2023.10.29
1초 담병(談兵)  (3) 2023.10.02
도량형법, 통계법 유린  (0) 2023.09.23
Bongta LicenseBongta Stock License bottomtop
이 저작물은 봉타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3.0 라이센스에 따라 이용행위에 제한을 받습니다.
소요유 : 2023. 11. 3. 13:5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