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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귀 공화국

상학(相學) : 2020. 2. 6. 15:29


칼귀 공화국


나는 진작에 칼귀(계취이, 雞嘴耳)에 대한 글을 쓴 적이 있다.

(※ 참고 글 : ☞ 칼귀)

(※ 참고 글 : ☞ 청문회와 관상 1)


묘한 노릇이다.


요즘 화제의 중심인물들.

문재인,

조국,

최강욱

이들의 귀가 저 칼귀가 아닌가 말이다.

기실 나는 전부터 이들의 관상에 주목하였다.

왜 정치권내지는 언론계에 이리 칼귀가 많은가?

게다가 근래, 말을 많이 털어내고, 

입으로(만) 주먹 쥔 이들 가운데도 칼귀가 적지 않다.


이해찬,

김어준,

박근혜,

김종인 ...


그 밖에도 적지 않다.

칼귀 어름에 속한 이도 보이고,

사진으로 판단하기엔 충분치 않아 지나친다.


과시 칼귀 공화국이 아닌가도 싶다.

누차 이야기 하지만,

나는 상학(相學)을 공부하였지만,

상학 그 자체에 매이지 않는다.

이에 대하여는 이미 앞에서 충분히 개진하였은즉, 더는 말을 하지 않겠다.


이를 전제로 이야기를 펴는 즉,

혹 관상학을 부정하거나, 또는 자신이 칼귀라 한들 오해를 하지 마시길 빈다.

외려 칼귀일지라도 쓰임에 따라서는,

큰 역할을 할 수 있음도 물론이다.


칼귀를 관상학엔 대개 다음과 같이 이르고 있다. 


雞嘴耳

耳的地輪部位如雞嘴一樣尖,沒有耳珠。這種耳形的人,喜歡争拗,不肯認輸,而情緒亦較不穩定,福澤欠佳。


“계취이

귀의 아랫 귓바퀴 부위가 닭부리처럼 뾰족하여, 귓불이 없다.

저런 종류의 귀 모양을 가진 사람은,

고집싸움을 좋아하고, 패배를 인정하지 않는다.

정서 역시 안정적이지 않으며,

복택이 좋지 않다.”


여기 고집이 세다는 것을 꺼내두고 생각해보면,

아닌 게 아니라,

앞에서 죽 이른 이들이 모두 그러하지 않은가 싶다.


나만 옳고, 내가 가는 길은 누구도 방해할 수 없다.

그러니 앞을 가로막고 시비 걸면 모두 무찌르고, 꺾어버릴 뿐 타협은 없다.

이리 씩씩하게 나아가는 무사의 이미지가 오버랩 된다.


허나, 본디 아무리 용감하더라도, 

법도를 모르면, 그저 칼 잘 쓰고, 창 잘 다루는 이에 불과할 뿐,

이들을 데리고는 전쟁에서 승리하기 어렵다.


軍政曰:「言不相聞,故為金鼓;視不相見,故為旌旗。」夫金鼓旌旗者,所以一人之耳目也;人既專一,則勇者不得獨進,怯者不得獨退,此用眾之法也。故夜戰多火鼓,晝戰多旌旗,所以變人之耳目也。

(孫子兵法 軍爭)


“군정에 이르길,


‘말해도 서로 들리지 않는 고로 금고(金鼓)를 만들고,

보아도 서로 볼 수 없는 즉, 정기(旌旗)를 만든다.’라 하였다.


대저, 금고와 정기는 사람의 이목을 하나로 하는 것이다.

사람이 이미 전일(專一)하면, 

곧 용자도 홀로 나가지 못하고,

겁자도 홀로 물러나지 못한다.

이것이 무리를 쓰는 법이다.


그런즉, 야전(夜戰)에 불과 북을 많이 사용하고,

주전(晝戰)에 정기(旌旗, banners and flags)를 많이 써서,

사람의 이목을 변하게 하는 것이다.


勇者不得獨進


아아, 그러함이니, 아무리 용자가 많다한들,

獨進이라, 홀로 날뛰어 나아간다면,

어찌 무리를 통솔할 수 있고,

원하는 승리를 이룰 수 있으랴?


더욱 큰 문제가 있다.

저 무리를 다스릴, 금고와 정기가 없으며,

이로써 법도를 곧게 세우고, 군령을 엄히 내리고,

통제할 통수(統帥)가 시원치 않다면,

군대는 전쟁에서 지고, 국가는 망하고 만다.


