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道德)의 유해(流解)
노자가 또한 말했다.
“도(道)를 잃은즉, 덕(德)이 나타났고,
덕(德)을 잃은즉, 인(仁)이 나타났으며,
인(仁)을 잃은즉, 의(義)가 나타났고,
의(義)를 잃은즉, 예(禮)가 나타났다.”
‘실(失)’을 ‘류(流)’자로 다시 풀이해보면,
“도덕인의례(道德仁義禮) 다섯은 연하여 아래로 꿸 수 있다.”
(※ 즉 도가 흘러 덕이 되고, 덕이 흘러 인이 되며, 인이 흘러 의가 되고, 의가 흘러 예가 된다는 말.)
노자는 만물변화의 궤도를 철저히 알았던 것이다.
마음에 얻은 바 있으니,
노자는 이를 도덕이라 하였다.
노자의 제자들은 이를 두고 각기 지어내길 이러했다.
즉,
공자는 인(仁)을,
맹자는 의(義)를,
순자는 예(禮)를,
한비자는 형(刑)을 중시하였다.
그리하여 각기 제 길을 완성하였다.
이종오 선생은 중국학술지추세(中國學術之趨勢)에서
성현(聖賢)에 대해 이리 등급을 매겼는데,
부처 - 장자 - 노자 - 공자 - 고자 - 맹자 - 순자 - 한비자 - 양주 - 묵자 - 스펜서 - 다윈 - 니체
내겐 이 또한 그럴싸한 의견으로 보인다.
다만 나라면,
부처 ─ 장자 ─ 노자 ┬ 공자 ─ 맹자
├ 고자
├ 묵자
└ 순자 ─ 한비자 ─ 양주 ....
로 보고 싶다.
공자, 고자, 묵자, 순자를 병치시킨 것은
나는 이들을 모두 차별없이 사랑하기 때문이다.
선후우열을 감히 논할 까닭이 없다.
다만 가는 길이 달랐을 뿐.
그리고,
위에서 인(仁) → 의(義) → 예(禮) → 형(刑)의 흐름외에
다른 글에서 이종오선생은 → 병(兵)을 마지막에 덧붙였는데,
이 또한 당연한 말씀이라 하겠다.
그러하니 위 성현 등급 중 한비자 다음에 손자(孫子)를 추존하여도 가하다 하겠다.
한즉, 다시 flow chart를 그리자면 이러하다.
부처 ─ 장자 ─ 노자 ┬ 공자 ─ 맹자
├ 고자
├ 묵자
└ 순자 ─ 한비자 ─ 손자 ─ 양주 ....
나는 앞에서 간간히 제자백가는 대립항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곤 했다.
(※ 참고 글 :☞ 2008/12/23 - [소요유] - 청수(淸水)와 탁수(濁水))
의사가 병증에 따라 처방을 달리하듯이 저들은 각기 다른 뜻을 들어 세상에 나왔으나,
천하를 걱정하고 사랑함에는 하등 차이가 없는 것이다.
멈춰 궁구하거니와,
노자 이후는 그냥 원환(圓環)으로 두어 새기는 것이 후학의 삼가는 도리가 아닐까 싶다.
아니, 더 짚어 나아가자면,
이종오 선생은 부처를 맨 앞장에 놓으셨으나,
이는 방편상 내성(內聖)으로 일시 한정하였기 때문이리라,
내성(內聖), 외왕(外王)을 나누지 않는다면,
이리 줄을 세울 수고를 더할 까닭이 있을까나?
돌이키건대, 졸학(卒學)으로서는 이런 작별(作別) 짓거리가 내내 참람스럽기 짝이 없다.
나 개인적으로는 당연 이런 구별이 별로 살갑지 않다.
감히 범인이 아니라한들, 나누어 짝 짓고, 차서(次序)를 짓는 것이야말로,
브르조아들의 한가한 시간 지우기에 다름 아닌 노릇일 것이란 믿음 때문이다.
나는 믿건대,
브르조아건, 프롤레타리아건 그 무엇이건대 따로 힘 주어 믿지 않는다.
다만, 천하사를,
그래,
그를 백번 양보하여 믿는다한들,
나는 기꺼이 약자를 믿는다.
믿는다면,
거창한 하늘을 향한 믿음없이라도.
