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ngta      

불거(不去)

소요유 : 2018.10.27 10:40


불거(不去)


‘노병은 죽지 않고 다만 사라질 뿐이다.’


이거 맥아더가 퇴역시 미국 의회에서 한 말임을 대개는 안다.

영어로는 ‘old soldiers never die; they just fade away.’라,

번역된 우리말과 거의 뜻이 같다.

이 말은 맥아더로 인해 우리에게 유명해졌지만,

실인즉 이미 당시 저들 군부대 안에선 널리 쓰이는 말이기도 하다.


왜, 저들은,

죽으면 그만인데, 사라질 뿐이다라며, 다시 토를 달고 있는 것인가?

저기엔 아직 살아있는 세계를 향해, 손수건을 흔들며,

잊혀지지 않기를 기대하는 여운이 남겨져 절절(은은)히 흐르고 있다.

그러므로 저런 말을 하는 화자는,

아직 삶에 대한 미련이 남아 있다 하겠다.


이를 듣는 이도 역시,

죽은 이에 대하여 잊지 않고 기억하겠다며,

결별의 마당에서 저들과의 끈을 놓지 않는다.

이런 화답을 통해 저들과 하나가 된다.


하지만, 결국은 죽은 자나 산 자 모두는 살아 있는 역사를 두고 말할 뿐,

죽음 저 편의 세상에 대하여는 말하지 않는다.


저 말엔, 기실 죽음에 대한 아쉬움이 짙게 배어 있다.

결별에 대한 불가피성 앞에 체념을 하기엔,

살아 있던 세상에 대한 애착이 너무 강하다.

하기에 죽지 않았다며, 현실에 애써 항거하며,

다만 사라질 뿐이다라며 스스로 자위하는 것이다. 


그래, 당신 말대로 사라진다 하여도 좋다.

헌데, 사라진 이후의 세계에 대하여는,

일언반구도 발하여지지 않고 있다.


이 의미공간에 대한 해석학이 필요하다.

오늘 그 이야기를 해보고자 하는 것이다.


生而不有。為而不恃,功成而弗居。夫唯弗居,是以不去。

(道德經)


‘생하되 소유하지 않고, 하되 기대지 않으며,

공을 이루되 거하지 않는다.

무릇 거하지 않기에, 불거(不去)한다.’


여기 不去를 ‘죽지 않는다’ 또는 ‘사라지지 않는다’로 대체할 수 있는가?

그럴 수 없다.

왜 그런가?


功成而弗居。


공을 이루었음인데,

그 자리에 거하지 않는다.


이 말은 공의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스스로 버리고 나온다는 적극적 의지가 표출되어 있다.


그런즉 죽었음에도 죽지 않았다는 강변,

그리고 다만 사라질 뿐이다라는 변명으로써,

살아 있는 자에게 아쉬움을 토로하는 세계와는 차원을 달리하고 있음이다.


功成而弗居에 그쳤으면 족할 터인데,


노자는 그답지 않게, 

夫唯弗居,是以不去。

이 말을 덧붙였다.

弗居이기에 不去하다.

거하지 않기에 가지 않는다.


不去


이 말은 그저 不去라면 이해가 다 되는데,

한글로 번역하자니 영 마땅한 말을 찾아내기 어렵다.

자칫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기에 그렇다.


夫唯弗居,是以不去。


이 말은 췌언(贅言), 군더더기 말에 불과하다.

功成而弗居

이 말 하나면 그만일 터인데 말이다.

하여 굳이 번역하지 않고 그냥 不去로 남겨두고자 한다.


다만, 도덕경에 나오는 다음 구절을 소개하는 것으로 대신하고자 한다.


持而盈之,不如其已;揣而銳之,不可長保。金玉滿堂,莫之能守;富貴而驕,自遺其咎。功遂身退天之道。

(道德經)


"지니고 있으면서 채우려고 함은 그침만 못하며,

불려서 날카롭게 한들 오래 보존할 수 없다.

금과 옥이 집안을 가득 채워도,

능히 지킬 수 없다.

부귀하여 교만함은 스스로 허물을 남기는 것이라.

공을 이루고 나면 물러남이 하늘의 도니라."


功遂身退天之道。


같은 도덕경엔,

다시 한 번 공을 이루고 물러남이 하늘의 도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그러니까,

이것은 하늘의 도라 이르고 있음이니,

맥아더의 말처럼 인간의 정한(情恨)에 기대고 있지 않음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노자의 이 사상을 다 몸으로 익혔기에, 

역사상, 공수신퇴(功遂身退)를 한 이는 적지 아니 많다.


한나라의 개국공신 장자방(張子房)은 공을 이루자 미련 없이 물러났다.

월나라 도주공(陶朱公) 즉 범려(范蠡) 역시 오나라를 이기고나서는 월왕 구천을 떠난다.

진문공(晋文公)이 떠돌이 망명 생활을 하다,

진나라로 다시 돌아와 왕이 되자,

수행하였던 개자추(介子推) 역시 면상산(綿上山)으로 숨어들었다.


이들에 대하여는 내가 블로그에 이미 전에 다 언급하였었다.

보다 깊은 사연을 알고 싶다면, 이를 참고함이 가하겠다.

이를 다 대하고 나면,

공수신퇴(功遂身退)에 대한 이해가 좀 깊어지리란 기대가 있다.


오늘 글을 쓴 이유는,

남이 뱉어낸 말에 복속되어,

이를 도그마화하며 그에 갇힌 것을 보고는,

안타까움을 느꼈기 때문이다.


맥아더 유명인이다.

하지만, 그가 전한 말이라 하여,

무조건 금과옥조로 여겨,

마음을 앗기고, 몸을 맡기면,

귀신이 되어도 원통하지 않으랴?


如奪得關將軍大刀入手。

逢佛殺佛。逢祖殺祖。

於生死岸頭得大自在。

向六道四生中。

遊戲三昧。(無門關)


“관우의 대도를 뺏어 손에 들고는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여 생사간두에 대자재를 얻어 육도사생 중 유희삼매하리라.”


하여, 옛 사람들은,

이리 족족 만나는 사람마다 다 죽여 버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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