홰나무 할머니
내가 아주 어렸을 때 이웃에 할머니 한 분이 계셨다.
허리가 구부러져 몸이 반으로 접히듯 하니,
늘상 얼굴은 땅을 면하되, 말씀하실 때만 힘겹게 들어 올려 저만치 쳐다보시던
할머니를 오늘 떠올린다.
그 당시는 왜 그리 철이 없었을까?
어리다는 핑계로 용서가 될까?
할머니께 왜 나는 눈깔사탕 하나라도 나누어 드리지 못한 것일까?
그 누가 말했는가?
어린이는 순수한 영혼을 간직했다고.
나는 이런 따위의 가증스런 신화, 전설, 위선을 결단코 믿지 않는다.
어린아이는 철이 없다.
사리 분별을 하지 못하는 상태에 놓여 있을 뿐이다.
무지몽매(無知蒙昧).
아지 못하고, 깨우치지 못한 상태.
이를 어린 상태,
즉 몽(蒙)한 지경에 놓여있다고 말해야 한다.
거기 순수하다, 영악하다.
이런 잣대로 계량할 상대조차가 되지 않는 말 그대로
적나라(赤裸裸) 벌거벗은 아이가 있을 뿐이다.
외려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적육단(赤肉團),
그래 그 붉은 본능, 차가운 DNA의 의지가 있을 따름이라고 말하는 것이 차라리 정직한 것이 아닐까?
순수한 영혼은 어른이어야 확인이 된다.
어른이면서도 순수할 때라야,
우리는 순수한 영혼 운운하며 감히 거론이라도 할 수 있다.
철이 없는데,
순수하고 아니고 따질 겨를이 있겠는가?
이런 따위의 말장난은 그저 불쌍한 어른들을 위로하기 위한 수사(修辭) 장치에 불과하다.
아니 그냥 더러운 핑계에 다름 아니다.
우리의 문제는
어른이라고 일컬어지는 물건들은 거개가 하나같이 순수하지 않다는 것이다.
때문에 우리는 짐짓 애꿎은 어린아이를 동원하여,
그들을 순수하다고 짓까불며,
더렵혀진 어른들 자신을 가증스럽게도 분식(粉飾)하는 게 아니겠는가?
모든 어른들은 어린이를 거친다.
하니,
“나도 한 때 어린 시절에는 순수했어.”
이리 씨불이기라도 하는 것 아닐까?
나약하고 비겁한 어른들의 문법일 따름인 저.
정녕코, 어른들이란 얼마나 추접스러운가 말이다.
그 집 며느리는 마실 다니길 즐겨했었으니,
부엌은 애오라지 그 할머니 차지였다.
그 누가 말하였던가?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닦달하며 못살게 굴었다고.
어린 소견에도, 할머니를 뵈오면 늘상 부엌에서 헤어나지 못하니,
자못 힘이 드시겠구나 하였음이라.
자신이 잘났다고 고개 뻣뻣이 쳐들고 다니는 이들에게 내 이르노니,
밥은 누가 지어 대령하였는가?
“그대의 뻣뻣하게 쳐든 고개 뒤에,
밥 짓는 이가 있음을 기억하라.”
내 10여년 전에 설악산 xx콘도에 들었던 적이 있었음이라.
나는 자연스럽게 먹고 남은 뒤치다꺼리로
콘도에서 비치해둔 그릇들을 설거지하였다.
그러자, 함께 들었던 친구 녀석이
슬쩍 비웃듯이 어찌 그 노릇을 하느냐 하더라.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대꾸하였음이니,
“먹은 자가 설거지 하지 않으면 누가 대신하랴.”
각설하고, 돌아와 할머니 곁에 선다.
어느 봄 날,
짬에,
할머니께서 고개를 드시며 저 멀리 늙은 홰나무를 쳐다보시며,
(당시 삼이웃 모두 그 나무를 해나무라고 불렀는데,
이게 지금 생각하니 필경 홰나무였을 것 같다.)
“나무는 아무리 늙어도 새싹을 돋아내는데,
사람은 늙으면 그만 시들고 만다.
영영 싹이 돋지 않는다.
봄이 돌아와도.”
이리 쓸쓸하니 말씀하셨음이라,
아, 나는 이리 푸른데,
할머니의 저 말씀은 무슨 깊은 지혜의 말씀이런가?
이제 그 할머니의 말씀을 더듬고자 하는 소이연(所以緣)이 예 있음이라.
어느 날이었다.
할머니 말씀인즉,
당신이 어렸을 때는,
사람들이 얼마나 어수룩했으면,
도망 가다가 나무 뒤에 숨으면,
뒤쫓아 가는 사람이 미처 깨닫지 못하고 그냥 스쳐 지나기 일쑤였느니,
당시는 그리 사람들이 소명(昭明)하지 못하였다.
“지금 사람은 너무 영악해서 탈이지.”
