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ngta      

생강나무

소요유 : 2009. 3. 22. 12:14


북한산 중턱쯤 늘 모여서 화투로 소일 하는 사람들이 있다.
조용한 계곡이 늘 이들이 떠드는 소리로 소란스럽다.
날씨가 궂은 날을 빼고는 거의 출근하다시피 모여들 든다.

이들이 코 묻은 돈을 걸고 소일(消日) 즉 말 그대로 하루를 지우는 짓을 하든,
술을 먹든 무슨 짓을 한들 내가 관여할 일은 아니다.
하지만, 문제는 화투를 치면서 이들이 저지르는 패악질을 견딜 수가 없다.
화투질 하면서 안하무인 “쌌네, “먹었네” 하며,
온 계곡이 떠내려가듯 와르르 소리를 내지르고,
담배 피어대며,
앉은 자리 주변에 쓰레기를 그냥 버리고 퇴근(?)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는 다음 날 씩씩하게 다시 출근을 한다.

어느 날 하루 놀러와서 그 짓 하는 것이라면,
내 짐짓 모른 척 해줄 수도 있음이다.
휴일 시간을 그리 모여 노는 것도 사람 사는 정경에 하나라,
그려러니 하고 지나칠 수도 있다.

하지만, 거의 매일 출근해서 저리 제 자리를 어지럽히고,
산하를 유린하는 족속들은 용서가 아니 된다.

동일한 장소, 연중 내내 같은 족속들이 이 짓을 자행한다.
나는 금번뿐이 아니고, 지난 2006년도에도 2007년도에도 이들을 제재하여 줄 것을
북한산 공원 당국에 신고를 하였다.
하지만 별 무 소득이었다.

왜 그럴까?
이곳 형편을 살피려면 먼저 당시의 사정을 짚어볼 필요가 있다.

2007년도 2월이었다.
당시 나는 누차 이들을 처리해줄 것을 신고했으나,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하여 부득이 최고 책임자에게 연통을 띄었다.
그러자 온 북한산 직원에게 비상이라도 걸린 듯,
계곡 일대에 직원이 우르르 몰려들어 쓰레기를 치우고 난리를 치운 적이 있다.

이 때, 담당 책임자 L이 나에게 면담을 신청했다.
그가 내게 고백한다.

“거기는 일 년 내내 한 번도 청소한 적이 없는 곳이다.”

늘 그러하듯이 저들이 내뱉는 말은 천편일률 똑같다.

“미쳐 인력이 없어 손이 미치지 못했다.”

그러면서도 앞으로는 매일 직원을 배치하여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하겠단다.

나는 말했다.

“그럴 필요 없다.
인력이 딸리는데, 이곳에 직원을 배치한다면 그럼 이제껏 그나마 배치된 곳은
오히려 소홀하게 되지 않겠는가?
하니 그러지 말고, 일주일이면 일주일 아니면 2주면 2주든 한 번만이라도
직원이 정규적으로 들려 청소하는 계획을 짜서 시행하는 것이 낫지 않은가?
최소 이만만 수고해주어도 고맙겠다.”

위로부터 질책을 받아 그가 제대로 할 것같이 말하지만,
저게 시간이 지나면 필경은 다시 풀리고 말라는 것을 나는 뻔히 안다.
후일,
몇 개월이 지나자 그 계곡은 예전의 상태로 다시 돌아갔다.
쓰레기는 여전히 버려지지만 누구 하나 치우는 사람 없었고,
저들 도박꾼들은 다시 출몰했다.

나는 당시 그에게 몇 가지 당부하였다.

1. 역사(歷史)를 관리하라.

저들 도박꾼들을 계도 훈방하는 것도 좋은데,
신원을 확보하여 관리를 해야 한다.
하여 1차, 2차 ... 적발하여 이력이 쌓이게 되면,
나중에 벌금을 물려 엄히 혼을 낼 때 명분이 생긴다.
그러한 것을 그냥 놔주고는 시간이 흘러
또 다른 어느 날 다른 직원이 다시 만나서는 또 놔준다.

“묵은 사건이로되, 이 계곡엔 늘 새로운 사건만 일어난다.”

