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길 리본
이 글은 오마이뉴스의 기사 내용 중에 등장하는 다음 내용을 접하고는 잠깐 적어 본 것입니다.
계곡 너덜 길은 눈이 덮여 산길이 보이지 않는다. 가끔 등산리본이 있지만 등산리본을 찾아가기까지는 이리저리 헤맬 수밖에 없다. 어떤 사람들은 등산리본이 환경훼손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처음 가는 산길이라면 군데군데 달린 등산리본이 반가울 수밖에 없다. 갈림길에서는 산길을 안내하기도 하고, 길을 잃었을 때 길을 찾아가는 길잡이 역할도 한다.
출처 : "더 이상 안 돼. 다시 올라가" - 오마이뉴스
산을 오르다 만나는 리본은 분명 공해입니다.
뒤따르는 일행을 위한 길표지로 나뭇가지에 매다는 리본 말입니다.
거지반 썩지 않는 비닐, 나일론 천 등으로 만들어져 있지요.
달아 놓을 때는 뒷사람에게 알림표지 역할을 하지만,
거두지 않아 버려진 후, 몇 년이고 남아 환경을 오염시킵니다.
특정인을 위해 단 일회의 사용으로 쓰임을 다한 것이
두고두고 산을 더럽히는 결과를 초래한다면,
이는 당연 옳은 일이 아닙니다.
리본 대신 휴대폰을 활용하거나,
여의치 않다면,
부득이할 경우에만 '종이 리본'을 한정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마땅할 것입니다.
하지만, 저라면 종이 리본 사용도 자제할 것입니다.
기사 내용대로, 길을 잘 몰랐는데, 우연히 만난 리본이 반갑다고,
리본 사용이 용납이 되어서는 아니 되겠지요.
분명 공해인데도 말이지요.
피치 못할 사정이 있는 것도 아니고,
조금만 주의하면 리본을 사용하지 않아도 충분한 것을,
단지 편리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공해를 유발하는 행위를 용인하는 것은,
바른 태도라고 할 수 없다는 생각입니다.
제 편익에 요긴히 복무하였다는 것만으로,
남들이 공해라고 지적하는 것을 그저 덮고 지나치기에는,
각종 공해로 찌들어 거의 신음을 토하고 있는 이 나라 산하에 면목이 서질 않습니다.
필요하다면, 대신 그런 곳은 별도의 팻말을 관리 주체가 앞서 마련하였어야 했을 것입니다.
그것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면, 이들의 각성을 채근하는 방법으로,
미흡한 현실을 개선하여야 바른 도리일 것입니다.
만약 그런 팻말 설치가 필요 없는 곳이라면,
그곳은 필경 등산을 자제하여야 할 곳일 것입니다.
일테면 위험지역이거나, 보호구역이겠지요.
내가 사는 북한산에는 봄마다 유치원생들이 몇 그룹씩 소풍을 옵니다.
그들이 지나는 길목 요소요소마다 울긋불긋한 각종 길안내 표지를 뿌리듯 붙여 놉니다.
하지만, 이들이 떠나간 자리에는 남겨 두고 간 것들로 어지럽습니다.
보통 이런 것들은 모양을 내느라고 썩지 않는 비닐로 제작을 합니다.
하루 놀고들 가지만, 남겨진 오물들이 산을 적지 아니 오염시킵니다.
대단히 적절치 못한 처사라고 생각합니다.
교육을 빌미로 우르르 몰려와서는 비교육적인 흔적만 남겨두고 사라지곤 합니다.
동네 야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유치원 교사들은
한 떼의 유치원생을 이끌고 와서는,
나무 마다 이름표를 걸도록 시킵니다.
그리 걸어놓고는 자기 나무라고 우쭐거리게 만듭니다.
하지만, 일 년 내내 다시는 찾아오지 않기에
당집에 걸어놓은 헝겊처럼 일대는 난장판이 되기도 합니다.
제 이름표를 걸었을진대, 관리가 이어져야 할 터인데도,
일종의 요식행위에 불과하기 때문에,
당장의 현장에서, 허위의 자기만족만 질펀할 따름입니다.
뒤이어 관리란 부담행위가 실종된 자리는,
마치 굿 해먹고 흩어진 무당의 집 마당같이 을씨년스럽기까지 합니다.
설혹 관리가 따른다고 하더라도,
공공의 장소에서, 제 것도 아닌 것에 저리 죽하니 이름표를 다는 것 자체가 애시당초 그른 노릇이지요.
