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슬
등산을 하다보면 좁은 길을 서로 갈라 스치고 지날 때가 많다.
이러할 때는 서로 옆으로 몸을 틀어 가급적 상대에게 부딪치지 않도록 조심하여야 한다.
하지만, 오르고 내리느라 모두들 힘이 들어서 그런 것만도 아니련만,
몸을 바로 한 채 그대로 진행하는 이가 적지 않아,
내 짐작대로, 상대도 옆으로 틀 것이란 겨냥에 맞춰 내 몸을 틀면,
예상이 빗나가 상대와 부딪히기 일쑤다.
하기에, 상대의 양보를 아예 기대를 하지 않고 잔뜩 비껴 틀어야 덜 부딪힌다.
어느 날은 댓 사람 이상에게서 부딪히고 산길을 올라간 적도 있다.
그후 나는 재미있는 여러 가지 실험을 해보았다.
하나는 앞에 사람이 나타나면 부러 짐짓 중앙을 차지하여 씩씩하게 올라가는 것이다.
그러면 상대는 미리 대비하려는 듯 좌우 어느 한편으로 조금씩 비켜나곤 한다.
그러다가 상대와의 거리가 좁혀지면 그 때 비로소 바로 틀어 엇갈리면,
상대와 부딪힐 확률이 훨씬 적어진다는 것을 경험했다.
물론 이런 짓은 상대에게 불편을 끼치는 것이라,
평소에는 이리하면 아니 되겠지만,
실험중, 이리 미리 한쪽으로 등행노정(登行路程)에 사전보정용 편심(偏心)을 두면,
바람직하지 못한 사태가 후에 보정된다는 것을 확인하는 성과(?)를 얻어내게 되었다.
이는 역시나 평소에 대개의 사람들은 타인과의 접촉을 염두에 두고,
미리 사려 양보하는 등행을 하지 않는다는 반증 자료가 되기도 한다.
또 하나 다른 실험도 해보았다.
그것은 서로 가까이 좁혀질 때쯤,
거의 멈추듯 등행 속도를 확 줄이는 것이다.
이 때 상대는 통과 지점 목(頸)을 긴장된 의식으로 맞게 된다.
그리되면 상대 역시 속도를 줄이게 되든가,
몸을 트는 등의 길목 교착상태(交着狀態)에 미리 대비하는 행동을 하게 된다.
이런 실험을 통해 나는 상대에게,
미리 나에 의해 조작, 준비된 신호정보를 전달한 것이고,
이 때라야 비로소 바람직한 교행(交行)이 가능해진다.
문제는 이런 실험동작을 내가 의식적으로 행하는 것이
내게 일방적으로 득이 되는 것만도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억지스런 동작은 내게 양심적인 불편을 초래함은 물론이거니와,
심신을 긴장케 하는 등 부담으로 작용하여 하나도 행복하지 않다는 것이다.
피차 양보와 절제로서 원활한 교행(交行)이 이루어져 하는 것을,
어느 일방의 의식적인 수(數) 단위 교정 노력이 추가로 투입되어야만,
비로소 균형만족상태가 현실에서 가까스로 획득된다면,
이는 얼마나 불행한 노릇인가 말이다.
그렇다고,
내가 상대가 부담해야 할 양보의 양까지 보태,
곱으로 몸을 잔뜩 틀고 지나가야 한다면,
이는 나의 일방적인 희생을 아까와 하기 이전에,
현실이 언제나 잘못 된 상태로 고정되는 것을 방조하는 것임이라,
이 또한 도대체 딱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라 하겠다.
하지만,
나로서 뭐 뾰족한 방안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냥 이대로 주어진 사회 안에서 함께 살고 있는 업보라고 치부하는 것 외,
무슨 도리가 있으리오.
나는 앞에서 'private distance'란 제하(題下)에 글을 썼지만,
일없이 왜 남의 옷깃인들 스칠 까닭이 있는가?
언제 저들하고 인연 트자고 청이라도 하였단 말인가?
(※ 참고 글 : ☞ 2008/02/22 - [소요유] - private distance(個人距離))
지나다니면서, 툭툭 치는 것을 예사로 살고 있으니,
참으로 천박하고 딱한 현실이다.
서로 삼가며 배려하는 예를 갖추었으며 하는 것이다.
그것은 그렇고, 나는 어느 날 아주 묘(妙)한 일을 겪게 되었다.
묘(妙)하다는 말을 사람들은 대개는 ‘야릇하다’, ‘기이(奇異)하다’라는 정도로 새기지만,
사실 이 말은 ‘아름답다’, ‘훌륭하다’란 어의(語義)가 품 안에 숨겨 있다.
일상적으로는 ‘착하다’, ‘좋다’라고 새기기만 하여도 얼추 본래의 뜻에 더 가까울 때가 많다.
