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葱)
국립공원 내 등산로를 한참 오르다 보면 으슥한 곳이 있다.
나는 이곳을 근 4년간 살피고 있다.
거기 늘 쓰레기가 버려져 있다.
마늘 대, 조개껍질, 배추 등등
도저히 등산객이 버릴 만한 것이 아니다.
여느 살림살이 뒷 흔적이라 할 것들이 버려져 있는 것이다.
짐작컨대,
산 위에 있는 사찰측의 소행인가 싶기도 해서,
현장을 지날 때면 기어이 촉적(捉賊)하리라 벼르곤 했다.
(※ 촉적(捉賊) : 도적, 범인을 잡다.)
그러다 얼마 전 게를 지나는 중이었다.
땅바닥에 떨어진 것이 푸른 비닐 조각인 양 싶어 허리를 굽혀 주우려는 찰나,
그게 실은 가느다란 파(葱) 줄기였던 것이다.
아니, 내가 이리도 눈이 나빠졌는가?
하고는 예의 그 쓰레기 버리는 곳으로 가 보았더니,
한 무더기의 다듬고 남은 파가 버려져 있었다.
여기 말고도 근처에는 이런 무더기가 서너군데 더 있다.
지난 가을이래 도토리 껍데기가 커다란 빨간 다라로 가득 찰만한 분량이 버려져 있다.
필시 여기서 주어간 도토리도 적지 않았단 말이 되겠다.
집에 가져가서 도토리를 까고서는 그 껍데기를 여기로 가져와 다시 버린 것이리라.
그 날, 집식구에게 이를 말하였더니,
내 처는 단번에 그게 집에서 나온 쓰레기를
누군가 숨겨 가지고 올라와 버리는 것이라 하는 것이 아닌가?
나로서는 거기가 공원입구에서 제법 멀고, 높은 편이라,
설마하니 쓰레기를 버리려고 그 수고를 무릅쓸 사람이 없으리란 생각이었기에,
천만 그리 생각하지를 못하였다.
해서 혹시나 사찰에 기식(寄食)하는 어느 행실 고약한 이가,
몰래 음식(淫食)을 해먹고는 저리 처리한 것인가 생각하기도 했으니,
나야말로 저들에게 천만 죄를 지었음이라.
이 자리를 빌어 잘못에 대해 깊이 용서를 구한다.
내 백번 양보하여 푸성귀 쓰레기 버리는 것은 인내할 수 있음이다.
어차피 썩는 것인즉 조금 더 참아낼 수도 있다.
하지만, 싸가지고 온 비닐 봉투까지 버리는 것만은 용서가 아니 되는 것이다.
사람이 도대체 이리 염치가 없을 수 있음인가?
참으로 고약한 인간들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승에서 무슨 영화(榮華)를 누리려고 이리 악착같이 살아야만 하는가?
가만히 생각해보아라,
그리 사는 게 너무 비열해서라도,
자신의 영혼이 까묵룩하니 서럽지 않은가 말이다.
거기 쓰레기 무더기 옆에는 또한 차마 못 볼 것이 버려져 있다.
이에 대하여는 새로 글자리를 마련하여 다음에 쓰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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