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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친(太親)

소요유 : 2023. 11. 28. 17:59


문심조룡(文心雕龍)이란 문학 이론서가 있다.
게서는 評者,平理。라 이르고 있다.
즉 評이란 平理라 하고 있다.

거기 나오는 平理란 治理쯤으로 새기면,
부족하나마, 대략 그 근방에 이를 수 있다.
헌데, 平, 正也。라 하듯,
平理는 治理에 비해,
사뭇 正, 바름에 깊이 묶여 있다.
이치를 궁구하되,
어디 치우침이 없이 바른 뜻을,
살피고, 뜻을 고른다는 의미가,
그 말을 대하면, 특별히 강조되어 지피어 올라온다.
나무 연기 향처럼,
그 말씨의 냄새를 맡노라.

評을 영어로 번역하자면,
흔히 criticize, appraise, evaluate,
이 정도에 이른다.
비평, 감정(鑑定), 평가하다 따위인데,
여기엔 아무리 하여도 平이란 의미가 직접적으로 바로 드러나지 않고 있다.

이들 말에선, 시비(是非)를 가린다는 뜻은 얼추 건지어 올릴 수 있다.
하지만, 治理는 몰라도, 平理의 뜻은 바로 드러나지 않는다.

한편, 評을 두고, 平理란 일반론을 넘어,
승리(繩理)라 규정하는 일도 있다.
여기 繩이란 노끈, 그물 승이라,
이 글에선 말하고자 하는 목표에 맞춰 일단 그물을 뜻한다고 보자.
繩理란 그럼 理를 그물질 하는 것인가?


※ 繩이란?
文心雕龍에선, 
評者,平理라 하였는데,  
劉子新論에선, 
評者,所以繩理也 (正賞篇)라 하였다. 
그 부분을 끌어내 보자. 

賞者,所以辯情也;評者,所以繩理也。賞而不正,則情亂於實;評而不均,則理失其真。理之失也,由於貴古而賤今;情之亂也,在乎信耳而棄目。

“감상이란, 정(情)을 변별하는 것이며, 
평(評)이란, 리(理)를 엮어 가는 것이다. - 繩理 
감상이 바르지 못하면 실에 있어 정이 어지러워지고, 
평이 고르지 않으면, 이(理)는 그 진(眞)을 잃게 된다. ...” 

여기 繩理란 李咸用의 다음 시를 마저 읽으면,
그 뜻이 더 오롯하니 드러난다. 

蒼頡台: 先賢憂民詐,觀跡成綱紀。自有書契來,爭及結繩理。 

문자의 창시자 창힐의 書契나 結繩처럼, 
文을 그려내는 글자(字)를 엮어내는 것인즉, 
准繩, 繩墨 즉 나아가 規矩准繩 같은 표준 도구로서의,
판단기준이랄까 규범적 구체성을 획득한다.

가슴에 큰 뜻을 품었지만,
종내 반란의 수괴로 몰려 죽고 말은,
비운의 회남왕 유안(淮南王劉安)이 지은,
회남자(淮南子)란 책이 있다.
이 유안의 이야기는 사뭇 극적이라,
중국에선, 연극, 영상으로 많이 만들어지고 있다.

내, 이미 소개한 여씨춘추(呂氏春秋)와 겨루고자,
그는 이 회남자를 엮었다.

이들, 모두 정치적 야망과 사회적 신망을 도모하고자 하는 의도로,
격발된 혐의가 적지 않지만,
그 아득한 시절, 책으로 엮어 남긴 흔적들이란,
우리 후인들을 적지 아니 흥분시키며,
자극, 계발(啓發)시키고 있다.

거기 보면, 繩을 두고 이리 읊은 구절이 나오고 있다.

中央,土也,其帝黃帝,其佐後土,執繩而制四方;
(淮南子)

“중앙은 土다 그 임금은 황제(黃帝)고,
그를 뒤에서 보좌하는 이들은 선비라,
집승(執繩)으로 사방을 제압한다.”

이것은 무슨 뜻이냐 하면,
황제가 중앙 土에 거(居)하여,
사방(金木水火)을 제어한다는 뜻이다.
여기 금목수화토(金木水火土)는 음양오행설에 따른,
중앙/사방에 배대된 오행을 지칭한다.

