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ngta      

사냥꾼과 사냥개

소요유 : 2024. 4. 27. 19:24


최근 불거지고 있는 하이브-민희진의 갈등에 나는 아무런 흥미가 일지 않았다.
연예 관련 일엔 나는 아무런 관심이 없는 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 한들, 어쩌다 뉴스 제목에 눈이 미치기도 하고,
원하지 않아도 자투라기를 흘려듣게 된다.

그러다 한 생각 일어 여기 남겨두련다.
다만, 나는 민, 방의 개인 인격에 대하여 아는 바 없다.
게다가 나는 이 일에 대하여 많은 정보를 갖고 있지 않고,
알고 싶지도 않다.

한즉 아랫 글은 내가 듣고 아는 바,
제한된 정보에 기초한 것인즉,
사실 관계가 다른 것에 터할 수도 있다.
혹여 이러한 것이 있다면,
바로 잡을 터니 일러 주길 부탁드린다.

하이브 지분이 80%란 말을 어디선가 들었다.
그렇다면 경영권 탈취 운운은 성립하지 않는 게 아닌가 싶었다.
상법의 회사법상 주주 권리란 그가 가진 주식 수로 대표되는 게 아니랴?

자본을 투하하고, 인재를 모으는 등,
생산요소를 투입하여 사업을 영위할 때,
게서 창출되는 이익을 겨냥하는 것이겠지만,
위험 역시 떠안게 된다.
그러함이니, 주주권자는 그 지분만큼 책임과 권리가 따르게 되는 법.

설혹 용인傭人의 공이 크다 한들,
그 공을 이유로 주주권자의 권리 지위를 넘어설 수는 없지 않은가?
가령 망했다 한들 용인이 그 책임을 나눠 갖는 것이 아니듯 말이다.

高祖得天下,賞群臣之功,蕭何為賞首。何則?高祖論功,比獵者之縱狗也,狗身獲禽,功歸於人。群臣手戰,其猶狗也;蕭何持重,其猶人也。必據成功謂之賢,是則蕭何無功。功賞不可以效賢,一也。

‘고조가 천하를 얻고, 신하들에게 논공행상할 제,
소하가 일등이었다.
어째서 그런가?
고조가 공을 논할 때, 
사냥꾼이 개를 부리는 것에 비유하였다.
비록 사냥개가 짐승을 잡았지만,
공은 주인에게 돌아간다.

여러 신하는 전쟁에서 개에 비유된다면,
소하의 신중함(持重중심지키기)은 사냥꾼에게 비유된다.
반드시 공적이 있어야만 현인이라면,
소하에겐 공이 없다.
그런즉 공적에 따라 현인을 밝히긴 어렵다.’

하니까, 직접 전쟁터에서 목숨 걸고 피를 흘리며 싸운 자들이 불평불만을 늘어놓지만, 
고조의 눈엔 소하만 한 이를 찾을 수 없었다는 말이다.
후방에서 자원을 잘 안분하고, 적시에 조달, 공급하는 일은,
전쟁터의 장수의 용력보다 더 중요한 일이다.
이게 차질을 빚으면 아무리 용감한 장수가 있다 한들,
어찌 병장기 조달 없이, 식량 보급 없이 수행할 수 있으랴?

삼류들은 이 이치를 잘 헤아리지도 못하고,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삼류는 얼개, 구조가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다.
이것은 거의 산과 같은 것이로되,
산이 절로 거기에 와 있는줄 안다.
그리고는 그저 눈앞에 전개되고 있는 잔재주 그 표면적 현상에만 매몰된다.

사냥꾼과 사냥개의 비유를 잘 이해해 둘 일이다.
사냥개는 골백번 다시 태어나도,
인간의 문화, 주인의 집, 재력 따위의 구조 역학, 그 결구 구성력을 모른다.
그저 사랑만 읽을 줄 안다.
강아지는 그래도 사랑을 배신하지 않는다.
하지만 검은 머리 인간 새끼들은 은혜, 사랑을 곧잘 배신한다.

