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ngta      

두꺼비

소요유 : 2008.08.31 21:49


지난주 금요일 뒷동산에서 우연히 만났다.
산에서 내려오는데, 길 한가운데 손바닥만 한 것이 떡 하니 버티고 앉아 있었다.
까딱 잘못하였다간 밟을 뻔 했다.

비가 와서 제 집에 물이라도 들었던 것일까?
아무도 없는 산 길 한가운데,
뛰쳐나와 그는 무슨 생각에 잠겼던 것일까?
몸에 그려진 무늬가 위엄을 갖춘 양 싶다.
한동안 망연히 서서 그를 대한다.
그와 나 사이에 제법 묵직한 침묵이 흐른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 두꺼비 체장은 대략 15cm ~ 17cm 정도로 목측된다. )

집에 가서 디카를 챙겨 가지고 다시 나왔다. 
그가 보이지 않아 한동안 찾았다.
도랑을 건너 산으로 이어지는 돌계단,
그 첫 디딤돌 틈에 들어가 쉬고 있었다.

그 다음 날,
산길을 걷다 노인 어른이 나누는 말을 듣다.

‘세 마리 두꺼비가 겹쳐 있다.’

나는 순간 또 두꺼비가 나타났나 돌아보았다.

그 분이 가르키는 것은 바위였다.
세 개가 연달아 업혀진 형국이다.  - 섬상섬(蟾上蟾)

사용자 삽입 이미지

늘 스쳐 지나면서도 바위가 참 기묘하다고 생각했지만,
이리 생각은 하지 못했다.

노인 분의 상상력이 무척 젊다.
정신이 소명(昭明)하니 밝으시니 오래 사시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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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은유시인 2010.01.31 10:14 PERM. MOD/DEL REPLY

    요즘 두꺼비가 전혀 보이지가 않네요.
    혹 멸종동물로 분류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인간의 욕심은 정말 한도 끝도 없습니다.
    한 사람당 집을 백채씩 가져도 아마 계속 집을 지을겁니다.
    그렇게 자연은 파괴되어 갈 것이고....

    bongta 2010.01.31 20:47 신고 PERM MOD/DEL

    서울인데도, 맹꽁이, 두꺼비 등을 어렸을 때도 곧잘 보았습니다.
    이즈음에 저런 녀석들을 보게 되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경험이 됩니다.
    아마도 4대강 죽이기 사업이 진행되면,
    억조(億兆) 생령(生靈)들이 죽어나갈 것입니다.
    도대체 이 죗값을 어찌 갚으려고 저러는지,
    가늠할 수가 없군요.

  2. 은유시인 2010.02.01 11:56 PERM. MOD/DEL REPLY

    인간의 도무지 만족할 줄 모르는 욕심은 어디로부터 온 것일까요?
    요즘은 머리가 비었어도 돈 만 많으면 유지 행세를 할 수가 있지요.
    전 관심이 별로 없어서 잘 모르겠는데
    4대강 개발사업 반대하는 사람들이 그리 많데요?
    근데 왜 자꾸 벌이려드는 걸까요?
    참 이상한 사람들이네....

    bongta 2010.02.01 22:50 신고 PERM MOD/DEL

    개발 없이 인간의 삶이 부지될 수 없다는 것을
    전들 왜 아니 모르겠습니까?
    하지만 나라 안 왼 강에다 시멘트 발라가며,
    보를 쌓아 물 흐름을 끊는 것은 터무니없는 짓이지요.
    게다가 그 통에 죽어나갈 수많은 생령들을 생각한다면,
    설혹 자신에게 짭짤한 이문이 생긴다고 하여도,
    차마 그런 나쁜 짓을 자행할 수는 없습니다.

  3. 은유시인 2010.02.02 11:21 PERM. MOD/DEL REPLY

    사람의 만족이란 끝이 없지요.
    빌딩을 한 채 마련했다면 더 큰 빌딩 한 채를 더 마련할 때까지 죽자사자 뜁니다.
    신들린 사람처럼....
    그렇게 열 채 백 채 마련해도 성에 차지 않습니다.

    전, 원래부터 재물욕심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걸 엄청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죄를 덜 짓게 됩니다.
    그렇지만,
    그로인해 곤욕을 치러야할 경우가 많고 불편한 경우도 많습니다.
    그래서 덜 불편한 시골로 가서 살 예정이랍니다.
    아무도 없는...
    그저 강아지와 글 쓸 공간만 있으면 만족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bongta 2010.02.03 09:45 신고 PERM MOD/DEL

    새로 맞이한 강아지,
    이 녀석이,
    나날이 제 본색이 드러나는군요.

    처음엔 몸을 사리더니만,
    오늘 늦게 집에 들어오니,
    여짓것 처음인데,
    다리 붙잡고 영차영차 그 짓을 하는군요.

    먼젓번에 기르던 강아지 행색이라,
    그 녀석 환생인가 싶어,
    십오 년 제 곁에 살다 먼저 먼 길을 떠나간 그 녀석들을
    덕분에 생각해봅니다.

