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곡(酒曲)
내가 어느 날 ‘달의 눈물’이란 일본 만화를 보게 되었다.
거기 흠뻑 빠져 거의 시리즈물 전편을 다 보게 이르게 되었다.
아, 달의 눈물이라니,
이리 그 누가 있어,
이리도 가슴이 저리도록 아름다운 서정적인 술 이름을 지을 수 있는가?
한껏 감탄하였다.
길 잃고,
바위 위에 올라 하울링 하는,
외로운 늑대처럼,
때때로, 술 한 잔 걸치고서는,
우리 농장 언덕에 올라,
달을 사모하는 나로선,
이게 너무나도 가슴에 와 닿았다.
술을 좋아하는 나에겐 더욱 더.
전통주를 만드는 이는 한국에 적지 않다.
헌데, 당시 배상면 주가가 널리 알려졌음이라,
나는 너무 흥분하여, 이 만화 전질을 그들에게 선사하고 싶어졌다.
전통주를 지키는 그들이 너무 고마웠다.
하였던 것인데, 여러 사정으로, 그리 하지는 못하였다.
나중에 이들이 나와 정치적 지향이 다른 것을 알게 되어,
전하지 아니 한 것이 다행이다 싶기도 한데,
한편 생각하면, 그게 뭣이 대수랴?
나와 의견이 다른 것이 무슨 큰일이랴?
모든 게 나와 똑같다면,
그야말로 다중우주(多重宇宙)니 평행우주에서 말하는,
동시 진행의 친족(?)이니 어찌 마음의 이끌림, 미침이 없으랴?
허니, 차라리, 나와 다른 인격, 존재라면 외려,
치우치지 않고 기우러지지 않으리니,
맘이 한결 순해지지 않을쏜가?
하여간, 그 만화로, 전통주를 담그는 기본 철학을 배우게 되었다.
흔히 누룩이라 하는 것은 한자어로 주곡(酒曲)이라 부른다.
(출처 : 網上圖片)
이는 흔히 주모(酒母), 주병(酒餅), 술밑, 술누룩이라 이르기도 한다.
헌데, 여기, 나는 곡(曲)이란 말에 묘한 꼴림이 일어난다.
나는 앞의 글에서
(※ 참고 글 : ☞ 민주당의 자복려백 - 박용진, 금태섭, 김해용)
是謂是,非謂非曰直。
옳은 것은 옳으며, 그른 것은 그르다 이르는 것을 곧다(直)이라 하였다.
헌데 곡(曲)이라니,
이는 直과 반대가 아니냐?
君子曰:學不可以已。青、取之於藍,而青於藍;冰、水為之,而寒於水。木直中繩,輮以為輪,其曲中規,雖有槁暴,不復挺者,輮使之然也。故木受繩則直,金就礪則利,君子博學而日參省乎己,則智明而行無過矣。
(荀子 勸學)
“군자가 이르다.
‘학문은 그치지 않아야 한다.
푸른색은 쪽에서 취하는데, 쪽빛보다 더 푸르고,
얼음은 물이 얼어서 되는 것인데, 물보다 더 차갑다.
나무가 곧아서 먹줄과 같이 곧아도,
굽혀 수레바퀴를 만들어,
그 구부러진 것이 컴퍼스와 같아지면,
비록 말라(건조) 다시 펴지지 않는 것은,
수레바퀴(테)가 그리 하도록 만든 것이다.
그런즉 나무는 먹줄을 먹여 곧아지며,
쇠는 숫돌에 갈아져 날카로워진다.
군자는 널리 배우고, 날마다 세 번씩 반성하면,
지혜는 밝아지고, 허물이 없어진다.’”
유가는 학(學)을 강조하고,
순자는 교(敎)를 강조한다.
순자를 흔히 유가 학파로 분류하나,
이 점에선 분명이 차이가 있다.
위 순자의 인용문은 直과 曲을 대비시키되,
얼핏 直을 중심 가치로 여기는 양 그려지고 있다.
그래, 敎를 통해 直으로 나아감을 지향하고 있어 보인다.
헌데, 가곡(歌曲)이라 할 때,
이게 가령 가직(歌直)이라면, 노랫가락이 될 수 있으랴?
무릇 음악이란,
直이 아니라,
曲으로써,
자연을 흉내 내고,
사람 마음을 훔치고 마는 것이다.
계집사람이 머리카락을 머리 인두기로 볶아 곱슬곱슬 만드는 사연은 무엇인가?
도대체가 빳빳하니 선 머리칼로서는 사내 녀석을 후리는데 충분치 않기 때문이 아닌가?
연신 흘러내리는 머리칼을 뒤로 쳐 넘기며,
부지럼을 떠는 것 역시 曲의 미학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이런 성가심을 불사하고서라도,
곡선의 미학으로,
사내를 유혹하고자 함이리라.