기업起業하여 판을 까는 일,
이것 아무나 할 수 있는 일 아니다.
고대 같으면 왕족 피가 흐른다는 것 역시 큰 자산이다.
하지만 목숨을 걸어야 한다.
즉 오늘날로 치면, 재무적 위험을,
아니 그 이상 온 인생의 흥망, 성쇠를 온전히 부담하여야 한다는 말이다.
여기에 자본을 모으고, 빚을 끌어들이며, 인재를 초빙하고,
땅을 사고, 건물을 세우고, 기계를 배치하고, 기술을 이겨 넣어,
건곤일척 승부를 거는 일은 감히 일개 용인이 감당할 일이 아니다.

용인은 이 깔려진 구조 위에서 재주를 부리고 제 공적을 주장하지만,
그 판을 깔고, 그 토대 위에 재주를 부린 이의 공적을 평가하여 상을 나눠주는 것은 주주권자에게 있는 법.
설혹 그를 부당하다 느낀다 한들 교섭을 할 수 있을지언정,
이를 뒤집을 권한을 어디에서 구할 수 있으랴?

그러함이니, 이를 참을 수 없다면,
그 업을 물리고 떠날 일이다.
그 후 창업을 하든, 쉬든 알아서 할 일이었다.

나는 안다.
대개는 강자/약자 이분법으로,
약자라 여기는 민을 편들 것이다.
하지만, 이런 심리 상태를 극복하지 않으면,
강자를 더욱 인색하게 만들며,
약자로부터 벗어날 궁리를 트지 않게 되리니.
이는 결국 약자를 망하게 하고 강자를 더욱 강하게 하는 일이란 것을 알아야 한다.
감정에 호소할 일과 합리적 판단을 구하여야 할 일이 있는 것이다.
이를 분별하지 못하면 얼치기를 면치 못하게 된다.

공수신퇴(功遂身退)라,
그러함이니 옛 현인들은 공을 이루고는 몸을 거둬 물러났음이라.
게기다가는 蜚鳥盡良弓藏,狡兎死走狗烹임이라,
토사구팽을 당하며 욕이나 당하고 마는 것이 아니랴?

만약 말이다.
소하蕭何가 생각하길, 
고조가 제 공을 다 채가고 있다고 느꼈다면,
박차고 나가거나, 다른 곳에 일신을 의탁하였어야 했다.
하지만, 그는 고조와의 의리를 중히 여기고,
제 맡은 바 소임을 다 했음이다.

소하가 뛰쳐나와 기업하였다 하자.
그래 성공하였다면 그래 상찬하마.
실패하여 고꾸라졌다 한들 다 명운이니 그저 조상이나 할 뿐인 것을.

그대 당신이 치과 개업의라 하자.
용인 하나가 있어, 몸이 재고, 빠르며,
친절하고 상냥하여 환자들을 편안히 모심이라,
성업을 이뤄 공이 크다 하자.

그러자 어느 날,
내 공이 크니, 내 몫으로 반을 내놓으라 하면 어찌할 것인가?
이때 이르면 당신은 고민을 하거나 크게 화를 내거나 할 터이다.
의사 면허는 그대의 것인즉,
접을 수도 있고, 그의 몫을 챙겨줄 수도 있다.
전적으로 그 결정은 그대의 손에 달렸지, 용인의 손에 달린 게 아니다.

용인은 땡깡을 피울 일이 아니라 제안을 하면 될 것이며,
주인은 제 권한 내에서 권리 행사를 하면 될 일이다.
즙 짜울며, 감정에 호소할 일이 아니라,
당당히 조근조근 제 주장을 밝혔어야 한다.
장수는 태산이 무너져도 울지 않고,
해일이 밀려와도 경거망동하지 않는다.
이런 의연한 모습을 보였다면,
외려 더 사람들의  관심을 샀으리라.

정리하자면 용인은 용인으로서의 분수가 있는 법.
이를 잘 지키는 게 도리라 생각한다.
만약 주인이 부도덕하고, 상을 내리는 데 인색하다고 느낀다면,
별도의 길을 모색할 일이다.
이것을 그 누가 있어 나무라랴?

창업자유주의

옛날 같으면 이것 반란인지라,
목을 내놓고 저질러야 된다.
하지만 이젠 개인 자유재량에 맡겨져 있다.
놀랍고 즐거운 세상 아니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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