하니까, 다시 돌아와 보자면,
繩理란 마치 황제가 사방을 통어(統御, control)하듯,
그리 이치를 모두 완벽히 다스리고, 통제하고,
사정을 꿰뚫는다는 말이 되겠다.

繩理라 하면,
그 이야기의 표면적인 사실관계, 서술 내용을 밝히는 것을 넘어,
배리(背理), 도리(道理)는 물론 곁두리까지 모두 아울러,
통어하고, 꿰뚫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道者,萬物之所然也,萬理之所稽也。理者,成物之文也;道者,萬物之所以成也。故曰:「道,理之者也。」物有理不可以相薄,物有理不可以相薄故理之為物之制。萬物各異理,萬物各異理而道盡。稽萬物之理,故不得不化;不得不化,故無常操;無常操,是以死生氣稟焉,萬智斟酌焉,萬事廢興焉。

凡理者,方圓、短長、麤靡、堅脆之分也。

凡物之有形者易裁也,易割也。何以論之?有形則有短長,有短長則有小大,有小大則有方圓,有方圓則有堅脆,有堅脆則有輕重,有輕重則有白黑。短長、大小、方圓、堅脆、輕重、白黑之謂理。理定而物易割也。
(韓非子, 解老)

기실, 한비자는 노자(老子)를 주석한 가장 오래된 책이다.
여기 보면, 道와 理에 대한 한비자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
이제 理를 중심으로 그의 생각을 살펴본다.

‘理란 사물을 이루는 文’, ....
‘사물엔 理가 있어 서로 침해할 수 없으므로,
理가 사물을 통제하며, 만물은 理를 달리 하고 있다.
만물은 각각 理를 달리 하고, 道가 만물의 理를 통괄하므로 변하지 않을 수 없다.’

‘무릇 理란,
모나고 둥글고,
짧고, 길고,
거칠고, 가는 것,
단단하고, 무른 것의 나뉨을 말한다.’

‘무릇, 물건에 형체가 있는 것은 재단하기 쉽고, 나누기 쉽다.
무엇으로 그리 논할 수 있는가?
형체가 있은 즉, 장단이 있고,
장단이 있은 즉 대소가 있고,
대소가 있은 즉, 방원(方圓)이 있고,
방원이 있은 즉, 단단한 것과 무른 것이 있고,
단단한 것과 무른 것이 있은 즉, 경중이 있고,
경중이 있은 즉, 흑백이 있다.
短長、大小、方圓、堅脆、輕重、白黑 이를 일러 理라 한다.
理가 정해져 있어, 사물을 분할하기 쉬운 것이다.’

나는 특히 마지막 한비자의 글에,
강렬한 인상을 받았고,
크게 공감하였다.
나는 이와는 별도로,
여기 연천지경에 많이 있는 주상절리(柱狀節理)를 보고,
진작 理에 대한 나의 문학적 감성을 글로 쓴 적이 있다.
(※ 참고 글 : ☞ 결(理))

그것은 그렇고,
다시 돌아와, 繩理란 이런 이치를 그물로 죄다 통어한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자칫 이리로만, 이해를 한다면, 이 또한 충분치 않다.
본디 그물이란, 인간의 힘으로 모두 다 통어할 수 없다.
그 큰 그물을 어찌 인력으로 다 펴고, 끌어들일 수 있으랴?
그물에 따라 다르지만, 길이가 500 발 이상은 흔한 축에 속하고,
오늘 날엔, 수백 미터, 수 킬로에 달하는 그물도 많다.
허나, 길다고, 고기를 못 잡았다는 소식을 듣질 못했다.

用民有紀有綱,壹引其紀,萬目皆起,壹引其綱,萬目皆張。
(呂氏春秋)

“백성을 씀엔 그물의 벼리와 같은 것이 있다.
그물 벼리 하나를 당기면 만개의 그물코가 달려오고,
늦추면 만개의 그물코가 벌려진다.”

그물을 씀에 있어 그 요체는,
그물 코(目) 하나하나를 모두 다루는 것이 아니라,
끝에 꿰인 벼리(綱), 벼릿줄(紀)을 상대하면 족한 법.

