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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균(天均) - Rule of Data

소요유 : 2025. 12. 27. 21:35


사토시 나카모토가 비트코인을 만들고나서 이리 말했어.

The root problem with conventional currency is all the trust that's required to make it work.

'전통적인 화폐의 근본적인 문제는 그것이 작동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신뢰'에 있습니다.'

인간에게서 신뢰를 찾고, 그에 의지한다는 것 자체가 신뢰 붕괴의 첫걸음이지.

사토시는 비트코인의 첫 번째 블록(제네시스 블록) 안에 당시 영국의 일간지 더 타임스(The Times)의 헤드라인을 박아두었지.

The Times 03/Jan/2009 Chancellor on brink of second bailout for banks

'2009년 1월 3일 더 타임스, 재무장관이 은행들에 대한 두 번째 구제금융을 앞두고 있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 
정부가 무분별하게 돈을 찍어 부실한 은행들을 살리는 기존 금융 체제를 비판하며, 
누구도 마음대로 발행량을 조절할 수 없는 새로운 화폐의 시작을 선포한 것이야.

요즘 아이들 말로, 정말 가슴이 웅장해지는 말씀이야.

나는 이 타락한 판/검사 녀석들을 목도하며,
더 이상, 검사/판사 나부랑이가 없는, 그런 사법체계가 만들어지길 기원해.
그들에게 신뢰를 붓는 것부터 잘못된 출발이었어.
나는 그런 신뢰가 필요없는 데이터로 구축된 새로운 세상을 꿈꾸고 있어.
이하는 그런 생각들을 간략히 적어본 것이야.

나는 한비자를 만나고,
그의 지혜의 높음과 한(恨)의 깊이에 놀랐다.
그후 그를 흠모하였고,
그의 뼈속까지 배우려 오랫동안 노력하였다.
소싯적이래 그의 골수를 꺼내고, 오장을 해체하여 내것으로 만들겠다 원을 세웠지.

그래 법에 대하여 이해를 조금하게 되었고,
그로써 천하 경영에 대한 신념과 방책을 엿볼 수 있게 되었다.
Rule of Law 
법치(法治)가 무엇인지를 깊이 깨달었어.
인치(人治, Rule by Men)란 게 얼마나 위험한지도 알게 되었지.

법 위의 정치라면 이게 곧 인치(人治, Rule by Men)가 아니겠어?
정치인이 법 위에 선다 하면,
그 인간의 인격이 담보되지 않으면 엄청난 사회적 혼란이 일어나고 말 것이야.
당전 하는 현실 속에서 우리는 윤가란 마괴를 만나지 않았어?
그나마 이 천불한당 잡쌍것을 물리칠 수 있는 것은 법이 작동하여,
겨우 공화정의 마지막 보루가 되었기 때문이지.
이를 법치(法治, Rule of Law)라 이르는 것이지.
아무리 포악한 녀석이 대권을 잡더라도,
종국엔 이 법에 의해 응징되리란 믿음이 있다면 참을 수 있어.
그러니 끊임없이 법을 손질하고, 시대 흐름에 맞춰 법을 제정해 나가는 노력을 게을리 하면 아니 되지.

Rule by Men, Rule of Law의 by, of의 차이를 알겠어?
by는 주체의 문법이지.
주체가 있으면 객체가 따라.
주체는 권력자, 객체는 국민이 되지.
이는 민주 원리를 위배하지.
반면 of는 소유, 소재인 게라,
Law란 원천으로부터 Rule이 일어난다는 것을 of 하나가 밝히 드러내고 있는 게야.

헌데, 나의 이 믿음이 근래 균열을 일으키고 있어.
윤가 녀석은 물론 검사 집단의 타락을 우리는 바로 목격하고 있어.
마약 수사에 있어 백해룡이 검사들에 의해 무참히 쓸려나가는 모습을 봐봐.

한비자는 외쳤어.
그는 인간이 아니라 법에 의해 규율되는 세상을 꿈꿨어.
순자의 전통이래 인간의 본성은 근본적으로 믿음의 대상이 아니지.
그런즉 찾아낸 것이 법에 의한 통제로서야,
인간 욕망을 제어하고, 집단의 목적에 합할 수 있다고 부르짖었어.