그러하니 뻔한 사건이 근절이 되지 않고 있는 게 아닌가?
저들 도박꾼들은 늘 한결 같은 사람들인데도,
수차 내가 신고해도 여전히 계곡을 점령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하다면 나의 신고는 무엇이고,
그대들의 단속이란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가?
당신들은 이번에도 저들을 그냥 놔주었다.
저들을 어여삐 보아줄 속 깊은 무슨 사연이라도 감추었더란 말인가?
그게 아니라면 도대체 왜 내가 여러 차례 수고를 하고,
당시 직원들은 이리 고초를 겪는가?
이 얼마나 미련하고 딱한 노릇이란 말인가?
이 나이에들 숨바꼭질 할 까닭이 있는가?

2. 매뉴얼화하라.

당신들은 2년 주기로 돌림인사를 한다고 하더라.
사람이 바뀌면 다시 업무가 밑바닥부터 새로 배워지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있다.
집단 역량의 역사적인 축적이 없다.
이 계곡만 하여도 여차저차 한 사정이 있으니,
이리저리 한 인원을 투입하고, 여기저기 위험하고 요감시처가 있은즉,
요리조리 처리하면 된다라는 업무지침이 진작부터 만들어져야 했지 않은가?
만약 그리됐다면 오늘 같은 일이 벌어졌겠는가?
이 좁아터진 뻔한 곳을 장악하지 못하는 그대들의 잘못은,
바로 업무집행 지침이 확립되지 않은 것이다.
한즉 업무를 매뉴얼 화하고 정규화하라.
그리하여 당신이 여기를 떠날 때도,
사람이 아니라, 일 중심으로 인수인계가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그에 의거해 책임을 부과하고 묻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3. feedback 부재

신고하고 나서 feedback이 없다.
신고한 사람에게 처리 경과를 통보해주는 게 예의가 아닌가?
신고한 사람은 당신들 업무를 무보수로 보조하고 있는 게라,
이들을 귀히 여기고 격려해야 한다.
하지만 신고인을 피하고 꺼린다.
이 지경이라면 어찌 공원행정이 제대로 이루어지겠는가?
이는 하급 직원의 문제가 아니라,
실인즉 이를 이끌고 있는 책임 직원의 관리 능력이 미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주문은 도시 허망하다.
나는 이번 건에서 만난 직원에게도 또 다시 이런 따위의 말을 던져 보았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미루워 짐작한다.

***

그런데 딱 2년 만에 똑같은 사태가 다시 벌어졌다.
아니 내가 발의하여 공론화 되었을 뿐,
늘 사태는 벌어지고 있었다.
똑같은 곳, 똑같은 도박꾼들의 준동을 참다못해 얼마전 나는 신고했다.
현장에서 만난 직원은 버려진 쓰레기를 보고는 한참 어이없어 했다.

그가 말한다.
“제 집 안방이라면 이러고들 놀 수 없다.”

나는 이리 받아 말한다.
“내가 저기를 일 년에 몇 차례씩 내려가 줍지만,
이제는 감당이 되지 않아 당국에 신고를 했다.”

마침 비가 내리고 있었다.
직원이 대동한 공익요원이 비를 맞으며 쓰레기를 연신 줍는다.
그는 정물처럼 완전 무표정하다.
저 사람이 무슨 죄인가?
그저 수족처럼 일만 하는 이들에 불과하고,
정작은 저들을 이끄는 사람들이 비를 맞아야 할 터인데 말이다.

나는 직원에게 지금 비가 내리니 일을 그치고,
나중에 다시 처리할 것을 권했다.
하지만 치우는 게 급한 것이 아니라,
사진을 찍어 두는 한편,
현장을 그대로 보전하고 이들 신원을 확보하여,
원인을 발본 근절하는 게 요긴한 일이다라고 청한다.

그는 듣는 둥 마는 둥 하고,
공익요원은 쓰레기를 치운다.
하다가 비가 많이 내리자 도리 없이 일을 멈춘다.
그들은 내려가면서 맑은 날 다시 와서 쓰레기를 치우고,
터자리를 허물어 버리겠다고 하였다.

