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ngta      

대(待)와 중(中) - (時用, 時義, 時中)

소요유 : 2020. 2. 18. 16:08


대(待)와 중(中)

  (時用, 時義, 時中)


子貢曰:「有美玉於斯,韞匵而藏諸?求善賈而沽諸?」子曰:「沽之哉!沽之哉!我待賈者也。」

(論語)


“자공이 여쭙다.


‘아름다운 옥이 있다면, 궤 속에 넣고 감춰두겠습니까?’


공자께서 말씀 하시다.


‘팔아야지, 팔고 말고, 나는 (옥을 살) 상인을 기다리고 있노라.’”


예로부터 옥은 군자를 말한다.

그리고 賈者 즉 상인은 왕을 지칭한다.


군자란, 왕에게 발탁되어 제 소신대로 바른 정치를 펴는 것이 소명인 것.

거꾸로, 제대로 된 왕이라면, 옥처럼 아름다운 선비를 구하는 것이 원망(願望)일 터.


그렇다 하여, 왕과 군자를 그저 단순히 주종 관계라 규정할 것은 없다.


태공망(太公望, 呂尚) 즉 속칭 강태공이,

주(周)의 서백창(西伯昌)을 만나 공을 이뤘다 할 때,

서백창이 태공망을 얻어 부렸다 하고 그칠 일이 아니다.

거꾸로, 태공망이 서백창의 부름에(call),

그를 가려(擇) 응했다 하여도 전혀 잘못이 없다.


환언하면, 장부 대(對) 장부의 만남이었을 뿐,

주종, 상하 관계로 규정할 일이 아니란 말이다.

다, 제 신분, 위치에 따른 명운(命運)이 달랐을 뿐,

이를 수직 종속 관계로 파악할 일이 아니다.


滕文公為世子,將之楚,過宋而見孟子。孟子道性善,言必稱堯舜。

世子自楚反,復見孟子。孟子曰:「世子疑吾言乎?夫道一而已矣。成覸謂齊景公曰:『彼丈夫也,我丈夫也,吾何畏彼哉?』顏淵曰:『舜何人也?予何人也?有為者亦若是。』公明儀曰:『文王我師也,周公豈欺我哉?』今滕,絕長補短,將五十里也,猶可以為善國。《書》曰:『若藥不瞑眩,厥疾不瘳。』」

(孟子)


“등문공이 세자였을 때, 초나라로 가는 길에, 송나라를 거쳐 맹자를 뵈었다.

맹자는 사람의 본성이 선함을 말하되, 말할 때마다 요순을 들었다.

세자가 초나라에서 돌아오는 길에, 다시 맹자를 뵈오니, 맹자가 말씀하셨다.

세자께선, 내 말을 의심하오니까? 무릇 도는 하나뿐입니다.

성간(成覵)은 제(齊) 경공(景公)에게 말하기를,

‘저 사람도 장부이고, 나도 장부인데,

내가 어찌 저 사람을 두려워하겠습니까?’ 하였습니다.

이에 안연(顔淵)이 말하기를,

‘순임금은 어떤 인물이고, 나는 어떤 인물인가?

선한 일을 하는 자는 또한 이와 같을 것이다’ 하였다.


그래서 공명의(公明儀)가 말하기를,

‘문왕(文王)은 나의 스승이라고 한, 주공이 어찌 나를 속이리오’라고 했습니다.

그러니 이제 등나라는 절장보단(絶長補短)하면, 거의 50리가 되니, 

좋은 나라로 만들 수가 있습니다.

서경(書經)에 말하기를, 

‘만약에 약(藥)이 독하여 눈을 캄캄하게 하고 어지럽게 하지 않는다면,

그 병은 낫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彼丈夫也,我丈夫也,


아아, 그러함이니, 사내 장부의 만남은,

서로 간 배장이 맞아 친구가 되고, 동지가 될 뿐인 바라.

지위를 굳이 나눌 일은 아니다.


유비가 관우, 장비와,

복사꽃 나리는 정원에서,

도원결의(桃園結義)할 제,

여기 어찌 주종 관계로 나뉨이 있으랴?

저들은 피를 나눈 형제임이라,

하여 삽혈(歃血)하여,

하늘에 이를 고하고, 맹세하지 않던가?


헌데, 만남에 때가 있는 법.

강태공이 곧은 낚싯대를 강물에 띄우고 있음은,

곧 때를 고르고 있는 것이지, 

넋을 잃고 헛된 짓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를 일러 시용(時用)이라 한다.

즉, 아직 쓰임이 없는 혼란 상태에서,

이를 건너(濟) 변통(變通)할,

가능성이 내재되어, 즉 포장(包藏)되어 있음이라.

