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동지(女性同志)
제가 사귄 여성동지를 소개할까 합니다.
지지난 겨울 이야기입니다.
당시 버려진 강아지와 인연을 맺고 있었습니다.
앞에서 소개한 개망초(☞ 2008/02/13 - [산] - 개망초)의 주인공이 아닌 다른 강아지입니다.
그런데, 이 강아지가 홀연히 사라졌습니다.
그래 앞 산, 뒷 산을 뒤집고 다니며 그를 찾아 다녔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산녘 동네마다 버려진 강아지가 적지 않더군요.
버려진 강아지들이 흘러 흘러 산기슭으로 자연 모여들게 되었는가 봅니다.
도시에서 산 근처에 살다보면 별 일을 다 겪습니다.
산에는 개뿐이 아니고 토끼, 병아리, 잉어(계곡) 등 키우다 내다버린 동물들을
적지 아니 목격하게 됩니다.
그들은 쓰레기를 버리듯 멀쩡한 동물들을 그리 유기합니다.
제 집으로부터 고개 넘어 그쪽 산기슭에 가니 동네가 하나 펼쳐져 있습니다.
거기에도 일단의 강아지들이 버려진 채 생활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낮에는 산에 들어가 지내다가,
저녁 때는 마을 근처로 나와 먹이를 얻어 먹고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몇 차 그 동네를 질러 산으로 올라가며 잃어버린 강아지를 찾아 헤매던 차,
한 여인을 만납니다.
산기슭 동네라 공터도 많고 한적하니 조용한 곳에서 만난 여인은 가슴을 설레게 합니다.
산으로부터는 소소(蕭蕭)하니 찬바람이 쓸려 내려 오고,
가슴은 어디 베인듯 아린 계절에
저만치 홀연히 나타난 여인네는
화폭을 방금 스쳐간 한줄 붓자국처럼
마음밭에 선예(鮮銳)한 줄금을 긋습니다.
가느다란 샛길을 사이에 두고 조그마한 사찰과 넓은 공터가 마주 보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 공터에서 큰 널빤지 위에 먹이를 부어놓고 있는 그 여인을 보게 된 것입니다.
그를 불러, 찾고 있는 강아지를 보았느냐고 물으며, 얘기를 텄습니다.
그는 버려진 강아지 서넛을 돌보고 있었습니다.
이제 그 사연을 좀 따라가 봅니다.
당시로부터 년전에 버려진 어미 개 한 마리가 새끼들을 사찰 경내의
쌓아놓은 나무널판들 틈에 낳았다는 것입니다.
참고로 그 사찰은 마당에 담장이 쳐있지 않아 바로 도로와 맞닿아 있습니다.
그 때부터 이 분은 그들에게 먹이를 갔다주며 보살핍니다.
그런데, 사찰측에서 훼방을 놓기 시작합니다.
먹이 그릇을 치워 버리고, 강아지를 전부 가져 가라고 그 분한테 통고 하였다고 합니다.
절에서 일하는 공양주 아주머니들이 먹이를 갖다 주는 것도
사찰측이 금하였다 합니다.
급기야는 그들의 은신처인 나무널판을 전부 거두워 치워버리고 맙니다.
그 추운 겨울 한 가운데에.
그 분은 사찰측에 어린 강아지들이 젖을 뗄 때까지만이라도 그곳에 있도록 해주십사 부탁합니다만,
그도 내쳤다고 합니다.
경내에 탑이 하나 있습니다.
신도들은 좁은 마당이지만, 그 탑을 중심으로 탑돌이를 합니다.
아낙들이 탑을 중심으로 오른쪽으로 도는(右繞) 모습은 고아하니 경건합니다.
오법이라 하여, 탑돌이를 할 때는
머리를 숙여 땅을 살피고, 벌레를 죽이지 말 것이며, 다른 사람과 잡담 등을 하지 않아야 한다고 합니다.
탑돌이는 원래 우요삼잡이라 하여 우로 세 번 도는 데서 유래합니다만,
우요천잡, 만잡인들 경내에서 벌어지는 저 생생한 축생도(畜生道)의 아픈 현장을
내치고 어찌 공덕을 닦을 수 있겠음일런가 ?