하지만 일주일이 지나도 아무런 조치가 없다.
도박꾼들은 여전히 출퇴근하며 쓰레기를 버리고,
계곡은 아수라장 시끄러운 장터가 돼 버리고 말았다.

내가 2007년도에 처리 태만에 따라 공원 수장하고 접촉한 것이 2월 달이니,
딱 2년만이다.
나는 이번에는 북한산 관리소장하고 만났다.

그러자, 그 다음 날 직원들이 콩자반 튀듯 우르르 몰려들어 일을 처리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들이 어울려 놀던 바위 밑을 파버린 모습이다. 하단엔 나무 젓가락 수십개가 버려져 있었고, 각종 과자 포장지, 술병, 음식물 찌거기 등이 버려져 있었다. 그런 자리에 저들은 매일 출퇴근하며 놀았다. 작년에도 지나던 공원 직원에게 신고하였으나 그들은 아무런 제재도 취하지 않았다. 내려오는 길 다시 보니 여전히 그들은 그 자리에서 놀고 있었다. 저들간 무슨 비밀이 있는지 도대체가.)

내가 그를 만나려고 청을 넣을 때,
한 시간 정도 시간을 내줄 것을 원했다.
혹여 공무에 폐가 될까 그리 짐작 커니 시간을 정한 것인데,
나로서는 한정된 약속 시간인즉, 최대한 말길을 줄여,
평소 느꼈던 일들을 조목조목 부려놓았다.

그의 말이 아주 인상적이다.

“단속을 하게 되면 다른 곳으로 옮겨 가기 때문에 어려움이 많다.”

나는 그에게 말한다.
“단속이 능사가 아니다.
옮겨 갈 것을 예단하지 말고 근인(根因)을 발본색원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번 경우만 하여도 사람, 장소가 특정되어 있고, 시간도 추적 가능한 사안이다.
단속이 아니라 벌금 한번이면 끝날 것인데, 계도 훈도로 해결이 되겠는가?”

그가 말한다.
“이런 일이라면 팀장에게 말해도 되었을 것을.”

내가 말한다.

“팀장에게 말해서 아니 되니까 소장님을 뵈려고 한 것이다.
2007년도에도 직원들에게 누차 신고해도 처리가 되지 않았다."

하는 수 없어 당시 국립공원장에게 고정하니까 바로 해결이 되었다.
난들 최고 책임자를 굳이 만나고 싶지 않다.
그저 직원에게 신고할 시, 알아서 일을 처리해주면,
그것으로 족하지, 우정 시간 축내가며 저들을 만나는 것이 흥이 나리?
나 역시 그대들 소장뿐 아니라 직원 누구하고도 접촉하고 싶지 않다.
제발 다시는 만나는 일 없도록 일 처리를 제대로 해 주길 바라는 것이다.

일껏 귀한 시간을 내서 찾아온 것만 해도,
저들은 내게 감사해야 한다.
더욱이 직원들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잘못을 부끄러워해야 하지 않겠는가?

제들이 건드리기 어려운 높은 곳에 거하는 무슨 고귀한 신분이라도 되는가 말이다.
시민들이 추렴하여 비용대고, 공원 관리 하라고 고용한 이들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나는 대동한 직원 J에게 두수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 참고 글 : ☞ 2008/02/21 - [소요유] - 두수(頭須))

왕이라한들 천하 패권을 이리 간절한 정성으로 잡은 것이로되,
그만도 못하다면 시간 내서 찾아드는 외부 인사를 봉황을 맞이하듯 귀하게 대하여야 한다.
귀를 깨끗이 닦고 행여라도 무엇을 놓치지나 않을까 염려하여야 한다.
그래야 배움이 있고 깨우침이 생긴다.
그 자리에 임한 내가 잘나고 못난 것이 아니라,
다만 세상의 이치가 그러한 것이다.
그것이 복덩어리인 것을 모른다면 아직 한참 멀었다.
관료의 폐단이란 이런 것을 모르는데서부터 노정된다.
배움이 없고 깨우침이 없으니 늘 제 자리 지키기에 급급할 뿐,
도모해야 할 일을 소홀히 하는 소이연이 이에 있음이다.

