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ngta      

소나무

소요유 : 2009. 3. 3. 11:40


내가 아주 어렸을 때, 가까운 이웃에 버드나무가 하나 있었다.

버드나무 주인은 축대 위쪽에 살았고,
그 바로 밑에 또 다른 집이 하나 있었다.
여름이 되면 그 버드나무에 쐐기(벌레)가 생겼다.
그러면 쐐기가 아랫집으로 하나 둘 떨어지곤 했다.
그 때마다 아랫집 할머니는 윗집에 달려가 벌레가 떨어지지 않게 하거나,
나무를 베어버리라고 포달을 부렸다.

마음이 순한 윗집은 제대로 대꾸도 하지 못하고 그냥 우물쭈물 넘어가곤 했다.
어느 날, 할머니는 이웃이 모르게 일을 저질렀다.
식칼로 버드나무 둘레를 뱅 둘러가며 껍질을 벗기어 버린 것이다.
그러자 그 나무는 시름시름 말라가더니만 급기야는 죽어버리고 말았다.

어린 소견에도 나무가 죽은 것이 참으로 속상했던 기억이 난다.
당시 벌레가 그리 끓으면 약이라도 칠 수 있었을 텐데,
왜 그냥 놔두었는지 나로서는 그 깊은 사연을 제대로 알지 못하겠다.

봄이 되면 동네 꼬마들은 너도나도 그 버드나무 가지를 꺾어 피리를 만들어 불었다.
물이 오른 가지를 베어 세숫대야에 담가두면 부들부들해지는데,
이 때 가지를 뺑그르 돌려가며 연필 깎는 칼로 칼집을 내고는,
잡아 빼면 껍질만 쏙 빠진다.
그리고는 끄트머리쪽, 피리의 입술 닿는 부분에 해당되는 길이만큼 겉껍질을
살짝 벗겨내어 연한 속껍질만 남겨둔다.
이 속껍질이 reed 즉 떨림판 역할을 하게 되는데,
이를 입술로 슬쩍 물고 불면 그럴싸한 피리소리가 난다.

관이 굵은 것일수록 가슴까지 울리는 저음의 소리가 나는데,
소리도 그윽하니 안으로 감아들어 좋았지만,
무작정 큰 것에 욕심이 동하여,
경쟁하듯이 큰 피리를 만들려고 애들을 썼다.
하지만 큰 가지에는 작은 가지가 뻗어나간 곳에 옹이가 생겨 있기에,
껍질을 벗기는 도중에 이 결절이 껍질을 찢기 때문에,
온전한 것을 만들기가 쉽지 않았다.

나는 최근 며칠 새 어린 시절의 이 버드나무를 생각해내게 되었다.
허리가 잔뜩 굽혀진 할머니가 식칼로 버드나무 껍데기를 벗기어내는 장면이
flashback되어 아득한 시간의 강을 건너 다시 내 앞에 서있다.

내가 다니는 등산길에서 늘 마주하는 소나무는
흔히 적송이라고 말하곤 하지만,
제대로 부르자면 ‘소나무’라고 불러야 옳다.
우리나라 소나무는 그냥 소나무로 불러 스스로 족하다.
공연히 번거롭게 부산을 떨 필요가 없다.

이젠 산에 있는 소나무는 외래종 소나무가 우점(優占)한 상태다.
쉽게 구별하는 방법은 외래종 소나무는 솔잎이 3개인데, (※ 잣나무는 5잎)
우리나라 소나무는 솔잎이 2개 붙어난다.
여기 북한산만 하여도 산속엔 거개가 솔잎 3개짜리뿐이다.
나는 어쩌다 두 개짜리를 만나면 한번이라도 더 쳐다본다.

솔잎이 단 두 개라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사뭇 귀하게 느껴진다.
고결한 품격을 지녔기에 수선 떨지 않고
그리 담백하니 딱 두 개만 잎을 돋운 게 아닌가 싶은 것이다.
그 뿐인가?
하늘을 치솟으며 주칠을 한 듯 붉은 빛의 위용을 떨친 모습을 보면,
탄성이 절로 일어난다.
마치 구름을 불러내며 막 용이 승천하는 기상과 같다.

하늘로 죽 솟은 자태는 얼마나 장엄한가?
굳세고 고고하니 이야말로 아름답다고 일러야 마땅하다.
곱고 어여쁜 것만 아름다운 게 아니다.
소나무 앞에 서면, 외려 이런 곱살스런 자잘한 것을 여의었기에
품격 있는 아름다움을 느끼게 된다.
하여 나는 서슴없이 소나무에게 ‘아름답다’라는 헌사(獻辭)를 받친다.