繩理라 할 때, 전체를 일일이 통어한다는 뜻만을 길어 올리면,
자칫 큰 차질을 일으키게 됨이라,
노파심에서 壹引其紀, 壹引其綱 이 말씀을 덧붙여 둔다.

(※ 출처 : khan)

그렇다 오늘 아침 뉴스 하나를 듣고,
나는 이내 紀綱 그물의 벼리를 떠올렸다.

국정원 인사의 난맥상이 실로 안보 위기를 가중시키고 있다.
내가 특별히 주목하는 것은 제1, 2차장을 경질(更迭)함과 동시에,
국정원장을 후임도 없이 잘라 버렸다는 사실이다.

일순 나는 그물을 떠올렸다.
어부들이 한번 출항하여 조업을 하고 돌아오면 그물을 손질한다.
그물 코가 상한 것이 나오기 때문이다.
이 때 그물 코들(여씨춘추에선 이를 萬目이라 불렀다)을 수선하기 전에,
벼리 줄을 먼저 끊는다는 소리를 들어보지 못했다.

만목 그물 코를 꿰어 놓은 굵은 줄을 벼리(紀, 綱, 維 , 綸)라 한다.
이 벼리를 잡아 당겨 오므렸다 놓으면, 
能伸能屈이라 만목 그물 코를 내 뜻대로 쉬이 통어할 수 있다.

만약 그물 코를 수선하기 전에 벼릿 줄을 끊어 놓으면,
만목이 흐뜨러져 다음 일을 제대로 진행하기 어렵다.

그런즉 일을 도모하기 전엔,
먼저 벼릿 줄을 굵고 강한 것으로 준비하고 나서야,
비로소 여기에 만목을 가지런히 통섭해놓을 수 있는 것이다.

이번 행안부 전산망 먹통 사건의 경우에도,
나는 국정원 인사처럼 벼리가 망가져 버렸기 때문에 일어났다고 본다.
back·bone 망은 전산망 전체의 중추다.
그런즉 새로운 작업을 할 때는 무슨 일이 터질 때를 대비하여,
2중, 3중으로 채비를 해둔다.

보안을 위한 사이트 종별이 있다.
Mirror Site
Hot Site
Warm Site
Cold Site

하니까 지금 가동되는 것과 동일한 Mirror Site가 있어,
문제가 있으면 바로 이것으로 대체하여 사태를 급히 수습한다.
그 외 Warm Site, Cold Site를 두어,
이중, 삼중으로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는 것이다.

그러함인데도, 수일 동안 장애가 지속되었다는 것은,
보안 대책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 하겠다.
게다가 문제 해결 책임 부서의 장,
즉 행안부장관은 통수 따라 영국으로 나가버렸다.

그래 벼리를 생각해보는 것이다.
벼리가 모두 망가져 버린 것이 아닌가?

지금 인사 행태를 보면,
대개 통수 주변인물이 발탁되어 배치되고 있다.
검사, 후배 등 친한 이들이 대거 등장하고 있다.

愛臣太親,必危其身;人臣太貴,必易主位;主妾無等,必危嫡子;兄弟不服,必危社稷。

“총애받는 신하가 크게 (군주와) 친하면, 
반드시 군주를 위태롭게 하고,
신하의 지위가 너무 높아지면, 반드시 군주의 자리를 빼앗아 갈아 치우게 된다.
정부인과 첩 사이에 등급차가 없으면,
반드시 적자에게 위험이 닥쳐올 것이며,
군주의 형제들이 복종하지 않으면, 반드시 사직을 위태롭게 할 것입니다.”

한비자에 나오는 엄중한 경고의 말씀이다.

太親, 太貴
실로 이것이야말로
인사에 있어 정실에 치우치고,
외척이 발호하면,
필히 반란이 일어나 왕권이 바뀌는 게 역사 필연의 법칙이다.

인사란 親이 아니라 能에 따라,
인재를 적재적소에 배치하여야 한다.

지금 누군가는 大醉하여,
危身, 易位의 때가 가까이 다가옴을 잊고 있다.
기실 이게 대수인가?
그자가 술독에 빠져 살든,여행을 즐기든,인민과 무슨 상관인가?
다만 인민들 삶이 고단해지고, 종국엔 나라가 망할까 걱정일 뿐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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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요유 : 2023. 11. 28. 17:5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