내 이 말씀을 듣고도 정말인지 참으로 믿지 못하겠음이라,
아무리 옛날 이야기라 한들 사람들이 그리 개명(開明)하지 못하였을 수 있는가?
어린 소견에도 그 말씀이 조금은 의심스러웠다.
그런데,
나는 40년도 훨씬 지난 지금에서야 이 말씀을 믿지 않을 도리가 없게 되었음이라.
북한산 국립공원 직원이 어느 날 내게 말했다.
“지나다가 음악소리 크게 틀은 노인네를 만나면 난처합니다.
게다가 거기 뽕짝이라도 흘러나오면 저는 그냥 놀라 자빠지고 맙니다.”
어느 날 라디오 크게 틀어놓고 지나는 등산객 하나를 만났다.
다른 사람에게 폐가 되니 조그맣게 줄여라 내가 이리 말하니
면판 빤빤하게 생긴 아줌마는 이리 말했다.
“이어폰 귀에 꽂으면 귀가 아파서 ....”
어느 날 뽕짝 크게 틀어놓고 지나는 할아버지 하나는 이렇게 말했다.
“그러면 일기예보는 어떻게 듣는가?”
이런 문답을 주고받으면서 나는 문득 30년 전 나의 학창생활로 되돌아간다.
왜냐?
하나, 둘이 아니라,
저들은 여기 북한산 국립공원의 거의 일상인 게라.
특별(particular)한 게 아니라 일반(general)이란 말이다.
그래서 더 더듬겠다는 말이다.
아직 적응이 되지 않은 얼떨떨한 복학생 하나가 있었다.
버클리 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한 수재라고 알려진 물리학 교수님은
그 복학생의 질문에 그냥 얼음덩이가 되셨는지 한 동안 아무 말씀도 하지 못하셨다.
복학생 하나가 던진 질문은
내가 보아도 도무지 질문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 엉뚱한 것이었다.
갑자기 강의실은 침묵으로 빠져들었다.
이 난처한 상황을 저 수재 교수님은 어떻게 수습하실 터인가?
나의 사악한 관심은 질문에 대한 답이 아니라,
차라리 그 다음 수습 과정이 어찌 전개될 터인가 하는 것이었으니 ...
내가 느끼기에는 분명 노교수는 흠칫 놀라셨음이라.
양구(良久) ...
한 동안 침묵이 흘렀다.
노교수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듯,
그 질문을 무시하고 다음을 이어가셨다.
나 역시,
그 아줌마의 귀가 아프다는 하소연,
그리고, 그 할아버지의 일기예보 청취 불능을 함께 걱정할 까닭이 있겠는가?
되돌아오는 게 늘상 그러하듯이,
냅다 욕설이 아닌 것만 하여도 감지덕지 할 노릇이 아니겠는가 말이다.
도대체,
제 자신의 사적인 필요를
남에게 하소연 하는 저 뻔뻔한 몰염치는 누구에게 배웠는가?
자기 인생을 누구한테 물어야 하는 이 꽉 막힌 현실은 얼마나 괴이한가?
그 물음을, 알량하고도 남을 제 자존심 한 줌과도 차마 형량(衡量)치 못하고,
여름철 벌레 몸에서 비어나오는 진물처럼 스스럼없이 흘려내는 저 아득한 몽매함들이란,
황량한 들판, 석양처럼 얼마나 처량한가 말이다.
나무 뒤에 숨은 이를 스쳐 지나가면서도 저들은 도저히 아지 못할 게라.
40년전에 들은 저 무지몽매함의 실체들을 나는 오늘 이 날 진짜로 목격하고 있음이 아니겠는가 말이다.
저들 불한당들은 도시 어느 누가 키웠는가?
이 물음은 또한 얼마나 서럽디 서러워,
하냥 한(恨)스럽기 짝이 없다.
이러고도,
어린아이 영혼은 순수하다고 말 할 수 있음인가?
나는 단연코 말한다.
어른이 되어서도 순수하지 못하면,
어렸을 때는 불문가지(不問可知) 더 묻지 않아도,
더 기막혔을 것이 틀림없었을 것이다.
감히 어린아이씩이나 팔아먹지 말라.
어린아이에게 순수함을 물어서는 아니 된다.
순수함은 어른들의 척도일 뿐.
태엽을 거꾸로 돌려,
물을 수 없는 대상인 과거에게 묻는 짓은
참으로 비겁하고 추접스럽다.
물경 80% 이상이 대학 교육을 받는 이 땅의 미래들에게서는,
과연 우리들의 희망은 유효한 투사(投射), 투기(投機) 행위가 될 수 있을까?
나는 기대하지 않는다.
40년 전에도 누군가 내게 그 희망을 얘기했다.
하지만, 40년 후에도 당시와 별반 다를 것이 없는 현실 앞에 내가 서 있다.
내가 이제 다음 40년을 맞을 이에게 다시 이런 희망을 주문할 염치가 없다.
그런즉 다만,
내 양심만을 의지, 의심하며,
내 길을 걸어갈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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