한옥의 처마 역시,
하늘을 향해 포물선을 그리며 치올라,
우리의 심금을 흔들고 만다.
누룩 주곡(酒曲) 역시,
미곡(米穀)에 버무려져,
틴수화물, 단백질을, 상대로,
미생물이 작용하여,
알코올을 만들며, 발효를 시킨다.
만약 이게 주직(酒直)이라면,
이내 곧장 저 유기물을 파괴하여 부패시키며,
곧바로 자연으로 환원시키고 말 것이다.
실로 曲의 덕성이 이러하기에,
주곡은 탄수화물을 분해하여,
각종 효소, 비타민, 호르몬을 만들어내며,
새로운 세계를 창조, 잉태한다.
아아, 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술 먹고 취할 때,
그 아리 삼삼, 칠칠, 팔팔한 상태를 그대 당신은 모르는가?
그러함이니,
누룩은 반드시 주직(酒直)이 아니라, 주곡(酒曲) 이기에,
저 오묘한 우주적 변용(變容)의 역사를 주재할 수 있는 것이다.
허나, 주모(酒母)나 계집사람이 曲으로써,
세상을 아름답게 치장한다할쏜,
군자는 曲 가운데, 쉼 없이 直을 의식하며,
자신의 안쪽 뜰을 점검하고 단속한다.
今夫盲者目不能別晝夜,分白黑,然而搏琴撫弦,參彈複徽,攫援摽拂,手若蔑蒙,不失一弦。使未嘗鼓瑟者,雖有離朱之明,攫掇之捷,猶不能屈伸其指。何則?服習積貫之所致。故弓待檠而後能調,劍待砥而後能利。玉堅無敵,鏤以為獸,首尾成形,礛諸之功。木直中繩,揉以為輪,其曲中規,檃括之力。唐碧堅忍之類,猶可刻鏤,揉以成器用,又況心意乎!且夫精神滑淖纖微,倏忽變化,與物推移,雲蒸風行,在所設施。君子有能精搖摩監,砥礪其才,自試神明,覽物之博,通物之壅,觀始卒之端,見無外之境,以逍遙仿佯於塵埃之外,超然獨立,卓然離世,此聖人之所以游心。若此而不能,間居靜思,鼓琴讀書,追觀上古及賢大夫,學問講辯,日以自娛,蘇援世事,分白黑利害,籌策得失,以觀禍福,設儀立度,可以為法則,窮道本末,究事之情,立是廢非,明示後人,死有遺業,生有榮名。如此者,人才之所能逮。然而莫能至焉者,偷慢懈惰,多不暇日之故。夫瘠地之民多有心力者,勞也;沃地之民多不才者,饒也。由此觀之,知人無務,不若愚而好學。自人君公卿至於庶人,不自強而功成者,天下未之有也。《詩》云:「日就月將,學有緝熙于光明。」此之謂也。名可務立,功可強成,故君子積志委正,以趣明師,勵節亢高,以絕世俗。
(淮南子 脩務訓)
“...
곧은 나무로서 먹줄과 같은 직선의 곧은 것으로,
구부려 바퀴를 만들 경우,
그 구부러짐이 컴퍼스와 맞도록 하는 것은,
도지개의 힘인 것이다.
(※ 도지개 : 틈이 가거나 뒤틀린 활을 바로잡는 틀)
당벽과 같이 딱딱한 돌일지라도,
조각을 하거나, 구부림으로써 기물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항차, 사람의 심의(心意)는 더 말할 것이 있으랴?
...”
且夫精神滑淖纖微,倏忽變化,與物推移,雲蒸風行,在所設施。君子有能精搖摩監,砥礪其才,自試神明,覽物之博,通物之壅,觀始卒之端,見無外之境,以逍遙仿佯於塵埃之外,超然獨立,卓然離世,此聖人之所以游心。若此而不能,間居靜思,鼓琴讀書,追觀上古及賢大夫,學問講辯,日以自娛,蘇援世事,分白黑利害,籌策得失,以觀禍福,設儀立度,可以為法則,窮道本末,究事之情,立是廢非,明示後人,死有遺業,生有榮名。如此者,人才之所能逮。然而莫能至焉者,偷慢懈惰,多不暇日之故。夫瘠地之民多有心力者,勞也;沃地之民多不才者,饒也。由此觀之,知人無務,不若愚而好學。自人君公卿至於庶人,不自強而功成者,天下未之有也。《詩》云:「日就月將,學有緝熙于光明。」此之謂也。名可務立,功可強成,故君子積志委正,以趣明師,勵節亢高,以絕世俗。
(淮南子 脩務訓)
“게다가, 정신이란, 부드럽고, 섬세한 것이라,”
홀연히 변화하고, 사물의 추이에 따라 움직이니,
구름이 일고 바람이 부는 것처럼, 응변할 수 있다.
