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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광명주(夜光明珠)

생명 : 2008. 3. 4. 11:00


야광명주(夜光明珠)

달을 일러 야광주(夜光珠), 또는 야명주(夜明珠)라고도 합니다만,
밤에 빛나는 것이 이 세상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늘엔 달님이 계시옵고,
땅엔 묘안(猫眼) 즉 고양이 눈이 그러합니다.

특히 도시 주변엔 유독 고양이가 많이 있습니다.
늦은 밤길 으스름 달빛 비추시는 곳을 빗겨난 뒷골목을 지날 때면,
저들 한숨 섞인 눈초리를 마주하게 됩니다.

달 보고 ‘한숨’이란 이미지를 떠올릴 사람이 혹간 있겠지만,
모두는 아닙니다.
하지만,
제 눈엔 저 지상의 달,
묘안은 하나같이 ‘한숨’으로 보입니다.
그러하기에 묘안은 정녕코 지상으로 유배된 달입니다.

만약,
고양이 눈을 밤에 마주친 적이 없으시다면,
이리 묻고자 합니다.
달은 보고나 다니십니까 ?

그 무엇을 이루려고 그리 분주한지,
도시인들은 언제 달을 보았는지 헤아려 볼짝시면,
그게, 어릴 적,
라일락 피는 집 소녀를,
고샅길 돌아가며 문득 마주치자 이내 가슴이 허물어지던
그 저르르 흐르던 충격, 그 날 이후, 그 이래 
저 아득히 멀리 사라진 추억처럼...
하마, 달 역시 치어다본 적이 언제인가 ?
까무룩 종시 종적을 찾기 어렵습니다.

그 잃어버린 달이
야옹이 저 눈이 아닐까 ?
저는 이리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저 밤고양이 눈이야말로 그 날이래 잃어버린
저 순결한 우리들의 마음의 달이 아닐런지요 ?
이제는 다시는 되돌아갈 길 없는 그 사랑, 아픔, 서러움...

TNR(Trap-Neuter-Return).
이게 무엇입니까 ?
야옹이 불 바르잔 얘기입니다.
부랄을 까자는 것입니다.
왜 그리 하자는 얘기입니까 ?

2년전만 하여도 제가 사는 아파트 주변에 고양이가 적지 않았습니다.
요즘은 그들이 깡그리 사라졌습니다.
저들이 쓰레기 봉투를 찢고, 헤쳐놓기 때문에,
누군가 발의했겠지만, 이제는 커다란 철망 구조물 안에다
버리도록 채비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나마, 쓰레기조차 먹을 기회가 박탈되었습니다.
저들인들 먹지 않고는 살아남을 재간이 없는 것입니다.

인간들의 쾌적함,
아니 안일을 빌미로,
지상의 달,
광한루(廣寒宮)에서 유배된 저들 야옹이들이 마저 쫓겨난 것입니다.

예전 춘추 오패 중의 하나인 진목공(秦)穆公)은
딸 농옥(弄玉)이 짝인 소사(簫史)와 함께 승천하자,
꿈에 그리워 달나라 광한루에서 노닙니다.
광한宮에서 寒이 왜 하필 찰한자 寒인 것입니까 ?
진목공은 광한루가 너무 맑아 한기가 들 정도였다지요.
그리 너무 맑아 도리어 추었기에 나중에 깨어나서는
오한이 들어 얼마지 않아 죽고 맙니다.

늘 기린 것은 맑기에 찹니다.
따스한 것은 얼핏 그럴듯합니다만,
비릿하니 우리의 위선이 숨겨 있기도 합니다.
이 사연은 저의 이어지는 다른 글들에 잠깐 비쳐질 예정입니다.

쓰레기까지 아껴 저들에게 주지 못하는 그 마음보들,
그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음입니까 ?
겨울철 굶어죽을 야생 조류, 동물들을 위해,
거창하게 사료 뿌리기 운동씩이나 합니다.
그 운동에 참여한 후,
인간들은 뿌듯한 마음을 안고,
모두들 착한 사람씩이나 되어
따뜻한 이불 덮고 행복한 꿈나라로 떠납니다.
그리고는 다음 날 일어나서는
언제 그랬느냐는 듯,
쓰레기까지 철망속에 차꼬 씌어 단도리를 합니다.

이 위선의 연장이
곧 TNR이 아닌가 ?
저는 이리 부르짖습니다.

달에다 위성 쏘아올려 욕망을 정액처럼 쳐바르듯이,
지상의 달, 야옹이 부랄 까고는
게트림하듯 뽐냅니다.
저들과 공생할 위대한 프로그램을 만들어내었다고.

TNR
저들 운동가들은 저에게 묻습니다.
그럼 대안은 무엇이냐고 ?

저는 다만 말씀드릴 뿐입니다.

“우리는 지금 달을 잃은 채 살아 가고들 있다.
두 개의 달.
지상과 천상에서.”
 