부리는 장수는 물론,

통수까지, 모두 칼귀(상징) 일색이라면,

외양 강건해 보이지만,

종국엔 不變人之耳目이라,

이목(耳目)이 고루(固陋)해져,

대업을 이룰 수 없음은 물론,

종국엔 자멸하게 된다.


하여, 손자는 이르고 있는 것이다.


所以變人之耳目也。


협착된 이목을 변화시켜야 한다.

이 역할은 칼귀 장수가 아니라,

두목에게 있는 법.

거꾸로 생각하면,

장수치고 칼귀 아닌 이는 드물다.

장수가 부뚜막에 올라온 얌생이 짓만 한다면,

어찌 전장터에 나가 무용을 자랑하며 적을 무찌르랴?

헌즉 장수가 칼귀인 것은 허물이 아니라,

외려 등짝을 두드리며 격려할 일이 아닌가 말이다.


헌즉,

실로 칼귀를 용감한 장수로 만들고,

지혜로운 지장으로 만드는 것은 모두,

두목에게 달렸다 할 밖에.


당달봉사의 눈을 뜨게 하고,

귀머거리의 귀를 열리 하는 것은,

실로 금고와 정기인 바라,

이 이치를 손자는 말하고 있음인데,

그대 당신들은 이 함의를 알아듣고 있음인가?


그럼, 이제 혹인(惑人) 하나가 있어,

칼귀 관상을 과연 너는 믿는가?

이리 묻는다면 나는 어찌 대답할 것인가?


丞相黃次公,故為陽夏游徼,與善相者同車俱行,見一婦人,年十七八。相者指之曰:「此婦人當大富貴,為封侯者夫人。」次公止車,審視之。相者曰:「今此婦人不富貴,卜書不用也。」次公問之,乃其旁里人巫家子也,即娶以為妻。其後次公果大富貴,位至丞相,封為列侯。夫次公富貴,婦人當配之,故果相遇,遂俱富貴。使次公命賤,不得婦人為偶,不宜為夫婦之時,則有二夫、趙王之禍。

(論衡)


“승상 황차공은 원래 양하(陽夏)에서 유요(游徼, 도적 잡는 관리)였다.

관상 잘 보는 이와 함께 수레를 타고 가는 길에 부인 하나를 보았다.

열 일고여덟 살은 되어 보이는데, 이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 부인(婦人-여자)은 크게 부귀하겠으니,

장차 봉후(封侯)의 부인(夫人-재상의 부인, 남의 처)이 되겠습니다.’


황차공은 수레를 세우고는 그를 잘 살펴보았다.

다시 관상 보는 이가 말한다.


‘이제 부인이 부귀해지지 않는다면,

복서(卜書, 점치는 책)란 게 모두 소용이 없을 것입니다.’


황차공이 여인에게 물으니, 무당의 딸이었으니,

바로 그녀를 처로 삼았다.


그 후, 황차공은 크게 부귀를 누렸고, 지위가 승상에 이르렀다.


대저, 황차공은 부귀해질 명운이었고, 

부인 또한 그의 짝이 될 운명이었다.

고로 마땅히 서로 만나 부귀해졌을 뿐이다.


만약 황차공이 비천하였다면, 부인을 짝으로 얻지 못하였을 것이다.

부부가 되기에 마땅치도 않은데, 짝이 되면,

*이나, 조왕의 화를 맞았을 것이다. 

(둘 : 왕망(王莽)의 고모인 정군(正君)과 결혼할 상대인 사내 둘을 뜻함.

모두 결혼도 하기 전에 돌연히 죽어버렸다.)”


논형을 지은 후한의 왕충(王充)은,

옛 사람치고 논리적이고, 합리적 인품인지라,

내 소싯적부터 사모하던 이이다.

허나, 가끔씩 앞 뒤 논술이 서로를 배반하고,

요즘의 안목으로 보자면 비과학적인 것이 더러 있다.

하지만, 당시, 그와 같이 논증을 통해,

사물의 근저에 다다르고,

바른 이치를 궁구하려던 이도 드물다.

그는 창턱마다 도필(刀筆)을 걸어놓고, 20여만 자에 이르는 논증서를 지었다.

대작이라는 한비자만 하여도 10여만 자인데, 

20여만 자라면 실로 엄청난 열정으로 지어진 대작이다.

凡論事者,違實不引證驗,則雖甘義繁說,眾不見信。

論則考之以心,效之以裏,浮虛之事,輒立證驗。

제자백가에 걸쳐, 논증으로 그 헛됨을 가르고 증험하였다.

그의 치열한 논증 정신을 나는 사랑한다.