군자는 정진하여 자세히 살피고,
그 재능을 갈고 닦으며, 신명을 다 시험하되,
사물의 전개를 널리 살피고, 사물이 막인 것을 통하게 하고,
시작하고 마침의 단서를 관찰하며, 그 끝감을 잃지 않고 쫓아 본다(觀).
그렇게 티끌 속세, 밖으로 나와, 노닐며,
초연하게 홀로 서서, 탁연히 세상을 멀리하여 떠난다.
이것이 성인이 노닐던 마음이다.
만약 이렇게 한거정사 할 수가 없다면,
거문고를 타고 책을 읽으며, 옛 일을 상고하며,
현명한 대부를 벗 삼아 학문에 대하여 강변(講辯)하며,
하루하루를 즐기는 것이다.
세속의 일을 살피어, 흑백과 이해를 분별하고,
득실을 따져, 화복을 관찰하며,
예의를 펴고, 법도를 세워, 법칙으로 삼고,
도의 본말을 궁구하고, 사물의 실정을 따져,
옳은 것을 세우고, 그른 것을 폐함으로써,
후인들에게 밝음을 제시하는 것이다.
죽어 유업을 남기고,
살아 영예로운 이름을 떨친다.
이상은 인재가 해야 할 일이다.
그럼에도 여기에 이르는 자가 없는 것은,
게으름에 빠져,
하루를 낭비하는 것이 많기 때문이다.
대저, 척박한 땅에 사는 백성 중에,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은 노고가 많기 때문이다.
비옥한 땅에 사는 백성 중에,
재주가 없는 이가 많은 것은,
그 풍족함을 누리기만 하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건대,
지혜로운 이가 힘쓰지 않는 것은,
어리석더라도 배우기를 좋아하는 것에 미치지 못한다.
임금이나 공경으로부터 서인에 이르기까지,
스스로 노력하지 않고 성공한 자는,
천하가 있고서, 아직 없었다.
....”
아아, 그러함이니,
사람은 學하고 敎함으로써,
옳은 길로 나아가는 것이다.
술은 주곡(酒曲)으로 세상을 취하게 하며,
음악은 악곡(樂曲)으로써 성장(成章)하며,
계집은 절요보(折腰步)로 사내를 유혹하나,
(하기사 무릇 曲이란 曲象圜其中受物之形라 하였음이라,
무엇인가 그 가운데 물건을 받기 위한 것을 본뜬 것이라 하였다.
)
모름지기 군자는 直으로써,
자신과 세상을 바로 밝힌다.
(※ 참고 글 : ☞ 미혹교주(媚惑敎主) 손수(孫壽))
君子崇人之德,揚人之美,非諂諛也;正義直指,舉人之過,非毀疵也;言己之光美,擬於舜禹,參於天地,非夸誕也;與時屈伸,柔從若蒲葦,非懾怯也;剛彊猛毅,靡所不信,非驕暴也;以義變應,知當曲直故也。
(荀子 不苟)
“군자는 남의 덕을 높이고, 아름다움을 찬양하지만,
이는 아첨이 아니다.
바르고 의로운 것은 바로 행하고, 남의 허물은 지적하지만,
남을 비방하고, 흠을 내기 위함이 아니다.
자기의 빛나는 아름다움을 말할 때에는,
순, 우에 비추어, 천지에 나란히 하지만,
과장하여 믿을 수 없는 게 아니다.
때로는 굽히고 펴서,
따르는 것이 부드럽기가 갈대와 같지만,
두렵거나 겁을 내는 것이 아니다.
굳세고 강하여,
믿지 않음이 없지만,
교만하고 포악스러워서가 아니다.
의로써, 응변하며,
(그) 앎이 굽고 곧은 이치에 합당하기 때문이다.”
헌즉 시에 이르길 이리 하지 않았던가?
《詩》曰:「左之左之,君子宜之;右之右之,君子有之。」此言君子能以義屈信變應故也。
“시경에서 이르다.
‘좌에서 좌로 하여도, 군자가 마땅하고,
우에서 우로 하여도 군자가 갖춤이 있네.’
이 말은 군자는 의로써 굽히고, 펴며,
변화에 응한다는 것이다.”
광화문, 세종로로 좌우 나눠 편 가르기를 한다한들,
과연 이 짓이 군자가,
左之左之
右之右之
以義屈信變應함이런가?
스스로 자문할 일이다.
그대 당신이 군자로서의 자존심이 있다면.
깊이 성찰할 일이다.
조국이 성찰한다는 말을 실없이 하도 많이 동원하여,
이젠 이 말의 값어치가 많이 떨어지고 말았지만,
그가 이미 사라진 마당이라,
그 말의 뜻이 이제 바로 섰을 터.
그래, 그 성찰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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