쓰레기까지 철망에 가두는 인심 보다야,
저들 야옹이 부랄 까는 인심이 훨씬 고상한 것일까요 ?

저는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저라고,
무슨 뽀족한 수를 알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책임질 일은 없으니까,
공상 속에서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합니다.
차라리 인간을 솎아내면 어떨까 ?
모든 게 인간이 문제야 !

더러는 이런 질책을 스스로에게 가할 수는 없을까 ?
아무리 자신들이 그 잘난 인간이라지만.

오늘은 정월 스무이레.
달님 역시 숨어 계시온가 ?
정작 부끄러워 숨어야할 것은 내가 아닌가 ?

***

중국어로 묘안(猫眼)은 door scope를 뜻하기도 한다.
문밖을 내다보기 위한 투시경.

저 젖은 길,
컴컴한 길을 외롭게 걷는 고양이야말로,
종(縱)으로 눈동자 켜세워,
우리 인간을 엿보고(窺) 있음이 아닌가 ?

저 눈 앞에 인간이 정직할 때라야,
잃어버린 달이 우리에게 돌아오리라.


ps)
나는 지금 TNR을 부정한다거나, 비난하는 것이 아니다.
기능적 삶에 만족하고 있는 현실에 반성(反省)을 촉구하고자 하는 것이다.

“고양이 개체 수가 많아졌다. → 이제 부랄 까서 개체 수 조절하자.”

이게 온전히 인간만을 위해서 그런 것은 물론 아니겠지만,
예컨대, 저들 고양들의 비참한 생활을 조금이라도 막아 보자는
일면 측은지심의 발로임을 모르는 게 아니다.
게다가 사람도 산아제한하기 위해 별별 조치를 다하는 것에 미루워
저들인들 비록 사람의 손을 빌은 것이지만,
그리 불 발리는 것이 뭣이 어떠냐 하는 주장이 있음을 안다.

하지만, 나의 촉수는 지금 여기를 더듬고 있는 것이다.
예컨대, 하수도에 온갖 오염물질 다 버리고,
종말처리장에서 걸러내는 방식 말이다.
종말처리장이 옳다라든가, 필요하다라는 발상 이면에는
오염물질 무단 방류에 대한 반성적 성찰이 부재하지 않은가 ?
문제가 생기면 그 대책을 세우는 것을 무엇 나무랄 일일까만,
그 원인에 대한 성찰없이, 대증적(對症的)으로 결과를 억제하거나,
덮는 방책으로 대응하는 태도 말이다.

이런 태도에 익숙해지다보면,
땜빵질이 당연히 대세를 이루고,
그 이면의 진실에는 소홀해지는 폐단은 없겠는가 ?
진미(眞味), 참맛을 잃은 현대의 인스탄트 식품처럼,
영혼의 불감증을 나는 경계하고자 하였음이다.

관심의 的이 유용성(有用性), 기능성(機能性)에 매몰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

뜻이 있는가 ?
마땅한 것인가 ?
옳은 것인가 ?

즉, 意, 義, 正에 대한 물음이 거세된 현장을 내가 목도하고 있는 게 아닌가 ?
나는 이런 의심을 하고 있음인 게다.

이명박 역시 義를 저버리고 用에 집중하고 있음이 아닌가 말이다.
그가 말하는 실용(實用)은 사실 실용이 아니다.
알맹이 實을 구하고자 하는 用이 아닌즉 허용(虛用)에 불과하다.

원래 실용은 실사구시(實事求是)하고자 함이다.
내가 보기에 그는 실사구시(失事求市)할 뿐이다.
그를 보면, 일을 그르치고, 시장을 구하는데 올인하는 모습이 읽힌다.
求市를 하는 까닭에 대한 반성(negative feedback)이 없다.
그러하기에, 산천초목이 다 죽어갈 판인데도 시장 만들겠다고
국토 배를 가르자고 나대고 있음이 아닌가 말이다.
대단히 위험한 노릇이다.
심히 흉하다.

물론 TNR은 이 정도는 아니다.
일응 현실적응형 모델임을 나 역시 인정한다.
하지만, 그로서 할 노릇 다했다고 만족해서는 아니된다.
우리의 도시생태환경이 이러한 방편적 임시처방을 하지 않으면
아니된 그 형편을 되돌아보자는 것이다.

유기견과 함께,
사람들이 잃고, 내다버리고,
그후는 불용품(不用品)인 양 처리하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유기견의 경우 이제껏 보호후 30일이내에 임자를 만나지 못하면,
안락사시켜버렸다. 그나마 금년부터는 단 10일로 줄어들었다.

저들은 사물이 아니다.
재미 삼아 키우다 버릴 물건이 아닌 게다.
버려진 강아지, 길고양이들이 이리도 많아지고 있는 현실에
대한 근원적인 자기반성을 나는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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