今此婦人不富貴,卜書不用也。


나는 지금 바로 상자(相者)의 이 말씀을 떠올린다.


관상이 맞지 않는다면,

점(관상) 치는 책들은 모두 소용이 없을 것이라는 언명이,

마치 찬 하늘을 찌르는 은빛 조각달처럼 날카롭고 처연쿠나.


하지만, 이게 과연 옳은 것인가 아직도 공부가 얕은 나는 미처 다 모르겠다.

다만, 경험으로는 사주팔자보다는 관상이 사뭇 잘 맞는 것은 알겠다.

내가 시험 바로는 얼추 80~90%는 상학의 가르침이 다 들어맞았다.

그렇다한들, 나는 이에 매이진 않는다.

아무리 나쁜 관상일지라도 이를 극복할 도리는 모두 자신에게 있기 때문이다.

(※ 참고 글 : ☞ 면상불여심상(面相不如心相))


돌아와 다시 선다.

나는 문재인 정권이 이리 망가진 단서를 전부터 보고 있었다.

조국의 경우,

상식을 가진 이라면,

그의 이중성, 위선을 바로 알 수 있다.

그러함에도 대깨문(대가리가 깨져도 문)을 위시한,

상당수의 민중은 이를 가리고 덮고, 부정하는 일에, 

연일 동원되었다.

과연 저들 중 이를 제대로 깨닫는 이가 몇이나 될까?


이들을 동원한 이들은,

온갖 부정을 저지르고도, 

연신 대중의 눈을 가리고, 제 허물을 감추는 일에 종사하였을 뿐이다.

앞에서 내가 손자병법의 所以變人之耳目也 이 문구를 소개하였지 않은가?

저들은 큰 죄를 지었음이니,

공화국의 앞길을 가로 막는 불한당, 무뢰배들이라 할 밖에.


그 뿐인가?

엊그제 문은 조국에게 마음의 빚을 졌다고까지 하였다.


유시민 같은 어용(御用) 견유(犬儒)들은,

연신 망가진 집에 거적문 달아, 숨기며,

허물을 덮기에 급급하였다.

차라리 조막손으로 하늘을 가리라지.


이런 비상식적인 일이 어떻게 대명천지 밝은 세상에 벌어지고 있는가?

대저, 이러한 일은 두 가지 때문에 일어난다.


하나는, 욕심내지는 욕망으로 인해, 

안목이 협착되고, 어두워져, 

세상을 속이며, 제 잇속을 챙기려 혈안이 되기 때문이다.

이리 되면, 마음이 냅다 언덕 위로 치달아 달리며,

승냥이처럼 사나와지고, 부끄러움도 잊게 된다.

이제 세상은 저들로 인해,

먹장구름이 하늘을 덮어 한 조각하늘조차 보기 어려워진다.


또 하나는 ‘마음의 빚’ 바로 이 말에 답이 있다.

상대에게 빚이 있다는 말은 곧 약점을 잡히고 있다는 말과 매한가지다.

하나가 아니라, 서로 간에 약점을 연환쇄(連環鎖)처럼 지고, 잡힌 형국을 연상해보라.

남의 약점을 잡으면, 제 약점을 가릴 수 있고, 경중을 가리며 거래를 할 수 있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이게 상대를 궁박(窮迫)하는 무기가 되기도 한다.


문재인이 조국을 두고, 마음의 빚을 졌다 이르며,

또 한 편, 이젠 그만 그를 놓아주기 바란다 하였다.

이것 상식을 가진 이라면 도저히 이해, 납득할 수 없는 언사이다.

그 난리를 치며, 저들 무리들은 전방위적으로 조국을 지키려하였으나,

종내, 그는 시민들로부터 버려지지 않았던가?


하지만, 만약 감춰진 진실이 있다면 어찌 될 터인가?

이제, 비로소, 저들 사이에 사연이 있음을 쉬이 짐작할 수 있지 않겠음인가 말이다.


문 대통령은 나아가 "조 전 장관의 유무죄는 수사나 재판으로 밝혀질 것"이라며 "결과와 무관하게 조 전 장관이 지금까지 겪었던 어떤 고초, 그것만으로도 저는 크게 마음의 빚을 졌다고 생각한다"고 말하기까지 했다.


