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ngta      

더, the

소요유 : 2016. 1. 18. 15:48


天下大勢,合久必分,分久必合

 

“천하대세는, 

합하였다한들, 오래면 반드시 나뉘고,

나뉘었다한들, 오래면 반드시 합친다.”

 

요즘 정치 세력들을 보면,

딱 저 말에 부합된다.

 

거기에 당명(黨名)도 수시로 바뀌곤 한다.

 

내가 며칠 전 뉴스를 들으며, 

역시 어련들 하려고, 그리하고도 남지 하며 탄식을 했다.

 

새정치민주연합이 당명을 바꾸어 더불어민주당으로 개칭을 하였다.

이제 세상은 진작부터 한자(漢字)를 별반 사용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름들은 전부 한글, 아니면 영어로 바뀌어 가고 있다.

한글의 경우엔 특히 명사형을 벗어나 서술형으로 이름들을 짓는다.

‘더불어’란 단어는 명사가 아니라, 부사이니, 이 역시 시대의 조류를 따르고 있다.

 

이 당은 진작에 작명(作名) 전문가를 영입하였다.

그 분은 소주 이름으로 ‘참이슬’, ‘처음처럼’을 작명한 분이라 한다.

나는 본디 국내 정치 현실에 대하여는 깊이 알고 있지 못한다.

그러하니 여당이든, 야당이든 정치란 이름 내용으로 내겐 아무런 주의를 끌지 않는다.

 

그러한 것인데, 당명을 바꾸길 더불어민주당이라 하니,

역시나 서술형으로 꾸며졌다.

나 같이 현실에 무딘 사람으로선,

이름자가 마치 사각 곽에 들어가 있듯 반듯 반듯 명사형이 아니면 영 생경스럽게 느껴진다.

그러하지만, 세태가 그리들 흘러가고 있음이니 내 그저 우두망찰 지켜볼 뿐.

 

하기사 우리 블루베리 농원 이름조차 ‘초원의 빛 블루베리’이니,

이 역시 준서술형에 가깝다 하겠다.

처가 지은 것이라 따랐을 뿐인데,

내 감각으로 볼 때, 이름 형식으로는 격에 덜 찼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런데 왜 이리 서술형 이름들이 부쩍 느는가?

명사형은 고정형인데 반해, 서술형은 움직이는 동작형이다.

무슨 말인가 하면, 

전자는 이름이 뜻하는 바 외에 별다른 의미를 추가로 형성하지 않는다.

반면 후자는 이름에서 발출(發出)된 지시 이미지가 시간 또는 공간 축을 따라 변한다.

 

이는 한자어가 우리네 언어생활에서 거지반 없어져 가는데도 큰 요인이 있다고 생각한다.

가령 예전처럼 한자어가 언어 전반을 지배하였을 때는,

비록 명사형 이름이라도 지금의 서술형 이름처럼 내용적으로는 동작형인 게 태반이었다.

한자는 뜻글자이기 때문에 거기 의미가 중층적으로 함축되어 있어 입체적이기까지 하다.

헌즉, 받아들이는 이는 이를 풀어 수용하게 되므로,

아무리 명사 이름이라도 수용 과정 중에 자연 서술형으로 바뀌어버린다.

오늘날엔 한자어가 사려져 가기 때문에, 한글로선 해득 중 이런 수용 과정을 밟기 어렵게 되었고,

대신 처음부터 풀어 쓰는 서술형 이름이 등장하게 되었다고 나는 보는 것이다.

 

한편으론 사회 구조 변화상이 말단을 추구하며, 감각적으로 변해가는 바,

언어생활도 이리 따라 감각적이고, 서술적으로 조응해 가고 있는 것이리라.

 

그런데 특별히 더욱 말초적이고, 변태적(變態的)인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내가 오가는 동네 길목엔 생선구이집과 마트가 있는데,

지나다 늘 느끼거니와 이들이 영 격식을 벗어난 분들이구나 싶다.

생선구이집 간판을 보자 하면 이러하다.

 

The맛있게,

The깨끗이,

The싱싱하게 ...

 

마트 간판은 이러하다.

 

The싸게,

The신선하게 ...

 

이것을 처음 보았을 때,

솔직히 혀를 끌끌 찼다.

