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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으면 왜 말이 많아지는가?

소요유 : 2019. 7. 21. 09:46


늙으면 왜 말이 많아지는가?


나이 많은 이들은 대체로 말이 많다.

머릿속에 축적된 정보량이 많다보니,

눈앞에 닥치는 현전하는 상황에 즉하여,

평가, 판단하는데 거칠 것이 없기 때문일까?


하지만, 이를 대하는 이들마저,

이를 용인하고, 참아낼 인내력이 있다 할 수는 없다.

또한 정보량이 설혹 많다한들,

그게 모두 가치 있고, 이치에 맞는다 할 수는 없다.

헌즉 공연히 많은 말로써,

주위를 괴롭히고, 말썽을 일으키곤 한다.

십분 경계할 일이다.


나, 역시 한창 때에는 과묵하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말이 없었다.

헌데, 나이가 들어가면서 스스로도 내가 말이 많아졌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하여, 정색하고 멈춰서, 자신을 지긋이 관찰하는 버릇이 생겼다.

말을 쏟아내는 한편, 그러고 서있는 자신을 주시하고 있는 또 다른 자아가 있음을,

나는 알아차리고 있다.

이런 여유는 그나마 내겐 여간 다행이 아니다.


하지만, 현실에선, 

자신은 알고 있으면서도, 쉬이 멈출 수 없을 때가 많아졌다.

허나, 말이 많은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러고 있는 자신을 지켜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

더 문제이니, 나는 최소 봇물 터지듯 자신을 통어할 수 없는 지경엔 이르지 않을 듯하다.

아니 그러할지라도, 이를 지켜보고 있는 또 다른 자기 자신이 관찰자가 되어,

자리를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자신의 행위를 여여(如如)히 관찰하는 한,

언젠가는 바른 길로 돌아설 수 있으리란 기대가 있다.


다만, 이게 기억력이 감퇴하여 했던 말을 되풀이 하는 것도 아니요,

일상이 지루하고 심심하여, 누구나 붙잡고 말을 쏟아내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함인데도, 나는 왜 말이 많아졌는가?


내가 나를 가만히 관찰하건데,

내가 말이 많아진 것은, 내가 알고 있는 것을,

상대에게 알려주고 싶은 욕구가 크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예전엔 나만이 알고 감추려 한 일도,

상대에게 전하여 잃지 않아야겠다는 동인이 작동하고 있다.

의식하지 않고 있지만, 아마도 무의식적으로 노화기제가 작동하여,

세상에 대한 염려지정이 많아지고 있는 것인가?

허나, 비인부전(非人不傳)이라,

어찌 사람 대함에 가림이 없을쏜가?


약삭빠르고, 잇속 챙기는 데 재바른 이에겐,

죽었다 깨어나도 정이 가지 않으니,

이들에게까지 가리지 않고 말을 늘어놓지는 않는다.


말을 많이 하면,

손해는 늘지만, 결코 자신에겐 득책이 되지 않는다.

자신의 내력을 다 까발리고서야,

어찌 상대와 겨룰 수 있으랴?


자신은 감춘 게 많고,

상대에 대하여는 많은 것을 알게 된다면,

상대를 다루는데 훨씬 유리할 것이다.

知彼知己,百戰不殆;不知彼而知己,一勝一負;不知彼,不知己,每戰必敗。

그런즉, 지피지기면 백번 싸워지지 않는다 하였음이다.

아아, 그러한즉, 아래에서 다루겠지만,

脣乎齒乎,吾不為始乎라,

입술을 달싹이고, 이빨을 달그락 거리며 먼저 말을 할 일이 아니다.


나이가 많든, 적든, 가급적 말을 삼갈 일이다.

허나, 이게 능사가 아닌 것이,

가까운 친구에게까지 이리 아끼고서야,

어찌 상대로부터 신뢰를 얻어낼 수 있으랴?


그렇지만, 지금 당장 친근한 사이일지라도,

후에 어그러져 척을 지게 되면,

허허로이 노출한 정보가 부메랑이 되어,

자신에게 해를 끼칠 수도 있다.

이러할 때는 말을 아끼지 않고 헤프게 놀은 것이,

여간 한심한 노릇이 아닌 것을 뒤늦게 깨닫게 된다.

그러함이니, 실로 말이란 간단한 것이 아니다.