    편안한 밤 되시길.

  4. 은유시인 2010.02.09 01:04 PERM. MOD/DEL REPLY

    저는 계집아이를 키우는데
    요 녀석도 제가 잠자리에 누우면 영차를 하려합니다.
    팔을 대주지 않으면 막 신경질까지 부립니다.

    오늘 목욕을 시켰더니 아주 예뻐 보입니다.
    목욕 한번 시키려면 진땀을 흘려야지요.
    특히 드라이하려면 내빼려고 해서 시끕합니다.

    bongta 2010.02.09 14:08 신고 PERM MOD/DEL

    제 강아지는,
    이제껏 밖에서만 자라 훈련이 아니 된 고로,
    소변을 집안에서는 보지 않으려고 합니다.
    해서 도리 없이 밖으로 데리고 나가야 합니다.

    이게 여간 성가신 것이 아닙니다만,
    그 녀석 눈을 보면 가엽고 안타깝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제가 외려 갖은 시름을 다 잊게 되는 공덕을 입습니다.

    저들은 과연 어디로부터 와서,
    제 곁에 머물 게 되는 귀한 인연을 짓게 된 것일까요?
    신기하고도 놀라운 일입니다.

  5. 은유시인 2010.02.11 15:51 PERM. MOD/DEL REPLY

    선생님의 강아지에 대한 생각은 저와 한 치도 다름 없음에 저도 기분이 좋습니다.
    전, 티브이의 '동물농장'이나 '세상에 이런일이'에서 동물학대에 관한 내용이 나오면 분노를 못참습니다.
    콘크리트에 못박는 타카로 고양이를 여럿 죽인 범인에 대해서도 단편소설 한편 썼습니다.
    혹 제가 유명해지면 그 소설 읽을 사람 많아질 것이고.
    그 범인도 읽게 될 가능성을 생각해서 썼습니다.
    능히 사람도 죽일 가능성이 많은 미친놈이지요.
    그런 사이코패시같은 놈은 어떻게 해서든 발본색출하여 분리해야 한다고 봅니다.

    저도 강아지로 말미암아 웃음을 찾습니다.
    그외엔 웃을 일이 전혀 없지요.

    bongta 2010.02.11 20:18 신고 PERM MOD/DEL

    선생님.

    저는 강아지를 좋아합니다.
    하지만 앞서 기르던 강아지 둘을 여의고는 다시는 키울 자신을 잃었지요.
    그러한데도 엊그제 또 다시 인연을 짓고 말았습니다.

    저는 나중에 강아지 고아원을 만드는 성긴 소망을 갖고 있습니다.
    아직 제 욕심을 버리지 못하여 야무지지 못한 안개에 싸인 그것.

    사람 사는 일에 별별 변수가 많아 과연 이리 되리란 보장은 없습니다.
    하지만, 말씀대로 강아지를 비롯해 동물들을 공연히 학대하는 인간 족속들 보면,
    테러라도 하고 싶습니다.

    “분노”

    외국에 보면,
    'xxx Front'란 타이틀의 단체가 있더군요.
    동물 학대하는 족속들에게 폭력으로 죗값을 묻는 운동 전선(前線)들입니다.
    저 역시 있다면 그런 동지들을 규합하여 이런 단체를 조직하고도 싶습니다.

    그러하면서도 문득 문득 의문을 갖곤 합니다.
    가령 저희 밭 앞에 금년부터 개들을 사육하기 시작한 저들 앞에 서면,
    이는 분노를 억누르자,
    이내 소록소록 피어오르는 그 의문을 해소할 수 없더군요.

    누군들 개들을 보신탕용으로 키우길 원하겠습니까?
    생활 형편이 어려워지자 우선 손쉬운 저 길로 나선 것이 아닌가 싶은 것이지요.
    저들을 일시나마 미워한 저를 반성해봅니다.

    ‘아, 삶이란 정녕 아스라하니 아프다.’

    “슬픔”

    이리 이르지 않을 수 없군요.

    ‘분노와 슬픔’

    이 두 가지를 품지 않고 어찌 이 거친 황야를 거닐 수 있겠습니까?
    세상 끝을 다 건넌 도인(道人)이라면 진작 여의었을 것이지만,

    ‘분노와 슬픔’

    이것이야말로 이 거친 진세(塵世)를 건너기 위한,
    진실된 인간조건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 참고 글 : http://bongta.com/144)

    진실된 인간이 아니라면,
    결코 ‘분노와 슬픔’을 아지 못할 것이란 생각을 해보는 것입니다.
    아니, 도인(道人)이란 핑계로 이를 진작 여의였다고 이른다면,
    그것은 가짜의 방증일 뿐.

    아니 그럴까요?

    정녕 도인들이라면,
    그들이야말로 정금(正金) 같이 정련된,
    ‘분노와 슬픔’을 지니고 있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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