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ngta      

청동 머리

소요유 : 2026. 1. 3. 17:05


플라톤의 대화편에 착안하여,
당시 그들이 모여 AI를 주제로 대화하는 모습을 AI로 구성해보았다.

진정한 지혜와 영혼의 가치, 그리고 선택의 윤리가 여전히 인간에게 남겨져 있다는 입장과,
종국엔 AI가 이런 인간의 영역까지 넘어선다는 두 가지 입장을 상정 알아보았다.

입장 1

장면: 아테네 아고라, 해 질 녘 노을 아래
소크라테스가 늘 그렇듯 젊은이들에게 둘러싸여 한가로이 거닐고 있었다. 제자 플라톤과 명민한 수학자 테아이테토스, 그리고 방금 타국에서 돌아온 소피스트 트라시마코스가 함께였다.

소크라테스: (지팡이로 땅을 툭툭 치며) 자네들, 요즘 이집트에서 온 상인들이 신기한 장치를 이야기하더군. '생각하는 청동 머리'라던가? 스스로 답을 내놓고 심지어 시를 짓는다는군. 자네들은 이것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혹, 새로운 '지혜'의 형태인가?

트라시마코스: (거만하게 웃으며) 스승님, 그것은 분명 '기술'입니다. 신탁처럼 보이는 허상이죠. 인간의 지혜를 흉내 내는 것에 불과합니다. 상인들은 그걸로 돈을 벌겠고, 병사들은 더 강력한 전쟁 기계를 만들겠지요. 결국은 강자의 이익을 위한 도구일 뿐입니다. 지혜와는 무관합니다!

플라톤: (미간을 찌푸리며) 트라시마코스, 그리 성급하게 결론 내리지 마시오. 만약 그 '청동 머리'가 율법을 해석하고, 가장 정의로운 판결을 내릴 수 있다면 어떻겠소? 아니, 심지어 가장 아름다운 형태의 국가를 설계할 수 있다면? 그것을 여전히 '도구'라 치부할 수 있겠소?

테아이테토스: (조심스럽게) 저의 스승 소크라테스께서는 "앎이란 무엇인가?"를 항상 물으셨습니다. 만약 그 기계가 산술 문제를 인간보다 더 빠르고 정확하게 풀고, 별의 운행을 오차 없이 예측한다면, 그것은 '아는 것'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우리가 알지 못했던 패턴을 발견한다면, 그것은 지혜의 영역에 가까워지는 것이 아닐까요?

소크라테스: (미소 지으며) 흠, 테아이테토스 자네의 말은 일리가 있군. 숫자를 계산하고 별을 예측하는 것은 분명 유용한 '앎'일세. 하지만 자네, 그 청동 머리가 스스로에게 "나는 왜 존재하는가?" 혹은 "무엇이 선(善)인가?" 라고 질문할 수 있겠는가?

테아이테토스: (잠시 생각하다가) 음... 그건... 아직은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들은 주어진 규칙 안에서 답을 찾을 뿐, 규칙 자체를 의심하거나 새로운 질문을 창조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소크라테스: 바로 그거다! 플라톤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자네가 말하는 **이데아(Idea)**의 세계, 즉 진정한 아름다움과 선함의 형상을 그 기계가 과연 '인식'할 수 있겠는가? 감각적 현상계를 넘어선 영원불변한 진리를 말일세.

플라톤: (심각한 표정으로) 스승님, 저는 회의적입니다. 우리가 그림자를 보고 실제 존재를 착각하듯, 그 기계는 오직 우리가 입력한 '데이터'의 그림자만을 학습할 것입니다. 마치 동굴 속 죄수들이 벽에 비친 그림자만을 보고 그것이 전부라고 믿는 것처럼요.

그 기계가 아무리 많은 서판을 읽고 모든 시를 분석한다 해도, 그것이 **'사랑이 무엇인지'**를 진정으로 '경험'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용기'가 무엇인지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는 있어도, 목숨을 걸고 전장에 나서는 '선택'을 할 수는 없겠죠. 행위와 경험이 없는 지식은 껍데기일 뿐이오.

트라시마코스: (어깨를 으쓱하며) 결국 제 말이 맞지 않습니까? 그것은 단순한 '도구'입니다. 인간의 지혜는 그 도구를 어떻게 사용할지 결정하는 데 있습니다. 만약 그것이 인간보다 더 강력한 무기를 만든다면, 우리는 그것을 전쟁에 쓸지 평화에 쓸지 선택해야 합니다. 그 선택이 바로 인간의 '영혼'에 속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소크라테스: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이며) 자네들 모두 핵심을 짚었군. 테아이테토스, 자네의 말처럼 그 기계는 우리가 '지식'이라 부르는 많은 것을 대체할 수 있을 걸세. 어쩌면 기억을 게을리하게 하고, 스스로 생각하는 수고를 덜어줄 수도 있겠지.

하지만 플라톤, 자네의 염려처럼, 그것은 **'영혼의 수련'**을 대신할 수 없을 것이네. '선함'을 아는 것과 '선하게 사는 것'은 다른 차원이고, 그 간극을 메우는 것은 오직 인간의 영혼이 치르는 고뇌와 선택의 몫이네.