하여간 그날 나는 묘(妙)한 경험을 했다.
야릇한 것이 아니라 아름다운 일을 만난 것이다.
이 말을 끄집어내기 위하여,
앞에서 별 일인 양 잔뜩 형식적인 글틀을 빌어,
잡설 글 놀이로 짐짓 꾸며 파적(破寂)해본 것이다.
내가 다니는 북한산쪽 가근방에는 수녀원이 여럿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래서 그런지 북한산에서 수녀님을 심심치 않게 뵙는다.
대부분 동무로 짝을 지으셔서 오르지만,
단아하니 조촐하신 모습들이 뵙기 좋다.
우선은 여느 등산객들처럼 무엇인가 들뜬 듯 부산스럽다거나,
혹간, 여기저기 만나는 숲을 훔치고, 유린하려는 듯한 이들에 비하면,
가히 명주출해(明珠出海) 상이라,
망망한 바다를 막 벗어나 홀로 빛나는 구슬처럼 귀한 모습을 뵌다.
여기 북한산 동네에 들어와,
개신교, 천주교, 불교를 가까이에서 관찰할 기회를 갖게 되었는데,
덕분에 저들의 적나라한 실상을 많이 알게 되었다.
내 개인적인 제한된 경험으로 치부하여야 할 노릇이겠지만,
다른 이들과는 다르게 아직까지 수녀님에게서는 인상을 흐려본 적이 없다.
따라 배움이 크다.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 참고 글 : ☞ 2008/10/08 - [소요유/묵은 글] - 물음을 물을 수 없는 물음)
폐일언하고,
스님들도 잿빛 가사를 걸치지만,
수녀님들도 회색빛 옷을 입는다.
나는 저들 잿빛 옷을 보면 아스라하니 슬픔을 엿본다.
저게 저들만의 전속(專屬)인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중생들의 것을 대신 또는 대표로 몸에 걸치신 것이리라.
(※ 참고 글 : ☞ 2008/08/08 - [소요유] - 잿빛 사문(沙門)의 길)
어느 날 내가 막 산기슭을 지나려는데,
마침 서너 장(丈) 앞에 수녀님 한 분과 동행한 여인 하나가 걷고 있었다.
내 발자국 소리를 들으셨음인가?
수녀님이 해맑은 웃음을 지으면서 뒤를 돌아보신다.
이어, 곁에 가던 여인네 팔을 잡아끌며, 길 한쪽으로 몸을 사리시며,
길을 내주시는 게 아닌가 말이다.
거기는 주통로라 길 너비도 사뭇 넓어,
내가 얼마든지 피하여 갈 수도 있는 사정인데도,
우정 배려를 해주시고 계심이라.
나로서는 북한산에서 이런 선묘(善妙)한 일을 마주친 게 처음이다.
오호라,
선재(善哉)!
묘재묘재(妙哉妙哉)!
순간, 아련히 어린 시절로 장달음친다.
내 어렸을 때는 어른하고 길을 스쳐 가를 때,
감히 막아서거나 앞질러 가지 않았다.
지금은 위아래도 없고,
그저 자기만 아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말았다.
모두들 밥 굶지 않고 귀천 없이 살게 된 것은 다행이라 하겠지만,
염치가 많이 깎이고, 예의는 적지 아니 잃고들 사는 게 아닌가 하는 감상이 이는 것이다.
도대체가 사람들이 공순(恭順)함을 잃어, 선한 구석이 사라졌음이라,
그저 이해만 밝혀 마음만 분주하니 바쁜 이들로 가득하다.
그러하지 않다면,
대운하는 물론,
지리산녘 지자치마다 눈깔 시뻘갛게 달구어 케이블카 설치하자고 아귀다툼을 벌일 것이며,
지방마다 소싸움, 말싸움, 경견(競犬) 대회 창설하느라 게거품을 물겠는가 말이다.
천하가 천박하게 돌아가고 있는 정경이 이러함이라.
그날 만난 수녀님의 미소가 어디선가 본 듯하여,
며칠 궁리를 텄으나 오리무중이더니만,
오늘 이 글을 쓰면서 슬며시 떠올랐다.
서울대학병원 2층에 가면 한쪽 구석에 안경원이 있다.
거기 커다란 포스터가 몇 점 바깥에 붙여져 있는데,
그 중 하나,
한 여인네가 안경을 쓰고 있었는데,
바로 그 청초한 여인네의 엷은 미소와 비슷하더라.
하여 여기 올리려고 웹에서 검색을 해보았으나,
아쉽게도 찾아내지를 못했다.
두어라.
명주(明珠)는 귀한 것이라,
잠깐새, 세상을 놔두고 은은(隱隱) 숨어 계심이라.
늘 그러하듯이 기린 것은
은주(隱珠), 잠주(潛珠)로 계시옴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