사뭇 자랑스러운 우리나라 나무다.
소.나.무

나는 산을 오를 때면,
하루도 빼먹지 않고 붉은 소나무를 경배하듯 묵연히 쳐다보곤 한다.
밑동부터 하늘 높이 뻗친 가지 끝까지 쓰다듬듯 가만히 시선을 옮겨가며,
저들을 마음으로 영접한다.
북한산 입구를 지나면 계곡을 건너 훤칠한 소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게다가 나는 요소요소 아름다운 소나무가 있는 곳을 잘 알고 있다.
아주 복 받은 동네가 이곳이라,
재주없는 나 역시 그 은덕을 덩달아 누린다.

동네 뒷산을 타고 가로질러 가다보면,
산기슭에 예전 동제(洞祭)를 지내던 터가 있다.
내 어렸을 때만 하여도 10월 상달엔 동네마다 고사를 지냈다.
동제도 지냈지만, 집집마다 개별적으로 따로 고사를 더 지냈다.

고사가 끝나면 자기 집 고사떡을 이웃들에게 죽 돌렸다.
이 때쯤이면 온 동네 사람들이 고사떡을 서로 주거니 받게 되는데,
결국은 10월 상달에는 이 떡을 매개로 하여,
온 동네 사람들이 미우나 고우나 관계를 맺지 않을 수 없게 되는 셈이다.

설혹 섭섭한 사이였다고 한들, 그 집만 빼놓고 떡을 돌릴 수는 없으니,
떡을 매개로 하여 슬그머니 자연 관계가 복원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떡을 받은 이상, 빈 그릇(목판,쟁반)을 돌려주어야 하기에,
싫어도 그 집을 되방문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물론 빈 목판을 돌려주지는 않고,
거기에 자기 집 떡을 담아 다시 돌리게 되니,
이리 안팎으로 재우쳐 접촉하는 사이 절로 소원해진 사이가 풀려지곤 하였다.

이게 그리 먼 옛날이야기가 아닌 것이다.
나는 원래부터 서울 사람이지만 이게 30~40년 전에도 남아 있었다.
그러하니 시골에는 더 늦게까지 남아 있었을 것이다.
여기 북한산에는 아직도 10월 상달에는 동제가 있음을 알리는 플래카드가 걸리곤 한다.
한번 동참한다면서도 기회가 닿지 않아 한 번도 끼지 못하였는데,
올해에는 인연이 닿기를 기원한다.
 
그 당시만 하여도 아낙들이 신령이 깃든 곳이라 여겨지는 곳이면,
어디건 간에 두 손을 비비며 하늘을 섬겼다.
그러하기에 장독대에서도, 허공중 달을 보고서도 신심을 길어 올렸다.

지금이야 기독교도가 한참 득세하고 있고,
내 집사람만 하여도 천주교신자이지만,
우리네 풍속은 30-40년 전만 하여도 하늘님을 가까이 하고 살았음이다.

박정권이 새마을운동을 벌여 초가집을 헐어내고 스레트기와로 바꾸듯이,
이 땅의 정신세계도 까무룩 넋을 놓고
무연히 밖의 것을 쫓아가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감상을 갖는다.
이제는 하늘님, 하느님 그 이름조차 남에게 빼앗기고,
동네 구석탱이에 처박힌 우리 고유의 정신신앙, 그 탯자리 앞에 나는 서 있는 것이다.

거기 저들 홀로 지키고 서있던 소나무까지 저리 모진 수난을 당하고 있으니,
참으로 부박스런 세태라 하지 않을 수 없음이다.

여기 동제를 지내던 터 주변엔,
아름다운 소나무가 몇 그루 서 있다.
그런데 얼마 전 껍질을 벗겨낸 것을 발견했다.
인접한 다른 나무는 멀쩡한 것으로 보아 병해가 아닐 것이며,
또한 어느 날 갑자기 저리 확 벗겨진 것으로 미루어,
필시 어떤 몹쓸 인간이 헤살 짓을 한 것이리라.

사용자 삽입 이미지
(소나무 뒤가 동제를 지내던 터다.)

순간 속에서 천불(天火)이 솟으려 한다.
나는 이젠 이런 짓을 보는 것에 익숙하다.
다독여 재우며 나는 내게 타이르기로 한다.
삼계화택(三界火宅)

약수를 훼손하고,
멀쩡한 벌집을 쑤셔대고,
소나무 껍질을 벗겨내고 ...

그러고 보면 나무껍질 벗겨낸 것을 목격한 것은 이번만이 아니다.
저쪽 반대편 동산에서도 보았던 적이 있다.

사람들은 왜 이리 힘들게 사는 것일까?

삼계화택(三界火宅)

삼계가 온통 불난 집이라,
그에 든 인간이란 도대체 어쩔 텐가?
참으로 인간의 번뇌는 아득 묘연 그 끝을 모를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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