聽言之道,溶若甚醉。脣乎齒乎,吾不為始乎,齒乎脣乎,愈惛惛乎。彼自離之,吾因以知之。是非輻湊,上不與構。虛靜無為,道之情也;參伍比物,事之形也。參之以比物,伍之以合虛。根幹不革,則動泄不失矣。動之溶之,無為而改之。喜之則多事,惡之則生怨。故去喜去惡,虛心以為道舍。

(韓非子)


“(군주가) 신하의 말을 듣는 태도는,

마치 술에 떡이 되어 만취 상태가 된 양 하는 것이다.

입술이여, 이빨이여,

내가 먼저 움직이지 말지라.

입술이여, 이빨이여,

더욱 더 어리석은 척 입을 닫아라.

저 편에서 이를 벗어나면(입을 열면), 

나는 그를 통해 (사실을) 알게 된다.


시시비비가 폭주한다한들, 윗전(군주)은 이들을 상대하여 엮이지 않는다.

허정무위한 상태가 도의 본 모습이다.

여러 사물이 빗대어 다투는 것은 사물의 형상이다.

이리 사로 빗대며, 참견(참여)하여 허정한 도와 합한다.

근간이 바뀌지 않는 한, 군주가 행하는 일에 잘못하여 놓치는 바가 없다.

움직이고, 일을 행함에 있어,

작위로 꾸미지 않으면서도, 절로 (인민의 풍속이) 고쳐진다.

군주가 좋아하는 즉 일이 많아지며,

싫어하는 즉, 원망이 생기고 만다.

그런즉, 좋아하고 싫어하는 감정을 버리고,

마음을 비워 도가 저로 깃들게 하여야 한다.”


(출처 : 網上圖片)


용약심취(溶若甚醉)


아아, 이 귀한 말씀을 단단히 기억해둘 일이다.

아니, 지금 당장 외워 새겨 두어야 한다.


술에 만취가 된 양,

바보가 된 듯,

미치광이가 된 꼴로써,

세상을 대하는 방식은,

동양엔 널리 알려진 처세술의 하나다.

(※ 참고 글 : ☞ 바보와 은자)


순자를 남상(濫觴)으로 흘러내린 사상이,

법가로 그리고 병가로 녹아들었음이니,

이는 마치 노자의 노회한 철학이,

역시 이들 학파에 습윤(濕潤)된 것과 유사하다.


멀쩡한 이가 바보 흉내를 냄은,

종국엔 상대를 무장해제 시키고,

저들의 본질을 불 밝힌 듯, 알아내어,

내가 꾸미는 일에 동원하고, 종국엔 복속시키고자 함이다.


가령, 손빈(孫臏)은 동문수학한 방연(龐涓)의 뀀에 빠져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한다.

하지만, 소위 가치부전(假痴不癲) 술책을 써서 마수로부터 빠져 나온다.

여기 가치부전이란, 거짓으로 바보인 척하지만, 결코 미치지 않았다는 뜻이다.


靜不露機라,


고여히 정려 상태로 있으며,

기미를 외부에 노출시키지 않는다.


이는 마치 구름이 우레 위에 있어,

우레를 억제하고 있는 역경의 수뢰둔괘(水雷屯卦)와 같다.

물은 하늘 위에 있어 땅으로 내리지 못하고,

우레는 물속에 갇혀 울리지 못하고 있는 형국이다. 

허나, 현재 구름이 우레 위에 있으나,

언젠가 변화가 일면,

이게 서로 도전되어, 뇌수해괘(雷水解卦)가 된다.

즉, 우레가 위로 올라가 소리를 내고,

물이 아래로 내려와 비가 되어 만사가 풀리게 된다.


일시 곤란한 상황에 처해있다 한들,

꾹 참고 다음을 기다릴 일이다.


늙었다한들,

조바심을 내거나,

허랑한 심정을 스스로 다스리지 못하여,

마구 말을 쏟아내면, 

우레가 구름에 갇히고,

구름이 우레에 막혀,

천둥소리가 나지 못하고,

비가 내리지 못하는 곤경을 쉬리 벗어나지 못한다. 


老來多言이라,

늘그막엔 말이 많아진다.

허나, 危莫危於多言이라,

실로, 위험에 처하고 아니 하고는 말이 많음에 달렸다.

이는 다언다패(多言多敗)와 그 지시한 경계가 매한가지다.


용약심취(溶若甚醉)의 경지엔 이르지 못할지라도,

말을 아껴, 도의 길로 들어서야 한다.


하기에, 言不入道,故曰小言。이라 하지 않았던가?

말로썬 진리의 세계로 진입할 수 없다.


장자 역시 知者不言,言者不知라 하였음이다.

‘아는 자는 말을 하지 않고, 말하는 자는 알지 못하다.’


그런즉 말을 아낄지라.


아니 말을 그칠 일이다.


(출처 : 網上圖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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