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小喜

소요유 : 2019. 12. 15. 19:08


我們的小喜


유튜브 채널 하나를 소개한다.



(utube, 我们的小喜 XiaoXi's Culinary Idyll)


채널 안 그는 말 한마디도 없다.

다만, 요리와 함께 목가적(牧歌的) 정경을 그려내고 있다.


혹간 우리네 유튜브 영상을 보면,

너무 지나칠 정도로 말이 많다.


억지, 과장, 흥분, 안달 ...

이것은 욕심은 많은데,

이를 채울 역량이 미처 따르지 못하니,

이리, 온 힘을 다하여, 안간힘을 쓰는 게 아니런가?


我們的小喜


이것은 분명 영상, 기획 팀이 뒤에서 받쳐주고 있다.

하지만, 저들은 서두르지 않고 있다.


저들은 자신을 일러 小喜라 하고 있다.

작은 기쁨이라.


기실 나는 느림의 미학, 게으름뱅이 ... 이런 따위의 수사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이리 간판 걸고 우아한 듯, 나서지만,

실제 내용을 보면, 모두 꾀하는 바가, 간절하고, 

때로는 저 내세움과는 정반대로 급히, 이루려하는 모습이 숨겨져 있음을 적지 아니 보았다.

복심은 따로 있어,

大를 희구하고 있다 아니할 수 없다.

외려, 형편 상, 현재 小란 너울 뒤집어쓰고 참아내며,

나중을 겨냥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 참고 글 : ☞ 찬종취전(鑽種取錢))


언젠가, 오마이 뉴스에, 느림 어쩌고저쩌고 하는 타이틀 걸어놓고,

거의 매일 글을 올리는 이가 하나 있었다.

그이는 목사인데, 

내 이를 역겹게 여겨,

글발을 날려 엄히 징치한 적이 있다.

게으르다면서, 매양 글을 쓸 정도라면, 

얼마나, 바쁜 이란 말인가?

게다가, 글 소재 안으로 이끌려 들어온 이들은,

모두 바삐 살아가는 이들 일색이었다.


小喜 

역시 이런 연출 장치가 아닌가 하는 의심이 간다.


본디 小 자를 앞에 내세우는 자를 경계하여야 한다.

왜냐?

세상에 小를 좋아하는 인간 그리 많지 않거든.

小를 빌어, 남의 경계를 풀고, 뒷전으로는 大를 겨냥하기 십상이다.


子曰:「君子周而不比,小人比而不周。」

(論語)


“군자는 두루하여 치우침이 없고,

소인은 파벌을 짓고, 두루 여럿과 함께 하지 않는다.”


소인은 늘 쪼개고, 나누며, 한 곳으로 치우친다.


群爲不黨이라고,

반면 군자는 무리를 짓되, 결코 파당, 파벌을 만들지 않는다 하였다.


小니 大니 한쪽으로 편벽(偏僻)되이 치우쳐, 

이리 喜를 꾸미는 순간,

그게 무엇이 되었든,

세상을 가르는 것이라,

바로 이 때,

그 반대편에 선 것과 대립하고, 불화하게 된다.


小喜 


작은 기쁨이라.

아, 제법 겸양의 미덕을 아는 양 싶이 보인다.


헌데, 그것으로 멈출까?

아지 못할세라.


그가 뒷구멍으로 호박씨를 까며,

종국엔 大를 겨냥할 수도 있는 것.


그런즉,

小든 大든 이리 차별적 언설로 나서는 이는,

그 무엇이 되었든, 우선은 경계할 일이다.


大知閑閑,小知閒閒;大言炎炎,小言詹詹。其寐也魂交,其覺也形開,與接為構,日以心鬭。縵者,窖者,密者。小恐惴惴,大恐縵縵。其發若機栝,其司是非之謂也;其留如詛盟,其守勝之謂也;其殺如秋冬,以言其日消也;其溺之所為之,不可使復之也;其厭也如緘,以言其老洫也;近死之心,莫使復陽也。喜怒哀樂,慮嘆變慹,姚佚啟態;樂出虛,蒸成菌。日夜相代乎前,而莫知其所萌。已乎已乎!旦暮得此,其所由以生乎!

(莊子 齊物論)


“큰 지혜는 여유가 있지만, 작은 지혜는 소심하다.

큰 말은 거침이 없으나, 하찮은 말은 수다스럽다.

외물과 관계를 맺으며, 매양 갈등을 일으킨다.

느린 자, 깊이 파고드는 자, 꼼꼼한 자도 있다.

조그만 두려움에 떨기도 하지만, 큰 두려움엔 외려 여유를 보이기도 한다.

말하는데 쇠뇌 발사 장치처럼 빠르다 함은,

시비를 가릴 때의 모습을 이르는 말이다.

완고함이 맹약을 지키는 제후와 같다함은,

많이 이기고 지키는 모습을 이르는 말이다.

시드는 모습이 가을, 겨울과 같다함은,

나날이 쇠락하고 있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리 빠져들면, 다시는 돌이킬 수 없게 된다.

통 속에 갇힌 듯하다 함은,

늙을수록 도리에 어긋남을 이르는 말이다.

거의 죽어가는 마음은 다시 소생시킬 수 없는 것이다.”


작은 지혜를 가진 이들은,

이처럼 언제나 사물을 쪼개고 나누며 분절하여,

세상을 차별하고, 이로써 자신을 한껏 꾸민다.

여기엔 小든 大든 별반 차이가 없다.

어떤 이는 小를 앞에 내밀되, 실인즉 大를 겨냥하고,

어떤 이는 大를 내밀면, 즉각 왼 통으로 자신의 욕망을 향해 달려간다.

결국 이 양자는 큰 차이가 없다.

미추(美醜), 호오(好惡)로 나눠,

세상을 저울질 하며,

이름 뒤에 숨어, 앞날을 예비한다.


기실, 이런 행동은 불안에 기인하고 있다.

저들은 사물을 통으로 대하면, 검은 하늘을 보듯, 막연하여 숨이 막혀온다.

분절시키지 않으면, 사태를 다 이해할 수도 없고,

그 아래 편히 마음을 놓을 수도 없다.

그러하기에, 세상을 자르고, 이름 붙이고, 너와 남을 차별하게 된다.


하여, 我們的小喜

여기 小喜를 접하고는,

이 또한 어찌 경계하지 않을 수 있으랴?


그는 왼통의 喜는 도저히 마주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함이니 가위를 들고, 작게 잘라 小喜 이리 이름 붙이며,

불안(不安, anxiety)의 공포로부터 이탈하고자 하는 것이다. 


두어라.

세상에 군자만 있으랴?

기실 99%는 다 소인임이라.


다만, 그가, 아무 말 없이, 

영상만으로써,

그것도 절제된 미학과 섬세한 터치로,

우리를 마주하고 있음이라.


내, 그를 가만히 지켜보기로 하였다.


깨작깨작 거리거나,

과장, 흥분된 모습으로,

사람을 꾀는데 여념이 없는,

천박한 이들보다는,

저들이 몇 곱은 세련되고, 우아하다.


하여,

그를 여기 소개해두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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