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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중련의 질책

소요유 : 2008. 10. 15. 21:12


진소양왕(秦昭襄王)이 조(趙)나라를 맹렬히 공격했다.
다급해진 조효성왕(趙孝成王)은 위(魏)나라에 사신을 보내 구원을 청했다.

위나라 장군 신원연(新垣衍)은 위안리왕(魏安釐王)에게 아뢴다.

“진나라 군사가 조나라를 급히 공격하는 데엔 이유가 있습니다.
지난날에 진소양왕은 제나라 제민왕(齊湣王)과 천하를 다투면서
서로 제왕(帝王)의 칭호를 쓰자고 제의했었습니다.
그러나 제민왕이 응하지 않았기 때문에 진소양왕도 제왕의 칭호를 쓰지 못했습니다.
그 후 제민왕은 죽었고, 제나라는 나날이 쇠약해 가는 중입니다.
따라서 진나라만 홀로 강대국이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진소양왕은 아직 제왕으로서 행세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가 쉬지 않고 싸움을 벌이는 이유는 바로 제왕이 되고 싶어서입니다.
그러니 조나라가 위기를 모면하려면 사신을 보내어,
진소양왕을 제왕으로 추대하는 길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진소양왕은 크게 만족하고, 군사를 거두어 돌아갈 것입니다.
즉 헛된 명색을 붙여주고 불행을 면해야 합니다.”

사실 위안리왕(魏安釐王)은 조나라를 도와줄 생각이 별로 없었다.
그래서 장수 신원연의 계책을 따르기로 했다.
이에 신원연은 조나라 사신과 함께 조나라로 가서,
진소양왕에게 제왕(帝王)의 칭호를 바치라고 진언했다.

조효성왕은 모든 신하와 함께 위나라 제안을 상의했다.
이 때, 제나라 출신 노중련(魯仲連)이란 사람이 있었다.
마침 조나라에 왔다가 진나라가 조나라 수도 한단성(邯鄲城)을 포위했기 때문에
떠나지 못하고 성안에 머물러 있었다.

노중련은 위나라 사신이 조나라에 와서,
제왕의 칭호를 진소양왕에게 주자고 제안했다는 소문을 듣고서, 분개했다.
이에 노중련은 평원군(平原君) 조승(趙勝)을 방문했다.

노중련이 평원군에게 묻는다.

“어느 나라 사신이 와서 제왕의 칭호를 진왕에게 주자고 한다던데 사실인가요?”

평원군 조승이 대답한다.

“이 몸은 화살에 상한 새나 다름없습니다. 내 무슨 말을 하리이까.
위나라 사신인 장군 신원연이 우리나라에 와서 그런 제안을 하고 있소.”

노중련이 책망하듯 말한다.

“대군은 어진 공자로서 천하에 이름이 높은 분이오.
그러한 대군이 그래 위나라 사신에게 모든 일을 내맡길 작정이시오?
그 위나라 사신이란 신원연은 지금 어디에 있소?
그 사람을 좀 만나게 해 주오.
내 그 사람을 톡톡히 책망해서 돌려보내겠소.”

이에 신원연을 만나게 된 노중련은 화려한 변설로 상대를 굴복시킨다.

그 중 백미(白眉)만을 여기 새겨둔다.

노중련이 신원연에게 말한다.

“옛날 귀후(鬼侯)와 악후(顎侯)와 문왕(文王)은 주왕(紂王) 밑에서
삼공(三公)의 벼슬을 살았소.
그 때 귀후에게 딸이 있었는데, 그 자색이 매우 아름다웠소.
귀후는 그 딸을 주왕에게 바쳤소.
그러나 주왕은 귀후의 딸이 음탕한 걸 좋아하지 않는다 해서
대로한 나머지 그 여자를 죽이고, 그 아비 귀후마저 죽여 그 살로 젓을 담았소.
이에 악후가 주왕을 간하다가 역시 끓는 가마솥에서 죽음을 당했지요.
문왕이 이 소문을 듣고 탄식하다가 또한 주왕에게 붙들려 유리(羑里)에 감금당했었는데,
거의 죽음을 당할 뻔하다 살아났지요.
이건 누구나 다 아는 옛 은(殷)나라 말년 때의 일이오.
그 때 그 당시 그들 삼공의 지혜가 주왕만 못했기 때문에 그런 무참한 형벌을 당했겠소?
나는 장군처럼 그렇게 생각할 수 없소.
누구나 일단 천자(天子)의 자리에 오르기만 하면 무슨 짓이고
다 할 수 있는 권력이 부여된다는 걸 이 참에 나는 장군에게 알려 주려오.
자 장군의 주장처럼 앞으로 진왕이 제왕의 위에 오른다고 합시다.
제왕이 되기만 하면 진나라 왕은 조나라 왕을 잡아들여
그 옛날 주왕이 악후를 삶아죽이듯 죽일 것이니 그 때에 누가 진나라 횡포를 막을 테요?
장군은 어쩌자고 무도한 진나라 왕에게 이런 절대적인 권력을 주려는 것이오?”

신원연은 깊은 생각에 잠겼다. 그래서 아무 답도 못했다.
노중련이 계속 말한다.

“비단 그것만 아니오.
진나라 왕이 제왕 행세를 하게 되는 날엔 반드시 천하에 대해서 가지가지 개혁을 단행할 것이오.
첫째, 그는 모든 나라 대신들 중에서 특히 미운 자에겐 가차 없는 형벌을 내릴 것이며,
그 대신 자기가 사랑하는 자들을 모든 나라 대신으로 박아 넣을 것이오.
또 음으로 양으로 가지가지 간특한 계책을 써서 모든 나라를 멸망시킬 것이오.
그렇게 되면 위나라 왕은 편안히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을 성 싶소?
아니 장군은 벼슬과 자기 몸을 유지할 수 있을 성 싶소?”

신원연이 벌떡 일어나 노중련에게 재배(再拜)하고 말한다.

“선생은 참으로 천하의 명사(名士)이십니다.
나는 곧 위나라로 돌아가서 우리 위왕께 선생의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그리고 제왕의 칭호를 진왕에게 주면 무서운 결과가 온다는 것을 아뢰겠습니다.”

이후의 후일담엔 위나라 신릉군(信陵君)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허나 이야기가 길어지는 즉 이에 그친다.

내가 이글을 여기 쓰는 이유는
노중련의 다음과 같은 말이 얼마 전 우리나라의 형편과 사뭇 비근하기에,
이리 기억을 더듬어 보는 것이다.

“그는 모든 나라 대신들 중에서 특히 미운 자에겐 가차 없는 형벌을 내릴 것이며,
그 대신 자기가 사랑하는 자들을 모든 나라 대신으로 박아 넣을 것이오.”

마침 때에 이르러,
앞에 달린 댓글(☞ 2008/05/08 - [소요유] - 가래나무와 광우병)을 보게 되었음이니,
그 내용으로 미루어 추단컨대,
‘병든 소’를 아직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작자들이
이리 거리를 횡행하는가 싶은 것이다.
하여, 잠깐 시간을 내어 노중련의 말을 되뇌어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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