나무를 사랑하는 일이란,
굳이 거창하게 뽐내며 제 이름을 내세우는 것으로 시작할 필요가 없습니다.
지나가면서 공연히 나뭇가지를 톡톡 부러뜨리지 않는 것만으로도,
당장 나무 사랑은 시작되는 것입니다.
나무 밑둥 근처에 버려진 병조각, 비닐 조각을 줍는 것은
조금 더 나무와 친해지는 단계로 진입하는 것입니다.
혹은 그윽한 시선으로 소나무 가지를 쳐다보면서
모진 풍설을 겪고 지난겨울을 용케 건너온 그들을 쓰다듬으면,
그게 저들에게 위로가 됨과 동시에 내 마음도 덩달아 정갈하니 가지런해집니다.
그저, 설경을 보면서 '아 좋다!' 하며 느끼는 것은
일회적인 감정의 소비가 돼 버리곤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거기엔 나무, 숲, 산에 대한 구체적인 사랑의 표현, 실천이 빠져 있기 때문입니다.
‘너무 멋있었어! 하고 감탄만 하면 무얼 하겠습니까?
등산길에 사탕 껍질도 버리고, 휴지도 그냥 버리지 않았는지?
버려진 쓰레기를 나 몰라라 하고 그냥 지나치고 말았지는 않았는지?
썩지도 않는 리본을 수십 개 나무 가지마다 걸어놓고는,
수거도 하지 않고 그냥 내려오지나 않았는지?
상대를 보살펴 아끼는 마음이 없다면,
아름다운 풍경을 보고 아무리 입을 하 벌려 감탄을 하였다한들,
그것을 불러 일회성 감정의 소비라 지적하였다 하여,
어찌 지나친 처사라 하겠는지요?
***
***
***
지난 초가을 등산길에서 발견한 리본이다.
某 인터넷 카페에 개설된 친목 단체가 나무 가지에 걸어놓고 떠나간 모습이다.
후에 저들과 접촉하였는데,
그중 한 회원은 나의 지적에 처음에는 막 화를 내었다.
그런데 잘못을 지적당한 게 마냥 화를 낼 일은 아니지 않은가 말이다.
게다가 본인 입으로도 잘못 된 것이라고 인정하면서도 자존심이 상했던 모양이다.
몇 차 쪽지 거래가 있은 후,
그는 내게 이런 쪽지를 보내왔다.
우리 함 만나서 .쐬주라두 한잔합시다 ....
우리집은 xxx입니다 ..........나는 그에게 이리 쪽지를 보냈다.
제악막작(諸惡莫作) 중선봉행(衆善奉行),
‘악을 짓지 말고 선을 받들어 행하라’라는 가르침도 있지만,
불사선불사악(不思善不思惡),
혜능의 ‘선도 생각하지 말고 악도 생각하지 말라’ 라는 말도 있지요.
저는 이런 가르침을 받고 자랐습니다.
‘인연 지음을 가벼히 하지 마라.’
이 뜻은 ‘인연이 귀하니 중히 대하라’는 뜻일 듯 싶지만,
실인즉 인연을 맺지 말라는 말이기도 합니다.
아니 보다 더 정확히는 인연에 매이지 말라는 뜻입니다.
- 불매인과(不昧因果) : 참고 글 http://bongta.com/200
즉 전자는 ‘제악막작(諸惡莫作) 중선봉행(衆善奉行)’의 경계요,
후자는 ‘불사선불사악(不思善不思惡)’의 지경을 거닐고 있는 것입니다.
저와의 인연은
그저 스쳐가는 바람인 양 여겨주세요.
그러하기에 전일 이리 여쭈었던 것입니다.
“산에 오르면 그저 바람(風)이 되라는 얘기에 다름 아닙니다.”
끝으로 제 글 하나를 소개하며,
그대와 함께
오늘 한 점 가을 바람을 맞이하고자 합니다.
이 말을 이제 다시 되뇌인다.
“산에 오르면 그저 바람(風)이 되라는 얘기에 다름 아닙니다.”
산에 올라 밑천을 뽑겠다는듯이 나대는 사람들이 있다.
담배 피워대고, 휴지 버리고, 고성방가, 화투질, 똥질 ...
산을 원수 대하듯 할 까닭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산에 오르는 순간만이라도,
한 점 바람이,
그래, 정녕 그런 바람을 닮을 수는 없겠는가?
은빛 바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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