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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화장(自火葬)

소요유 : 2023. 12. 3. 19:04


자화장(自火葬)

자화장(自火葬)이란 말은 내겐 낯설다.

단어 구성을 보면 自+火葬로 되어 있다.
여기 自는 중국어의 개사(介詞)로,
...으로부터란 뜻인즉,
自火葬 전체로는 ‘화장(제도)으로부터’란 어의를 갖는다.

이번 자승의 죽음을 두고 자화장이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이것은 필경 한자로 自火葬을 지칭하리노니,
우리식 풀이로 보자면,
자기 스스로 화장했다는 의미로,
그리 작어했을 것으로 보인다.

중국 문헌에는 위에서 지적한 ‘화장으로부터’란 쓰임 외에,
우리식의 자기 스스로의 화장이란 의미를 가진 경우를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

하여간 나는 自火葬이란 말을 접했을 때,
익숙치 못하여 자작어라 생각하였었다.
혹은 self-immolated란 서양어를 번역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다 정찬주의 자화장(自火葬)이란 소설을 마주하게 되었다.
자자, 이제 말 찾기 놀음은 그만 두고,
이에 이르렀은즉 그만 소설이나 읽어둘 일이다.

소설 마지막 부분
법성은 스스로 장작더미를 쌓고 소신하였다.
이를 두고 소신공양이라 부를 이유가 있으랴?
아니 굳이 공양이니 아니니 논하는 것조차 부질없지 않은가?
기실 법성의 소신과 자승의 소신은 비교를 불허할 영역의 일들이다.

공연히 한 사람의 죽음을 두고 공양을 끌어들이며 부산을 떠는 게,
내겐 아주 불편했다.

왜냐 내겐 공양이란 佛에게 바쳐지는 것 외에 다른 것은 생각한 바도 없고,
그럴 수도 없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佛即衆生,衆生即佛

그런즉 佛은 곧 衆生인즉,
佛 따로 衆生 따로가 아니란 말이다.
자타카엔 자신을 희생하는 부처의 전생 설화가 자주 그려지는 바,
배 고픈 축생, 아귀에게 자신의 몸을 내던져주지 않았던가?

그것은 그렇고,
소설 중에 등장하는 다음 대화나 음미하며 마치자.

(※ 출처 : 자화장(自火葬))

벽암록(碧岩录)에 나오는 해당 부분을 아래 남겨둔다.

舉僧問洞山:“寒暑到來如何回避(不是這個時節,劈頭臂面在什麼處)?”
山雲:“何不向無寒暑處去(天下人尋不得,藏身露影,蕭何賣卻假銀城)?”
僧雲:“如何是無寒暑處(賺殺一船人,隨他轉,也一釣便上)?”
山雲:“寒時寒殺闍黎,熱時熱殺闍黎(真不掩偽,曲不藏直。臨崖看虎兕,特地一場愁。掀翻大海踢倒須彌,且道洞山在什麼處)。”
有一位參學僧人問洞山:“當寒暑到來時,應該怎麼樣回避呢?”

洞山反問:“爲什麼不到沒有寒暑的地方去呢?”

學僧問:“哪裏才是沒有寒暑的地方呢?”

洞山回答:“就是‘寒冷的時候冷死你,炎熱的時候熱死你’的地方。”

(출처 : 圖片來自網絡)

아아,
寒冷的時候冷死你,炎熱的時候熱死你

추울 때, 추위가 그대 당신을 죽일,
더울 때, 더위가 그대 당신을 죽일,
그런 곳이야말로,
추위나 더위를 피할 곳이란 동산양개 스님의 말씀이다.

피할 곳을 묻는 학승에게,
동산은 사지 속으로 들어가라 이르고 계심이라.

헌데, 과연 자승은 그곳으로 간 것이런가?
아니면 도피처를 마련한 것일런가?
그리고 소설 속의 법성은,
그 말씀을 쫓은 것이런가?

내가 어제 산책을 하는데 잃었던 들고양이 하나를 만났다.

평소 그리 야옹 야옹 울며 밥 내놓으라 보채던 녀석이,
어느 날 한 번 없어지면 달포간 소식이 끊기곤 하였다.
그러길 몇 차 요즘은 도통 보이질 않았다.

농장에서 제법 멀리 떨어진 곳이었다.
거긴 진돗개가 묶여 있어 내가 지나면 짖는다.
그를 달래 보려 어르며 바삐 지나려는데,
무엇인가 발치에 희끄므레한 것이 감긴다.
진돗개 줄이 풀여 내게 달려드는 것일까?
급히 아래를 내려다 보니 고양이 하나가 내 발치 밑을 맴돌며,
바짓 가랑이에 몸을 비비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없어진 바로 그 고양이였다.

그 동안 곁을 주지 않아 한번도 만져 본 적이 없었다.
헌데 녀석은 반갑다는 듯,
발라당 누워 배까지 내어준다.

아아,
情이란 이리도 진한 것이런가?

무섭다.
가엽다.
슬프다.

그리 곁 한 번 내주지 않더니만,
이제 오래간만 타지에서 만나니 그리 반가운 것이런가?

그래 내 말하지 않던가?
이성은 규구준승(規矩準繩)이라,
외물에 따라 변하지 않고, 외려 재고 따지는 기준이나,
(※ 규구준승(規矩準繩) 목수가 쓰는 그림쇠, 자, 수준기, 먹줄, 이 사물(四物)을 뜻함.)...
감정은 마치 그릇에 든 물과 같은 것이라.
시간, 공간 조건에 따라 그릇 형상을 좇는다.
묘정(猫情)은 안이 아니라 밖에서 더,
자신의 감정이 가감없이 드러나고 마는 것이리라.

'이 추운데 여기서 뭣하니,
어서 집으로 오너라.'

이리 연신 이르며,
가던 길을 돌려 다시 농장으로 녀석을 이끌고자 하였으나,
녀석은 나를 조금 따라 오는 양 싶더니만,
그만 더는 따라오지 않는다.

아아,
거기 녀석은 여자 친구라도 새로 사귄 것일런가?
아니면 冷死猫,熱死猫的地方 그곳을 과연 찾아낸 것일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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