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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부동(和而不同)

소요유 : 2019. 12. 10. 15:28


화이부동(和而不同)


화이부동이란 말은 대개는 들어보았고, 알고는 있다.


君子和而不同,小人同而不和。

(論語)


“군자는 화목하나, 같지 않으며,

소인은 같으나, 화목하지 않다.”


우선 급한대로, 그 출전을 끌어놓고,

일반적 해석을 따라 번역해두었다.

이를 임시 앞잡이로 삼고,

길을 떠나본다.


노자하상공장구(老子河上公章句)를 보면,

이런 말이 나온다.

陰陽生和、清、濁三氣,分為天地人也。

도(道)가 음양으로 분화되고, 

음양은 다시 和、清、濁을 생한다 하였으며,

이게 나뉘어 天地人이 된다 하였다.

清한 것은 올라가 하늘이 되고,

濁한 것은 아래로 내려와 뭉쳐 땅이 된다.

그러니까, 인간이 그 천지 사이에 있어,

이들을 아우르며 조화를 꾀한다는 말이 된다.


그런데, 여기서, 和而不同을 다시 가져다 눈앞에 두고,

이를 비추면, 천지는 同이라 하겠다.

왜 그런가?

천, 지는 각기 따로 패를 갈라 하나로 귀결되니 同이다.

가령 천, 지를 여야 각 당이라 한다면,

여든 야든 각기 속한 무리 집단은 同으로 똘똘 뭉쳐 있다.

아무리 잘못을 저질러도, 자당 소속 당원을 변호하고, 감싸 안기 바쁘며,

타당은 아무리 옳아도, 이를 그르다며 무작정 비난하는데 온 힘을 다 쏟는다.

이제 이해가 되는가?

이런 모습이 바로 同의 세계에선 일상으로 벌어진다.

저들은 옳고, 그름이 아니라, 

그저 같은 패거리로 뭉쳐,

싸움질에 여일이 없다.


천지인 삼재(三才) 중,

천은 淸, 지는 濁으로 제각기 속성대로 나뉜다.

하지만, 사람이라면, 어느 하나에 치우치지 않고, 和한다.

和而不同이란, 바로 천지, 음양, 청탁을 나눠 차별하지 않고,

和하는 존재다.


이게 논어의 위대한 가르침이다.


양당제(兩黨制, two-party system)는 고전적 정치학에선,

제일 이상적인 형태로 취급되었다.

하지만, 오늘날 한국에서 보듯이,

저들은 小人同而不和에 딱 들어맞듯이,

언제나 상호 불화하기에 바쁘다.

나아가, 자당 소속인들에겐 同하기를 거의 협박하듯 강요한다.

그리고 개별 단자들도 스스로 굴욕을 참고, 자청하여 저들 발치에 복속한다.


조금이라도 다른 소리를 내면, 

배신자라 질타하며, 내친다.

따라서 다음 공천을 의식하여,

저들은 그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지도부의 지침을 따라간다.

전형적인 小人同而不和의 모습이다.


이에 소선구제 위주의 선거제도를 바꿔야 한다는,

정치적 당위가 시대적 요청과 함께 대두되고 있는 실정이다.

기실 和而不同하는 군자의 나라가 되려면,

양당이 독점적으로 정치권력을 나눠 갖는 권력 구조 형태를 바꿔야 한다.


天下皆知美之為美,斯惡已。皆知善之為善,斯不善已。故有無相生,難易相成,長短相較,高下相傾,音聲相和,前後相隨。是以聖人處無為之事,行不言之教;萬物作焉而不辭,生而不有。為而不恃,功成而弗居。夫唯弗居,是以不去。

(道德經)


“천하 모두가 아름다움을 아름다움으로 아는 것이야말로 추함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모두가 착한 것을 착한 것으로 아는 것은, 착하지 않음이 있다는 것을 뜻한다.

