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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돌엔 티끌 하나 일지 않고

소요유 : 2009.11.17 12:10


북한산 자락엔 물 묻은 손에 깨알 묻듯 절이 많다.
ㅂㄷ선원엔 주지스님은 늘 그대로인데 객승들이 바뀌어 머무르는 양,
반년 터울로 익은 얼굴이 없어지고는 새 얼굴이 들어서곤 한다.
얼마 전 새로 들어온 스님은 참으로 바지런하다.
그 앞 스님은 시도 때도 없이 북한산을 훨훨 바람처럼 나돌아,
내 눈에 그가 과시 한량치고는 참으로 복이 많구나 싶었다.
혹은 번열(煩熱)이 잦아 이리 자치고 저리 뒤치며 마음을 달래려는가 싶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에 새로 온 스님은 작달만한 키에 세사(世事)엔 도통 관심이 없다는 듯,
눈을 내리 깔고는 제 하실 일에만 전념하신다.
엊그제 일주문께에 무심하니 낙엽을 비로 쓰는 모습을 보았다.
북한산 산륵으로부터 소슬하니 바람은 나려오는데,
일주문을 전경(前景)으로 하여 묵연히 빗질을 하시노니,
나는 숙연하니 가을 바다 속으로 그저 빠져들고 말았다.

그즈음에 집 앞 ㅅㅇ사 주지스님을 산을 타고 내려오다 만났다.
그 역시 손에 긴 싸리 빗자루가 들려 있다.
산기슭에 자리 잡고 있는 다원(茶園)에 이르는 언덕 가에 쌓였던 낙엽이
바람을 따라 분분(紛紛) 아랫녘으로 몰려 내려온다.
그는 평소 치아를 드러내며 비죽 미소를 짓곤 하는데,
오늘 따라 그 중 하나가 햇빛을 받아 사금파리처럼 하얗게 빛난다.

“비로 낙엽을 쓰시는 스님의 모습은 언제 뵈어도 그윽하니 예스럽습니다.”

“중노릇 이 맛에 하지요.”

竹影掃階塵不動
月輪穿沼水無痕

(대 그림자 섬돌을 쓸어도 티끌 일지 않고,
달이 연못을 꿰뚫어도 물에 흔적 없네.)

그 자리에서 이 시귀절이 불현듯 떠올랐는데,
기억력이 삭아 전 같지 않은즉, 편편(片片) 글자들이 제 홀로 따로 논다.
집에 돌아와 인터넷으로 검색하여 제 자리 찾아주며 조각을 맞추었다.

竹影, 月輪이니 어찌 티끌이 일 것이며, 자취가 남으랴.
다만 우리네 삶이란 影도 아니요 輪도 아니니,
육신에 갇혀 공연히 번뇌만 무성코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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