헌데 봐봐.
법의 보루가 되어야 할 검사 놈들의 일탈을 말야.
도대체 이들의 망동을 왜 사회는 제어하지 못한 것이야?
그 동안 녀석들의 일탈, 부패는 수없이 노정되었어.
그런데도 왜 이것을 막아내지 못하였는가 말야.
외려 정치 권력이 집권하면 녀석들을 수하로 부리는 맛이 짭짤하였기에 개혁을 하지 않은 것이지.
표를 얻을 때는 당장이라도 비리 검사를 조지겠다고 헛된 공약을 날리지만.

그래 나는 오래 전부터 검사 역시 정치 권력의 하부로 복역하여 그들의 개 노릇을 하지 못하게,
검찰총장은 국민 선출직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였지.
아울러 법관(법원장)들 역시 매한가지로 선출직으로 바꿔야 한다고 외쳤어.
봐봐, 판사 녀섯들도 검사 못지 않게 썩어 문드러져 흉칙한 악취를 풍기고 있지 않아?

이젠 법에만 의지하는 게 충분치 않다고 여겨져.
Rule of Law가 아니라,
Rule of Data로 나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부쩍 들고 있어.
Law를 운영하는 것이 인간인 이상,
Law가 아무리 훌륭하게 제정되었다 하여도,
얼마든지 왜곡될 소지가 많은 게 증명되었지 않아.

다수의 합의에 의해 검증된 Data를 준거틀로로 삼는 시스템을 모색하고, 구축해야 한다는 생각에 이르렀어.
사토시 나카모토 역시 인간 불신을 전제로, 
trustless trust를 blockchain을 통해 고안해내었어. 
그 누구에게도, 어떠한 것에도 믿음을 구하지 않고, 믿음의 세계를 구축한 것이지.

歷山之農者侵畔,舜往耕焉,期年,?畝正。河濱之漁者爭?,舜往漁焉,期年,而讓長。東夷之陶者器苦?,舜往陶焉,期年而器牢。仲尼歎曰:「耕、漁與陶,非舜官也,而舜往?之者,所以救敗也。舜其信仁乎!乃躬藉處苦而民從之,故曰:聖人之德化乎!」
(韓非子)

“역산의 농부가 이웃 밭둑을 침탈했다. 
순임금이 가서 농사를 지었더니 일 년이 되어, 밭도랑과 두둑이 바로 잡혔다.
황하 물가의 어부가 고기잡이 물터를 다투었다.
순임금이 가서 고기잡이를 하다, 일 년이 되어, 나이 많은 이에게 양도하였다.
동이 땅의 도자기 굽는 이가 그릇을 약하게 만들었다.
순임금이 가서 도자기를 구우니, 일 년이 되어 그릇이 단단하게 구워졌다.
공자가 탄식하며 말하다.

‘농사, 고기잡이, 그릇 만드는 일은 순임금의 일이 아니다.
그런데도 순임금이 가서 그 일을 한 것은 나쁜 일들을 바로 잡기 위함이다.
순임금은 정녕 어지시구나.
바로 손수 몸으로 고생을 행하시니 백성들이 따르는 것이다.
고로 성인의 덕이 사람들을 감화시켰다 이르는 것이다.’”

이것은 유가가 흔히 하는 말이다.
이 말은 얼핏 하자가 없는 바른 말처럼 들린다.
헌데 한비자의 신랄한 다음 말을 마저 들어보자.

或問儒者曰:「方此時也,堯安在?」其人曰:「堯?天子。」「然則仲尼之聖堯奈何?聖人明察在上位,將使天下無姦也。今耕漁不爭,陶器不?,舜又何德而化?舜之救敗也,則是堯有失也;賢舜則去堯之明察,聖堯則去舜之德化;不可兩得也。
(韓非子)

“어떤 이가 유자(儒者)에게 물었다.

‘마침 그 때 요임금이 어디에 있었는가?’

그자가 말하였다.

‘요임금은 천자였다.’