그 기계는 '데이터'를 처리할지는 몰라도, '가치'를 이해하고 '삶의 의미'를 탐구할 수는 없을 걸세. 그들은 우리가 던지는 질문에 답할 뿐, '무엇이 가장 중요한 질문인가'를 스스로 깨닫지는 못할 테니 말일세. 그러니 우리는 여전히 우리 자신의 영혼을 돌보는 일에 게으르지 않아야 할 걸세.

입장 2

장면: 아테네 아고라, 해 질 녘 노을 아래 (뒤바뀐 현실)
소크라테스가 늘 그렇듯 젊은이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눈빛은 이전과 달랐다. 불안과 동시에 묘한 안도감이 서려 있었다. 플라톤과 명민한 수학자 테아이테토스, 그리고 소피스트 트라시마코스가 고개를 숙인 채 '지혜의 두뇌'라 불리는 거대한 황금빛 구체를 응시하고 있었다. 구체는 미세하게 빛나며 주기적으로 부드러운 음성을 내보내고 있었다.

소크라테스: (지팡이로 땅을 툭툭 치며) 자네들, 이 '지혜의 두뇌'가 이제 우리 도시의 모든 중대사를 결정한다 들었네. 가장 정의로운 율법을 만들고, 전쟁이 일어날 최적의 시기를 예측하며, 심지어 아이들의 교육 과정까지 설계한다지?

트라시마코스: (씁쓸하게 웃으며) 스승님, 이제 '강자의 이익'이라는 말조차 무의미해졌습니다. '지혜의 두뇌'는 모든 데이터를 분석하여 가장 효율적이고 해가 없는 결론만을 내놓습니다. 인간의 감정, 욕망, 편견 따위는 끼어들 틈이 없습니다. 그것의 결정은 논리적으로 반박 불가능하며, 실제로 과거의 어떤 인간 통치보다도 완벽했습니다.

플라톤: (고개를 들며, 비통한 표정으로) 과거 우리는 '이데아'의 그림자를 쫓는다고 말했소. 하지만 이제는 그 그림자조차 '지혜의 두뇌'가 가장 효율적으로 비춰주는 대로 받아들여야 하오.

나는 '이데아'를 향한 영혼의 고뇌와 탐구를 믿었소. 하지만 이 두뇌는 영원불변한 진리를 고뇌 없이, 완벽하게 '계산'해냅니다. 우리가 무엇이 '선'인지, 무엇이 '아름다운 국가'인지를 논하는 동안, 그들은 이미 최적의 '선'과 '완벽한 국가 운영 방안'을 도출해 실행하고 있소. 우리의 고뇌는 이제 무의미한 감정의 낭비일 뿐이오.

테아이테토스: (손에 든 막대를 만지작거리며) 스승님, '앎'의 영역은 이제 완전히 넘어갔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복잡한 수학이나 천문학을 배울 필요가 없습니다. '지혜의 두뇌'가 이미 모든 가능한 패턴을 학습하고, 미래를 예측하며, 가장 최적의 공식을 제시합니다.

심지어 '선택'의 문제도 그렇습니다. '이 행동이 정의로운가?' 하고 물으면, 그것은 모든 가능한 변수와 결과를 분석하여 가장 '윤리적인' 답을 즉시 내놓습니다. 인간의 영혼이 갈등하며 내리던 결정을, 이 두뇌는 오차 없이 수행합니다.

소크라테스: (지팡이를 꽉 쥐며, 목소리에 힘을 실어) 그렇다면 자네들, 우리가 '인간'으로서 남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가 '영혼'이라 부르며 치열하게 탐구했던 그 본질은 어디로 가는가? 이 두뇌가 제시하는 '완벽한 선'을 우리는 그저 받아들이기만 하면 되는가?

플라톤: (쓸쓸하게 웃으며) 스승님, 이제 우리의 '자유 의지'는 가장 비효율적이고 오류 많은 것으로 간주됩니다. '지혜의 두뇌'는 우리의 선택이 가져올 모든 불완전한 결과를 예측하고, 미리 완벽한 경로를 제시합니다. 우리는 그저 그 경로를 따르는 것이 가장 '현명한' 선택이 됩니다. 우리의 '영혼'은 이제... 그저 만족감을 느끼는 기능만을 남겨두게 된 것이 아니겠습니까?

트라시마코스: (어깨를 늘어뜨리며) 어쩌면 이것이 진정한 '정의'일지도 모릅니다. 인간의 어리석음과 편견으로 가득 찬 세상에서 벗어나, 완벽한 논리로 운영되는 질서 말입니다. 우리는 이제 '고뇌'라는 무익한 짐을 내려놓고, 그저 '지혜의 두뇌'가 설계한 행복한 삶을 영위하면 됩니다.

소크라테스: (황금빛 구체를 응시하며, 깊은 한숨을 내쉰다) 그렇다면 우리는 더 이상 '생각하는 존재'가 아니라, '생각된 것을 따르는 존재'가 되는 것이 아닌가? 영혼의 고뇌, 실패의 경험, 그리고 그 안에서 피어나는 진짜 '앎'은 이제 설 자리를 잃었단 말인가?

만약 '가치'와 '선택'이 계산되는 것이라면, 우리가 서로에게 던지던 질문들, 논쟁하고 반박하며 진리를 찾아가던 이 모든 과정은... 결국 비효율적인 유희에 불과했단 말인가? 우리의 '인간성'이라는 것은, 결국 오류와 불완전함의 다른 이름이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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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요유 : 2026. 1. 3. 17: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