그런즉, 있고 없고는 서로의 관계에서 비롯되어 생기는 것이며,

어렵고 쉬움도, 서로의 관계에서 성립되는 것이며,

길고 짧은 것도 서로의 관계에서 비교되는 것이며,

높고 낮음도 서로의 관계에서 정해지는 것이며,

음악과 목소리도 서로의 관계에서 어울리는 것이며,

앞과 뒤도 서로의 관계에서 따르는 것이다.


따라서 성인은 무위로써 일을 처리하고,

말로 하지 않는 가르침을 행한다.

만물이 지어져도 사양하지 않고,

이뤄도 가지려 하지 않고,

함이 있어도 거기에 의지하지 않고,

공이 있어도 거기에 머무르지 않고,

공을 이뤄도 주장하지 않기에,

이룬 일이 헛되지 않는다.”


노자에 등장하는 이 문구를 생각해본다.

관계의 상대성을 논하고 있지만,

여전히 고저, 장단 따위의 척도를 여의지 못하고 있는 언술 구조에 갇혀 있다.

비록 고저, 장단이 상대적이라,

어느 것을 고라 하고, 다른 어느 것을 저라 하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의미를 전하고 있지만,

그러함에도 아직도 고저, 장단을 빌어 논의를 전개하고 있는 한,

철저한 경계에는 진입하였다 할 수 없다.

 

하지만, 和而不同은 고저, 장단처럼 특정 척도에 의지하여 재고 따지지를 않고,

천하만물은 不同함을 인정하고, 和하는 존재라 선언하고 있을 뿐이다.

즉, 고저, 장단이란 비교 척도가 아니라,

그저 不同함만을 지적할 뿐이란 이야기다.

차이를 두어 나누어 인식하려는 태도를 넘고,

차이에 따른 우열을 의식하지 않는 데로 나아가고 있다 하겠다.

이는 보다 포괄적이고, 보편적 인식 태도라 하겠다.


우리가 요즘 자주 듣는 생물다양성(biodiversity)도,

생물별 강약, 익해(益害)를 두고 나누지 않듯,

和而不同의 세계에선, 

만물의 제 존재를 차별하지 않고 존중하고 있다.

(※ 참고 글 : ☞ equilibrium)


화이부동의 세계는,

위계(位階)가 없으며,

이데아나 본질과 대립하는 현상, 이런 이원론적 세계와는 다르다.

구태여, 이데아나, 神을 설정하거나, 구하지도 않는다.


季路問事鬼神。子曰:「未能事人,焉能事鬼?」敢問死。曰:「未知生,焉知死?」

(論語)


“계로가 귀신을 섬기는 것에 대하여 묻자 공자가 말했다.


‘사람 섬기는 것도 능히 못하는데, 어찌 귀신을 능히 섬길 수 있으랴?’


(계로가 여쭙다.)

‘감히 죽음에 대하여 여쭙습니다.’


답하여 말씀하시다.


‘미처 삶도 아지 못하는데, 어찌 죽음을 알랴?’”


유가는 신, 죽음에 개입하지 않는다. 

마치 불교의 독전(毒箭)의 비유처럼.


聲聞畏惡生死,聞眾生空,及四真諦,無常、苦、空、無我,不戲論諸法。如圍中有鹿,既被毒箭,一向求脫,更無他念。

(大智度論)


독화살에 맞았으면,

이를 빼어내는 것이 급하지,

어디서 날아왔는지 아는 것은 급하지 않다.

一向求脫,更無他念。

구탈하는 것이 급하지,

다른 생각할 겨를이 어디에 있으랴?


우리가 同에 집중하면,

개별 인격이 아닌 집단이나, 초능력 존재자를 찾고, 귀의하며, 

곧잘 자신을 타자에게 빼앗겨 버리게 된다.

그러다 다반사이듯, 흉측한 교리나, 광포(狂暴)한 인간을 만나면,

저들의 폭력에 시달리고, 영혼을 털리게 된다.