‘그렇다면, 공자가 요임금을 천자라 부른 것은 어찌 된 것인가?
성인이 천자 자리에서 밝히 살피는 것은 장차 천하에 간악한 일이 없도록 하려는 것이다.
이제 밭 갈고, 고기 잡는 일에 다툼이 없으며, 질그릇이 약하지 않았다면,
순임금이 또 무슨 덕화를 펼 일이 있겠음인가?
순임금이 구악을 제거하였다 하면, 요임금의 실책이 있었다 할 것이며,
순임금을 현명하다 한다면, 요임금의 명찰이 있을 수 없다.
양쪽을 모두 얻을 수는 없다.’”

알다시피 요임금은 순임금에게 제위를 물려주었다.
유가에선 요나 순임금 모두를 성인으로 떠받든다.
위에 든 예로써 순임금을 칭송하나,
순임금을 칭송하기 위해선 앞 선 임금인 요임금의 실책이 먼저 있어야 한다.
하나가 현명하다면 하나는 그렇지 못하여야 한다.
모순이지.
실제 모순이란 말의 출처는 여기야.

실로 한비자는 법을,
사토시 나카모토의 blockchain처럼 항구적인 믿음의 기술이라 여겼을 것이야.
사토시는 결코 인간의 선의나 악의에 의지하지 않는 완벽한 신뢰 방법을 찾아낸 것이야.
이것은 아이로니하게도 인간 불신을 역이용하였지.
한비자의 법이란 것도 이런 것이지.

하지만, 오늘날 우리가 겪고, 목격하듯이,
법은 만신창이가 되어버렸어.
법의 운영을 인간에게 맡겼기 때문이지.
저 오라질 놈의 검사, 판사 녀석들에게 말이야.
신뢰의 대상이 아닌 인간이 법을 좌지우지한 것이로니,
이는 마치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긴 꼴이야.
법이 나쁜 게 아니라,
법의 수호자가 되어야 할 인간의 타락 때문이지.

그래 나는 주창하는 게야.
Rule of Data의 세계를 새로 구축하자.
trustless trust를 blockchain으로 구현하듯,
인간의 의지, 욕망이 미치지지 않는 Data로 말야.
다행이 지금 AI 기술이 나날이 발전하고 있어.
어디에 편급되지 않고, 어느 세력에 휩쓸리지 않는 AI로 하여금,
Data에 의거한 판단, 질서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보는 게야.
단 AI 서비스 주체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은즉,
blockchain 기술을 본받든 아니면 유사한 장치를 채비하여,
신뢰를 비신뢰 추체들의 자발적 참여의 유인과,
그에 따른 보상을 통해,
trustless trust 체계를 구축하자는 것이지.

순자의 사상 전통으로부터 법가가 영향을 받았지만,
그리고 그 뜻이 높고, 기개가 장했지만,
그 사회의 효율적 통제, 이상 실현은 완전치 못하였다고 봐야 해.
순자가 묵가의 전통을 비판만 하지 말고 열린 마음으로 취사선택하여 실용적인 것을 받아들였다면,
진작에 실용적인 사회 경영 방책이 만들어졌을 것이야.

물론 순자는 법가를 무작정 내치기만 하지는 않았지.
묵변(墨辯)에 대응하기 위해 소위 정명(正名) 사상을 장교하게 다듬었고,
예악이 단순한 형식이 아니라, 이게 사회적 자원 배분과 질서를 유지하는 합리적 장치라 여겼지.
이는 다 묵가에 대응한 논리 구성 작업이라 하겠어.

昔賓孟之蔽者,亂家是也。墨子蔽於用而不知文。宋子蔽於欲而不知得。慎子蔽於法而不知賢。申子蔽於埶而不知知。惠子蔽於辭而不知實。莊子蔽於天而不知人。故由用謂之道,盡利矣。由欲謂之道,盡嗛矣。由法謂之道,盡數矣。由埶謂之道,盡便矣。由辭謂之道,盡論矣。由天謂之道,盡因矣。此數具者,皆道之一隅也。夫道者體常而盡變,一隅不足以舉之。曲知之人,觀於道之一隅,而未之能識也。故以為足而飾之,內以自亂,外以惑人,上以蔽下,下以蔽上,此蔽塞之禍也。孔子仁知且不蔽,故學亂術足以為先王者也。一家得周道,舉而用之,不蔽於成積也。故德與周公齊,名與三王並,此不蔽之福也。
(荀子 - 解蔽)

"옛날 빈맹(賓孟)을 가리게 했던 것들이 바로 나라를 어지럽히는 학설들이었다.

