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ngta      

소신(燒身)

소요유 : 2023. 12. 1. 22:12


자승의 죽음.

자승(慈乘)의 메모에 ‘상자들이 복원할 것입니다.’이라 적혀 있던데,
이것이 아마도 상좌(上佐)가 아닐까 싶다.
물론 상자(上資)란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긴 하다.

하지만, ‘상자들이 복원할 것입니다.’이리 편하게 말할 정도라면,
상좌(上佐)로 보는 것이 나을 듯하다.
상좌란 스승의 대를 이을 제자승 가운데에 가장 높은 이를 일컫는다.
그러하지만 법 공부를 하겠지만,
현실에선 佐란 글자의 뜻처럼 가까이에서 보좌하는 소임을 맡는다.

내가 언젠가, 북한산 어느 사찰에 들렀는데, 비구니 주지를 만났던 적이 있다.
그가 말하길 스님에겐 자식이 없으니,
상좌란 곧 자식처럼 대를 이을 으뜸 제자를 일컫는다 말씀하시더라.
그런즉, 스님들은 똘똘한 상좌를 거둬 키우는데 소홀하지 않는다.

스님은 외롭다.
아프거나 돌아가실 제, 
자신을 돌볼 이를 미리 구하여 두려는 이들이 어찌 없을쏜가?

그 비구니는 도와 법이 높으신지,
자진하여 노역에 봉사하는 유발상좌가 경내에 많이 띄었다.

메모를 보면, 새끼 중인 상좌가 화재 피해를 다 갚을 것이니 염려 말라는 뜻이 아니랴?
영상에선 해설자와 앵커 모두 상자를 두고,
신도나, 후원자라 이르고 있음이니,
이럴 경우 상자(上資)란 뜻을 널리 속세까지 넓혀 해석하면,
그렇게 볼 여지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가령 유발상좌(有髮上佐)라,
세속에 있는 일반 신도들 중,
스님을 높이 우러러 따르고, 배우려는 이들을 이를 수는 있다.
아니면 혹 속가 자식들이라도 있다면,
이야말로 상자(上資)라,
가장 미더운 요사채 재건의 주체가 될 수도 있으리라.
(하지만, 영상에서 상자를 두고 신도, 후원자 이른 것은 그 뜻을 제대로 알지 못한 탓이라 하겠다.)

자승은 근래 머리를 기르며 생활했다.
삭발염의(削髮染衣)가 승려의 의례인데,
그는 무슨 경계를 드러내려 하였음인가?
이를 두고 승풍을 어지럽힌다며 일단의 스님들이 고발까지 한 상태였다.

그는 흔히 권승이니 요승이란 소리를 적지 아니 들었다.
그가 도박을 한다는 소문은 비교적 널리 알려진 일이다.
이러한 이가 개과천선, 죽음으로 보갚으려 함이었을까?
아니면 진퇴유곡(進退維谷)이라,
나아가기도 물러나기도 어려운 궁처에 다다렀던 것인가?

요사(寮舍)채라지만 그렇다 하여 가벼이 볼 것이 아니다.
이를 통째로 태웠은 즉,
메모에서 이르듯 민폐가 아니라, 
불법승 중 승보가 거처하는 곳을 임의로 태웠음이니,
실인즉 삼보를 훼하는 중한 죄라 하겠다.
거지반 오역죄(五逆罪)에 든다 하겠다.
멀쩡한 요사채를 불 지르는 일은 속세에서도 방화죄에 해당된다.
게다가 바짝 마른 겨울 산에 불이 붙어 퍼진다면 큰 탈이 나고 말았으리라.

참고로 칠장사는 다수의 유물이 경기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고,
보물로 지정된 국보급 문화재가 다수 있다.

燒身供養

燒身을 두고는 供養이라 이르는 경전도 있고,
이를 찬성하는 이들도 있지만,
한편 이를 반대하는 기록도 있고,
그르다 하는 이들도 있다.

따라서 燒身이라 하여 모두 供養이라 이를 수 없다.
공양이 아니라, 그저 자신의 과오나 부끄러움을 사르는 의식일 수도 있고,
때론 책임을 지거나, 해결하지 못하고 도망을 가는 방편으로 삼는 경우도 있을 터.

석가가 출가하여 중도의 길을 걷게 되었을 때,
고행이 결코 바른길이 아니라 밝혔다.
가령 동물이나 심지어 인신을 공양한다든가,
물, 불, 칼 등으로 자학하는 방법은 결코 불교의 수행 방법이 아니다.

비구계(比丘戒)엔,
凡四肢殘缺五官不全者,不得受比丘戒라 하여,
사지나 오관 감각기관이 완전치 못하면,
비구계를 수계치 못한다 하였다.

그러함인데, 비구계를 받고 나서,
신체를 훼손하는 것은 괜찮다 할 수 있겠음인가?

가령 고자는 중이 될 수 없다.
그런데, 수행승 중엔, 
단비(斷臂)도 하고, 단지(斷指)도 하며, 때로는 남근을 잘라버리는 인간도 생기곤 한다.
그들의 고심참담한 정경으로 읽히우는 장면이라 하겠음이나,
몸을 괴롭힘으로써 불법을 구할 수는 없다.
이것은 이미 부처가 6년 고행 후 깨우치신 바다.

다음 이미지들은 위에서 밝힌 메모 외에,
추가로 알려진 자승의 열반송, 유서 등이다.

자승 열반송

중들이 돈도 많다.
제자 넷에게 부촉하는 게 법이 아니라 빚을 갚으라는 것이다.
허나 빚을 갚으라 강조함에, 맡긴 돈인 양 아무런 거리낌이 없은즉,
저 재물이 혹 자승으로부터 연유하는 것이 아닌가 의심이 든다.

모쪼록 네 제자는 칠장사를 위하여 빚을 갚는 데 소홀함이 없어야겠지만,
그동안 불법을 닦는데 게으름을 피거나, 
삼독(三毒), 욕해(慾海)에 자신을 내맡긴 허물은 없는가 돌아보며,
대중들에게 참회 속죄하고,
저마다 바른길을 속히 찾아가길 빈다.

'소요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자치연(自熾燃)  (1) 2023.12.10
자화장(自火葬)  (0) 2023.12.03
소신공양(燒身供養)  (2) 2023.12.02
태친(太親)  (0) 2023.11.28
주귀 후주광(酒鬼 酗酒狂)  (1) 2023.11.26
유연황망(流連荒亡)  (1) 2023.11.13
Bongta LicenseBongta Stock License bottomtop
이 저작물은 봉타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3.0 라이센스에 따라 이용행위에 제한을 받습니다.
소요유 : 2023. 12. 1. 2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