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雨) 같은 친구
어느 날 집을 나서 막 동네 산을 가로 지르고 있는데,
갑자기 등산화 밑창이 덜거덕 거린다.
며칠 전 제법 쓸 만하다고 안사람에게 칭찬까지 해준 신발인데,
멀쩡하던 것이 탈이 났다.
얼른 집으로 되돌아가서 다른 신발로 바꿔 신고 재차 산을 오른다.
안사람은 신발을 고치겠다고 가지고 나갔으나,
신기료장수가 이사를 가버렸다고 그냥 되가져왔다.
도리 없이 한쪽 구석에다 넣어 두었다.
수일 후, 등산 중에 사귄 한 분 선생님을 산에서 만나다.
선생은 손재주가 뛰어나셔서,
자신이 입는 등산복도 이리저리 조합하여 멋지게 고쳐 입으시곤 한다.
게다가 집안 인테리어도 직접 하실 정도시다.
등산화도 곧잘 수선하신다는 말씀을 들었던 기억이 난다.
여쭙기를,
“등산화 밑창이 떨어졌는데,
선생님 그것 어떻게 수선하지요?”
“아, 그러면 그거 오공본드로 붙이면 돼.”
이모저모 수선하는 요령도 우정 차근차근 일러주신다.
하산길에,
문방구에 가서 오공본드를 달라고 하니,
벽돌짝 만하게 큰 것을 내놓는다.
선생께서는 튜브에 들어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그만한 것은 없느냐 하니까 철물점 주인은 그런 것은 없다고 한다.
혹시 몰라 xx표 본드를 사가지고 나오지만,
그것은 접착력이 그리 신통치 않을 것 같아,
영 자신이 없다.
며칠 후 산에서 만나 뵌 그 선생님은 배낭에서
오공본드를 꺼내신다.
마침 쓰고 남은 것이라며 건네신다.
척 보니,
보기에도 야무진 게 맞춤 맞겠다 싶다.
“어, 우리 동네에선 팔지 않던데, 그것은 어디에서 구하셨는지요.”
선생 동네에서는 그것을 구할 수 있다는 말씀이시다.
또 며칠 후 등산길에서,
막 하산을 하시는 선생님을 뵙다.
정색을 하시면서 그러지 않아도 줄 것이 있다고 하신다.
배낭을 내리시더니,
“하나만 주셔도 충분한데,
두 개씩이나 주실 필요 없습니다.”
“아냐, 나는 많아.”
필경은 나를 위해 부러 준비를 하신 게다.
나는 앞에서 선물에 대하여 단상(斷想)을 적은 적이 있다.
(※ 참고 글 : ☞ 2008/12/28 - [소요유] - 선물(膳物))
그날 건네신 오공본드는 결코 선물이 아니다.
주는 분이나,
받는 나에게나,
그것은 선물이 아니다.
그것은 그냥 우정(友情)의 표현양식일 뿐인 것을.
구우(舊雨)
신우(今雨).
내리시는 비처럼 촉촉이 젖어드는 사이.
해서 오랜 친구를 구우, 새 친구를 금우라 하지 않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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