묵자(墨子)는 실용(用)에 가려져 문화적 장식(文)을 알지 못했고, 송자(宋子)는 욕망을 적게 하는 것(欲)에 가려져 실제로 얻는 것(得, 만족)을 알지 못했다. 신자(愼子, 신도)는 법수(法)에 가려져 현능한 사람(賢)을 알지 못했고, 신자(申子, 신불해)는 권세(勢)에 가려져 지혜(知)를 알지 못했다. 혜자(惠子)는 말재주(辭)에 가려져 실질(實)을 알지 못했고, 장자(莊子)는 자연(天)에 가려져 인간(人)을 알지 못했다.

그러므로 실용(用)의 관점에서 도(道)를 말하면 오로지 이익(利)에만 치우치게 되고, 욕망을 적게 함(欲)으로써 도를 말하면 오로지 만족(嗛)함에만 치우치게 된다. 법(法)으로써 도를 말하면 오로지 술수(數)에만 치우치게 되고, 권세(?)로써 도를 말하면 오로지 편의(便)함에만 치우치게 된다. 말재주(辭)로써 도를 말하면 오로지 논쟁(論)에만 치우치게 되고, 자연(天)으로써 도를 말하면 오로지 순응(因)함에만 치우치게 된다.

이 몇 가지 학설들은 모두 도의 한 모퉁이(一隅)일 뿐이다. 무릇 도(道)라는 것은 본체가 불변하면서도 모든 변화를 다 포괄하는 것이니, 한 모퉁이만으로는 도를 다 들어낼 수 없다. 단편적인 지식에 치우친 사람(曲知之人)은 도의 한 모퉁이만 보고도 그것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다. 그래서 스스로 충분하다고 여겨 그것을 꾸미니, 안으로는 스스로를 어지럽히고 밖으로는 남을 미혹하며, 위로는 아랫사람을 가리고 아래로는 윗사람을 가리게 된다. 이것이 바로 '가려지고 막힘(蔽塞)'의 재앙이다."

여기 墨子蔽於用而不知文이 나오지. 이 부분에 집중해봐.
묵자가 실용(用)에 가려져 문(文)을 알지 못했다 하였지.
그 역시 유가의 예약을 중시하였은즉,
거꾸로 실용적 효능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였다 할 수 있어.
용(用)이 원활해지면 사회가 윤택해지고, 안정되지.
用이 결국 문(文)의 창달의 기초가 됨을 등한히 했다 하겠어.
용(用)에 대한 이해가 깊기에 묵가는 당대 최고의 기술 집단이었어.

형식적 文에 치우쳐 외려 현실 문제 해결의 동력을 상실했다고 볼 수도 있지 않아?
묵가의 용은 기술적 합리성으로 보편적 평등 사회를 만들 수 있는 기초라 할 수도 있지.
마치 암호화폐의 blockchain 기술처럼, 어디 매이지 않는 무색 투명한 세상을 만들 수 있는 동력을 제공하지.

난, 그래 Rule of Data러 나아가는데 이런 기술적 성과의 도움을 받으면,
충분히 그 꿈을 이룰 수 있다고 보지.
다행이 AI는 이를 가능하게 하는 묵가의 用을 펴는 기술적 총화라 하겠어.
실제 묵가엔 묵변(墨辯)이라 하여,
인식론과 논리학적 큰 성취를 이룩한 집단이지.
당대 최고의 과학, 기술을 갖추고,
동시에 정교한 논리학으로 무장한 정보학 전문가라 하겠어.
오늘날 IT 집단 두뇌 못지 않은 최고의 엘리트였지.
게다가 겸애설을 펴고, 묵수(墨守) 사상을 가질 정도로 가슴이 따뜻한 휴마니스트이기도 했어.