君子和而不同,小人同而不和。


이제, 이는 실로 오묘하니 깊은 말씀인 것을 다시금 알 수 있다.


時有比丘,名須跋陀羅摩訶羅言:『止,止!何足啼哭?大沙門在時,是淨是不淨、是應作是不應作。今適我等意,欲作而作,不作而止。』時迦葉默然而憶此語,便自思惟:『惡法未興,宜集法藏。若正法住世,利益眾生。』


“(석가 열반에 드시자 가섭을 비롯한 비구들은 엎어지고 자빠지며 울음을 멈추지 못했다.)

이 때 비구가 하나 있었으니, 수발다라마하라(스바닷다)가 말하였다.

‘(우는 것을) 그쳐라!

(이게) 어찌 울만한 일이냐?

부처 살아계시올 때, 

이것은 정(淨)하니, 부정(不淨)하니,

이것은 해야 하니, 하지 말아야 하는 등 (족쇄가 채워졌었다.)

이제부터는 우리들 뜻에 따라,

하고 싶으면 하고, 하고 싶지 않으면 하지 않아도 된다.’


이 때 가섭은 묵연히 있다, 이런 말씀을 상기해내며, 생각에 잠겼다.


‘악법이 미처 흥하기 전에, 마땅히 법을 모아야겠다.

만약 정법이 세상에 자리를 지키고 있으면, 중생에게 유익하리라.’”


아아, 스바닷다야말로,

바로 첫 기치를 높이 든 인물이라 하겠다.

그는 불경스런 이가 아니라,

인간성에 깃든 개별 존재의 부동성(不同性)을 외치고 있는 자유 인격이라 하겠다.


우리가 군대나 회사 같은 조직에 속하게 되면,

늘 강요받는 것이 하나로 뭉치자는 것이다.


술자리에 끼고 싶지 않아도, 끌려가서, 입에 부어넣어야 하며,

노래를 부르고 싶지 않아도, 한 자락이라도 깔지 않으면 무리로부터 배척당한다.

스바닷다는 부처님이 돌아가시자,

그동안 억눌렸던 감정의 속박을 해체하며, 고고성(呱呱聲)으로 외치고 있다.

대자유인으로서.


(※ 참고 글 : ☞ 민주당의 자복려백 - 박용진, 금태섭, 김해용)


박용진, 금태섭, 김해용

과시, 이들은 자복려백이자, 스바닷다의 화신이라 하겠다.


양당제 역시 다당제로 바뀌어야 하며,

궁극엔, 깨알처럼 많은 천하인만큼 숫자대로 나눠져야 한다고 믿는다.

또한 천하인은 모두 제 목소리로 자신만의 노래를 크게 불러야 한다.


滕文公為世子,將之楚,過宋而見孟子。孟子道性善,言必稱堯舜。

世子自楚反,復見孟子。孟子曰:「世子疑吾言乎?夫道一而已矣。成覸謂齊景公曰:『彼丈夫也,我丈夫也,吾何畏彼哉?』顏淵曰:『舜何人也?予何人也?有為者亦若是。』公明儀曰:『文王我師也,周公豈欺我哉?』今滕,絕長補短,將五十里也,猶可以為善國。《書》曰:『若藥不瞑眩,厥疾不瘳。』」

(孟子)


“등문공이 세자였을 때, 초나라로 가는 길에, 송나라를 거쳐 맹자를 뵈었다.

맹자는 사람의 본성이 선함을 말하되, 말할 때마다 요순을 들었다.

세자가 초나라에서 돌아오는 길에, 다시 맹자를 뵈오니, 맹자가 말씀하셨다.

세자께선, 내 말을 의심하오니까? 무릇 도는 하나뿐입니다.

성간(成覵)은 제(齊) 경공(景公)에게 말하기를,

‘저 사람도 장부이고, 나도 장부인데,

내가 어찌 저 사람을 두려워하겠습니까?’ 하였습니다.

