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ngta      

비(雨) 같은 친구

소요유 : 2009. 2. 10. 23:50


어느 날 집을 나서 막 동네 산을 가로 지르고 있는데,
갑자기 등산화 밑창이 덜거덕 거린다.
며칠 전 제법 쓸 만하다고 안사람에게 칭찬까지 해준 신발인데,
멀쩡하던 것이 탈이 났다.
얼른 집으로 되돌아가서 다른 신발로 바꿔 신고 재차 산을 오른다.

안사람은 신발을 고치겠다고 가지고 나갔으나,
신기료장수가 이사를 가버렸다고 그냥 되가져왔다.
도리 없이 한쪽 구석에다 넣어 두었다.

수일 후, 등산 중에 사귄 한 분 선생님을 산에서 만나다.
선생은 손재주가 뛰어나셔서,
자신이 입는 등산복도 이리저리 조합하여 멋지게 고쳐 입으시곤 한다.
게다가 집안 인테리어도 직접 하실 정도시다.
등산화도 곧잘 수선하신다는 말씀을 들었던 기억이 난다.

여쭙기를,

“등산화 밑창이 떨어졌는데,
선생님 그것 어떻게 수선하지요?”

“아, 그러면 그거 오공본드로 붙이면 돼.”
이모저모 수선하는 요령도 우정 차근차근 일러주신다.

하산길에,
문방구에 가서 오공본드를 달라고 하니,
벽돌짝 만하게 큰 것을 내놓는다.
선생께서는 튜브에 들어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그만한 것은 없느냐 하니까 철물점 주인은 그런 것은 없다고 한다.
혹시 몰라 xx표 본드를 사가지고 나오지만,
그것은 접착력이 그리 신통치 않을 것 같아,
영 자신이 없다.

며칠 후 산에서 만나 뵌 그 선생님은 배낭에서
오공본드를 꺼내신다.
마침 쓰고 남은 것이라며 건네신다.

척 보니,
보기에도 야무진 게 맞춤 맞겠다 싶다.

“어, 우리 동네에선 팔지 않던데, 그것은 어디에서 구하셨는지요.”

선생 동네에서는 그것을 구할 수 있다는 말씀이시다.

또 며칠 후 등산길에서,
막 하산을 하시는 선생님을 뵙다.
정색을 하시면서 그러지 않아도 줄 것이 있다고 하신다.
배낭을 내리시더니,

사용자 삽입 이미지
오공본드 두 개를 내미신다.

“하나만 주셔도 충분한데,
두 개씩이나 주실 필요 없습니다.”

“아냐, 나는 많아.”

필경은 나를 위해 부러 준비를 하신 게다.

나는 앞에서 선물에 대하여 단상(斷想)을 적은 적이 있다.
(※ 참고 글 : ☞ 2008/12/28 - [소요유] - 선물(膳物))

그날 건네신 오공본드는 결코 선물이 아니다.

주는 분이나,
받는 나에게나,
그것은 선물이 아니다.

그것은 그냥 우정(友情)의 표현양식일 뿐인 것을.

구우(舊雨)
신우(今雨).

내리시는 비처럼 촉촉이 젖어드는 사이.
해서 오랜 친구를 구우, 새 친구를 금우라 하지 않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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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지우 2009.02.26 00:46 PERM. MOD/DEL REPLY

    제가 넘 자기 위주인지도 모릅니다..
    무슨 때가 되어 선물하는 것, 모이는 것이 참 싫습니다.
    역겨울 정도로 내키지 않습니다..

    하지만 어떤 것이 그 누군가에게 참 요긴하겠다 싶으면, 당장 선물하고 싶지요..
    그래서 별로 가깝지 않은 친척 아가에게 비싼 탈 것을 사주기도 하고,
    온라인에서 소통한지 얼마 안되는 이에게 인터넷 쇼핑을 해서 보내기도 합니다.
    이런 제가 실용주의자인가요?

    벽돌짝만한 오공본드란 말씀에 웃었습니다^^
    정말 딱 그렇네요..
    그것이 조금 쓰고 끝부분을 묶어놓아도, 오래 지나면 딱딱하게 굳어버립니다.
    비교적 해로운 성분이 덜한 본드라지만, 그래도 좋지않은 화학성분이 꽤 들어있을텐데
    그렇게 쓰지도 못하고 버리게되면 정말 죄스럽지요..
    오공본드도 200, 205인가 번호가 여러가지이며 접착력도 달라서
    그것도 알고 사지 않으면, 또 그냥 못쓰고 버리게 될 수 있습니다.

  2. 사용자 bongta 2009.02.26 08:58 신고 PERM. MOD/DEL REPLY

    나중에 가만히 생각해보니,
    지난 겨울에 뒤축으로 약수터 둘레에 잔뜩 붙은 얼음을 깼더니만,
    그만 밑창이 그리 된 것 같더군요.

    오공본드에도 그런 구별이 있군요.
    나중에 필요시 살펴 챙겨야 할 정보군요.

    선물은 제가 별도로 글( http://bongta.com/436 )을 썼습니다만,
    모종의 기획 의도, 특히 악의의 숨은 기도가 있을 경우가 적지 않지요.
    경계하여야 할 것이로되,
    선물은 무색투명하게 현실만을 증거하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즉 지금, 당장 마음속에서 일어난 뜻, 감정 등,
    이것을 정표(情表)라고 하나요?

    이를 드러내어 그치고,
    미래는 기약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게 미래까지 음영을 드러낼 때,
    정표에 깃든 아름다움이 급속히 허물어지기 시작합니다.

    사뭇 누추한 일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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