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광잡항(司馬光砸缸)
사마광(司馬光)은 북송 때의 인물로 자치통감(資治通鑑)을 지었다.
보수파의 영수로서 왕안석(王安石)이 시행한 변법(變法)에 반대하였다.
보수주의자답게 대지주, 대상인을 옹호하고,
개혁 신법을 끝끝내 반대하던 중국 사대부 보수파의 전형을 이루는 인물이다.
治天下譬如居室,敝則修之,非大壞不更造也。
“천하를 다스린다는 것은 비유컨대 거실과 같다.
헤지고 낡았으며 그것을 수리할 일이지,
크게 허물어서는 아니 되고, 고쳐 지어서도 아니 된다.”
新法擾民
“신법은 백성을 혼란시킨다.”
祖宗之法不可廢
“조종의 법은 폐할 수 없다.”
이 모두 신법을 반대하는 보수파의 논리였다.
사마광은 溫良謙恭, 剛正不阿이라,
선량하고 공손하였으며,
강정하고 아첨을 모르는 성품이라 평해진다.
여기 그의 어렸을 적 일화를 소개해둔다.
소위 ‘사마광잡항(司馬光砸缸)’이란 고사다.
사마광(司馬光)이 후원 안에서 동무들과 놀이를 하고 있었다.
거기에 커다란 물항아리가 있었다.
한 아이가 물동이 위로 올라갔다.
그러다 아차 하는 순간 물항아리 안으로 빠져 들어갔다.
물항아리 안의 물은 제법 깊었다.
아이는 순식간에 머리가 물속에 잠기고 말았다.
나머지 아이들은 놀라서 울고, 소리치고 난리를 쳤다.
급히 밖으로 달려 나가 어른들에게 구해 달라 도움을 청했다.
사마광은 급한 와중에 꾀를 하나 내었다.
땅위에서 큰 돌을 하나 주었다.
힘껏 물항아리를 향해 돌을 던져 깨뜨렸다.
‘퍽’
물항아리가 깨지고, 항아리 안의 물이 쏟아져 나왔다.
항아리 안 물 속에 잠겼던 아이도 자연 구할 수 있게 되었다.
조그마한 꼬마 사마광은 침착 냉정을 잃지 않았다.
비록 키는 작았지만 어른 못지않았음이라,
이로부터 ‘사마광잡항(司馬光砸缸)’이란 고사가 유래되었다.
우연한 사건이었지만 사마광이 유명해진 계기가 되었다.
이 고사는 다음의 이야기와 유사한 점이 있다.
(※ 참고 글 : ☞ 2008/10/08 - [소요유] - 골디우스의 매듭과 옥련환(玉連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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