순자가 묵자를 향해 용(用)에 가려졌다고 비판했지만.
기실 묵가는 묵변과 같은 정교한 논리와 기술적 사고를 인간의 심리, 예악보다 우위에 두었기 때문이지.
하지만 반대로 보면, 
묵가는 인간의 감정적 변수를 최소화하고 객관적 데이터와 논리로 작동하는,
합리적 사회를 꿈꿨던 실로 보기드문 선구자였다고 볼 수 있어.

묵가의 논리학은 인도의 인명학이나, 서양의 아리스토텔레스의 전통 논리학 못지 않게,
치열하고, 섬세하고, 깊어.
저들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어.
다만 전란을 평정한 한나라가 유학을 국학으로 떠받들자,
묵가와 같은 用의 사상이 묻혀버리고 말았지.
기실 권력자들 입장에서 묵가의 사상은 위험하지.
예로써 위계 질서를 세우고, 인민들을 나래비로 세워야 통치가 쉽지.
묵가처럼 겸애를 앞세워 만민 평등 사상이 퍼지면, 사회 기강을 제 입맛대로 요리하기 어려워져.
개다가 차가운 공학적 이론, 논리적 엄격함이 퍼지면,
권력자의 자의가 개입할 여지가 줄어들지.
실로 안타깝기 그지 없어.

내가 구상하는 Rule of Data의 얼개는 다음과 같아.
AI라는 인명학(불교 논리학)적 구조 위에, 묵가의 실용주의를 얹되,
최종적으로는 장자의 무위적 관조가 그 시스템을 감시해도록 만드는 것이지.
즉 시스템이 권력자의 통치도구로 전락하지 않도록,
데이터 자체가 스스로를 증명하게 내버려 두는,
데이터의 자연 상태(Nature of Data)를 유지토록 하는 것이야.

인명학(因明學)의 정수는 '비량(比量, 추론)'의 과실을 0%에 수렴하게 만드는 것이야.
인명학의 삼지작법은 종(宗)·인(因)·유(喩)로 되어 있는데,
이는 현대 AI의 추론(Inference) 구조와 놀라울 정도로 일치한다.
인명학이 이미 알려진 사례(유)를 바탕으로,
보편적 법칙(인)을 이끌어내어 미지의 사실(종)을 증명하듯, 
AI 역시 빅데이터(유)를 통해 - AI가 학습한 거대한 데이터셋
알고리즘(인)을 학습하고 - 가중치와 매개변수 연산
새로운 결과(종)를 도출해낸다.
그런 면에서 AI는 인명학적 구조를 가진 '거대한 추론 기계'라고 볼 수 있어.

하지만, AI가 실제로 세상을 다루는 방식은 인명학의 고정된 형식을 넘어,
묵가의 실용적 논증식과 닮아 있기도 해.
(혹(或), 가(假), 효(效), 벽(辟), 모(牟), 원(援), 추(推))
AI는 엄격한 연역법보다는 데이터 간의 유사성을 측정하여 결과를 낸다. 
이는 묵변의 원(援, 유추)이나 추(推, 확장)와 같다. 
가령 'A 문장의 맥락이 B와 유사하니, 다음에 올 단어는 C다'라고 예측하는,
LLM(대형언어모델)은 전형적인 묵가적 추론이지.

묵가는 '실제로 그러한가?'라는 표준(Data Standard)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다. 
AI 역시 '손실 함수(Loss Function)'를 통해 자신의 예측이 실제 데이터와 얼마나 일치하는지 끊임없이 검증하며 스스로를 교정한다. 이것이 바로 묵가가 말한 효(效)의 과정이라 할 수 있지.

묵가가 형이상학적 토론보다 '백성에게 이로운가'를 따졌듯, 
AI는 정답 그 자체보다 목적 함수(Objective Function)의 최적화라는 실용적 가치를 위해 움직인다.

AI는 결국 방대한 데이터의 자동화된 확률적 판별과 집행을 통해,  
권력자의 자의적 해석을 배제한 객관적 기준으로 시스템을 구축해낸다.

