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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시사(非時死) ⅱ

소요유 : 2015. 10. 17. 00:38


오늘 객이 돌아가시고 난 후, 문지방을 보니,

거기 커다란 귀뚜라미 하나가 바둥거리고 있었습니다.

아마 불각시에 밟고 지나신 모양입니다.


그야말로 가로지른 횡대(橫帶) 위에 죽음을 맞이하였으니,

횡사(橫死)라 이를 만합니다.

도대체가 가을벌레가 가을을 온전히 맞지 못하고 횡액을 당하였으니, 

저 명운(命運)이란 것이 얄궂기 짝이 없군요. 


아기 고양이 엘사는 여러 우여곡절 끝에 인연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 참고 글 : ☞ 2015/09/26 - [소요유] - 엘사)

헌데 나중에 들어온 고양이 기세에 눌려,

제 자리를 물려주고 어두운 널판 밑에서 겨우 연명하고 있습니다.

녀석은 마음의 문을 완전히 닫고 어둠 속에 스스로를 자폐코 있습니다.

도대체가 산다는 것이 무엇이관데,

저리도 진저리나는 삶을 견디어낼 수밖에 없는 것일까요?


책 하나를 소싯적에 읽었는데, 일본엔 꼴딱교라는 것이 있다고 하였지요.

이 종교를 믿으면 어느 날 갑자기 죽음을 맞이한다고 합니다.

해서 깔끔떠는 노인네들이 많이 입교를 한다고 합니다.

죽을 때 구질구질하게 질질 끌며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니,

저들 성정에 맞는다 하겠습니다.


이거야말로 비시사라 하겠음이니,

어찌 보면 전생의 업을 보갚을 일이 없는 사람이라야,

그나마 이런 복을 누릴 수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復次施設論說。有四種死。一壽盡故死非財盡故。如有一類有短壽業及多財業。彼於後時壽盡故死非財盡故。二財盡故死非壽盡故。如有一類有少財業及長壽業。彼於後時財盡故死非壽盡故。三壽盡故死及財盡故。如有一類有短壽業及少財業。彼於後時壽盡故死及財盡故。四非壽盡故死亦非財盡故。如有一類有長壽業及多財業。彼於後時雖財與壽二俱未盡。而遇惡緣非時而死。作彼論者。顯有橫死故作是說。佛雖財壽俱未盡故而般涅槃。然非橫死。邊際定力所成辦故。功德威勢未窮盡故。諸餘有情於命終位威勢窮盡。佛不如是。

(大毘婆沙論卷二十)


이거 좀 재미있습니다.


여기에선 죽음의 4 가지 종류를 논하고 있습니다.

정리하자면 이렇습니다.


① 財而壽命盡之死 : 재산은 남아 있으되 수명이 다하여 죽는 것.

② 有壽命而財盡之死 : 수명은 남아 있으되 재산이 다하여 죽는 경우.

③ 財與壽命俱盡之死 : 재산과 수명 모두 다하여 죽는 경우.

④ 雖有財與壽命,然遇惡緣而死於非命之死。: 재산과 수명이 다 남아 있는데 비명횡사.


재복(財福), 수복(壽福)을 병치하여 죽음과 연결시키니,

세속적인 관점이 아닌가 싶습니다.

하지만 좀 변호를 하자면, 재물을 외연 확장해보면,

그게 공적(功績) 나아가 공덕(功德) 일반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은택세인(恩澤世人)

세상사람, 자연에 은혜를 나누는 그런 공업(功業)을 대표한다고 보고 싶습니다.


네 번째는 수명도 남아 있고, 재산도 남아 있는데,

악연을 만나 죽는 즉 비명횡사인 경우입니다.


부처도 이 네 번 째 경우에 해당됩니다.

하지만, 부처는 열반에 들었기 때문에 횡사가 아니라는군요.

대개 유정물이란 죽음과 동시에 위세가 다 사그라지게 되지만,

부처는 공덕과 위세가 죽어서도 다하지 않으니 다르다는 것입니다.


이리 볼 때 횡사엔 두 가지 경우가 있다 하겠습니다.


하나는 저 귀뚜라미처럼 죽자마자 위세가 하나도 남아있지 않는 경우와,

죽어서도 위명을 떨치는 경우가 그 두 번 째라 하겠습니다.


아무리 미물일지라도 귀뚜라미는 살아 있으면,

돌틈에 끼어 가을이 왔음을 인간세에 알립니다.

하지만 죽으면 세상은 그 누구도 그를 기억하지 않습니다.

죽음과 함께 음유(吟遊) 재력, 수명 모든 것이 구몰(俱沒)되고 맙니다.


동양에선 제 이름을 남기고 죽는 것을 큰 가치로 여겼지요.

그래 流芳青史이니 青史留名이란 말이 회자됩니다.

역사에 제 이름을 남긴다는 말은 그저 명성을 드날려 가문을 빛내고,

일신의 광영을 자랑하고자 함에 그칠 것인가?

아마도 세상을 요익케하는 공덕(功德)을 쌓는데 더 큰 의의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한편 저것들은 떳떳함, 의기로움(義)의 잣대로 검열되어야 완전해진다고 저는 생각해봅니다.

설혹 공덕을 일구지 못하고 실패하였다 하여도,

의로운 행이라면 그 꽃다운 향기를 역사에선 기억할 것입니다.

하지만 비록 공덕이 있을지라도 의롭지 못한 동기가 깔려 있다면,

그 이름이 어찌 떳떳하다 할 수 있겠습니까?


결국 횡사라도 이름값을 하고 죽어라 이 얘기란 말인가?


人死留名,虎死留皮。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기고, 호랑이는 죽어 가죽을 남긴다 할 때,

거긴 명리(名利)를 탐하고자 하는 인욕(人慾)의 모습이 드리어져 있습니다.


저라면, 그저 아무런 것도 남기지 않고 설악산 백담곡풍(百潭谷風),

그저 그 계곡 바람으로 사라지길 바랄 뿐입니다.


번뇌를 다 불 사르고,

한줄기 백담곡풍이 되어지라.


무여열반(無餘涅槃)이니 유여열반(有餘涅槃)이니 따지는 것도,

다 부질없는 짓임이라,

그야말로 회신멸지(灰身滅智) 바람으로 산화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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