이 땅에 기댄 조촐한 믿음,
그 한 가닥만으로도 충분히.
약자를 위한다면,
그것이 수구이든, 진보든, 그것이 무릇 어떠한 것이든,
또는 브르조아건, 프롤레타리아건,
나는 기꺼이 우선 온 힘을 기우려 보태고 싶다.
나는 소박하다.
무식할지언정, 기꺼이 약자 앞에서.
그후,
다음 일은 다음 차례가 예비하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여기 지금,
다만, 현장을 증언해야 한다.
나는 누구든 간에 약자를 향한 관심이 빗겨져 있다면,
여하연 것이든, 의심한다.
강자를 위한 어떠한 이론이든,
아무리 그럴듯이 포장이 되었어도,
나는 그를 회의한다.
최소한 약한 이들의 소망이
지금, 이 땅에서,
피끓는 아우성으로 존재하고 있는 한.
내 소시적 카톨릭교 여인을 만난 적이 있다.
그녀는 말했다.
"가난한 사람을 아끼고 사랑하여야 한다."
나는 당시 채 익지 않은 그저 차갑기만 한 의식으로,
가난이 왜 그 이름만으로 사랑의 객체가 되어야 하는가?
이리 대꾸를 했지만,
이제와서 그녀의 말,
아니 그게 카톨릭의 위대한 말씀이라도 좋다.
나는 그것을 신뢰한다.
가난은 개인의 책임을 넘어 구조적인 희생임을 목격하였기 때문이다.
이 때 우리는 그녀, 아니 카톨릭교의 따뜻한 사랑을 만난다.
물론 나는 최근에 중세 카톨릭의 더러운 만행을 다시 공부했지만,
그녀의 따스한 마음을 다시 되 상기하며,
모든 약자를 가만히 돌아본다.
뭣이냐?
하지만,
약자를 위한 단 한 푼의 값싼 동정을 내세어,
감히 현장의 아픔을 덮어,
지금 이 자리를 대신 증거할 수 없다.
왜냐?
증거란,
제 아픔없이 결코 드러낼 수 없으니까.
"증거, 증명이란 늘 선두에 아픔을 향도로 내세우고 있음일진 저."
한편,
그쳐 다시 돌아가,
다만 살피건대 위 이종오 선생의 도표를 두고 말한다면,
후대에 유교 중심으로 판이 짜져 그외는 모두 역사의 그늘 속으로 빛이 잠겨버렸다.
이는 주자를 비롯한, 그에 따르는 유학도들의 편협함에 기인한 것이라 할 터,
나로서는 '성인이라 부름'을,
"그래 나는 성(聖)을 믿지 않는다.
성(聖)을 말하는 현장엔
늘 위선이 가까이 임하고 있다."
-- 나는 내게 주문한다. 이를 잊지 말기를
그래서 그것을,
또는 그를 빌어 말하는 그자들을,
나는 믿지 않기로 나에게 가만히 타이르듯 약속했다.
조금은 슬픈 현실이지만,
나는 이를 딛고 약간 량(量),
허무에 빠진 나를 위로할 수 있었다.
이런 따위의 줄긋기, 줄세움 놀음을,
나는 본원적으로 혐오한다.
한껏, 너그러이 봐준다한들,
이 따위를,
과시 어줍지 않은,
혹은 짓궂은 놀음으로,
나는 물론 도외시 치부하고 말지만,
짐짓 양보하여,
이를 의론의 편의상 잠시 두고 논하고자한들,
어찌 성인이라 일컫는다 할 때,
공자만 앞장 서서 있으랴.
영웅호걸은 본시 시대를 거스르고,
공간을 넘나드는 것인즉,
감히 한 곳, 한 때에
가두워 롱(弄)할 수 있으랴.
이리 공자를 닦아 세워 홀로 앞 세움,
그 우연(偶然)의 역사현실 앞에 서서,
나는 다만 ...
추연(惆然)한 마음을 가다듬고,
'그것이야말로, 다만 역사의 명운(命運)이라 일러야 할 뿐이라.'
이리 내게 스스로 타이른다.
어찌 다른 도리가 있으랴.
이종오 선생의 글을 대하니,
평소의 내 뜻에 십분 계합(契合)이 되니 아연 놀랍다.
해서 해당 부분을 성글게나마 이리 새겨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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