이에 안연(顔淵)이 말하기를,

‘순임금은 어떤 인물이고, 나는 어떤 인물인가?

선한 일을 하는 자는 또한 이와 같을 것이다’ 하였다.


그래서 공명의(公明儀)가 말하기를,

‘문왕(文王)은 나의 스승이라고 한, 주공이 어찌 나를 속이리오’라고 했습니다.

그러니 이제 등나라는 절장보단(絶長補短)하면, 거의 50리가 되니, 

좋은 나라로 만들 수가 있습니다.

서경(書經)에 말하기를, 

‘만약에 약(藥)이 독하여 눈을 캄캄하게 하고 어지럽게 하지 않는다면,

그 병은 낫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彼丈夫也,我丈夫也,吾何畏彼哉?


출전이 여기 맹자가 되겠다.


스바닷다의 행동은 바로,

여기 이 대목을 상기시키고 있다 하겠다.


여담이지만,

若藥不瞑眩,厥疾不瘳。

바로 이 대목을 마주치면 또 한 생각이 이는 것이다.


내가 침을 배울 때,

선생께선 이리 말씀하셨다.


‘침을 놓았는데,

환자가 쓰러지면,

고질병도 고쳐진다.’


침이 독하여,

환자는 곧잘 명현(瞑眩) 증상을 일으키며,

쓰러지는 경우가 있으니,

이는 침이 잘 들어 반응이 크게 오는 것이니,

어찌 병이 낫지 않을쏜가?


보지 않았던가?

조국 사태 때,

민주당 소속 국회의원들은 벙어리가 되거나,

아니면, 개발새발 환을 그리며, 

정권 수뇌부 눈에 들기 위하여, 

사타구니는 물론 그 밑이라도 핥겠다며 다투어 아첨을 떨지 않았던가?


헌데, 그 무리 가운데 몇몇은 장부였다.

과시 닭 무리 가운데 봉황이 깃들어 있었던 게다.

저들이야말로,

자복여백이며, 스바닷다이고, 성간(成覵)이라 하지 않을 수 없음이다.


장부란,

모름지기,

제 목청을 가다듬어, 제 노래를 불러야 하느니.


이게 진정 화이부동 세계의 모습이라 하겠다.


가섭(迦葉)은 동(同)이란 동아줄로,

대중을 묶어, 이로써 화합을 꾀하려 하였고,

맹자라든가 안연은 사람이란 모두 다 선한 본성을 가지고 있으니,

요순이란 성인이 될 수 있다는 의미로써, 

저 대목에서 언술하고 있으리라.


하지만, 아마도 성간은 성인이란 고정된 경지로의 진입을 염두에 두었기보다는,

제 나름의 고유한 인격적 완성 또는 세계(道)에 대한 독창적 이해의 도달을 겨냥하며,

彼丈夫也,我丈夫也,吾何畏彼哉?

이리 말하였을 수도 있다.


화이부동(和而不同)이라 하면,

대개는 和에 주목한다.

하지만, 나는 和가 아니라, 

不同에 대한 철저한 이해, 깨달음이 없다면,

결코 和도 끌어낼 수 없다고 생각한다.

모두 和해야 한다고 견인하는 것이야말로,

또 다른 형식의 同을 꾀하고 있는 것이니까.


소인은 同에 집착하고,

군자는 和에 주목한다.

하지만, 진정한 성인은 不同을 안다.

不同을 모르면 和도 이룰 수 없다.


끝으로,

본 주제 글과 관련된,

절창(絶唱) 하나를 소개한다.

번역은 생략한다.


天之常道,相反之物也,不得兩起,故謂之一。一而不二者,天之行也。陰與陽,相反之物也,故或出或入,或右或左,春俱南,秋俱北,夏交於前,冬交於後,行而不同路,交會而各代理,此其文與?天之道,有一出一入,一休一伏,其度一也,然而不同意。

(春秋繁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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