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망초
※ 본 글은 후에 주석이 가하여졌습니다.
주석이 달린 글은,
☞ 2009/07/13 - [소요유] - 개망초(自註)
이곳이오니 이리로 건너 넘어 가시기 바랍니다.
제 집 앞뒤로 산이 있습니다.
저는 큰 산을 앞 산이라 하고, 작은 산을 뒷 산이라고 부르기도 하며,
집을 중심으로 그 앞에 있는 것을 앞 산, 뒤에 있는 것을 뒷 산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들이 서로 어긋나므로,
제 말 역시 부르는 당시의 기분에 따라 앞 산이 뒷 산이 되고
뒷 산이 앞 산이 되는 둥 마구 섞입니다.
뭐 그게 대수겠습니까 ?
나이조차 잊고 사는 처지에 앞 산이든 뒷 산이든 튀어 나오는대로 말 할 뿐입니다.
작은 산, 이를 그냥 오늘은 뒷 산으로 부르겠습니다.
그 산자락 사이에 접힌 얘기를 하고자 합니다.
그 길에 드는 입구에 피어난 개망초가 지면 제 사연 하마 따라 질까,
가만히 글자락을 펴봅니다.
산에 버려진 개들과 인연을 지었었습니다.
3년래 3마리 그들을 차례로 잃었습니다.
얼마전 6월초 마지막 한 마리 그 역시 떠나갔습니다.
지난 겨울 모진 바람을 이겨낸 그이기에 이번 여름만큼은 무사히 넘기겠지 하였는데,
그는 뭣이 바쁜지 사라졌습니다.
지난 겨울 수차 집에 들여 언 몸 녹여 재워보내곤 하였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온 거실을 한강으로 만들어놓았지만,
허허 웃으며, 얼음 지치듯 걸레 스케이트질을 씽씽, 낑낑 해대었습니다.
매일 산을 오르며 먹이를 주어왔습니다.
술이 떡이 되어도, 산을 오르며 자빠지고, 넘어져도 거르지 않고 먹이를 주어왔습니다.
겨우내 간벌로 버려진 잣나무 가지를 주어다 아무도 모르는 곳에 집도 지어주었었습니다.
올 봄엔 재료를 낑낑거리며 산에 져 날라,
정식으로 의젓한 개집도 보름 걸려 지어 주었습니다.
이젠 아무 걱정도 없을 것 같았습니다.
주변에 흔히 보듯 하루 종일 짧은 줄에 묶여 있는 개들 보다는
그래도 그가 행복할꺼라는 자위도 해보았습니다.
길 가며, 눈 맞추던 이웃집 커다란 백구, 그리고 그의 아이들이 사라져 버린 날,
이웃 아주머니는 그들이 오토바이 닭장 철망에 갇혀 길을 떠났다고 일러줍니다.
그 백구와 둘 만이 마주할 때, 머리를 쓰다듬으며,
여차직, 낌새가 이상하면 산으로 냅다 튀어 달아나거라,
그러면 뒷 일은 내가 챙겨줄 터이니, 니 새끼까지 함께 산으로 토까라...
이 얼마나 허망한 타이름인가 ?
이 무력한 위선 앞에 나는 내게 분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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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도처처(到到處處) 지옥이다.
인간세(人間世)는 동물의 지옥이다.
孤獨地獄 在山間曠野樹下空中等 ... 삶은 섬이다.
홀로 갇힌 지옥. 그래 또한 고독은 철저히 혼자다.
저들은 절대고독(絶對孤獨)을 안다.
어떤 놈이 감히 명상을, 도를 팔겠다고 수작을 부린단 말인가 ?
(* 당시 어떤 이가, 깨달음을 얻었다고 광고를 하고 나대었었습니다.
이하에서, 저는 이자를 도를 파는 이, 즉 道販僧이라 지칭하고 있습니다.)
산에 버려진 강아지들은 절대고독을 365*24*60 온 몸으로 체현하고 있음이다.
무애가를 부르며 저자거리를 누빈 원효가 언제 명상을, 도를 팔았던가 ?
자루 없는 도끼 빌리자 이내 설총을 까흘려내었음이니,
여늬 필부필녀와 다름이 없었음이라.
원효는 호리병에 곡차 넣고 그저 세상을 휘져으며 내달았을 뿐이다.
道販僧은 호리병박에 금박칠하고,
패션너블한 판수쿨라(분소의,糞掃衣) 줄 다려 입고,
세상을 호리고 있음이다.
원래 판수쿨라는 불에 타고, 쥐가 쏠고, 계집 월경한 천 등으로 만든다.
온갖 더럽고 천한 것으로 기워 만든 옷.
이리 시체 싸맨 옷 속에서 집착을 여의고 말겠다라는 곡진한 영혼의 선언명령인 게다.
絶對란 무엇인가 ?
對를 끊어 절벽으로 가르고 있다란 말이다.
所對를 여윈 能對.