시용이란, 가능태이자, 미래의 실천태로 함태(含態)되어 있는 상태를 가리킨다.

(※ 참고 글 : ☞ 궁즉통(窮則通))


시의(時義)는 그 함장되어 있는 시용(時用)이,

구체적 삶의 전개 현장에서 실천되는 상태를 지칭한다.


그럼 시중(時中)이란 무엇인가?


君子中庸,小人反中庸。君子之中庸也,君子而時中;小人之中庸也,小人而無忌憚也。

(中庸)


“군자는 중용하고, 소인은 반중용한다.

군자의 중용은, 군자로서, 때에 맞춤 맞게 하는 것이고,

소인의 중용은, 소인으로서, 기탄이 없는 것이다.”


군자는 때에 맞춰 나서지만,

소인은 이를 가리지 않고 나댄다는 말이다.


시중(時中)은 

발현 이전, 시간의 흐름 가운데에선 아직 불확정적이나,

마침 실현되는 순간에선 딱 하나로 고정된다.

군자는 고르고 골라 바로 이때에 나선다.

그러함이니, 기다림(待)이 없고서는 이 과녁을 맞힐 수 없다.


반면, 소인은 제 욕심대로,

시의(時義)를 무시하고,

스스로 지어 시용(時用)의 주체가 된다.

천시(天時)를 거스르니,

無忌憚이라 하는 것이다.

거리낌이 없으니,

소인은 기다림(待)을 아지 못한다.


아, 그러함이니,

알묘조장이라, 싹이 자라는 것을 도와주겠다고, 뽑아 올린다.

(※ 참고 글 : ☞ 전지(剪枝)와 알묘조장(揠苗助長))


天下之不助苗長者寡矣。


아아, 

천하엔 싹이 자라는 것을 도와, 뽑아 올리지 않는 사람이 적은 법이다.


비료를 팔아먹는 이들은, 비료를 주지 않으면 농사를 망친다 선전하고,

영양제, 액비를 파는 장사치들은 이를 주면 농작물이 배 이상 잘 자란다 뻥을 친다. 


中庸 ↔ 反中庸

時中 ↔ 無忌憚


천하의 장사치들은 모두,

反中庸하는 소인배들이라,

無忌憚하라 사람들을 꾄다.

그렇하지 않으면 큰 탈이 난다 이르며 겁박하길 주저하지 않는다.


여담이지만,

내가 노무현을 한 때 좋아하고 믿었지만,

그가 아파트 분양가 공개 공약을 뒤집으며,

이리 말하였을 때, 이 사람이 과연 군자인가?

군자연(君子然)하고 있었음에 불과하지 않은가 의심을 일으킨 적이 있다. 


“장사의 원리에 맞지 않는다”

“장사하는 것인데 10배 남는 장사도 있고 10배 밑지는 장사도 있다”


그리고, 그는 이리 말했다.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갔다’


그리고는 삼성에 굴복하였다.

아니, 애초부터 그럴 뜻을 품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時用, 時義, 時中


그는 時中을 알았음이다.

無忌憚할 때를 고르고 있었음이다.

대통령 당선 전에는 돼지 저금통 팔며, 

‘아파트 분양가 공개’를 공약으로 내다 걸고,

대통령이 되자,

바로 뒤집으며,

장사꾼 편으로 돌아섰다.

아닌 애초부터 그는 장사꾼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그는 시간의 한가운데 과녁을 잘 맞추고 있었음이다.

無忌憚

시민과의 약속을 거리낌 없이 저버리는,

그 시간을 잘 고르고 있었음이다.

천시(天時)가 아니라 인시(人時), 인욕시(人慾時) 말이다.


천시를 무시한 후과로,

그는 부엉이 바위에서 뛰어내리게 되었고,

오늘의 엉터리 문재인 정권을 떨궈낸 게 아닌가?

나는 이리 의심한다.


진보의 가치를,

제 사익과 엿바꿔 먹은 저들을 이제 더는 쳐다보기 싫다.


저 불결한 무리들.


'소요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종교법 개정하자.  (0) 2020.02.20
싫어하는 데 필요한 건 기억력뿐이다  (0) 2020.02.20
임(任)  (0) 2020.02.18
대(待)와 중(中) - (時用, 時義, 時中)  (0) 2020.02.18
두꺼운 책  (0) 2020.02.17
positive feedback system과 친문  (0) 2020.02.15
상변화(相變化, phase change)  (0) 2020.02.12
Bongta LicenseBongta Stock License bottomtop
이 저작물은 봉타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3.0 라이센스에 따라 이용행위에 제한을 받습니다.

  댓글 쓰기