문 대통령은 그러면서 "국민께 호소하고 싶다. 조 전 장관 임명으로 국민의 갈등과 분열이 생겨나고 지금까지 이어지는 점은 송구스럽다"며 "그러나 이제 검경수사권 조정법안까지 다 통과되었으니 이젠 조 전 장관은 좀 놓아주기 바란다. 앞으로 유무죄는 그냥 재판 결과에 맡기고, 그분을 지지하는 분이든 반대하는 분이든 이제 갈등을 끝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출처 : viewsnnews)


문재인의 저 말은 결코 시민을 향한 말이 아니다.

조국을 의식한 말이며, 곧 그에게 전하는 메시지일 뿐이다.

- 내가 그대 당신을 이리도 염려하고 있어,

  그러니 너무 노여워하지 말고, 비밀을 잘 지켜줘.


불교엔 삼독(三毒)이란 것이 있다.

탐진치(貪瞋癡)가 그것인데,

기실, 탐(貪)과 진(瞋)은 치(癡)에 기인하는 것이다.

즉 어리석으면(癡) 욕심(貪)이 승하고, 부끄러움을 모르게 되며,

맑고 바르지 않으면(癡) 화(瞋)가 불처럼 일어나, 제 집까지 스스로 태우게 된다.

그러함이니, 결국 어리석음(癡)은 만병, 만악의 근원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저들 문정권 무리들을 두고,

욕심이 많다 하였지만, 기실 따지고 보면 어리석음(癡) 때문이다.

박근혜의 전비(前非)와 불행, 패악의 경로를 지켜보았을 터인데도,

욕심을 가리지 못하였으니, 어찌 어리석은 도당들이라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또한,

애시당초 약점을 잡힐 일 자체를 만들지 말았어야 한다.

혹, 약점이 있다면, 

불교식으로 이야기 하자면,

과감히 자자(自恣), 포살(布薩)을 행하여,

마음을 가지런히 정돈하고, 대중화합의 분위기를 진작시켰어야 한다.

그렇지 못하고,

점령군처럼 안하무인으로 전리품, 장물을 홀딱 다 포식하고,

국법을 무시하고 전단(專斷)하여 사익에 복무시켰다.

이 또한 따지고 보면, 어리석음(癡)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 할 밖에.


12연기설(十二緣起說)에도,

(① 무명(無明), ② 행(行), ③ 식(識), ④ 명색(名色), ⑤ 육처(六處), ⑥ 촉(觸), ⑦ 수(受), ⑧ 애(愛), ⑨ 취(取), ⑩ 유(有), ⑪ 생(生), ⑫ 노사(老死))

무명이 맨 앞에 있지 않은가?

무명을 끊어내지 못하면 결국 죽음에 이르고 마는 것.


이리 볼 때,

욕망도, 비리도 모두 어리석음에 기초하고 있음을 잘 알 수 있다.


문가 무리들.

저들은 기실 촛불도 처음엔 반대하였고, 참여도 하지 않았었다.

시민들이 촛불을 밝혀들고 횃불로 키우자, 

종국에 청와대도 불 사를 기세가 되지 않았던가?


기억하는가?


문재인은 애초 박근혜를 향해 이리 말하였다.


‘대통령이 그런 결단(퇴진 선언)을 내려준다면 명예롭게 퇴진할 수 있도록 협력할 뿐 아니라 퇴진 후에도 대통령의 명예가 지켜질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하겠다’

(출처 : 국민일보)


그들은 결코 촛불정신의 주역이 아니었다.

요리저리 주판만 튕기며,

방관하고 있다가,

세가 흘러가 큰 강물이 되고,

작은 소리가 천둥으로 변하자,

슬쩍 발목을 적시고,

가을 들녘 수확 끝나 버려진 수수깡 꺾어, 급히 깃발 끼어, 흔들며,

배시시 웃으며,

끼어든 무리에 불과하다.


어부지리로 정권을 취하자,

이젠 그들은 주인 노릇하며,

촛불정신을 팔아가며, 

적폐청산하자고 외쳤다.


하지만, 보아라.


‘세월호, 가습기, 사대강’ ...


그 가슴 아픈, 그러나 덮혀진 진실이 밝혀졌으며, 숱한 적폐들이 해결되었는가?

외려 스스로가 신적폐가 되어, 

박근혜가 걸은 길을 재현하며 따라가고 있을 뿐이다.


이제 남은 것은

대중공사(大衆公事)를 벌이는 것 뿐,

더 찾을 것이 없어 보인다.


시민들은,

공론에 붙여, 

저들의 잘잘못을 가리고, 

더러운 부패를 찾아내, 

공화국 정의의 재단(齋壇)에 올리고, 

민주 시민 나아가 천지신명(天地神明)의 심판을 받게 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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