그런데 심히 의심스런 것이 있다.
공원 책임자도 그렇고,
그 날 대동하고 길을 나선 직원도 마찬가지로,
법규위반자들에게 벌금을 가하는 것을 꺼리는 듯한 인상을 받은 것이다.

이번 건만 하여도 역사적 추적이 가능하고,
거의 매일 출퇴근 하는 저들을 적발하는 것은 일도 아닌데도,
왜 따끔하게 벌금을 과하여 백계(百戒)의 교훈으로 삼으려 하지 않는 것일까?

현장을 보전하고 벌을 가해야 한다.
한데 저들은 무엇이 급한지 현장을 훼손하고 일을 덮어버리고 말았다.

나는 짐작한다.
단 몇 개월 지나지 않아서 저들 도박꾼들은 다시 출몰할 것이다.
내 장담하거니와 그 때 되면 다시 이곳에 글을 올릴 것이다.

혹,
저들은 일거리 끊길 것을 염려하기라도 하는 것일까?

단속(團束)이란 무리를 묶어 규율하는 것이다.
하지만 저들 말대로 단속주체가
단속하면 다른 곳으로 이동할 것을 염려하는 의식을 갖고 있는 한,
단속의 실효성은 항구히 기대할 수 없다.
다른 곳으로 이동할 것이 예정된 단속이라면,
혹여 그것을 꾀하여 즐기는 숨은 뜻이 있는 것이 아니라면,
도대체 얼마나 허망한가?
다 큰 사람들이 숨바꼭질 하겠단 말인가?

단속의 기대효과를 얻기 위해서는 계도가 능사가 아니라,
그에 상응하는 페널티를 가하여야 한다.
왜 저들은 위규자에게 벌금을  가하지 않는 것일까?
(※ 참고 글 : ☞ 2008/10/02 - [소요유] - 도토리 쇼)

내가 이런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2007년도에도 여전히 준동하던 저들 특정된 도박꾼들이
어째서 이제껏 근절이 되지 않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당시에도 저들에게 벌금을 물리지 않았다.
왜?
저들은 자연을 훼손하는 도박꾼들을 끝내 다스리지 못하는 것일까?
내겐 도무지 저들의 숨은 뜻을 헤아리지 못하겠다.

이번에도 저들 신원확보가 하나도 되지 않고
그냥 현장이 단속주체에 의해 훼손되었다.
이러고도 다음에 다시 재현되지 않으리란 기대를 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손 안에 있는 위규자를 제 손으로 흩어버리고,
단속의 어려움 운운할 수 있음인가?
참으로 가소롭고 한편으로는 갑갑한 노릇이다.

이야말로 행정력의 낭비요,
시민들의 인내심을 시험하는 심히 뻔뻔한 처사라 하지 않을 수 없음이다.

그런데, 참으로 묘한 것은,
직원들하고 접촉하면 제대로 일이 처리가 되지 않는데,
왜 책임자를 만나면 그런대로 처리가 되는 것일까?

신고에 수동적으로 응하고, 때로 대증적(對症的)인 임시변통만이 횡행한다.
저들에겐 업무 일반에 대한 앞을 향한 길고 너른 vision이 없다.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내고,
내가 늘 부르짖는 “위대한 축복 북한산”을 보살피고 지킨다는 소명의식이 없다.
그렇지 않다면 뻔히 신고한 일조차도 왜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고,
계도니 단속이니 하며 충분히 해결하고도 남을 일을 몇년이 되도록 일을 그르치는가?

이것은 직원들에게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니라,
실인즉 상위 꼭두 책임자에게 책임을 물어야 하는 노릇 아닌가 말이다.
게다가 수년 간 되풀이 되는 이런 따위의 단순한 일이,
그저 땜빵식으로 덮여지고 마는 것은,
마땅히 직원들을 제대로 통솔하지 못하는 총책에게서
문제의 원인을 찾아야 할 것이며,
그 책임을 차근차근 따져 물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것을 누가 할 것인가?
아득한 노릇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현장 계곡 변 : 쓰레기 더미 속에서 신음하던 생강나무가 이젠 좀 한 숨 돌렸을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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