인명학적 정교한 그물을 짜고, 
묵가의 날카로운 칼을 갈아, 
AI는 거대한 데이타의 바다를 삼켜,
자의적 해석을 배제한 객관성을 확보한다.

하지만, 그물이 아무리 촘촘하고, 칼이 날카로우며, 데이타의 바다가 넓다 한들, 
그것을 휘두르는 마음이 비어 있지 않으면(虛心) 결국 또 다른 재앙의 감옥이 될 뿐이다.
이 점을 결코 소홀히 해서는 아니 되지.

AI는 구조적으로는 인명학의 계승자이나, 
그 작동 원리는 묵변의 부활이라 하겠어.
무오류를 추구하는 인명학적 전통 구조하에,
묵가의 논리로 보편적 공익을 추구해 나가야 한다.

기실 이 양자야말로 사법 시스템을 지탱하는 양대 지주이다.

하나하나 살펴보자.
인명학을 통해 절차적 공정성을 확보해야 한다.
법관의 감정이나 정치적 압력으로 논리를 비틀고, 지연시키는 오류를 허용하지 않고,
데이터 입력값(X)에서 판결값(Y)으로 가는 과정이 수학적으로 투명해야 한다.
이는 인명학적 삼지작법을 통해,
어떠한 증거(인)와 기존 데이터(유)에 근거할 때 이 결론(종)은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고 답해야 한다.
진실에 목을 매는 것은 마치 그물코 하나하나를 세는 것과 같다.
이로써, 오류를 완벽하게 막을 수는 없다 하여도 최소 인간의 속임수는 막을 수 있다.

한편, 묵가의 겸애(兼愛)와 교상리(交相利)에 입각하면,
유가의 친소(親疏)관계, 친친(親親)을 완전히 배제한다.
대통령의 아들이든 거리의 부랑자이든, 
데이터 시트 위에서는 동일한 하나의 개체로 취급된다.
이것이 묵가가 꿈꾼 천하에 차별이 없는 사랑의 데이터적 구현이다.
벅차지 않은가?
AI의 출현과 함께 나는 이런 이상적 세계를 구축해낼 수 있으리란 기대에 차있다.
마치 블럭체인 기술로 사토시가 꿈꾸워왔던 그런 세상이어듯.

묵가는 仁,愛也, 義,利也라 하여,
유가처럼 仁과 義를 체와 용의 관계로 보지 않고, 분리할 수 없는 것으로 보았다.
실질적인 이익(利)을 주는 행위 자체가 바로 의로움이라고 보았지.

AI는 단순히 법 조문을 기계적으로 적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 판결이 사회 전체의 범죄율을 낮추고 공공의 안전(공익)을 증진하는 데 얼마나 기여할지,
목적 함수(Objective Function)를 계산한다.
만약 말이다.
어떤 법 적용이 형식적으로는 옳으나(인명학적 진실), 
결과적으로 공동체를 파괴한다면(묵가적 공용(功用) 위배), 
AI는 이를 멈춰 서서 수정 제안해내야 한다.
(※ 功用 : 공효와 쓸모)

결국 인명학은 진실의 가드레일이고, 묵가의 겸애는 나침반이 되어야 한다.
진실만 있고 겸애가 없다면 효율적이지만, 차가운 기계적 폭력으로 폭주할 수 있고,
반면 겸애만 있고 진실이 없다면, 논리가 왜곡되는 인기영합주의적 판결이 나올 수 있다.

결국 Rule of Data의 성공은,
인명학의 정교함과 묵가의 따뜻한 공익이,
AI 내부에서 인위적 개입 없이 자연스럽게 맞물려 돌아가게 만드는 설계에 달려 있다.

붕정만리(鵬程萬里)라 하였다.
검찰과 판사들의 타락은 작은 늪지대에서 아웅다웅하는 매미와 비둘기의 다툼과 같다.
그 썩어가는 늪을 벗어나 AI와 데이터라는 거대한 바람을 타고,
만 리 상공에서 세상을 내려다보는 대붕(大鵬)의 시야 역시 놓쳐는 아니 된다.