相對를 떠난 순수 주관의 자리,
너를 버리고 나를 가는 것.
만약 영원(永遠)이 있다면, 만약 신이 있다면, 이 때라서야 비로서 영원을, 신을 만난다.
나는 이를 절대라고 생각한다.
때문에 고독은 절대고독(絶對孤獨)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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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 올라 그의 이름을 부르면,
환한 모습으로 제게 달려나옵니다.
마치 요술쟁이처럼 숲속에 있다가 펑 하고 튀어나옵니다.
세상에 그 누가 있어,
나를 이리 전폭적으로 신뢰하며 웃음을 던져 주는 이가 있겠습니까 ?
그가 나를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실은 그가 내겐 지고지순 기쁨의 원천이었습니다.
올 봄 개나리가 그리 아름답다는 것도 그가 저에게 가르쳐주었습니다.
절.대.고.독이 무엇인지도 그가 제게 가르쳐주었습니다.
떠날 때는 말없이 사라져야 한다는 가르침도 그한테 배웠습니다.
그가 다른 개들에게 물려 다리를 절뚝거릴 땐,
제 마음도 덩달아 절룩거렸습니다.
피로 불어터져 팥방울 만해진 진드기가 몸에 붙어 있으면,
같이 놀라며 함께 아파했습니다.
온 몸에 풀씨가 묻어 있는 날,
빗질하며 바람을 그와,
나의 마음 밭으로 초대하였습니다.
비오는 산을 보면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아,
이내 산으로 올라가 그를 불러내어 함께 울었습니다.
눈 오고 바람 부는 날엔 보듬어 안고 내려오며 모진 겨울을 함께 아파했습니다.
그는 지금 떠나고 없습니다.
열이틀 지난 오늘도 그의 한없이 선량한 눈이 마음 속에서 서성거립니다.
그는 어디에 간 것일까요 ?
박상륭은 '죽음의 한 연구'에서 이리 말했지요.
나거든 죽지 말고, 죽거든 태어나지 마라.
둘이 가만히 앉아 있습니다.
눈을 마주치면 둘은 영원 속의 친구가 됩니다.
그에게 나지막히 타일렀습니다.
다음 세상에 절대 다시 태어나지 말거라.
행여, 사람이라한들 다시는 태어나지 말거라.
나를 믿느냐 ?
꼭 내 말대로 해야 된다.
이젠, 하릴 없이 그가 있던 곳으로 오릅니다.
그 허공중에 뜬 발끝 따라 개망초들이 가슴께까지 자라 환히 맞습니다.
꽃들을 하나하나 가만히 쓰다듬습니다.
그리고 그 강아지 이름을 불러봅니다.
순간 망초는 눈물속에서 꼬리치며 웃고 있습니다.
나는 허공을 향해 강아지 이름을 외칩니다.
산산히 부셔져 버린 그 이름.
저 역시 마음이 허물어지고 맙니다.
개망초는 내겐 물망초(勿忘草 forget-me-not).
개망초 피는 初夏,
강아지 자신을 잊지 말아 달라고,
그는 그리 개망초 피우고 떠나갔습니다.
못내 살피지 못한 죄가 깊어 참회진언을 읊조려봅니다.
옴 살바못자 모지 사다야 사바하
옴 살바못자 모지 사다야 사바하
옴 살바못자 모지 사다야 사바하
야반삼경 막걸리 꿰차고 산에 올랐습니다.
잘 알지도 못하는 시방삼세제불 부처 명호를 아는대로
모두 불러내 외며 그를 보내었습니다.
어린아이들 딱지 벌려놓듯이, 아는대로,
모든 부처의 이름들을 전부 호곡(號哭)하듯 불러내,
허공중에 지전(紙錢) 사르듯 피어올렸습니다.
못내 아쉬어 아미타불 명호를 거푸 불러대니,
꺼억꺼억 젖어버린 밤 물소리를 따라 흘러갑니다.
願往生 西方極樂淨土
願往生 西方極樂淨土
願往生 西方極樂淨土
南無阿彌陀佛
南無阿彌陀佛
南無阿彌陀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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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난 길은 이미 길이 아니다.
바르도(bardo)의 길은 그의 길일 뿐,
나도, 그도 나뉘어 길을 걷는다.
지구 위에 수천만억 길이 있다.
기러기 가족은 허공중에 애써 없던 길을 내단다.
살아 있는 자는 모두 길을 걷는다.
날개죽지 부러져 논두렁에 버려진 새는 허공중에 새길 길조차 없다.
하지만, 그도 죽자마자 길을 낸다.
바르도의 길은 오색이라지만, 남아 있는 자에겐 까만 멍.
먹물보다 더 진한 어둠속에서 나는 그리움을 긷는다.
그리움 絃 울려 그와 나는 함께 떤다.
(* 이글은 지난 2007.06 강아지와 인연을 마지막으로 다하며, 적은 글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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