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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가저택(破家瀦澤)

소요유 : 2024. 12. 20. 14:06


조선시대 대전통편에 따르면,
강상의 죄를 범한 자가 생기면,
처자식을 노예로 삼고,
파가 후 연못으로 만들며,
읍 이름을 내리고,
수령을 파직시켰다.

(續)綱常罪人(弒父母、夫,奴弒主,官奴弒官長者),結案正法後,妻、子女為奴,破家瀦澤,降其邑號,罷其守令。(續)常賤毆打士族,事情明了者,杖一百,徙三年。
(大典通編·刑典)

소위 집을 허물고 연못을 팠다는 파가저택破家瀦澤의 출전이 바로 대전통편인 것이다.
대전통편은 경국대전과 속대전 그리고 기타 법령을 통폐합 편찬한 것을 이른다.
여기 조문 중 (續)의 표기는 속대전으로부터 유래한 것을 밝힌 것이다.

법조문에 나오는 강상죄인綱常罪人이란,
소위 삼강오상三綱五常에 어긋나는 행위를 한 죄인을 이르는 말로서,
부모, 남편을 죽인 자, 노비로서 주인을 죽인 자, 관노官奴로서 관장官長을 죽인 자 등으로 풀어 적혀져 있다.

역적의 경우엔, 
반역을 꾀한 죄인은 수범首犯, 종범從犯을 가리지 않고 극형에 처하였으며,
태어난 고을 즉 반역향叛逆鄕은 읍호를 강등하고 수령을 파직하였다. 

대전통편엔 위 조문 외엔 파가저택에 대한 규정이 없다.
다만 대역죄인이 나오면,
그 집안 묏자리를 파헤쳐,
조상 묘를 아래로 옮기고, 자손 대를 위로 올려,
차례를 뒤집어 자리를 잡도록 하였다는 이야기를,
소싯적 전통 지리학地理學 교수로부터 들은 적은 있다.
이것은 차라리 파묘하여 흩어버리는 것보다,
자손들에겐 더 욕스러운 노릇이리라.

내가 오늘 또 다시 파가저택을 떠올리는 것은,
반란 일으키는 수괴를 기른 온상溫床을 그냥 놔두는 게 옳은가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검찰의 경우 직접적인 반란 수괴가 나온 것은 처음이지만,
군사정권 이래 오늘날까지 정권의 수하로써,
그들의 갖은 패악질을 도왔다.
검사들은 부끄러움을 되우 느껴,
차제에 참사람으로 거듭 태어나야 하리라.

육사의 경우엔 게서 반란 수괴가 세 번이나 나왔다.

분명 저들의 교육 프로그램에 하자가 있거나,
제도상 불비한 문제가 있다 여기지 않을 수 없다.
설마하니 끌어모은(모인) 자들의 인성에 심각한 의혹이 있었을런가?

그렇지 않다면, 어찌하여 거푸,
인민에게 총, 칼, 몽둥이를 휘두르며 날뛰고,
나라를 변란의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넣는가 말이다.

이리 흉악한 짓을 벌였으면서도,
하다못해 저들 수장들이 사과 한 번 제대로 한 적이 없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불한당들이라 하겠음이다.

그래 나는 제안한다.
검찰의 경우 그 제도 개선의 하나라,
사법 독립의 기초 작업의 일환으로,
검사장의 국민 직접 선출제를 진작부터 제안하였다.
하지만, 아래 제안할 육사의 예를 이들이라 피해 갈 처지가 아니라 생각한다.

육사의 경우는,
이젠 더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
강상죄綱常罪를 범한 죄보다 몇 곱은 더 중한 대역죄를 저질렀음인즉,
대전통편의 정신을 되살려 파가저택破家瀦澤이라,
단호히 폐교시키고, 교사를 깡그리 허물어버리고,
몇 길이고 깊게 파, 거대한 호수를 만들어버렸으면 한다.

궁벽한 곳으로 옮겨,
조촐하니 학사를 짓고,
헌 교수진을 모두 몰아내고,
새로운 교수진을 구성하여,
생도들을 조국과 인민 수호의 참군인으로 바로 키워야 하리라.

설혹, 지 아무리 용병술을 잘 가르친다한들,
적이 아니라 걸핏하면 인민들에게 총칼을 내지른다면,
쓸모가 없는 게 아니라,
아예 싹을 분질러버려야 마땅하지 않겠음인가?

이로써 흉포한 군인들만이 아니라,
만인에게 조국을 배반하고, 인민을 배신하면,
반드시 큰 벌을 받게 됨을 깨닫게 하여야 하리라.

정책 결정자들은,
이번 난이 진정되면,
내가 제안한 것을 중심으로,
논의를 크게 일으켜 바른 도리를 찾아내,
마음보가 어그러지고 빠그라져 마냥 흉포한 괴물로 변한,
저들 가운데 옥석을 골라내,
쫓아내고, 남기고, 그 빈 자리를 새로운 인물로 채워,
바른 길로 인도하여,
참사람으로 길러내야 하리라.

참람스런 나라 꼬락서니 앞에서,
분기를 억누를 수 없어,
이 글을 남긴다.

ps)
글을 쓰고 나서, (2024.12.20)
다음 영상을 접하였다. (2024.12.22)

잘 보라.
대명천지 밝은 세상에,
반란을 획책한 무리들은 누구인가?
이들을 키운 시설, 조직, 교육 문화를 어찌 의심하지 않을 도리가 있겠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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