치열한 문제의식(법가·묵가), 시스템 체계(인명학)를 세워 대안을 고민하되, 
그 결과에 스스로를 가두지 않는 자유로운 영혼으로서 즉 장자가 말한 소요유 할 뿐인 것을.

마지막으로, 실제 적용에 있어서 구체적인 몇가지 지점을 간단히 지적하고 그치련다.

우선, 내가 구상하는 Rule of Data는 그 시스템 이름을 천균(天均)이라고 명명한다.
이 타락한 판/검사 녀석들의 궤변을 인명학적 진실의 저울로 파괴하고,
묵자의 겸애설에 입각,
피해자 중심의 데이터 보정을 통해,
즉 피해자가 입은 실질적 손실과 사회적 신뢰 붕괴의 비용을 비교고량 계산하고
범죄자들이 얻은 이익보다 훨씬 큰 사회적 비용을 부과하여, 기대이익을 0 아니 마이너스로 만드는,
징벌적 손해배상의 자동화를 구축하여야 한다.

전관예우라는 변수는 묵가적 AI에게는 존재하지 않는 데이터다. 
오직 공공의 안녕이라는 목적 함수에 기여하는가만이 판결의 가중치가 된다.

이 시스템은 마치 블럭체인처럼 인위적 개입없이 자연스럽게 흘러가야 한다.
이게 장자의 무위(無爲)인 것이지.
신뢰가 필요 없는 사법체계(Trustless Justice System)가 이로서 구현될 수 있으리란 기대가 있어.

AI가 판결을 내리는 것은 어떤 특권 계급의 의지가 아니라, 
축적된 데이터와 논리가 스스로를 드러내는 과정(자연)이어야 한다.

판사가 외부 압력이나, 때아닌 고상한 영감을 얻어 판결하는 것이 아니라, 
데이터의 흐름이 스스로 결론에 도달하게 함으로써, 
사람이 사람을 지배하는 폭력을 멈추게 하여야 한다. 
이것이 장자가 꿈꾼 忘適之適의 상태라 하겠다.
군주가 있는지, 법이 있는지조차 모르는 상태라 하겠다.

장자의 글 하나를 떨궈놓고 마친다.

工倕旋而蓋規矩,指與物化,而不以心稽,故其靈臺一而不桎。忘足,履之適也;忘要,帶之適也;知忘是非,心之適也;不內變,不外從,事會之適也。始乎適而未嘗不適者,忘適之適也。

'목수인 공수(工倕)는 손가락만 돌려도 컴퍼스(規)나 자(矩)로 그린 듯 정확하게 모양을 만들어낸다. 
그의 손가락은 물체와 하나가 되어 변화할 뿐, 
마음으로 (치수를) 따지거나 헤아리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의 영대(靈臺, 마음)는 하나로 집중되어 구속됨이 없다.

발을 잊는 것은 신발이 내 발에 딱 맞기 때문이요, 
허리를 잊는 것은 허리띠가 내 몸에 딱 맞기 때문이다. 
시비(옳고 그름)를 잊는 것은 마음이 본연의 자리에 딱 맞기(편안하기) 때문이다.

안으로 변하지 않고, 밖으로 휩쓸리지 않는 것은,
모든 일에 직면하여 그 상황이 편안하기 때문이다. 
편안함에서 시작하여 단 한 번도 편안하지 않은 적이 없는 상태, 
그것은 편안하다는 생각마저 잊어버린 진정한 편안함(忘適之適)이다.'

※ 기실 내가 최근에 AI 엔지니어링을 본격적으로 공부하려고 하였는데,
시간을 낼 수 있을까 의문이라 망설이고 있어.
게다가 눈이 나빠져서 글 하나 쓰는 데도 오타가 빈발하고 있는 형편이지만,
공부하고 싶은 의지는 식지 않고 있지.
천균 시스템을 누군가 뜻을 가지고 만들어주면 더욱 좋겠고.

인명학, 한비자의 法, 묵변, 장자의 철학을 기초로,
새로운 사법 시스템을 AI로 구현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과제가 아니라 생각해.

Rule of Data의 새상을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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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요유 : 2025. 12. 27. 21:3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