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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원(大遠)과 소근(小近)

소요유 : 2009. 2. 11. 12:35


합종연횡(合縱連衡)은 전국시대(戰國時代)의 외교정책이다.
강국 진(秦)을 중심으로 나머지 6소국, 즉  한(韓), 위(魏), 조(趙), 제(齋), 초(楚), 연(燕)간의
정치적 결합관계를 두고 펼쳐지는 치열한 외교정책을 일컫는다.

소진(蘇秦)은 종종 그 실체가 의심을 받기도 하지만,
어쨌건 이 변설객(辨說客)이 나서,
진을 제외한 나머지 6국은 서로 연합하여,
강국 진에 대항하여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이론을 편다.
이는 처음엔 잠깐 성공을 하게 된다.
이를 합종(合縱)이라고 한다.
이는 서쪽에 위치한 진을 제외한 6국이 종으로 연합한다는 의미이다.

반면 연횡(連衡)이란,
진과 나머지 6국이 각기 개별적으로 진과 일대일로 동맹을 맺는 전략을 말한다. 
애초 소진이 이루어놓은 6국 동맹을 깨뜨리고 진 위주로 세력 개편을 꾀한 것인데,
이 책동의 중심인물이 소진과 동문수학한 장의(張儀)다.
결국 이 연횡책이 성공하여 진나라는 천하를 통일하게 된다.
6국이 개별적으로 분리되어버리고 말았기 때문에,
진은 약한 나라부터 하나하나 잠식해 들어가며 멸망시켜 버릴 수 있었다.

이 두 가지 정책 이론은 서로 상반된 것인데도,
어찌하여 모두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을까?

그에 대한 분석을 이종오(李宗吾) 선생의 글에서 발견했다.
그 글을 읽다가 분석 자체도 재미있지만,
모종의 중요한 시사점을 깨닫게 되었다.
해서 이리 기록으로 남겨 두련다.

소진의 설은 6국 연맹이다.
시종 이해(利害)에 입각하여 이론을 세웠다.
그의 설득술은 흥미진진했다.

반면 장의는 6국으로 하여금 진을 섬기게 권하였다.
역시나 이도 이해관계에 입각한 이론이다.
(공맹의 인의론에 입각한 것이 아니었단 얘기임.)
또한 그의 변설 역시 그야말로 흥미진진했다.

이들 이론은 모두 흥미진진한 것이었지만, 극단으로 상반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째서 모두 사람들을 움직여 경청하게 만들었는가?
그 차이점은 이러하다.

즉 소진이 말한 바 이해관계는 크고 먼데 비하여,
장의는 작고 가까웠기 때문이다.

是就大者遠者言之,張儀是就小者近者言之。

보통의 사람들의 안목이란 그저 짧고 얕다.
다만 눈앞의 이해에만 머무를 뿐이다.
비록 관우, 주유, 여몽 육손 따위의 재주가 뛰어난 인물들일지라도
눈앞의 작은 이익에 혹함을 면치 못한 까닭도 다 이 때문이다.
헌데, 항차 6국의 어둡고 아둔한 군주들이야 오죽할까나?
장의의 변설이 단 한 마디로 먹혀들어간 이치가 이러한 게다.
하지만,
연후의 역사적 사실이 이를 증명하였듯이 장의의 주장을 따르는 것은
망국에 이르는 길이었던 것이다.

소진의 주장이 옳다는 것이 이로서 증명이 된 바라.
지금 현재(淸末 당시),
논하는 자들이 열강의 노여움을 살까 두려워 약소민족연맹을 감히 만들지 못한다면,
이는 흡사 장의의 길로 달려가는 것과 같다.
원하노니, 독자들은 깊이 생각하시라!
재삼 심사숙고하라!
(이종오 선생은 당시 윌슨의 민족자결, 일본의 인종평등론 따위는 모두 제국침략주의의 거짓 포장술에 불과한즉, 중국을 비롯한 주변 약소국들은 6국이 소진의 변론에 따라 연횡하듯이 함께 연합하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원래 대를 이어 이름을 널리 알리고 있는 점포는 목전의 작은 이익에 연연하지 않는다.
묵묵히 신용을 쌓고 신의를 다하여 긴 안목으로 조금씩 명성을 쌓아간다.
이것이야말로 '大者遠者'라 할 것이다.

무슨 업종이 잘 된다 하여 우르르 몰려들어 가게를 차려 내고는,
짧은 시간에 한 몫 단단히 챙기려는 대개의 점포주들은
짧게는 2년, 길어야 4년을 넘기지 못하고, 장사를 접는다.

형제도 죽이고, 제 아비까지 죽이며 군왕에 오르고,
제 아비의 첩을 취하고, 며느리를 가로 채기까지 하는 전국시대일진대,
6국의 왕이라 한들 어찌 저 소리(小利) 취함에 약삭빠른 상인과 다를 바가 있겠는가?

한즉, 그들은 장의의 달콤한 변설에 쉬이 넘어갔으니,
당장의 이익에 혹하여 6국간 동맹의 신의를 버렸다.
하지만, 종내 모두 망하고 말았다.
멀리 내다보지 않고 목전의 안일함에 빠진 결과가 이러하다.

조삼모사(朝三暮四)라는 것도 이와 비슷하지 않은가?
무릇 소인에겐 당장의 이익은 실제보다 크게 보이는 것이라.

무릇 소인은 소리(小利)를 밝히다 망하고,
대인은 대리(大利)를 두고 아끼다 곤란을 겪는다.

하면,
역설적이지만,
보통의 인간들이 이러할진대,
이들을 상대하려면,
소진이 아니라 장의의 술책을 따라 폄이
외려 더 득책이라 할 노릇일런가?

약육강식이라 했지만,
실로 강한 자가 약한 자의 살을 먹을 수 있음은,
약자가 제 몸을 지킬 수 없이 약한 경우도 있겠지만,
때로는 스스로 소리(小利)를 좇기 때문일 때는 없을손가?

아아,
정녕 아지 못할 새라.

약한 것이 그른 것인가?
강한 것이 옳은 것인가?

약한 것이 어리석은 것인가?
강한 것이 현명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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