“법고(法鼓)가 백천만번 둥둥 울린들 그로서 축생(畜生)이 건져올려진단 말인가 ?
처마에 달린 풍경소리만 처연히 제 홀로 살강거릴 뿐,
이내 산사는 무정하다.
삼잡에 멈춰야 한다.
그 이상 감아 돌면, 조여 감은 시계 태엽처럼 끊어지고 만다.”
(※. 하나의 특별한 예이지 불교 사찰 일반이 그러하지는 않을 것이다.
실제 저희 동네에는 오며가며 내가 인사 여쭙는 훌륭한 주지스님이 적지 않으시며,
대부분의 사찰이 그윽하니 깊은 법을 품으시고, 아늑하니 따뜻한 눈길로 동네를 감싸신다.)
하여, 그 앞 공터에 그들을 거두워 먹이를 주며 돌본 것이
제가 만날 당시 얼추 일년이 돼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분은 낮에 일을 하시는 것 같았습니다만, 퇴근 후 인근 음식점에서 잔뜩 먹이를 거두워
1년 동안 그리 건사하셨던 것입니다.
이게 말이 그렇지,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더욱이 그곳이 산기슭이라 올라 오려면 제법 힘이 듭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하루도 빠짐없이 돌보는 정성이 너무 가상한 노릇이 아닐 수 없습니다.
거기다, 이웃의 훼방은 더해지고 있었으니...
그곳은 산 기슭이라 인적도 드물고 민가에 별로 피해를 줄 환경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한 70-80여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 테니스장측에서 먹이 주는 자리를 싹 쓸어 버리곤 하였답니다.
이유인즉슨, 흘린 먹이를 노려 까치가 모여 드는데, 그 소리가 시끄럽다는 것이지요.
저도 산에 갔다 올 때는 부러 그곳을 들려 지나다니곤 하였습니다만,
어느 날인가는 그들 먹이 주는 장소가 싹 쓸려져 있어 놀란 적이 있었습니다.
이게 그 테니스장측 소행이라는 말을 듣고는 참으로 어이없어지곤 하였지요.
까치가 떠든다한들, 민가에서 벗어난 너른 공터이며,
그들과는 70-80미터쯤 한참 떨어져 있고, 잠깐 뿐인데도 그를 못 참다니
참으로 고약한 인사들이라 하지 않을 수 없더군요.
후에, 그곳 강아지 아이들은 어느 날, 모두 없어져버렸다고 합니다.
어느 날 먹이 주러 올라왔더니, 그들이 흔적도 없이 사려졌다는 것이지요.
....
그들은 늘 그러하듯이,
떠날 때는 말없이 사라집니다.
아니, 이 경우엔 소리 지를 틈도 없지 않았나 심히 의심스럽지만.
사람은 올 때도 고고성을 지르며 요란하게 나타납니다만,
갈 때도, 여간 번거로운 게 아닙니다.
짐작컨대, 인간은 어지간히 엄살쟁이들이 아닌가 합니다.
동물병원 의사들이 애기하기를,
그들 동물들은 수술을 해도 인간보다는 덜 소란스럽고,
후에도 짧은 시간내 훌훌 털고 바로 일어서니,
인간처럼 겁 많고, 부산스러운 종자가 없다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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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그 분과는 지나다니는 길에서 가끔 뵙게 되면
말씀을 나누게 되는 인연을 짓게 됩니다.
다 늦게 여성 친구를 갖게 되었으니,
이곳 산 골짜기가 제겐 여간 뜻 깊은 곳이 아닙니다.
동지(同志)가 무엇입니까 ?
뜻을 함께 하는 이가 아닙니까 ?
마음이 아름다운 뜻지기를 만난 인연을 이리 새겨보았습니다.
그 분을 만나뵈면,
제가 처음으로 농사지어 소출한 것을 나누어 드리고자 하는데,
요즘은 통 뵙지를 못하겠군요.
그것은 제 온 몸을 폭열(暴熱)에 달궈 함께 영글려 낸 것인즉,
외려 마음을 전하기엔 아주 적절하겠거니 생각되는 것입니다.
혹여, 말없이 이사라도 가신 것이 아닌가 염려됩니다.
이곳 골짜기는 모두 말없이 사라짐으로서
슬프지만 못내 아름다운 추억을 남겨두려 함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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