 

The가 정관사인데, 이게 명사를 꾸미지 않고, 부사, 동사 따위의 서술어를 꾸미고 있으니, 

이처럼 어색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영어와 국어의 결합이라 할지라도,

어느 정도 의미가 서로 손잡고 호응하여야 할 터인데,

이것은 개밥의 도토리처럼 서로 겉돌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영어 글자의 의미를 취하면, ‘The맛있게’는 ‘그맛있게’가 되니 엉터리가 되고 만다.

소리를 취한다면 ‘더맛있게’가 되니 이제 비로소 그럴듯할 양 싶다.

하지만 하나는 소리를 하나는 의미를 취한다는 것은,

여간 억지스럽고, 서투른 일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영어에 The+형용사 용례가 없는 게 아니다.
하지만, 가령 The young이라면 The young man의 약어로 이해하면,
언어 경제적인 측면이라든가, 수사법 내에서 수용할 수 있다.
The맛있게,
The깨끗이,
이런 따위는 그저 유행에 따라 The를 무작정 가져다 꾸미기 바쁘니,
마치 똥장군 매고 남 따라 장에 가는 격으로,
흉칙하기 짝이 없는 작태라 하겠다.

난 이런 작명, 작법 태도를 견디어 내기 어렵다.
언어 질서 파괴 만행이라 하겠다.

이런 엉터리에도 사람들은 반응하고, 호응하며,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는 것인가?

만약, 이러한 환경에 익숙하다면, 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가?

 

기실 나는 ‘더불어민주당’이란 당명이 새로 나왔을 때,

이리 긴 이름은 필경 줄여져 ‘더민주’로 지칭될 것이며,

우리 동네 생선집처럼 The민주로 부르는 사람도 나타나리란 짐작도 하였다.

감각에 충실한 이는 별 고민 없이 세태의 흐름을 쫓기 싶다.

 

마을에 플래카드 하나가 걸려 있다.

 

‘夜한 마을 ...’

 

밤에 축제인지, 시장을 열겠다는 것일 터인데,

거리를 걷다 보면 이런 중의적(重意的) 표현도 심심치 않게 발견된다.

이를 내다 건 이들은 제 딴에는 애교스럽고, 재미로운 표현이라 생각하였을 것이다.

 

밤에 여는 공연임에 불과한데,

거기 '야하다'라는 사람을 충동질하는 유혹의 이미지를 덧붙여 시속에 야합하고 있다.

마치 작부 얼굴에 덧칠하는 분처럼 그 꾀임에 염치를 돌보지 않는구나.  

 

하지만, 이런 별스런 양식이 일상적으로 쓰이게 되면,

언어생활은 안정을 잃고, 혼란스러워질 우려가 크다.

 

기실 개인이 사용한다면,

그것이야말로 당사자가 책임지고, 보상을 받을 뿐인 것을,

제삼자가 참견하고, 따질 명분은 그다지 크지 않다.

 

하지만 관이 앞장서서 이러한 짓을 할 때는,

저이들이 과연 제대로 된 의식을 가졌는가 하는 심각한 의문을 아니 가질 수 없다.

 

“서울의 랜드마크", 

"하이 서울", 

"하이 서울 페스티벌", 

"희망드림콘서트" 

 

"다이나믹 부산" 

"해피 수원" 

"웰빙 대구“

 

이 모두는 서울, 부산 등 지방자치단체에서 앞장서서,

한글을 파괴하고 있는 사례다.

저들은 국제화 시대인즉슨 외국인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한다.

문제는 국제화가 아니다.

천편일률적으로 영어 글자가 들어가고, 변태적 작명(作名)이 난무하고 있는 것이다.

자존심도 없고, 사명감도 실종된 공무 담임자들의 작태란 심히 해괴스럽구나.

 

게다가 어느 날 바뀌어 버린 주민센터는 변명이 아니 된다.

예전 동회, 동사무소 이름에 센터란 외국어가 턱 들어와 박혔는데,

이를 이용할 외국인 과연 얼마나 되겠는가?

또한 센터가 무슨 뜻인 줄 잘 모르는 한국인들은 왜 고려 대상에서 제외하였는가?

 

관이란 우리말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가 되어야 한다.

저들의 각성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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